감전 후 대기업이 나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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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動心)
작품등록일 :
2024.07.2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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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급한 사람이 가는 게 맞지 않씀까?

DUMMY

1분.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굉음이 들리고 난 뒤, 첫 마디가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김지형 부장이 중얼거렸다. 육안으로는 상황을 식별하기 어려웠다. 먼지가 아직 걷히기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한 가지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x 됐다.'

모르긴 몰라도 사고가 난 것이다. 그것도 직속상관이자 사업부장 다음 가는 권력자인 엔진 실장 앞에서.


"다들 움직이면 안됩니다. 공 파레트 적재물이 추가로 붕괴할 우려가 있습니다."


충격에서 헤어난 사람들 사이에 슬슬 불안이 퍼져나갈 무렵이었다.

뚜렷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사람들의 고막에 울려퍼졌다.

"고, 공 파레트 적재물?"

"그게 무슨 소리야."

"이봐, 지금 말하고 있는 거 누구야?"

여기저기서 의문이 터져 나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먼지가 걷히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만 지금 위치를 지키세요."

도현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켜 주십시오-가 아니라 지키세요-. 그것도 명령조로 말이다.

평소 같았으면 발작을 일으켰을 사람들이었지만.

"......."

지금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만큼 무서웠고, 또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적재해 놓은 공 파레트 더미가 흔들리는 걸 봤다는 겁니까?"

"네."

"그래서 몸을 던졌고? 당신이 다칠 지도 모르는데?"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멍청한 판단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네. 제가 알아 차렸을 때는 파레트가 이미 기울어지기 시작 했을 때였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애 먼 사람들이 떼 죽음 당하겠다 싶어서 저도 모르게 몸을 날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구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었지만,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절대 몸을 던지지 않을 거라고 다짐 했다.

'내가 죽으면 내 새끼는 어떡해.'

그의 목숨은 오롯이 그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김 부장."

그때였다.

도현에게 모든 사건의 경위를 들은 변웅석.

그가 뇌까리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 부장! 대답 안해!"

"네, 넵!"

"궁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야. 왜 사람들이 다니는 통행로 바로 앞에 공 파레트가 적재 되어 있는지. 쌓을 거면 똑바로 쌓기라도 하던가, 왜 개 x같이 쌓아서 애먼 사람 여럿 죽일 상황을 만들었는지."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무릎 꿇고 싹싹 빌면, 죽은 동료들이 돌아 오나? 생관!"

김지형 부장 옆에 시립해 있던 생산 관리 과장.

그는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은 채로 변웅석에게 바짝 다가섰다.

"저거 Y 크랑크 공 파렛트지?"

파레트.

엔진의 아세이(부속품)를 대량으로 실은 철제 틀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웠다.

지게 차가 아세이를 가득 실은 풀(가득 찬) 파레트를 제일 첫 공정에 투입하고.

투입 로봇이 모든 아세이를 운반하면, 공(空 : 비어있는) 파레트 콘베어로 배출한다.

공 파레트는 다시 주물 공장(아세이를 찍어 내는 공장)에 보내지게 되는데.

파레트의 운반을 담당하는 게 바로 생산 관리 과였다.

한 마디로 2층에 파레트를 쌓으라고 지시한 건, 생산 관리 과장이라는 뜻.


생관 과장이 덜덜 떨리는 손을 숨기지 못한 채로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1층에 있어야 할 크랑크 공 파레트가, 왜 2층에 쌓여 있는 거지?"

"그게.. 1층에 자리가 없어서 임시로 2층에 옮겨 놓은 겁니다. 1층에는 재고를 쌓아 놓느라 스패어 공간이 없어서.."

"그래, 그건 이해 해. 곧 임단협 시즌이라, 파업하기 전에 미리 재고 쌓아 놓으라는 지시는 내가 내린 거니까. 근데."

변웅석이 천천히 좌중을 둘러 보았다.

