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전 후 대기업이 나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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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動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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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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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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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29. 사고 임박.

DUMMY

안전제일주의.

새로 얻은 스킬에 대한 도현의 평가는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글쎄..'였다.

"뭔가 애매하네."

능력치를 올려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생산성을 올려 주는 것도 아니다. 이런 스킬이 처음인 도현으로선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는데.

'일단 써보자.'

늘 그렇듯, 도현은 일단 스킬을 활성화 했다.

그러자.

[현재 공간의 위험 요소를 파악합니다.]

[엔지니어의 눈(LV.3)의 레벨이 낮아 모든 요소를 파악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퀘퀘하고 허름한 전기 작업실.]

[종합 레벨 : 2]

[안전 위험 요소 : 12]

[파악하지 못한 위험 요소 : 4]

처음 보는 인터페이스의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기본 골자는 [엔지니어의 눈]과 비슷한 거 같았는데.

엔지니어의 눈이 장비의 에러를 알려 준다면, 안전제일주의는 해당 공간의 위험 요소를 알려 주는 것 같았다.

'일단 한 번 볼까?'

도현은 안전 위험 요소를 열어 보았다.

[안전 위험 요소.]

1. 우레탄 바닥 꺼짐(輕)

2. 노후화 된 콘센트(死)

3. 원형 전기톱 커버 깨짐(重)

.

.

.

12. 널부러진 공구(輕)

리스트를 모두 확인한 도현의 눈이 살짝 커졌다.

경(輕)

중(重)

사(死)

안전에 위협이 될만한 요소가 총 3가지로 분류된 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 눈에 보이네?'

스킬을 켜 놓은 채로 장내를 둘러 보던 도현.

그는 달라진 점을 깨닫고 헛 숨을 들이켰다.

각자의 색을 품고 있던 세상이, 무채색으로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

콘센트.

우레탄 바닥.

원형 전기 톱 커버.

무채색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색을 가진 건, 안전 리스트에서 봤던 위험 요소들 뿐이었다.

'색에 따라 위험도가 달라지는 구나.'

또 하나 깨달은 점.

빨간 색.

노란 색.

초록 색.

색깔에 따라 위험도가 나뉘었다.

정황상 빨간 색이 죽음(死) 등급인 거 같았는데.

부르르-

피처럼 붉은 빨간색으로 뒤덮힌 콘센트를 본 도현이 흠칫 몸을 떨었다.


아무렇지 않게 방치되어 있는 콘센트 끝자락이 미세하게 까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 챈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만졌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 감전 유경험자인 도현이었기에 더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

괜히 빨간색, 사(死) 등급으로 분류해 놓은 게 아닌 것이다.

'앞으로 작업할 때는 켜 놔야겠어.'

돈을 많이 벌었다.

이제 막 인생이 술술 풀리고 있는데, 안전 사고를 당해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순 없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스킬일지도?'

그런 의미에서 보면 꽤 괜찮은 스킬일지도 몰랐다.



20세기 테크 사장 실.

"자네가 왜 여기..."

전현우와 김원식은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눈 앞의 남자를 바라 보았다.

구리 빛 피부.

날카로운 눈매.

딱 봐도 한 성격 할 거 같은 30대 남성이 그들 앞에 앉아 있었다.

송기오, 이제는 프리랜서가 된 그가 20세기 테크에 찾아온 것이다.

"제가 오면 안 될 곳이라도 온 겁니까?"

전현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으로 물어본 게 아니란 거 알지 않나?"

"알죠. 너무 잘 알아서 문제죠."

송기오는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그래도 손님이 왔는데, 커피나 한 잔 내주시면 안됩니까?"

전현우는 피식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내 정신 좀 보게. 귀한 손님을 그냥 방치했군. 김 비서! 커피 한 잔 타 와!"

"설탕은 한 스푼만 부탁 드립니다. 위가 별로 안 좋아서."

"..... 설탕은 한 스푼만!"


김 비서가 커피를 대령했고.

전현우가 천천히 입을 뗐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YM을 그만 뒀다고 들었네."

"네, 그만 뒀습니다."

"혹시 이유를 물어 봐도 되겠나?"

"못할 것도 없죠."

