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아들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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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돌이
그림/삽화
찹쌀돌이
작품등록일 :
2024.07.3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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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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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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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

DUMMY

11 긴 하루의 끝

황궁으로 들어온 루펠 경은 황제로 즉위한 제이크 경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막 녹색궁전에서 즉위식을 마친 새로운 황제가 백색 궁전에 등청하자 이곳 알현실에서 기다리던 각 관료들의 충성맹세가 끝난 시점이었다.


“암펠 다리에서 일어난 소요를 진압하느라 지금 도착하였습니다. 보고합니다. 전장에서 우리가 잃은 마법사의 수는 340명, 오늘 다리에서 일어난 소요에서 잃은 마법사를 합해 총 341명입니다. 제국의 군대는 선황제 제이드 데 우노 폐하의 명을 받들어 국경의 마수를 토벌하고 국경지역 조사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관련 자료와 채집한 샘플들은 대학으로 이송할 예정입니다.”


“좋아.”


새로운 황제는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한참을 말이 없었다. 관료들은 일년만에 주인이 바뀐 백색 궁전이 낯설게 느껴졌다. 선황제 제이드는 누가 뭐라고 해도 황제로 태어나고 황제로 교육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키가 크고 근육질이었으며 마탑의 대마법사에 비등한 마나의 소유자였다. 그가 백색 궁전에 등청하여 황제의 옥좌에 앉으면 그 존재감만으로도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동생은? 황제의 자리는 늘 마탑과 신전으로부터 경계를 받는 자리였다. 마탑은 슈가란드의 근간이 되는 마법사들이 하나의 거대한 세력을 이루고 있었고, 신전은 백성의 지지를 받는 신관과 무녀들의 기세로 황제를 압박했다. 선황제 제이드만이 마탑과 신전조차도 건드릴 수 없는 능력으로 황권을 강화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너무 일찍 죽어버린것이다. 마물에 독에 감염되어, 너무도 허망하게.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새 황제는 늘 훌륭한 황세자인 형의 그늘 아래서 한번도 두각을 나타낸 적 없는 어린아이였다. 적어도 지금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관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전쟁에 대한 보고를 끝낸 친위대장 루펠 경이 오늘 일어난 소요에 대해 덧붙였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오늘 마법군대가 입궁할 때에 소요가 있었습니다. 흥분한 백성들이 암펠다리에서 마법군대를 공격하였으나. 곧 진압되었습니다.”


그 것은 분명히 새 황제인 제이크를 노린 것이었다. 제이크가 롬펠라 언덕에서 루펠 자신의 조언에 따라 말을 계속 타고 선황제의 관을 호위하며 입성했다면 시체가 훼손될 정도로 난도질 당한 것은 오늘 다리아래로 떨어진 금발의 어린 기사가 아니라 지금 황제의 관을 쓰고 있는 제이크 였을 것이다. 하지만 루펠은 지금 백성들 사이에 ‘황제의 동생은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을 여기서 이야기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몇 시간 전에 황제가 된 제이크에게 득이 될 지 독이 될 지··· 젠장 제이크를 도와야 하는데···루펠은 우물쭈물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장례식에 대해 말해보시오”

새 황제 제이크의 하문에 루펠의 차례가 지나가 버렸다.


“네. 이미 조기를 드리우고 애도하는 중입니다. 내일 아침을 시작으로 15일간 장례절차를 진행하고 애도기간은 3개월로 그 기간동안 귀족과 백성모두 연회나 10인 이상의 모임을 금지하고 화려한 마차, 사치품 등의 사용이 제한될 예정입니다.”


한 대신이 일반적인 황제의 장례 규정문을 그대로 읊어대듯이 이야기했다.


“맞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던 것 같군. 다른 의견은 없소? 이대로 진행하나?”


새 황제의 말에 궁정 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황실부 장관으로서 한 말씀드리자면”

데피부인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홀에 낮게 깔리듯이 퍼졌다.


“선황제는 전장에서 전사하셔서 급작스런 황권의 이동으로 인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 이 같은 경우는 ‘비상시국’에 해당하는 바, 일반 장례가 아닌 간소화된 장례식으로 대체 할 수 있습니다. 장례식은 5일, 애도기간은 1개월로 줄이고 다수의 예식도 생략하거나 간소화한 형태입니다.”