흠칫-

그의 시선이 닿은 Y엔진 간부들은 하나 같이 몸을 떨었는데.

그의 사인 하나면 지난 몇 년 동안 쌓은 인사 고과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층에 자리가 없으면, 야외에 놔뒀어야지."

예상치 못한 지적에 생산 과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 아니 그건."

"근데 또 야외에 놔두긴 싫었을 거야. 왜? 가뜩이나 주차 할 공간도 비좁은데 파레트까지 쌓아 놓으면 본관 주차장에 차 대고 걸어 와야 하니까. 그럼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근해야 하니까."

변웅석이 김지형 부장의 가슴 팍을 쿡- 찔렀다.

[김지형 부장.]

정확히 명찰이 메어져 있는 부분이었다.


"근데... 그런 불합리함을 감수하는 조건으로 부장, 과장 직책 단 거 아닌가? 설마 억대 연봉은 받고 싶은데, 그런 리스크는 감당하기가 싫은 건가?"

"......"

"아니면 그런 이기적인 김지형이를 부장 자리에 올리자고 적극 추천한, 내 안목이 틀린 건가?"

장내의 분위기가 또 한 번 살얼음 판처럼 변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적막.

변웅석이 입을 열었다.

"이번 일, 나 그냥 안 넘어가."

"..... 죄송합니다."

"파레트 적재한 작업자 징계위 올려. 이번 일 방치한 생관에서도 총대 멜 사람 하나 구해 놓고. 무슨 말인지 알지?"

어느새 변웅석의 목소리에는 흥분기가 사라져 있었다. 언뜻 듯기에 친절하게까지 느껴지는 나긋나긋한 말투. 하지만 Y엔진 간부들은 그런 그의 모습이 더욱 살벌하게 다가 왔다.

김지형 부장이 힘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줄 초상이라도 났어? 인상 안 펴?"

"......."

"징계로 끝나는 걸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 너희, 저 분 아니었으면 다 뒈질 뻔 했어."

저 분.

이 자리에서 변웅석이 존칭을 쓸만한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다.

긁적긁적-

도현은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었다.

"다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20세기 테크라고 했나요? 이 부장님이 근무 중인 업체가?"

"네, 맞습니다."

"이번 일에 대한 보답은 사업부 차원에서 진행될 겁니다. 그만큼 큰 일을 해주신 겁니다."

변웅석의 목소리는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만약 사람이 죽었다면? 그게 본인이어도 문제였고, 본인이 아니어도 문제였다. 엔진 변속기 사업부를 넘어서 이형석 대표 이사가 사임을 해야 겨우 진정될 만한 이슈였다. "이 부장이 우리 목숨을 구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그 참사를 도현이 막아낸 것이다.




"그러니까, 이 부장 님이 몸을 던지고 나서..."


김춘식은 연신 침을 튀겨 가며 열변을 토해냈다.


"쾅-! 하는 소리가 났다고?"

"그냥 쾅-!이 아니었어요. 전 건물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알고 보니 공 파레트 적재를 잘못 해서 무너진 거였다?"

통상적으로 파레트의 윗 부분에는 홈이 있고, 밑 부분은 날카로운 정 모양이다. 위로 쌓을 수 있게 설계된 것이다.

그래서 파레트를 쌓을 때는 꼭 정과 홈이 알맞게 결합 되는지를 확인 해야 한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네. 파레트 홈을 대충 맞춘 거 같더라고요."

도현이 겪은 것과 같은 사고가 발생하고 만다.

"다친 사람은 없어요?"

전현우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만약, 다친 사람이 있다면. 그 다친 사람이 이도현 부장이라면...

'원청이고 뭐고 싹 다 엎어 버릴거야.'

귀한 인재의 옥체를 소손한 대가를 똑똑히 치루게 해줄 생각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스컴과 미래 차 내부의 인맥을 총 동원 해서라도.