송기오는 담담한 표정으로 커피를 한 잔 홀짝였다. 담담한 표정과는 다르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제법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괘씸해서 그만 뒀습니다."

"...뭐라고?"

"김동현 사장 말입니다. 돈을 벌어다 줄 때는 지 새끼처럼 아끼다가, 실수 한 번 했다고 쌍욕을 퍼 붓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떴습니다. 아시겠지만, 제가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 들을 레벨은 아니지 않습니까?"

"......"

"그리고.. 20세기 하청 취급을 받으면서 일하기가 쪽팔리기도 했고요."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5년 동안 재직한 직장을 한 순간에 때려 치울 수 있는 저 담대함.

또 그걸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다닐 수 있는 패기.

그 이면에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도사리고 있다. 전현우와 김원식은 그 믿음이 만용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제가 여기에 왜 찾아 왔냐고 물어 보셨죠?"

".... 그렇네."

"솔직히 궁금했습니다. 제가 전심전력으로 만든 회로를, 아무렇지 않게 찍어 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거든요."

두 사람은 동시에 한 인물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이도현 부장을 말하는 건가."

"얼마 전에는 과장이라고 들었는데, 벌써 부장이라고요? 뭐, 그 정도 실력이면 당연히 그런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하죠."

송기오의 눈빛이 진중 해졌다.

"이도현 부장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 우리가 굳이 보여 줄 필요는 없는 거 같은데."

김원식 역시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송기오. 시퀀스 쪽이라면 누구나 혀를 내두르는 명실상부한 기술자다.

회로 작성.

배선.

고성능 모터 분해/조립 등등.

릴레이 보드 건은 도현에게 밀렸지만, 종합적 능력치로 봤을 땐 도현보다 낫다고 보는 게 맞을 정도.

'이 부장을 빼 갈지도 몰라.'

김원식이 도현을 숨기려고 하는 이유였다.

송기오가 도현을 빼가서, 회사라도 차려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이도현 부장이 저보다 뛰어난 실력자라면..."

그때.

송기오가 입을 열었다.

"제가 20세기에 남겠습니다."

다음 순간 그의 입에서 흘러 나온 한 마디는, 김원식의 불안을 한 방에 날려 버렸다.

"우, 우리 회사에 취직을 하겠다는 건가?"

시퀀스의 대가.

송기오가 20세기로 이직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도현은 난데 없이 찾아온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저희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 보겠다는 겁니까?"

송기오가 팔짱을 낀 채로 대답했다.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지켜만 볼 테니까요."

"....."

"아, 김원식 사장한테 허락은 받았습니다."

도현은 어처구니 없는 표정이었다.

'그니까 왜 지켜 보겠다는 거냐고.'

YM 송기오라면 그도 들어 본 이름이었다. 그의 상사였던 김 차장과 학 테크의 최원태와 더불어 업계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

그런 그가 난데 없이 찾아온 것만 해도 의아한데.

그 이유가 단순히 작업을 지켜 보기 위해서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을 수 밖에 없었다.


위이이잉-!

그때.

도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김원식 사장..?'

김원식이 문자를 보내온 것이었다.

[이 부장, 실력 발휘 좀 해줘.]

[송기오가 20세기에서 일하고 싶대.]

[이 부장한테 릴레이 보드 납품 건을 뺏겨서 YM에서 퇴사를 했나 봐. 자존심이 상해서.]

두서 없는 문자였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대충 이해가 가긴 했다.

'한 마디로, 납득을 못하겠다는 거네.'

티가 나지 않게 이를 악 물고 있는 송기오를 보니 그 생각에 확신이 더해졌다.

업계 탑이라는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던 송기오.

그는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도 들어 본 적 없는 도현이 자신보다 뛰어난 시퀀스 회로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해 할 수가 없네.'

간혹 '장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고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황 상 송기오도 그런 과인 거 같았다.


'.... 근데 궁금하긴 하네.'

나는 어느 정도 레벨인걸까-

문득 떠오른 의문이었다.

모든 스킬의 레벨이 3을 넘은 지금, 본인은 업계에서 어느 정도의 레벨인지. 과연 업계 탑이라 불리던 송기오도 인정할만한 수준인지.

'..... 오랜만에 긴장 되는 기분이네.'

