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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動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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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리더의 자질.

DUMMY

21세기 테크의 아침이 밝았다.

전기 사무실.

아침엔 모든 직원들이 피곤에 절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자, 다들 오늘도 화이팅 해 봅시다!"

"오늘은 고장이 몇 개나 나려나."

"몰라, 일단 해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약속했던 특별 인센티브가 들어온 게 바로 어제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별 인센티브 지급 명세서.]

[입금 : 2,000,000]


200만원.

그리 큰 돈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쟁취해서 번 돈이라는 게 그들의 마음을 부풀게 했는데.


"와... 기지부 부장이 인정해 줄 때는 진짜 가슴이 웅장해지더라."

"전기쟁이 일 하면서 보람을 느껴본 게 얼마 만이냐."

대한민국 3천만 직장인들 중에서 보람을 느끼며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보람은 무슨.... 돈 벌려고 한 거지 뭐."

그때. 하원식 과장이 투덜거렸다.

산통을 깨는 한 마디에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렸는데.

춘식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하 과장, 단순히 돈 벌려고 한 사람 치고는 액션이 과하던데?"

"무슨..."

"기지부 부장이 극찬하니까, 얼굴이 시뻘개쳐서 팔을 어찌나 떨던지. 난 간질이라도 걸린 줄 알았잖아."

"내, 내가 언제 그랬어!"

"뭐라고 했더라.. '내가 이 맛에 전기쟁이 짓 하지..' 라고 했던가.."

"김 과장!"

하원식의 노성과 함께 장내는 웃음 바다가 되었다.

"허, 참."

이내 화를 내던 하원식도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는데.

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윤창호는 어이가 없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이게... 시퀀스 팀이라고?'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서로 물어 뜯지 못해 안달이 났던 사람들이 맞나 싶었다.

특히 고문관이던 하원식의 변화는 놀라운 수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가 조용히 입을 틀어 막는 사이에도 대화는 이어졌다.

"솔직히 이 과장이 없었으면... 절대 물량 못 맞췄을 거야."

"절대 못했죠. 아니, 솔직히 40대도 못 만들었을 걸요?"

"내가 하는 일이 딱딱 정해져 있으니까, 되게 편하네. 숙달도 빨리 되고."

"뭐 또 다른 일 거리 없나?"

"아서라! 한달에 릴레이 보드 50대 씩 납품 하는 것만 해도 쌔가 빠지는데."

윤 차장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도현 과장이구나.'

이도현이 시퀀스 팀의 분위기를 180도 바꿔 놓았다는 사실을.




"이도현 과장. 어떻게 한 거야?"


전현우는 출근 하자 마자 도현을 찾았다.


릴레이 보드 작업.

처음부터 끝까지 그 과정을 지켜 본 게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 100대를 모두 생산한 건지가 미친 듯이 궁금 했던 것이다.


"배선 과정을 4개로 나눴다고?"

도현의 설명을 들은 전현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네. 캐스케이드 방식으로 작업하면, 도저히 물량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상식을 벗어난 대답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모든 회사에서 그렇게 했겠지.

아무나 할 수 없는 작업을 했기에, T엔진에서도 전속 계약을 결심한 거다. 안 그래도 도현에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을 명광호 부장이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제가 한 건 크게 없습니다. 시퀀스 팀 직원들이 다 한 거지요."

충분히 자랑스러워 해도 되는 성과였지만.

도현은 손을 들어 시퀀스 팀 쪽을 가리켰다.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린 것이다.

사무실에 대기 중이던 시퀀스 팀원들이 손을 절레 절레 저었다.

"저희도 열심히 하긴 했지만..."

각기 다른 반응이었고, 또 대부분 자신의 공을 최대한 어필하려는 기색이었지만.

마지막 한 마디 만큼은 모두 똑같았다.

이도현 과장이 없었으면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전현우는 화들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뒤에서 치켜 세워 줄 정도라는 건, 이미 끈끈한 신뢰 관계가 형성 됐다는 뜻이나 마찬 가지였기 때문.

