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아들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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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돌이
그림/삽화
찹쌀돌이
작품등록일 :
2024.07.3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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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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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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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4)

DUMMY

18 장례식(4)

황제는 데피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청색 궁전의 자신의 오래된 방에서 잠을 청했다.


“너무 피곤해···그리고 배고파···”


졸린 눈을 꿈벅이며 황제는 침대위에서 자신의 방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낸 방. 그는 이 방에서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었다. 복도를 따라 가면 형의 방이 있었다. 형은 언제나 훌륭한 소년이었고 훌륭한 청년이었다.


“한 번도 훌륭하지 않은 적 없었지··· 형은 그야말로 황제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는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형이 스물 셋의 나이로 황위에 올랐지만, 슈가란드의 누구도 제이드 데 우노의 즉위에 일말의 염려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주변의 기대 쯤이야 당연하다는 듯 형은 더욱 놀라운 카리스마와 추진력으로 단 1년 만에 마탑과 신전을 발 아래에 두고 귀족들마저 눌러버렸다. 예견되었던 정략결혼을 물리치고 마탑의 천재 마법사였던 타샤 루익과 혼인한 것이다. 위세가 대단한 블레이크경이 그 분홍색 콧수염을 부들거리며 분노하던 꼴이란!


“형···형수님··· 왜 그렇게 다들 죽어버린거야···하지만 나는 죽을 수 없어···절대 죽지 않을거야. 난 살아남고 말거야···”


황제가 된 동생은 지금 홀로 어린 시절의 방에 숨어들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이크는 자신의 모습이 꼴사납다는 생각을 하기에도 버거웠다. 슈가란드의 모든 사람들이 선황제를 사랑했지만 누구보다도 형을 사랑했던건 제이크 본인이었다. 형과 형수는 정말 얼마나 훌륭하고 멋진 커플이었나···황후였던 타샤 루익도 제이크가 본 여성중에 가장 훌륭한 여성이었다.


단 4년만에 그 두사람이 모두 세상을 떠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들이 있었다면 저 불쌍한 쌍둥이를 얼마나 잘 키웠을까? 지금 제이크에게 맡겨진 나라와 백성, 조카들, 자신의 목숨··· 그 어느 것도 지켜낼 자신이 없었다. 제이크는 흐느끼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나이는 스무살이었지만 그는 마음속은 여전히 형을 쫒아 다니던 어린 소년 같았다.


+++

5일간의 장례식의 네번째 날의 아침이 밝았다. 매일매일 슈가란드의 전 지역에서 백성들이 부르는 애곡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소요 때 새 황제 제이크가 죽은 줄 알았던 백성들도 그것이 헛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은 것은 카텔리니 가문의 막내이고 황제는 이미 즉위를 끝내고 황궁에 머물고 있다는 것, 모든 걸 귀족들과 친위대장에게 맡기고 숨어버린 황제는 비겁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뭐···틀린 말을 아니니까.”


황실 친위 대장 루펠 몬티에게 이런 상황을 보고 받은 황제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루펠은 펄쩍 뛰었다.


“그게 지금 하실 소리가 아닙니다. 폐하! 소문이 점점 더 조롱에 가까워지고 있다구요. 귀족들도 황제께서 알현을 거부한다고 불만이 가득합니다!”

“그들과 모든 걸 의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네.”

“이렇게 회피하시면 오해가 점점 깊어 갈 겁니다!”


루펠의 말에 정곡을 찔렸지만 지금은 도망 다니는 것 외에 뭘 더 할 기력이 없다고 고백할 수도 없었기에 황제는 짜증을 내며 루펠을 쫒아냈다. 루펠 다음으로 황제의 서재에 쫒아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은 데피부인이었다. 어제 자신으로 변장한 황제를 마주친 후에 아무 설명도 못들은 데피부인은 꽤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황제는 데피부인을 보자 교수님실에 불려간 대학시절이 떠오르는 것 같아 식은땀이 흘렀다.


“흠흠..마담 데피. 어제 본 것은···.크흠.. 내 불찰이오..”


황제의 사과 아닌 사과에 관심없다는 듯 데피부인은 자신이 가져온 사안들은 황제 앞에 보고하기 시작했다.


“황실의 사용인들에 대한 문제를 고민해 보았는데 이렇다 할 해결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외부의 첩자 노릇을 하는 사용인이 한 둘이 아닐 것으로 예상되는데, 지금 저의 정보력으로는 누가 누구의 첩자인지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흐음···”


데피부인은 더욱 솔직하게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황제는 자신의 상관에게 스스로의 부족함을 먼저 이야기하는 이런 태도를 데피 같은 고위 관직자에게서 찾기 어려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폐하, 마음 같아선 사람을 다 자르고 새로 고용하고 싶지만··· 관리직을 맡은 사람들은 다들 가문의 이름이 있는 귀족출신이고 잡일을 도맡아 하는 말단의 하녀들까지도 그런 귀족가문의 추천을 받아 고용된 백성들입니다.