"전 괜찮습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한 남자가 유유자적한 걸음으로 걸어 오고 있었다.

"다친 사람도 아무도 없고요."

춘식이 침까지 튀겨가며 말하고 있는 무용담의 주인공, 도현이었다.

"이 부장!"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사 님."

"이 사람아! 어쩌자고 그런 무모한 짓을 했어!"

무모한 짓.

그 단어에 딱 어울리는 짓이었다. 남의 목숨을 구하자고 몸을 던진 건.

'결론적으로 잘 돼서 다행이지만..'

도현의 팔에 커다란 거즈가 붙여져 있다는 걸 확인한 전현우가 기함을 터트렸다.

"이 부장! 팔에 그거 뭐야?"

"아, 넘어지면서 살짝 긁힌 거 같습니다."

"이런 씨X... 김 부장 이 X새끼를 그냥!"

전현우는 진심으로 화가 난 표정이었다. 평소 같지 않게 욕설까지 섞어가며 분노하는 그를 본 도현은 의아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전 이사 님.."

"후우... 미안해. 안전사고가 난 이유가 뻔히 보여서 그래. 미친 새X끼들.. 지들 조금 편하자고 변칙 작업 한 거 때문에 사람이 죽을 뻔했잖아.."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는 전현우.

화가 나 있는 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휴.. 진짜 큰 일이라도 났어 봐요."

"이 부장 님, 다음 부턴 절대 그러시면 안됩니다."

"그래 도현아. 너 없으면 회사 자체가 안 돌아가. 몸 좀 사려라 제발."

장내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아서 도현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

동료들의 눈에 담긴 진심을 확인한 도현.

그는 순간 울컥한 심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감전 당하고 나서 돌아 왔을 때와는 다르게,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도현은, 낯간지럽지만, 그래서 더 가슴이 따뜻해 지는 한 단어를 떠올렸다.

'이게 동료구나.'

동료.

현장에서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들이 생긴 기분이었다.


'뭐, 뭐야... 언제 저렇게..'

한편.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임광혁은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이도현.

휴직을 내기 전까지만 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한 눈에 받았던 그가, 어느새 동료들의 신임을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내가 없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뭐, 뭐라고요?"

김원식.

사장 실에서 조용히 골프를 연습하던 그는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릴레이 보드 작업을 중지 하신다고요?"

난데 없이 전화를 걸어 온 Y엔진 부장이, 릴레이 보드 작업 중지 사실을 알려 왔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V엔진, T엔진, Z엔진 등등.

릴레이 보드를 납품하고 있는 모든 엔진.변속기 측 공장에서 릴레이 보드 작업 중지를 알려 왔다.

털썩-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20세기의 핵심 캐시카우로 성장 중이던 릴레이 보드 산업이 한 순간에 포즈될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도대체 왜...'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는, 곧 원청의 인맥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 했다. 지원 실장, 총무 부장, 노안실 실장 등등.

한참을 통화를 돌리던 그는, 곧 릴레이 보드 작업이 중지 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안전 사고가 났다고?"

Y엔진에서 안전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엔진 실장이 보는 앞에서.

부들부들-

이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짐작한 김원식이 손을 떨었다.

릴레이 보드 작업은 시업 시작 전 새벽에 진행한다. 기본 정취가 아닌 시업 외 작업이기에 본청의 안전 관리자 한 명은 조출을 하고 안전작업확인서를 발급하는 등 절차가 까다로운데.

안전사고가 터짐과 동시에 그 절차를 밟는 게 훨씬 어려워 진 것이다.

"제길... 당분간 현금이 말라 버리겠군."

김원식이 침음성을 흘렸다.

중소 기업의 특성 상 현금 흐름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자금 수입처가 막혀 버린 것이다.

"당분간 허리를 졸라 메야겠네."

김원식은 짜증이 나는 듯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위이이잉-!

그 순간, 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 했다.