슈가란드 대 교수 출신의 황실부 장관이 그렇다고 하는데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법과 의례에 관해선 이 나라의 최고직에 있는 데피부인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황제는 고개를 갸웃하며 처음 들어본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굳이···약식으로 할 필요가 있을까? 나도 백성들만큼이나 형님을 사랑했고 이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고 싶은데···내 공식적인 즉위식은 천천히 하고 말이야.”


황제의 말에 여기저기서 대신들이 미끼를 문 물고기처럼 앞다투어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폐하! 옳은 지적이십니다. 약식 장례식은 조바심난 황제처럼 보일 수 있어서 오히려 악수입니다”

“폭동을 일으킬 정도로 선황제를 그리워하는 백성들에게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주셔야합니다.”

“마담 데피는 그저 그런 방법도 있다는 것을 언급하신 것 뿐입니다. 지금은 비상시국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죠.”


데피 부인은 그 말에 치가 떨렸다. 자신은 이 얼빠진 새 황제가 왕권을 세울 시간을 벌어주는 자신의 도움을 알아주든 말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저 무지한 대신들이 자신의 법적인 견해를 깎아 내리는 것만큼은 참을 수가 없이 싫었다. 그 때 블레이크 경의 발언이 있었다.


“저는 마담 데피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의 한 마디에 경내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블레이크경은 재무부 장관으로 슈가란드의 가장 유력한 가문중의 하나였다. 선황제와는 그다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지만, 선황제가 서거한 지금 실질적인 권세로는 이 방에서 가장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카시안 제도에서 건너온 최고급 공단으로 만든 크림색 슈트위로 블레이크가를 상징하는 은빛 여우가 양각된 금색 단추가 빛났다. 연한 핑크빛 머리카락과 수염은 한 올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게 정리 되어있었다.


“브..블레이크경!”

“아니, 경까지 그런 말도 안되는!”


다른 대신들의 당혹스런 반응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황제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입궁하기 위해 마차를 타고 들어오는데 거리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더군요. ‘황제의 동생을 처단했다. 아기황제님 만세!’라구요. 그래서 저도 새로운 황제 폐하께서도 서거하신 줄 알고 놀라 들어왔는데 다행히 이렇게 멀쩡하시군요.”


“흠흠..”

사람들이 술렁였다. 루펠 몬티는 역시 자기가 말했어야 했나 생각하며 블레이크경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허튼 소문으로 새로운 황제가 죽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3개월의 애도기간은 너무 깁니다. 장례절차가 진행되는 5일 동안 폐하께서 앞에 계시면 소문도 잠잠해지겠지요. 그 후에 서둘러 즉위식을 올리시고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펴서 환심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죽었다는 소문이 돈다고? 게다가 아기황제는 또 뭐야?”

황제의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위엄이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루펠을 고개를 저었다.


“선황제의 쌍둥이 아드님이신 안토니 황자님을 말씀하시는 듯···”

누군가의 대답에 황제는 신경질적으로 말을 끊었다.


“나는 한달이냐 세달이냐 잘 모르겠으니 여기서 대신들이 빠짐없이 한마디씩 해보시오. 내가 그대들의 말을 듣고 결정할 테니···”


‘뭐라고?’

블레이크경은 황제의 말에 꿈틀했다. 저 철부지 황제는 어린 걸까 계산이 안되는 걸까?

대신들은 우물쭈물 거리며 한 사람씩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그래도 3달로 하심이.. 아무래도 백성들의 상처가 아물때까지 돌보셔야..”

“전 듣고 보니 그런 흉측한 소문이 있다면 서둘러 한달안에 끝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폐하 안될 말씀입니다. 세 달간 장례를 치르고 성대한 즉위식을 치르면 백성들의 소문은 다 잠재워질 것입니다.”


귀족들은 저마다 대답을 내놓았는데 블레이크 경의 의견을 듣고나서 재빠르게 말을 바꾸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까보다도 강하게 정식 장례절차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황제는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며 누가 어떤 발언을 하는지 하나하나 따져보고 있었다. 다 듣고 나서 황제는 피곤하다는 듯 일어나며 말했다.