"2주 만에 인정.. 받은 건가."

전현우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실력과 인간 관계는 비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반비례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력이 올라갈 수록 오만해질 확률이 높고, 또 질투를 받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도현은 달랐다. 실력과 인품이 비례하게 증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전현우는 문득 기지부 김창식 부장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 전 부장 님. 아니, 이제 전 이사 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 흠흠. 무슨 일입니까?

- 우리가 막 절친한 건 아니지만, 또 꼭 무슨 일이 있어야 말을 하는 사이는 아니지 않아요?


그의 말대로, 둘은 꽤나 자주 부대끼던 사이었다.

전현우는 설계와 프로그래밍 쪽.

김창식은 시퀀스와 품질 쪽.

서로 상극인 분야이니 만큼 좋은 쪽으로만 엮이진 않았지만, 서로의 실력에 대한 리스펙은 가지고 있었는데.


- 이도현 과장이라고 했나요? 이 릴레이 보드 납품 총괄한 사람이?

그런 김창식이 말했다.

- 그 친구 꼭 잡으세요. 이 정도 회로 구성 실력은 기지부에서도 절대 흔하지 않아요.

도현을 잡으라고. 그냥 잡으라는 것도 아니고, 꼭 잡으라고.

- 물론 20세기 측에서도 중요한 납품이었을테니, 사람들이 떼거지로 붙어서 만든거긴 하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충분히 매리트가 있어요.

사람들이 떼거지로 붙었다니.

전현우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만약 9명.

그것도 제대로 된 실력자는 3명 뿐인 상황에서 2주 만에 만들었다고 하면 어떤 반응일까.

시퀀스 뿐만 아니라 NC와 PLC에도 비슷한 재능이 있다고 하면, 이 모든 실력 향상이 고작 반 년도 안 돼서 일어난 거라고 하면, 김창식 부장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사장실을 찾은 전현우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도현 과장, 연봉 협상 다시 해야 합니다."

김원식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또 그 이야기야? 하는 듯한 눈빛이었는데.

"저번 달에 과장 진급 하면서 연봉을 2천 만원이나 올려 줬어."

"이도현 과장 능력이라면, 어딜 가도 그 이상은 받을 수 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다 제쳐 놓고 고장 수리 능력 하나만 봐도, 어지간한 과장 보다 훨씬 나았으니까.

김원식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휴.... 그래서 얼마나 더 올려 달라는 거야?"

"본봉 8000 정도는 제시 해야 수지가 맞을 거 같습니다만.."

조심스럽게 입에 담은 숫자가 8천 이었다. 마음 같아선 1억을 요구하고 싶었지만.

'그 이상은 아마 힘들지 않을까.'

김원식의 성격 상,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상하리 만치 직원들 월급 인상에 인색한 김원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팔 천만원..."

김원식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고 있다. 연봉 8000이든 1억이든 써서라도 이도현을 잡아 놓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그걸 알고도 괜히 망설이게 되는 것은 그에겐 아픈 상처가 하나 있기 때문이었다.


'김 차장 때도 그렇고.. 이도현 과장도 언제 떠날지 몰라.'


김 차장.

누구보다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만큼이나 자유로웠던 남자.

이도현도 김 차장처럼 훌훌 떠나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있었던 것이다.


김 차장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 했던가.

그때의 상실감을 다시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 하니, 김원식은 벌써부터 가슴 한켠이 아려 오는 기분이었다.


"그건 걱정 하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때.

전현우가 김원식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


"..... 뭐라고?"

"이도현 과장도 떠날까 봐 무서운 거 아니십니까? 김 차장처럼.."

"...."

"김 차장이 뛰어나다는 건 인정 하지만.. 적어도 제가 이 회사에 처음 왔을 때는 회사 분위기와 직원들 실력이 정말 엉망 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언갈 하고자 하는 의욕도 없어 보였고요."

"...... 그건.."