오전 내내 전화에 시달린 김원식은 신경질적으로 휴대 전화를 꺼내들었는데.

"..... 엔진 실장?"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변웅석.

엔진 부서의 오야지에게 걸려 온 전화였기 때문이다.

"20세기 김원식 전화 받았습니다."

"나 변웅석이에요. 우리 전에 밥 한끼 한 적 있죠?"

"아, 네."

잠시 기억을 더듬던 김원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꽤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20세기를 이끌었던 시절. 당시 V엔진의 부장이었던 변웅석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아버님, 김 상무 님은 잘 계시고요?"

"아직 정정 하십니다."

"허허, 다행입니다. 전화 드린 건 다름이 아니고... 들으셨죠? 이번에 Y엔진에서 사고 난 거?"

김원식은 침울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파레트 더미가 무너졌다고.."

"정말 큰일날 뻔 했어요. 이도현 부장이 아니었으면.."

"네? 이도현 부장이요?"

김원식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안전 사고 얘기를 꺼내기에 당연히 릴레이 보드 쪽 이야기를 꺼낼 줄 알았는데.

왜 이도현의 이름이 나온단 말인가?

"아직 못 들으셨어요? 이도현 부장이 몸을 던져서 사무실 직원들을 구했어요."

"......네?"

"진짜 모르시나 보네. 아무튼, 그건 이 부장한테 따로 말씀 들으시고...."

변웅석은 헛 기침을 한 번 한 뒤, 말을 이었다.

"이건 김 사장 님만 알고 계셔야 하는 사항입니다."

낮고 진중한 목소리에 김원식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다음 달에, 본사에서 감사를 나오기로 했습니다."

"감사요?"

"네. 자세한 내막은 말씀 드릴 수 없지만.. 쥐 잡듯이 지적 사항을 잡아 낼 거라는 건 확실하죠."

김원식은 곧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거지..'

해답은 변웅석의 이어진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부탁 드리겠습니다. 보전 측 인원들과 협력해서, 안전 미비 사항들을 좀 잡아 내 주십시오."

"아, 안전 미비 사항들을요?"

"네. 이 부장이라는 사람.. 눈썰미가 상당하더라고요? T엔진에서 변칙 작업을 한 것도 잡아 냈고... 실력은 충분한 거 같습니다."

T엔진 변칙 작업이라면, OT 센서를 패스 하고 장비를 돌린 사건을 말하는 거 같았다.

'.... 실장은 실장이네.'

그걸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능력 있는 실장이라는 증거나 다름 없었는데.

"저희가 잘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김원식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 했다.

'이 부장 실력이야 자타공인 탑 클라스지만..'

안전 미비 사항을 잡아 내는 건 전혀 다른 분야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때.

변웅석이 그의 불안을 달래주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메인은 저희 보전 측에서 주도할 거고, 20세기는 그저 보조 역할만 해주시면 되니까요."

"....."

"릴레이 보드 작업이 중지된 지금 상황에선, 거절 할 이유가 없으실 거 같은데요?"

"아...."

"이 부장이라는 사람 성과금도 낭낭하게 챙겨 주시고요. 무슨 뜻인지 아시죠?"

김원식은 그제야 무언가 깨달은 듯 탄성을 흘렸다.

돌려 돌려 말하고 있었지만, 결국 변웅석이 말하고자 하는 건.

'퉁 치자는 거네.'

빚을 갚겠다는 것이었다.

안전 점검을 맡기겠다는 건,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대한 보답이었다.




"이 부장님. 너무 더워요."

뽀꿀람이 칭얼 거렸다.

도현은 그런 그에게 시원한 쿨 토시 하나를 건넸다.

"자, 이거 좀 끼고 있어요. 물만 묻히면 꽤 시원할 거에요."

"꼬마워요. 이 부장님 쩨고!"

도현에게 알랑 방구를 뀐 뽀꿀람이 임광혁을 째려 보았다.