“정말 모르겠군. 그냥 약식으로 하지. 블레이크경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아주 찝찝해졌어. 그리고 나는 5일간 장례식에도 나가지 않겠소. 또 누가 날 죽이러 달려들면 어찌하오?”


“폐하!! 그것은!!”

사람들이 술렁였지만 황제는 마차를 타고 먼 길을 와서 허리가 아프고 피곤하다며 퇴청해버렸다. 블레이크경과 데피부인도 따라 자리를 떠났다. 남은 귀족들은 퇴청을 하며 저들끼리 모여 수군거렸다.


“이..이럴수가있나. 죽었을 줄 알았던 황제가 와서 깜짝 놀랐네”

“소문보다 더 어린애같잖아!”

“블레이크경은 또 왜그랬지?”

“알루레곤이 난리가 나겠군···”


+++

“데피부인!”

책을 읽던 델이 데피부인의 방문에 놀라 일어나자. 데피부인은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대었다. 부인이 델에게 작은 소리로 이야기 했다.


“주무시고 계신가? 별일 없었지?”

“네.”


데피부인은 달빛이 비추는 요람 곁으로 다가갔다. 푸른색과 붉은 색의 휘장이 각각 드리워진 요람두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안토니와 애니는 세상 모르게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그새 아이들이 자라서 요람이 처음보다 작게 느껴졌다.


데피부인은 안토니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황자님은 도통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군’

데피부인의 대학 제자이기도 했던 선황제 제이드, 그러니까 쌍둥이의 아버지는 애니처럼 레몬색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황후 타샤 또한 밝은 아마빛의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 애니는 아버지, 삼촌과 같이 데 우노 황가의 레몬색 머리와 푸른 눈을 타고 났지만 안토니의 외모는 도통 어디에서 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선 황제나 황후중에 짙은 갈색 머리는 없는걸로 아는데··· 눈동자도 올리브색이고······’틀림없이 타샤의 태에서 함께 나온 쌍둥이지만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데피부인은 이 쌍둥이에게 따뜻한 모정 같은 그런 정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제자중에 가장 놀라웠던 아이. 주군이 된 제자, 제이드의 아이들이었기에 지켜야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오늘 본 그 동생은··· 이 아이들의 삼촌이면서 오히려 해가 되지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걱정스러운 것은 황세자 쌍둥이 뿐이 아니었다. 황궁도, 더 나아가 이 나라도. 저런 사람이 지켜낼 수 있을까?


‘신이시여. 이 아이들과 이 땅, 슈가란드를 돌보소서.’


얼마만에 하는 기도인지 모르겠다. 데피부인은 안토니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긴 하루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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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로시부인의 복귀 24.08.12 10 0 9쪽
24 핑크색 여우 두마리 24.08.11 16 0 10쪽
23 인간열쇠 24.08.10 18 0 10쪽
22 장례식 (8) 24.08.08 20 0 12쪽
21 장례식 (7) 24.08.06 17 0 11쪽
20 장례식 (6) 24.08.06 16 0 10쪽
19 장례식 (5) 24.08.06 16 0 11쪽
18 장례식 (4) 24.08.06 14 0 13쪽
17 장례식(3) 24.08.06 13 0 10쪽
16 장례식 (2) 24.08.06 15 0 11쪽
15 장례식 (1) 24.08.05 17 0 10쪽
14 하얀 까마귀가 날면 24.08.05 16 0 10쪽
13 모두의 아침 24.08.04 19 0 10쪽
12 끝나지 않은 하루 24.08.04 18 0 11쪽
» 긴 하루 24.08.03 17 0 11쪽
10 암펠다리 소동 24.08.03 17 0 10쪽
9 한 입 거리 24.08.02 20 0 10쪽
8 킹 메이커 24.08.02 24 0 10쪽
7 어느 오후의 풍경 24.08.01 23 0 10쪽
6 신의 물방울 24.08.01 26 0 9쪽
5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24.07.31 30 1 10쪽
4 어느 완벽한 하루 24.07.31 33 2 10쪽
3 바티안 교수의 방문 24.07.30 33 2 10쪽
2 먹고자고 먹고자고 24.07.30 37 2 11쪽
1 마지막 소원 24.07.30 56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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