단순히 구경꾼이라고 생각 했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업계 탑 앞에서 능력을 평가 받는다고 생각하니 문득 숨이 가빠졌다. 실수 하면 어떡하지. 내 전부를 보여주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감들이 샘솟기 시작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편하게 지켜 봐주십시오."

도현은 일부러 덤덤하게 말했다. 과도한 긴장으로 인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까 싶어서였는데.

빠직-

그 덤덤함이 송기오의 이마에 핏줄을 서게 했다.

'나 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는 건가.'

자신을 무시하는 걸로 받아 들인 것이다.


'집중, 엔지니어의 주사위.'

릴레이 보드를 앞에 둔 도현.

능력치를 뻥튀기 해주는 두 스킬을 한 번에 사용했다.

[6시간 동안 모든 일의 능률이 100% 증가합니다.]

[기술의 주사위 4.]

[시간의 주사위 4]

[럭키 피스! 같은 숫자의 주사위가 등장 했습니다.]

[능력치가 두 배 증폭 됩니다.]

[40분 동안 모든 능력치가 80% 증가합니다!]

운이 좋게도, 같은 숫자가 두개 나왔다.

순간 온 몸에 차오르는 활력.

'이건...'

도현은 시퀀스에 한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전능감을 느꼈다.

전에 느껴본 적 없는 기이한 기분.

평소에는 엄두도 못 냈던, 상상만 했던 그 방식으로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도현은 그 확신에 몸을 맡겼다.


'..... 전선을 미리 구부려 놓는다고?'

한편, 송기오는 이해할 수 없는 도현의 행동에 두 눈을 찌푸렸다. 도현은 전선을 단자에 체결하기도 전에 구부리고 있었다. 송기오는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단번에 깨달았다.

'.... 내 앞이라고 무리하는 거 같네.'

전선이 어디서, 얼마나 구부러 질지를 예측하고 미리 전선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한 개도, 두 개도 아니고 200개에 달하는 전선을 모두.

당연하게도, 이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었다. 단 하나의 전선이라도 잘못 구부리는 순간, 회로의 외관과 심미성이 모두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슥슥슥-

하지만 도현은 아무렇지 않게 그 방법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단 하나의 실수도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듯 당연하게.

"..... 뭐야. 갑자기?"

"저 사람 송기오 아니야?"

"근데 이 부장은 왜 혼자서 릴레이 보드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 챈 사람들이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 했다.

곧 도현에게로 몰리기 시작한 수십 쌍의 시선. 긴장될 법도 하지만, 이미 무아지경에 빠진 듯 도현의 손놀림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드르륵-!

드르륵-!

곧이어 시작 된 배선 과정.

꿀꺽-

송기오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왜...'

저게 가능할리가 없는데. 분명 말도 안되는 일인데.

'될 것 같지?'

그 불가능한 일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 메웠던 것이다.




[김춘식의 신뢰도가 증가 합니다.]

[공태인의 신뢰도가 증가 합니다.]

도현은 문득 머리 속을 울리는 알림에 정신을 차렸다.

머리 속이 뜨겁게 달아 올랐다.

조금만 더 무리를 하면 뇌가 녹아서 죽처럼 흐물흐물하게 바뀔 것 같았다.


도현은 눈 앞의 릴레이 보드가 완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 아.'


그제야 자신을 바라보는 수십 쌍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나 같이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고 있었는데.

도현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서 멈췄다.

송기오. 그의 실력을 평가해주길 바랐던 남자는.

딸꾹-!

딸꾹질을 하고 있었다.

마치 믿을 수 없는 것을 목격한 듯 경악한 눈빛으로.

동시에 울려 오는 알림음.

[송기오의 신뢰도가 폭발적으로 증가 합니다.]

[기계 군단에 편입 가능한 인원이 추가 되었습니다.]

[편입 가능 인원]

- 송기오(52)

한 방에 50에 가까운 신뢰도를 가지게 된 송기오.

도현은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었다.

'많이 놀란 거 같은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송기오를 보니,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Y엔진 부장 김지형.

그는 난데 없이 방문한 한 남자를 바라보며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시X... 지도 본사한테 된통 당해봐야 알지..'

