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좌 온라인 회귀

시나리오 : 탈출

일행을 태운 시내버스는 공장 단지를 나와 도시로 들어가는 6차선 도로 앞에 멈췄다.

승객들의 시선이 운전석 옆에 서 있는 민우주에게 몰렸다.

“여기서부터 이 앞에 있는 사거리까지 1.2km입니다.”

창밖으로 쭉 뻗은 도로를 가리켰다.

도로가 일직선이며 아직 파손되기 전이라 평평해서 뛰기 좋다.

“차량과 좀비들이 있지만 6차선 도로라 피하기도 쉽고, 왼편에는 구릉이 있어 포위될 가능성도 적습니다.”

도로 오른편에는 아파트와 마트가 있어 좀비가 몰려 있지만, 왼편은 낮은 구릉이라 좀비가 드문드문 보인다.

정 위험하다 싶으면 구릉 쪽으로 올라가 달려도 된다.

땅이 울퉁불퉁하고 나무가 방해돼 기록은 처참하겠지만, 사는 게 먼저지.

“시간을 단축하는데 이곳보다 좋은 장소는 몇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모두 좋은 기록을 세우세요.”

“네!”

사람들이 의욕에 불타 버스에서 하나둘 내리자, 송경호가 쭈뼛거리며 민우주에게 다가왔다.

“이 시나리오라는 걸 꼭 해야 해요?”

플레이어에게 이 세상은 게임일 뿐이지만, 이곳이 현실인 송경호는 사람들이 왜 위험을 감수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경호야. 아버님, 어머님이 일하는 거 좋아하셨어?”

“아니요! 당연히 싫어하죠! 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럼 왜 매일 아침 싫은 일을 하러 가셨을까?”

“그거야 돈 벌려고···”

민우주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야, 시나리오를 하면 돈을 주거든.”

“돈이요?! 진짜로요?”

“응.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세상이 바뀌어도 먹고 살려면 돈이 필요해.”

멸망이 찾아온 세상에서도 돈은 강하다.

“와! 이걸 하면 돈을 주는구나!”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온 중학생답게 돈 준다는 말에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네.

긴장이 너무 풀어지지 않게 적당히 압박도 가했다.

“명심해. 좀비가 된 부모님을 지킬 수 있는 건 너뿐이야. 너까지 좀비가 되면 두 분은 평생 저런 상태로 방치되겠지.”

“!!!”

최악의 상황으로 송경호가 좀비가 돼도 민우주는 좀비 경호를 버릴 생각이 없다.

10레벨로 만들어 이성을 되찾게 한 후에 시나리오를 진행하면 되니까.

다만 좀비가 되면 시나리오도 달라진다.

인간과 적대하는 시나리오가 많기에 서로 협력하기가 힘들어진다.

민우주의 말을 듣고 소년 가장이 된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는지 경호의 눈빛이 필사적으로 변했다.

“좋아. 그럼 달리기 전에 능력치부터 손보자. 미성아 너도··· 뭐야, 얘 어디 갔어?”

앞좌석에 앉아있던 서미성이 없어졌다.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다 찾았다.

버스 밖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유이슬 옆에서 조잘거리고 있다.

“누나! 나랑 2인3각으로 달릴래요? 내가 지켜줄게요!”

“······”

버스를 나오자 들리는 쾌활한 목소리에 민우주는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시나리오로 연예인 된다며?”

“아, 맞다!”

그래도 여기 온 목적을 잊지는 않았는지 바로 정신을 차리네.

“이슬이 누나! 우리 손잡고 뛰어요!”

아, 아니구나.

민우주는 서미성의 뒷목을 잡고 끌었다.

“자, 일하러 가자.”

“이슬이 누나!!!”

서미성과 송경호를 사람이 없는 버스 뒤쪽으로 데려온 후 캐릭터 정보를 보여줬다.

[민우주]

레벨 : 1 (미사용 1)

재능 : 교환, 제약, 잠꾸러기, 인상, 맨손, 맨몸, 도망, 화들짝.

“여기 미사용 있지? 이걸 누르면···”

[미사용 : 1]

최대 체력 : 500

최대 정신 : 500

체력 회복 : 1초마다 2

정신 회복 : 1초마다 2

한계 근력 : 100kg

정신 공격 : 100

피부 내구 : 30

정신 방벽 : 30

최고 속력 : 600cm/s

이렇게 캐릭터의 능력치가 나온다.