"임 과장은 뭐 준비한 거 업써?"

"내가 왜...."

"싸회 쌩활 진짜 못하네. 그러니까 여자친구한테 차이지."

"뭐, 뭐라고?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뭐 어쩔 껀데? 쳐 봐! 임 과장 돈 많아?"

어느 날처럼 티격 대는 두 사람.

도현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장내를 둘러 보았다.

'안전 점검이라...'

그와 스무 명의 팀원들이 Y엔진에 방문한 목적은 간단했다.

안전 미비 사항 점검.

본사의 감사에 대비해 지원을 나온 것이다.

- 이 부장. 그냥 설렁설렁 하다가 오면 돼. 굳이 무리할 필요 없어.

김원식과 나눴던 대화가 아른아른 떠올랐다.

늘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던 상사가 난데 없이 쉬다 오라는 식으로 말하자, 도현은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 진짜 대충 해도 됩니까?

- 응. 적당히 눈치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하고 와. 무슨 말인지는, 이 부장도 대충 알지?

- .... 조용히 입 닫는 조건입니까? 초절전 회로 때처럼?

- 더럽지만 그게 이 바닥의 생리잖냐. X 같아도 원청 눈 밖에 나면, 일 거리 자체가 씨가 말라버려. 인센티브는 릴레이 보드 때랑 똑같이 넣어 줄테니까, 이번 한 번만 고생해 줘.


목숨을 구해줬을 당시에는 은인처럼 받들다가, 뒤돌아서고 나니 돈 다발을 건네 주는 느낌이었다.

싫진 않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은 기분.

'... 딱히 인정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니까.'

사실 원청 실장에게 이만한 대우를 받은 것만 해도 대단한 거다. 애초에 뭔가를 바라고 벌인 일이 아니기도 했고.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확실하게 깨달았다. 내 몸을 갈아 넣어서 남을 도울 필요는 없다. 굳이 그렇게 하려면, 남들 보다 높은 위치에 있을 때 그렇게 해야 한다.

'강자의 도움은 관용이고.'

약자의 도움은 굴복이니까-

불합리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

'결국 내가 잘나면 모든 게 해결 되네.'

다행히도 도현에겐 지금보다 훨씬 잘나질 수 있는 사기적인 능력이 있었다.

시스템 창.

도현은 새로 얻은 스킬, [안전제일주의]를 켰다.

'김 사장은 대충 시다바리나 하고 오라고 했지만..'

도현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안전 위험 요인을 해결 했습니다.]

[엔지니어의 눈(LV.3)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안전 위험 요인을 해결 할 때마다, 엔지니어의 눈의 숙련도가 큰 폭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현재 공간의 위험 요소를 파악합니다.]


도현 역시 새로운 사냥터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김지형 부장.

그는 보전 부의 반장인 김준영이 제출한 보고서를 확인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스무 개라.. 일주일 만에 이 정도면 꽤 괜찮네."

스무 개.

보전 부에서 찾아낸 안전 미비 사항의 개수였다.

다르게 말하면, 본사에서 딴지를 걸만한 사항이 스무 개 줄었다는 거나 다름 없었다.

'최대한 많이 잡아 내야 해. 아니면...'

실장 자리는 꿈도 못 꿔-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말이 씨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필 거기서 파레트가 무너져서..'

사실 김지형은 유력한 차기 실장 후보였다.

나이가 젊기도 했고, 무엇보다 변웅석의 학교 후배였던 것이다. 그래서 다음 실장은 무난하게 그가 될 거라고 말이 돌고 있었는데, 이번 사고를 계기로 판도가 아예 뒤집혀 버렸다.

'이번 감사에서는, 절대 실수를 하면 안 돼.'

그래서 그는 이번 감사에 사활을 걸었다.

작정하고 털러 나오는 본사를 피해갈 수 는 없겠지만, 최소한 다른 부서보다는 책을

'덜' 잡히자는 게 그의 목표였다.