"김 차장의 레벨이 10이라면, 직원들의 레벨은 최소 3은 되어야 정상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는 건...기술 전수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뜻이죠."

"..계속해 봐."

"감히 예측해 보자면 김 차장이란 인물은 그런 존재였을 거 같습니다. 독선적이고, 자유분방한. 하지만 누구도 범점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뭐라 할 수 없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김원식은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랬던 거 같긴 하네."

"경영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런 사람이 대단하게 느껴질 지 모르겠지만.. 관리자 입장에서는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조직에 해가 된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더러 있죠. 김 차장이 떠나고 난 뒤, 그 빈자리를 감당하지 못한 20세기가 엉망이 된 것처럼요."

"......"

김원식은 오랜 만에 보는 동생의 진지한 모습에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틀린 말은 아니야.'

그의 경영자의 시각과 관리자의 시각은 다르다.

김원식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회사는 비용, 손실, 수익으로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쌍욕을 주고 받으며 싸우다가도 소주 한잔에 풀어 버릴 수 있는 집단 의식이, 몇날 몇일을 고생해서 배운 기술을 기꺼이 남에게 전수하는 아량이 조직을 돌아가게 만든다는 것을.


그런 관점에서, 적어도 김 차장은 조직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 이도현 과장은 다르다는 건가?"

그래서 더 궁금했다.

이도현, 그는 김 차장과 뭐가 다른지. 실력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오만해지는 게 아닌지.

".... 직접 가서 보시죠."

전현우는 그런 김원식을 어딘가로 이끌었다.


시퀀스 팀이 릴레이 보드를 만들고 있는 전기 작업실이었는데.


"D 파트 지원 필요 합니다!"

"제가 갈 게요! A파트 작업 다 끝났습니다!"

"김 대리, D 파트 작업 가능 하겠어?"

"이 과장님한테 특훈 당한 접니다. 충분히 가능해요."

"아이고 어련히도 잘하겠다. 천천히 해도 되니까, 실수 하면 안 된다!"

"넵!"


그곳에는 작업자들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 네 개로 나눠서 일하고 있는 거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김원식이 물었다.

"시퀀스 작업은 일인 당 하나씩 맡아서 하는 게 정석 아니야?"

"이도현 과장이 시퀀스 작업 공정을 네 개로 쪼갰답니다. 비슷한 작업끼리 묶어서 할 수 있도록."

김원식의 두 눈이 커졌다.

"그게 가능한 거야?"

가능 한 거라면 왜 진작에 그렇게 하지 않았냐는 의미이기도 했다.

"가능은 한데... 쉬운 건 아닙니다. 공태인 차장도 어디가서 꿇리는 실력이 아닌데, 못한 걸 보면요."

"......"

"아무튼 확실한 건, 저렇게 분업이 가능했기 때문에 2주만에 100대 생산이 가능했다는 겁니다."

".... 그렇구만."


김원식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도현에게 닿았다.

분업.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각자 도생하던 시퀀스 팀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남자는 연신 빨빨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공 팀장 님. 검수 끝난 제품들은 저쪽 테이블에 올려 놨습니다."

"어, 고생 했어!"

"그리고 여기."

"아이고, 이 팀장도 바쁜데 커피는 또 언제 사왔어. 고마워, 잘 먹을게."

오야지인 공 팀장부터.


"김 대리. 35CM 접점 배선은 내가 할게요."

"괜찮은데.."

"지금까지 5분도 못 쉬었잖아. 요즘 보니까 홍삼 챙겨 먹던데, 그 기력을 여기서 쓰면 되나."

"그럼... 잠시 다녀 오겠습니다."

말단 직원 김민혁 대리까지.

도현은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도 시퀀스 팀원들을 챙기고 있었다. 심지어는 사이가 안 좋다고 알고 있는 하원식 과장까지도.


김원식은 이내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걸 보여주려고 한 건가? 김 차장과 이 과장이 어떻게 다른지?"

"네"

"...... 허. 참.."