미사용 점수로 최고 속력을 올렸다.

최고 속력 : 600 ▷ 680cm/s

“둘 다 뛰기 전에 이동속도 올려놔.”

“어? 형! 나는 숫자가 이상한데?”

서미성이 고개를 갸웃하며 캐릭터 정보를 공개했다.

[서미성]

레벨 : 1 (미사용 0)

재능 : 질림(벨튀), 제약, 잠꾸러기, 인상.

[미사용 : 0]

최대 체력 : 250

최대 정신 : 250

체력 회복 : 1초마다 1

정신 회복 : 1초마다 1

한계 근력 : 50kg

정신 공격 : 50

피부 내구 : 15

정신 방벽 : 15

최고 속력 : 340cm/s

그걸 본 송경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 형! 저도 미성이 형이랑 숫자가 같아요!”

“너희가 낮은 게 아니라 내 재능 때문에 수치가 높은 거야.”

[맨몸 : 장비를 착용하지 않으면 모든 능력 2배]

“사기다!”

부럽다는 두 사람의 시선에 피식 웃으며 서미성의 재능 중 질림을 눌렀다.

[질림 : 재능이 하루마다 무작위로 바뀐다.]

벨튀 : 피해를 입히면 5초 동안 입힌 피해 * 0.3만큼 속력이 빨라진다.

남은 시간 : 22시간 41분

“딱 좋은 게 나왔네.”

무작위로 바뀌는 질림 재능이, 운도 좋게 지금 시나리오에 딱 필요한 이동 관련 재능이다.

심지어 민우주가 가진 두 재능이랑 상성도 좋다.

[화들짝 : 피해를 입으면 5초 동안 입은 피해만큼 속력이 빨라진다.]

[도망 : 잃은 체력 비율만큼 이동속도가 빨라진다.]

서미성이 민우주를 공격하면 서미성은 벨튀, 민우주는 화들짝과 도망으로 서로 발이 빨라진다.

서미성이 진지한 표정으로 외쳤다.

“나 보고 형을 때리라고?! 내가 어떻게 그래!”

“그래서 안 때릴 거야?”

“고추 때려도 돼?”

“···나한테 서운한 거 있니?”

남자끼리 어떻게 그런 짓을!

아, 유이슬 씨한테서 억지로 끌고 왔다고 삐진 건가?

송경호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민우주를 봤다.

“우주 형, 저는 빨라지는 재능이 없어요.”

송경호는 영입 1순위지만 그 사기적인 재능이 발동하려면 장비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경호의 진가는 강력한 아이템이 나오는 중후반부터.

민우주는 피식 웃으며 경호가 신고 있는 운동화를 가리켰다.

[운동화]

최고 속력 : 100cm/s

내구 : 32,000

사이즈 : 250mm

초등학교를 출발하기 전에 어머니를 행정실에 모셔놓고, 신발장을 뒤져가며 효과가 붙어있는 신발을 찾았다.

다행히 다른 플레이어들이 파밍하기 전이었는지 한 켤레를 습득.

255mm를 신는 경호에게 좀 작았지만, 못 신을 정도는 아니어서 바로 신겼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아무런 정보도 안 뜨지만, 그 운동화는 정보를 볼 수 있잖아? 그렇게 효과가 있는 물건을 아이템이라고 해. 넌 빨라지는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장비를 착용해?”

뭔가 떠오르는 게 있는지 고민하던 송경호가 돌연 “아!”라고 외치며 운동화를 가리켰다.

“운동화에 오버클럭하고 일회용품. 직전을 적용할게요!”

[운동화](오버클럭, 일회용품, 직전)

최고 속력 : 200cm/s

내구 : 16,000

사이즈 : 250mm

“됐다! 해냈어! 우주 형! 내가 가진 재능을 운동화에 적용했어요!”

“오! 대단한 재능인데?”

오버클럭은 내구도가 10배 빨리 닳는 대신 성능이 50% 증가하는 재능.

일회용품은 착용한 장비를 선택해 내구도를 절반으로 줄이는 대신 성능이 50% 증가한다.

직전은 장비의 내구도가 10% 아래라면 성능이 50%, 5% 아래라면 100% 증가하는 재능이고.

민우주는 물론 경호의 재능을 알고 있었다. 경호가 재능에 익숙해질 수 있게 일부러 돌려 말한 거지.

“그럼 준비하자.”