변웅석.

그의 직속 상관이자 엔진 실장인 그가 예고도 없이 찾아온 것이다.

"김 부장. 표정이 너무 안 좋은데.. 혹시 내가 오면 안되는 곳에 온 건가?"

"아, 아닙니다. 어제 저녁을 잘못 먹어서.."

"그렇지? 내가 잘 못 본 거지?"

"하하..."

변웅석은 애써 웃음을 짓고 있는 후임을 바라보며 생각 했다.

'X 같겠지. 안 그래도 여름이라 바빠 죽겠는데.'

이해는 했다. 그도 7년 전까지는 V엔진의 부장이었으니까. 예고 없이 상사가 찾아오는 날에는 스트레스 수치가 천장을 뚫고 올라가 버린다.

"지금 당장 안전 점검 가능한가?"

그럼에도 불시 안전점검을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효율.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을 느껴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부하 직원 기분 생각할 때가 아니야.'

엔진변속기에는 두 명의 실장이 있다. 하지만 사업부장 자리는 하나다. 본사의 감사 날짜가 다가오고 있는 지금, 김지형 부장의 기분 따위는 그가 알바가 아니었다.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덜' 털릴 준비를 하는 게 중요할 뿐.

김지형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 가능은 합니다. 가공 라인 부터 돌아 보는 게 어떨지.."

"아니. 가공 라인은 나중에 보고.. 오늘은 조립 라인부터 돌아 보도록 하지."

김 부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죽은 빛으로 변했다.

'씨X... 그냥 대놓고 털어 버리겠다고 온 거잖아.'

조립 라인.

그곳은 생산량을 뽑아내기 위해 온갖 변칙 작업을 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솔 밸브 측 철거 작업 끝났습니다!"

"오케이. 전선 넘길 테니까, 잘 받아!"


송기오는 케이블 타이와 전기 테이프를 꺼냈다.

그리곤 철거가 끝난 기존 전선 다발과, 새로 깔 전선 다발의 끝 부분을 묶었다. 두 전선이 단단히 연결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그가 소리쳤다.

"당겨!"

그가 신호 하자, 반대 편에 있던 김춘식이 기존 전선 다발을 당기기 시작 했는데.

그 모습을 지켜 보던 도현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하면 작업을 하나로 줄일 수 있구나.'

기존 케이블 철거와, 새 케이블 포설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시스템 창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는,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

송기오를 바라 보는 도현의 시선에 존경심이 어렸다.

'저 정도는 되어야 업계 탑 소리를 듣는 구나.'

괜히 시퀀스하면 송기오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었다.

배선이면 배선.

고장 원인 분석이면 원인 분석.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육각형 인재가 바로 송기오였다.

"뭘 그렇게 쳐다 봐요?"

그때.

송기오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호, 혹시 뭐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어요?"

"네?"

"자꾸 쳐다 보니까 묻는 거잖아요. 작업 과정에서 미비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얘기 해줘요. 그런 거 배우려고 20세기로 이직한 거니까."

도현은 피식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제가 배우고 있는데요.'

송기오.

그는 첫 만남에 기강을 너무 세게 잡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온순해져 버렸다.

"10번 워씽 장비 작업 끝났씁니다!"

"뽀꿀람, 고생 했어."

"20번 에어 블로우 장비도 작업 끝났네."

"신 교수님 고생 하셨습니다."

하나 둘 장비 설치 작업이 끝이 나기 시작 했다. 공장에 들어 오고 나서 채 한 시간이 안되었을 시점이었다.

'이제 진짜 팀원 같네.'

도현은 그런 동료들을 바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뽀꿀람이 이끄는 해적단 크루.

신교수가 오야지로 있는 저수지의 개들 크루.

거기에 기존 시퀀스 팀원이었던 열 명을 공태인과 송기오가 각각 이끌고 있었다.

어지간한 시퀀스 작업은 모두 가능한 팀이 4개나 나온 것이다.

'이 정도면 최정예 아닌가.'

아마 그럴 것이다.

프로그래밍, CNC는 모르겠지만 울산에서 이만한 실력을 가진 시퀀스 팀은 본 적이 없었다.

'진짜 기업 하나 차려도 되겠는데.'