김원식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고, 전현우는 또박또박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만약 이 자리에서 당장 이 대리가 떠난다고 해도, 시퀀스 팀은 더 이상 어중이 떠중이가 아닐 겁니다. 이 과장을 중심으로 뭉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함께 힘을 합쳐 성과를 내본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현우는 도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도 쉬지 않고 구슬 땀을 흘리고 있는 도현이 시야에 들어 왔다. 전현우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눈빛으로 입을 뗐다.

"이 과장과 김 차장이 뭐가 다르냐고 물어 보셨죠?"

".....그래."


"김 차장이 CTO(사내 최고 기술자)라면, 이도현 과장은 리더입니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두 사람의 차이점입니다.".




꺄아아아-!


도현의 딸 아이, 이현서는 괴성을 지르며 모래 사장을 뛰어 다녔다.


"현서야! 그렇게 뛰어 다니면 다쳐!"

"꺄하하하! 아빠! 나 잡아 봐....롸아악!"

"에구구.."

그럼 그렇지.

도현은 모래 사장에 풀썩 쓰러진 딸 아이에게 황급히 달려갔다.

"괜찮아?"

"헤헤. 응! 현서 괜찮아!"

다행히 다친 곳은 별로 없었는데.

도현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공주, 이제 좀 쉬었다가 다시 놀까?"

아니, 제발 쉬었다가 가자. 아빠 죽을 것 같아!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물었다.

"싫어! 싫어! 쪼금만 더 놀래!"

아쉽게도 도현의 애처로운 마음의 소리는 딸 아이에게 닿지 않았다. 도현은 결국 준비한 비장의 카드를 꺼낼 수 밖에 없었다.

"고기 먹을 건 데도?"

뚝-

현서의 작달만한 몸체가 뚝 멈춰섰다.

"꼬... 꼬기?"

"응. 그것도 현서가 좋아하는.... 소고긴데?"

"소... 소꼬기!"

챱-!

현서가 도현의 다리에 달라 붙었다.

"꼬기 좋아!"

그렇게 다리를 절뚝이며 텐트로 돌아간 도현.

그곳에는 이명우가 릴렉스 체어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하와이안 티셔츠 차림에 밀집 모자를 쓴 채로.

'여유로워 보이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여유로운 모습.

[묵향기.]

그때, 책의 제목을 알아 본 도현이 중얼거렸다.

"아버지. 묵향기 아직도 보고 있으세요?"

"말 걸지 마라. 지금 제일 중요한 부분이야."

"안 질리세요?"

"질리기는 무슨. 고전 무협지에는 인생이 담겨 있는 법이야."

묵향기가 고전 무협은 아니지 않나.

"그거 완결은 언제 난데요?"

"나도 모르지. 내가 죽기 전에는.... 났으면 좋겠네."

도현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아이스 박스를 열었다.

묵향기 완결이고 뭐고, 지금은 소고기가 훨씬 중요했다.

곧 자태를 드러낸 영롱한 마블링.

순간 현서가 턱을 타고 흐르는 침을 닦았다.

"스읍... 소꼬기.."

"그냥 소고기가 아니야. 한우, 그것도 투쁠이다!"

"우와아아!"

도현은 환호성을 지르는 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투쁠이 뭔지는 알려나.'

도현은 곧 달궈 진 불판 위에 소고기를 세 점 올렸다.

"누군한테 배웠는지, 고기 굽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는구나."

"하하...."

회식 자리에서 임 차장의 쿠사리를 듣다 보니 알아서 잘 굽게 되던데요-

아버지께 곧이 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기에, 대충 둘러 댈 따름이었다.

"아빠빠!"

"응?"

"아빠랑 할아부지가 큰 거 먹어! 현서는 작아서 짜근 거 먹어도 돼!"

"......."

도현은 침을 질질 흘리며 말하는 딸 아이의 밥 위에 제일 큰 고기 조각을 얹어 주었다.

"괜찮은데.."