인도에 서 있던 좀비들이 서서히 가까워지자, 민우주와 사람들은 도로에 일직선으로 섰다.

그리고 시야 한쪽에서 반짝거리는 글자를 눌렀다.

[시나리오 ‘탈출’이 대기 중입니다. 시작합니까?]

서미성이 장난스럽게 오른팔을 들었다.

“준비···!”

“탈출 시작.”

[탈출]

이곳을 벗어나라.

현재 위치에서 1km를 벗어나면 달성된다.

탑승 제약 : 탑승한 상태에서 이동한 거리만큼 점수가 감점된다.

최저임금 : 동전 3,000개 ×2

서미성이 오른팔을 내리며 소리쳤다.

“땅!”

출발 소리에 맞춰 마라톤이 시작됐다.

퍽, 퍽, 퍽!

출발과 동시에 민우주는 대걸레 막대기에 등을 찔렸다.

범인은 서미성.

“와우! 형! 속력이 쭉쭉 올라가!”

[벨튀 발동]

최고 속력 : 340 ▷ 350 ▷ 360 ▷ 370 ▷ 380 ▷ 390cm/s

5초

막대기를 찌를수록 서미성의 발걸음은 빨라졌고 민우주의 체력은 낮아졌다.

그렇게 체력이 절반 아래로 내려가자 민우주의 걸음이 달라졌다.

[화들짝 발동]

최고 속력 : 680 ▷ 710 ▷ 740 ▷ 770 ▷ 800 ▷ 830cm/s

5초

[도망 발동]

현재 체력 : 48%

잃은 체력 : 52% ▷ 52% 가속

1레벨의 최고 속력은 340cm/s

그런데 맨몸, 화들짝, 도망 재능을 가진 민우주는 지금 1,200cm/s을 넘겼다.

민우주의 신형이 순식간에 멀어졌고 그 압도적인 속도감에 뒤따라오던 서미성과 송경호는 입이 쩍!

놀란 건 인간만이 아니다.

감염되지 않은 인간을 발견하고 다가오던 좀비들이, 어느새 저-기로 사라진 민우주의 뒷모습에 눈만 껌뻑껌뻑 뜨고 있으니까.

민우주는 전력으로 달렸다.

일행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빠르지만, 자신처럼 탈출 시나리오에 맞게 재능을 준비한 사람도 적지 않을 테니까.

물론 재능도 있고 도로의 상태도 좋아서 순위권에 들 자신은 있다.

달릴수록 민우주는 빨라졌다. 체력이 점점 낮아진 탓이다.

이동하면 1초마다 현재 속력*0.01만큼 체력이 소모된다.

‘그럼 그냥 걸어가도 체력이 깎이겠네?’

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체력 1이 깎이려면 100cm/s.

거기다 체력이 회복되는 것까지 고려하면 가벼운 뜀뛰기인 200cm/s 이상으로 달려야 체력이 소모된다.

하지만 지금 민우주는 전력 질주 중이라 1초마다 체력이 13, 14씩 떨어지고 있어, 1km를 완주한 시점에서는 겨우 4%만 남았다.

[1km를 벗어났습니다.]

[탈출 달성]

탈출 시간 : 1분 12초

40분 - 1분 12초 : 3,888

현재 체력 : 4.7% ▷ 47

탈출 점수 : 3,935

보상(최저임금+점수) : 동전 9,935개

[시나리오 순위권에 점수가 등록되었습니다.]

[탈출 시나리오]

1위 민우주　3,935

2위 엘레나　3,928

3위 캐럿　　3,927

　　　　:

[업적 시나리오]

조건 : 시나리오를 달성했다.

업적 가치 : 2

[업적 명장면]

시나리오를 특별하게 달성했다.

조건 : 탈출 시간 5분 안쪽 또는 현재 체력 100%로 달성

업적 가치 : 3

[업적 순위권]

조건 : 순위권에 기록했다.

업적 가치 : 4

[업적 메달권]

조건 : 9위 안에 기록했다.

업적 가치 : 5

[업적 생존력]

조건 : 체력이 5% 아래로 내려갔지만 살아남았다.

업적 가치 : 2

[업적 비폭력]

조건 : 처치한 대상 없이 시나리오를 달성했다.

업적 가치 : 3

[업적 만남(2)]

조건 : 가족, 친구, 연인처럼 특별한 관계를 만나게 도왔다. (2번)

업적 가치 : 2

[업적 저축]

조건 : 이번 시나리오에서 동전을 쓰지 않았다.