아직은 막연한 상상일 뿐이었다.

저레벨 장비에 한해서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발휘하지만, 고 레벨 장비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

- LV : 4

- 프로그래밍 속도가 100% 증가합니다.

- 4레벨 이하 프로그램의 성능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시퀀스]

- LV : 3

- 시퀀스 배선 속도가 75% 증가합니다.

- 3레벨 이하 시퀀스 회로의 성능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품질 확인]

- LV : 3

- 3레벨 이하 제품의 품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도현은 쓰디 쓴 웃음을 머금었다.

지금 당장 눈 앞에 있는 장비만 해도 무려 레벨 5에 달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는 뜻. 고레벨 장비도 분석이 가능한 전현우, 윤창호가 있는 20세기에 붙어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자유롭게 업무를 하면서 돈도 벌고. 또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할 수 있는, 그야말로 레벨 업을 위한 최적의 환경이었다.


"이,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시스템 창의 능력에 대해 고찰하고 있던 그때.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고, 일련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그 선봉에 선 인물의 얼굴을 확인한 도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김지형 부장이네.'


Y엔진의 총수가 등장한 것이다.

도현은 재빨리 [안전제일주의] 능력을 활성화 시켰다. 사람 좋아 보이는 배 나온 중년 아저씨지만, 어엿한 부장이다. 괜히 안전지적사항을 들켜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안전제일주의(LV-)이 활성화 됩니다.]

세상이 빠르게 색채를 잃어 갔다. 동시에 피어나는 빨강, 노랑, 초록 꽃봉오리들.

'.....응?'

그때였다.

무언가를 발견한 도현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공(空) 팔레트 적재 이상(死)]

멀지 않은 곳에서 죽음(死) 등급의 위험 요인을 발견한 것이다. 몇몇 다른 요인들도 있었지만 유독 그곳에 시선이 간 이유는 간단했다.

[사고 임박]

[00:10]

그 전에는 본적 없던 두 줄의 메세지가 추가 되어 있었기 때문.

팟-!

도현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김지형 부장을 필두로 한 무리들이 사고 임박 지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10.

9.

8.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이대로 가다간 끔찍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

'잠시만.. 이러다가 내가 죽는 거 아니야?'

문득 든 생각이었다.

내가 죽을 수도 있는데, 굳이 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달려 들 필요가 있을까? 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고 해도,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문제는 이제 와서 멈추기엔 이미 늦었다는 사실이었다. 달려가던 관성을 멈추고 도망치려고 했다간, 김지형 부장 무리와 함께 공 파레트 더미에 깔릴 확률이 더 높아 보였다.

결국 도현이 선택한 방법은.

팟-

달려 가던 속도를 멈추지 않고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뭐, 뭐야!"

"당신 미쳤어?"

"실장 님! 실장 님!"

"실장님부터 챙겨!"

당황한 사람들의 고함성이 들리고.

우르르르-!

콰콰쾅쾅-!

파레트 더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굉음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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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 YM 송기오. +18 24.09.02 24,575 523 16쪽
24 24. 다함께 차차차.(일부 수정) +26 24.09.01 25,328 527 19쪽
23 23. 리더의 자질. +37 24.08.31 25,354 556 19쪽
22 22. 릴레이 보드 제작(2) +16 24.08.30 25,484 527 17쪽
21 21. 릴레이 보드 제작(1) +19 24.08.29 26,202 529 19쪽
20 20. 밥 그릇. +16 24.08.28 26,985 537 19쪽
19 19. 별 미친 놈을 다 봤나. +16 24.08.27 27,343 515 18쪽
18 18. 누군가의 빌런(2) +22 24.08.26 26,812 529 18쪽
17 17. 누군가의 빌런(1) +14 24.08.25 27,026 493 18쪽
16 16. 주사위. +19 24.08.24 27,769 494 20쪽
15 15. 이자까지 쳐서. +40 24.08.23 28,160 512 17쪽
14 14. 이 대리 얼굴을 어떻게 보라는 겁니까. +22 24.08.22 28,123 542 14쪽
13 13. 성공의 비결. +29 24.08.22 28,861 519 18쪽
12 12. 개판이네요, 솔직히. +22 24.08.21 29,915 53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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