스읍-

현서는 그 말을 하며 또 한 번 침을 닦았다.

말과 행동이 꽤나 다른 꼬마였다.


[입금 : 38,000,000원.]

[입금 주 : (주)20세기 미래 테크]


오랜만에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낸 도현.

그는 휴대폰 화면 위에 떠오른 텍스트를 바라보았다. 어제 저녁에 입금된 후로, 지금 까지 100번은 더 들여다 본 것 같았다.

'3800만원..'

김원식이 약속한 30%의 인센티브였다.

판관비를 제외한 금액의 30% 였지만, 자재원가가 워낙 낮다 보니 꽤 큰 돈이 한 번에 들어 왔다.

'이걸로 뭘 할까.'

갑자기 큰 돈이 생기니 오히려 고민이 많아졌다.

차를 바꿀까? 아니면 이사를 위해 돈을 모을까.

평생을 근검절약하며 살아 온 도현이었기에 고민은 커져만 갔다.

피식-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고민에 빠져 있던 도현은, 어느 순간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다음 달 카드 값 낼 생각에 허덕였었는데. 이제는 수천 단위의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분에 겨운 고민이네.'

다음 달에도 또 다음 달에도 천 단위의 돈이 입금될 것이다.

솔직히 아직 실감이 나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급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었다.

'요즘 너무 바쁘게 살았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시간은 화살대를 떠난 화살과 같다고. 그래서 처음에는 미친듯이 느리게 흘러 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매 순간이 찰나 같다고.

그렇기에,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즐겨야 한다고.

'오늘은 그냥 쉬자.'

적어도 지금은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싶었다.




툭-

춘식의 와이프, 박춘자는 들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 뜨리고 말았다.

"자, 자기야. 이게 무슨 돈이야?"

쉴새 없이 흔들리는 동공이 향하고 있는 건 인터넷 뱅킹 화면이었는데.

[입금 : 15,320,000]

춘식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툭 뱉었다.

"아, 인센티브 받은 거."

그건 춘식의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언젠가 돈을 많이 벌어서 아내에게 샤넬 백을 사주는 것.

하지만 말 그대로 버킷리스트에 불과 했고, 사실상 잊고 지냈는데.

'도현아, 고맙다.'

잘난 후임 덕분에 그 숙원을 이루게 될 줄은 몰랐다.

'원래 계획 대로는 못 했지만..'

못 본 새 샤넬 백의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버렸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게 그냥 계좌 이체로 입금을 하는 것이었다.

낭만은 없었지만,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내를 보니 뿌듯한 심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는데.

"오, 오빠. 잠시만 기다려."

"응? 뭘 기다려?"

춘식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이, 박춘자는 방문을 열어 아이들이 자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 왔다.

"나 먼저 씻을게."

"무슨 소리야."

"빨리 씻고 나올게."

"춘자야. 그게 무슨 소리냐고."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빠른 발걸음으로 샤워실로 사라졌을 뿐.

솨아아아-

곧, 집 안에는 샤워기 물줄기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아."

그 순간.

오들오들-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춘식은 비 맞은 새끼 강아지처럼 온몸을 떨었다.

'우린 가족인데.. 가족 끼리 나쁜 짓 하면 안 되는데....'

결혼 10년 차.

이제는 아내의 샤워소리가 두렵게만 느껴지는 춘식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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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누군가의 빌런(2) +22 24.08.26 26,816 529 18쪽
17 17. 누군가의 빌런(1) +14 24.08.25 27,032 493 18쪽
16 16. 주사위. +19 24.08.24 27,772 494 20쪽
15 15. 이자까지 쳐서. +40 24.08.23 28,164 512 17쪽
14 14. 이 대리 얼굴을 어떻게 보라는 겁니까. +22 24.08.22 28,124 542 14쪽
13 13. 성공의 비결. +29 24.08.22 28,863 520 18쪽
12 12. 개판이네요, 솔직히. +22 24.08.21 29,918 53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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