귀족들의 반발도 있을 것이고 그에 비등한 새로운 인력을 구하기도 불가능합니다. 저를 해고하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 밤새 고민해도 제가 그들을 다룰 방법을 저는 모르겠습니다.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데피부인의 말에 황제는 웃기 시작했다.

“무능력한 황제에 무능력한 장관이로군! 마담데피! 하하하 주군과 신하가 만나 아침 댓바람부터 서로 불찰이라고 합창을 하고 있다니! 크큭”


실성한 듯한 황제의 모습에 데피부인은 당황을 넘어 염려가 되고 있었다. 스스로도 평생 엄격하게 모범생으로 살아온 데피부인은 살면서 주로 자신과 같은 엘리트과 일했다. 이런 상황에 웃음이 나오다니? 황실부 장관으로 일하며 노년에 겪는 이런 실패에 밤새 자괴감에 시달린 데피부인으로서는 황제의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황제는 눈물까지 찔끔이며 웃다가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데피부인에게 말했다.


“그 부분은 내가 생각이 있으니 너무 걱정마시오. 내가 부인께 원하는 것은 이번 일로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하게 굴지 말고 지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시는 것입니다.

원칙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 바보가 된다면 잘 못 된 것은 원칙을 지킨 사람이 아니라 그런 상황을 만든 시스템입니다. 오히려 관리자에게 필요한 건 원칙을 지키는 것, 그 것 하나인데 그걸 지키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 넌센스이지만···”


“화..황송합니다. 폐하.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새파랗게 어린 스무살의 황제에게 (그것도 조금 미쳐보이는) 듣는 말 한마디로 자신의 마음이 위로받자 데피부인은 기분이 이상했다. 부인이 황제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하기도 전에 황제는 또 엉뚱한 요구를 했다.


“쌍둥이 조카님들의 유모 하나가 관둬서 일손이 부족하지? 마침 내가 시간이 많으니 도와주겠소!”

“네?! 황제폐하께서요??”


황제는 어제 햄스터가 되어 가봤던 그 방을 떠올렸다. 조카들과 놀아주면서 하루를 보내도 좋을 것 같았다. 하녀들에게 들었던 아기 운동장이라는 것도 궁금하고, 델 블랙이라는 유모도 궁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부엌이 달려있다고 하니 배 곪을 일은 없겠지!


+++


슈가란드 전역이 거리마다 애도의 물결로 넘실거릴 때 수도의 카텔리니 저택에서는 조촐한 가정식 장례식이 따로 거행되고 있었다. 새 황제로 오인받아 죽은 이 집안의 막내 플로 카텔리니의 장례식이었다. 시신이 많이 난도질 당한데다가 물에 빠졌기에 심하게 훼손되어 가족들은 플로의 꽃 같은 얼굴조차 마지막으로도 볼 수 없었다. 굳게 닫힌 관 위에는 마법 군인으로서의 죽음을 애도하는 슈가란드의 국기가 덮혀 있었다.


“수도까지 살아서 돌아온 군인이 암펠다리를 건너다 죽은 것도 억울한데, 선황제의 장례식과 겹쳐서 이렇게 가족장을 치루다니···불쌍한 내 아들··· 내새끼···”


플로의 어머니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엄마···”

플로라가 엄마를 껴안았다. 무슨 말로 어머니를 위로할 수 있을까? 막내 플로의 죽음으로 가족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루펠몬티가 황제를 대신해서 애도를 표하러 왔을 때도 플로라는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다. 가족들 모두가 그랬다. 황실에선 공식적인 장례식을 열자고 제안했지만 가족들은 거절했다.


가족들은 플로의 죽음을 정치적인 어떤 것으로 포장하는 대신 조용히 가족의 품에서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이 것이 그들에게 허락된 최소한의 결정권이라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났지만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플로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훌륭한 마법사를 이렇게 잃게 되어 너무나 슬픕니다. 유감이네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플로의 관 위에 하얀 꽃을 올렸다.


“···누구?”

아버지 카텔리니 경이 묻자 그가 쓰고 온 하얀 모자를 벗으며 돌아봤다. 그가 얼굴을 드러내자 아버지와 아들들이 모두 놀란 얼굴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소리에 방으로 들어가려던 어머니와 플로라도 그를 주목했다.


“알루레곤님!”


그는 과감하게도 관 위에 덮여져 있던 국기를 벗겨 바닥에 떨어뜨렸다. 깃발에 수놓아진 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반역에 해당하는 그의 행동에 가족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이···이게 무슨 행동이십니까? 대마법사님!”


알루레곤은 천천히 돌아보았다. 정말 훌륭한 집안이 아닌가! 아버지 카텔리니경, 첫째아들 루도, 둘째 안도···그래··· 제나 로씨가 이 집안의 사위였지! 죽은 청년까지 이 집안에만 마탑의 마법사들이 다섯이었다.


“카텔리니가는 들으시오! 비루한 비겁자 황제대신 죽은 것이 어떻게 영광이고 감사입니까! 이 금발의 청년이 난도질 당할 때 비겁자 황제 제이크 데 우노 어디 있었는 줄 아십니까? 뭣 빠진 놈처럼 마차를 달려 황실의 개구멍으로 뛰어들어와서 황제 즉위식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도망할 수 있었던 것도 애초에 행렬의 가장 뒤에서 마차를 타고 약에 취해 자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설마!”