업적 가치 : 2

[순위권 혜택이 주어집니다.]

점수가 순위권 안에 드는 동안 자판기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9위권 추가 보상)

이번 시나리오에서 접촉한 기술, 물품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후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무당, 저승 : 2,500(메달권)

계절, 날씨 : 2,500(메달권)

행운, 불운 : 2,500(메달권)

농사, 모험 : 2,500(메달권)

　　　　:

[시나리오 ‘집단’을 시작합니다.]

시나리오를 달성한 순간, 민우주는 몸을 돌려 달려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갔다.

동생들이 무사히 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물론 체력이 아슬아슬하기에 올 때처럼 전력으로 달라지는 않고, 적당히 다리에 힘을 빼고 달렸다.

그것만으로도 빠르지만.

우당탕! 쾅쾅!

얼마 뛰지 않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십 마리의 좀비를 끌고 오는 서미성이 보였다.

“난리도 아니네. 조용하게 좀 오지.”

다른 사람들은 좀비를 피해 구릉이 있는 6차선 도로의 왼쪽에 몰려 있는데, 서미성 혼자 좀비가 우글거리는 주택가 쪽에서 달리고 있다.

그냥 눈에 띄고 싶어서 저러는 건 아니다.

“아저씨, 아주머니! 삼촌, 이모! 이름 모를 형! 죄송합니다!”

빡!

좀비에게 둘러싸일 것 같자 서미성이 들고 있던 대걸레를 크게 휘둘렀다.

대걸레 막대기가 주변에 모인 좀비 다섯의 머리를 퍽퍽퍽.

그리고 입힌 피해의 0.3만큼 빨라지는 벨튀의 효과가 발동.

푸닥거리는 닭처럼 앞에 멈춰 선 소형차를 뛰어넘으며 좀비 무리를 빠져나갔다.

“쟤는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석유 공장에서도 느낀 거지만 서미성은 몸놀림이 가볍다.

멀리서 보면 촐싹대는 것처럼 보여도, 좀비한테 둘러싸여 촐싹거리는 담력과 물리지 않는 몸놀림은 랭커였던 민우주가 봐도 감탄할 정도다.

현재 2등인 서미성을 지나쳐 100m 정도 달리자,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마라톤 선수들이 보였다.

“우, 우주 형?”

나름 상위권으로 잘 달리던 송경호가 역주행 중인 민우주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민우주는 경호의 옆에서 속도를 맞추며 말했다.

“조금만 가면 결승선이야. 힘내.”

“버, 벌써 완주했어요? 대단하다!”

충격적인 소식에 경호의 옆에서 뛰던 유이슬과 사람들도 입이 쩍.

민우주는 잘난 척 손을 들어 경호의 등을 밀어주며 재능을 사용했다.

“재능 교환. 인상과 내구.”

송경호 눈앞에 글자가 나열됐다.

[접촉한 대상이 재능을 교환합니다.]

내구 : 착용한 장비의 내구도 2배

　　　　⇅

인상 : 최저임금 2배

59 : 59초

송경호의 재능 내구와 민우주의 인상 재능이 바뀌었다.

[교환 : 재능을 교환한다.]

타인과 접촉한 상태에서만 바꿀 수 있다.

교환한 재능은 최대 1시간 동안 유지되며, 사용자가 취소하면 교환이 끝난다.

최대 1회 교환할 수 있다.

민우주야 먼저 시나리오를 달성해서 인상 재능의 효과를 받았다.

넘겨받은 경호 또한 시나리오를 달성하면 2배의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다.

보통 적의 재능을 봉인하는 데 쓰이는 교환이지만, 이렇게 동료와 바꿔 보상을 챙겨줄 수도 있다.

“조금만 달리면 결승선에 도착한 미성이가 보일 거야. 힘내서 끝까지 달려가.”

경호의 등을 두들긴 후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저벅저벅.

서미성을 쫓아가던 좀비 무리가 결국 따라가지 못하고 포기.

도로에 멍하니 서 있다, 이쪽으로 향하는 인간들을 발견하고 다가오고 있다.

이대로라면 좀비들을 피해 경호와 사람들이 쓸데없이 돌아가야 한다.

“자, 이쪽.”

그 낭비를 막기 위해서 좀비들을 유인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안정적으로 1km 마라톤을 완주. 뒤따라온 시내버스에 탑승해 초등학교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