"싸장 님?"

그렇게 나 홀로 목표를 되새기던 그때.

문득 똑똑-하는 소리와 함께 어눌한 한국어가 들려 왔다.

김지형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이씹쎄기 테크에써 와씁니다."

"20세기요? 흠.. 일단 들어 오세요."

문을 열고 등장한 건 인도계의 외국인이었다.

'20세기도 끝물인가 보네. 이런 외노자나 쓰고..'

김지형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아무리 인력 난이라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다니. 20세기에 대한 신뢰가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는데.

그런 그의 기분은 그대로 태도에 묻어 났다.

"그래, 무슨 용무에요?"

외국인이 그에게 웬 파일 철을 건넸다.

"이 부장 님이 갖다 주라고 하쎠써요."

"이도현 부장이요?"

"네."

서류를 받아 든 김지형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20세기한테 따로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말은 한 적이 없는데..'

20세기를 부른 건 어디까지나 '입막음' 용도였다. 편하게 일하고 돈 벌어 가는 조건으로, 파레트 붕괴 사건은 함구하라는 의도.

도현이 그에게 파일 철을 건넬 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스르륵-

의문을 뒤로 하고 첫 장을 넘겼다.

바로 그 순간.

"....... 이, 이거 뭐야?"

김지형의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별 생각 없이 펴 본 파일 철에는.


[1. 크랑크 130번 장비 앞 콘센트 피복 까짐.]

[2. 창고 적재함 측 클램프 확인 센서 케이블 플렉시블 작업 미비.]

.

.

.

[40. 동측 3번 출구 지게 차 전용 자동 문 개폐 인버터 고장.]


안전 미비 사항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 마흔 개나 찾았어?'

심지어 보전 반에서 찾은 것보다 두 배나 많은 양이었다.

"다 보셨으면 이제 주쎄요."

".... 뭐라고요? 이 부장이 나한테 주라고 한 거 아니었어요?"

팟-

외국인, 뽀꿀람은 무슨 소리냐는 듯 잽싸게 파일 철을 뺏어갔다.

"너무 날로 먹으려는 거 아님까?"

"뭐라고?"

"파일 철 내용을 다 확인하면, 다시 가져 오라고 하쎴어요."

".......뭐?"

뽀꿀람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비슷한 내용의 파일철이 하나 더 있다고 하쎴씁니다."

"뭐, 뭐라고?"

본청에서도 스무 개 밖에 못 찾은 안전 미비 사항이 60개나 더 있다는 뜻이다. 순간 김지형 부장의 두 눈에 간절함이 어렸다.

"이, 이도현 부장 지금 어딨나? 지금 당장 여기로 오라고 해!"

얼마나 급한지 자연스럽게 반말이 흘러 나왔는데.

"김지형 부장님. 상황 파악이 아직 잘 안되씨는 거 같씀다."

뽀꿀람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급한 싸람이 가는 게 맞지 않씀까?"

"뭐, 뭐라고?"

"김 부장님이 직접 찾아 가라는 뜻임다."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의 김 부장.

뽀꿀람은 그런 그에게 쐐기를 박았다.

전과는 달리, 또박또박한 한국어였다.

"그리고 이건 엿들은 건데.. 변웅석 실장하고 오늘 저녁에 미팅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부장이랑 변 실장 님이?"

"저녁 일곱 시에 만난다고 한 거 같은데.."

김 부장은 서둘러 시간을 확인했다.

16:30분.

두 시간 뒤면 변 실장과 도현이 단 둘이 만난 다는 뜻이었다.


'만약 파일 철이 변 실장 님 손에 들어가면..'


업체가 안전 미비 사항 80개를 찾아 낼 동안, 20개 밖에 못 찾았다는 걸 변 실장이 알게 된다면.


'완전 나가리야.'


김지형은 처음 보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이도현 부장 지금 어디 있나?"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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