누군가의 탄식을 맞장구 삼아 알루레곤은 불길에 기름을 붓듯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오 그가 슈가란드 제일의 약초학자인 것을 모르시나요? 제이크 데 우노는 대학시절부터 약초실험의 대가로 유명했답니다. 그의 온실에는 허가 받지 않은 약초들이 자라고 있다는 소문도 거짓이 아니죠! 그의 마차와 방에는 언제나 약이 넘쳐납니다. 스스로도 항상 취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여자들을 희롱하기 위해 먹이기도 한다죠. 이번에 전쟁에도 가져갔다고 하더군요!”


“이···이건 반역이오. 여기까지 하시오!”

장남 루도가 소리질렀다. 사위인 제나 로씨도 분노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이쿠! 나는 그대들, 카텔리니의 충심을 의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놀라지 마세요!”

알루레곤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정중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밟고있던(!) 국기를 다시 집어들어서 대충 들더니 관 위에 올렸다.


“그러나 이미 시작부터 그대들과 새 황제는 너무 멀어진 것 같지 않나요? 그리고 마탑의 대 마법사로서 이렇게 보니, 여기있는 그대들은 너무도 빼어난 사람들이고 새 황제는··· 약에 취한 비겁자죠. 안도! 루도! 제나! 난 당신들 같이 능력 있는 사람들이 더욱 자신의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길 바랍니다. 그건 아버님 카텔리니경의 생각도 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쨌거나 이미 날개가 꺾여버린 이 불쌍한 청년 플로를 위해 심심한 유감을 전합니다···그럼 난 이만···”


알루레곤이 떠난 뒤 가족들은 아무 말없이 응접실에 앉아있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차남인 안도였다.


“나도 봤어! 새 황제는 전장에서 한 번도 나와 싸운 적이 없었지! 그런데 그의 텐트를 지날 때면 달인 약초향이 진동을 했다고!”


“안도! 입조심해!”

장남 루도가 말했다.


“형은 전투에서 제이크경을 본 적 있어?! 없잖아! 젠장! 그런 놈 때문에 플로가 죽다니! 망할 약쟁이녀석!”


플로라의 남편인 제나도 안도를 말렸다.

“그는 이제 황제야. 자네 그렇게 말하면 안돼!”


“당신이야 말로 그만해!!!!!!!!!!!!!!!”


우당탕탕!!! 쨍그랑!!!!

플로라의 찢어지는 고함소리와 함께 응접실의 의자들이 한번에 넘어가고 테이블 위의 모든 접시와 잔들이 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녔다. 화가난 플로라가 마나의 힘으로 방의 물건들을 부순 것이었다.


침묵하던 아버지 카텔리니 경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모두 그만하거라. 플로는 떠났다. 그리고 알루레곤의 말에 휘둘려선 안돼. 황실에 대한 충성이 플로에 대한 배신은 아니다. 플로라. 화가 난다고 물건을 부수는 것은 세 살짜리 아이의 반응이야. 감정을 추스르고 남편을 존중하렴.”


2층의 서재로 올라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반항하듯 플로라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깨어진 접시를 손으로 높이 들어서 다시 한번 더 바닥에 집어던졌다. 이번엔 마나가 아니라 제 손으로···


쨍그랑!!!!


접시가 바닥에 부딪혀서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집안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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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아들로 환생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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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로시부인의 복귀 24.08.12 10 0 9쪽
24 핑크색 여우 두마리 24.08.11 16 0 10쪽
23 인간열쇠 24.08.10 17 0 10쪽
22 장례식 (8) 24.08.08 20 0 12쪽
21 장례식 (7) 24.08.06 17 0 11쪽
20 장례식 (6) 24.08.06 15 0 10쪽
19 장례식 (5) 24.08.06 15 0 11쪽
» 장례식 (4) 24.08.06 14 0 13쪽
17 장례식(3) 24.08.06 12 0 10쪽
16 장례식 (2) 24.08.06 15 0 11쪽
15 장례식 (1) 24.08.05 16 0 10쪽
14 하얀 까마귀가 날면 24.08.05 15 0 10쪽
13 모두의 아침 24.08.04 19 0 10쪽
12 끝나지 않은 하루 24.08.04 17 0 11쪽
11 긴 하루 24.08.03 16 0 11쪽
10 암펠다리 소동 24.08.03 17 0 10쪽
9 한 입 거리 24.08.02 19 0 10쪽
8 킹 메이커 24.08.02 23 0 10쪽
7 어느 오후의 풍경 24.08.01 22 0 10쪽
6 신의 물방울 24.08.01 25 0 9쪽
5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24.07.31 30 1 10쪽
4 어느 완벽한 하루 24.07.31 32 2 10쪽
3 바티안 교수의 방문 24.07.30 33 2 10쪽
2 먹고자고 먹고자고 24.07.30 36 2 11쪽
1 마지막 소원 24.07.30 55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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