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아들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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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돌이
그림/삽화
찹쌀돌이
작품등록일 :
2024.07.30 16:29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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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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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8)

DUMMY

22 장례식 (8)


대신전의 중앙에는 황제의 관이 높은 단 위에 놓여있었다. 그 앞에는 오늘 예식을 집전할 사제들과 기사들이 관을 빙 둘러 자신의 위치에 서 있었다. 신분이 유별했으므로 귀족들은 중앙을 기점으로 앞쪽에 앉아있었고, 평민들은 뒤쪽에 서서 예식을 드렸다. 오늘의 예식을 마지막으로 관은 황궁의 안장지로 돌아가 녹색 궁전 지하에 보관될 것이었다.


쌍둥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델이 걸어 들어오자 귀족과 백성, 사제들까지 모두 그들을 주목했다. 입을 열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경내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지만, 마지막까지 등장하지 않은 새 황제의 부재를 비웃는 듯한 차가운 공기가 흘렀다.


황세자 쌍둥이의 입장으로 앉았던 모든 귀족들이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황실에 대한 존경심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루펠은 수치심에 이를 꽉 깨물고 눈을 더 부릅떴다.


‘도대체 황제폐하께서는! 어디 계시단 말이야!’


백성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쌍둥이를 퍽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괴물 같은 삼촌 때문에 목숨이 풍전등화 같은 쌍둥이의 운명에 그들은 눈물을 흘렸다. 귀족들 중에도 그런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고 쌍둥이를 동정하는 자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유례없는 황제의 처신에 황당해하는 귀족이 더 많은 편이었다.


‘5일이나 먹지도 자지도 않고 어디서 숨어 지내는 거지?’

‘숨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앞으로도 안 봐도 뻔하군’


그런 귀족들 사이엔 태연하게 앉아있는 블레이크경과 그의 딸 에리카도 있었다. 두 번 째 줄에는마탑의 주인인 알루레곤이 앉아있었는데, 장례식에 맞춰 입은 새하얀 슈트가 매끄럽게 떨어졌다.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이 속내를 읽을 수 없었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도 긴장하고 있었다.


‘이번엔 제대로 처리해야 할텐데···’

알루레곤은 자신의 부하가 궁에 홀로 숨어있을 황제를 찾아 죽였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모든 친위병과 주요인사들이 빠진 백색궁전에서 마법사 서른명이 스무살짜리 청년 하나를 못 죽인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오늘은 기필코 죽여야한다! 쥐새끼 같은 황제 같으니라고!!


바로 뒷 줄에 앉아있던 에리카 블레이크도 알루레곤만큼이나 황제를 쥐새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5일을 숨어있을 수 있지? 그래도 이 제국의 지존인데.’


정숙한 하얀 드레스로도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를 가릴 수는 없었다. 오히려 목까지 채워 잠근 진주 단추가 에리카의 커다란 가슴을 더욱 부각시켰고, 장미 모양으로 뜬 면사포가 아름다운 핑크색 머리카락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칼자루를 쥐여줘도 휘두르지 못하는 새 황제가 못나보였다.


‘만약 나라면 그렇게 처신하지 않을 거야.’

에리카는 고개를 들어 가장 앞에 있는 루펠과 그 옆에 놓인 쌍둥이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세번째 줄에 앉아있었다.


‘세 줄···’

세 걸음이면 닿을 수 있는 저 자리는 엄연히 다른 자리였다. 자신은 앉지 못하는 자리에 저 쌍둥이는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앉아있는 것이 에리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 세 줄 뒤에 앉아있을 뿐인데 자신은 황궁과도 너무 멀었고 진실과도 단절되어 있었다. 오직 국무회의에 나가는 아버지 블레이크경이나, 돈을 주고 산 첩자의 입을 통해서만 황실의 진실에 대해 짐작할 뿐이었다.


‘들었던 소문은 다 틀렸어. 알루레곤도 고전하는 것 같고’

에리카는 이 때 자신의 아버지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이 답답했다.


‘만약 나라면··· 정말 그러지 않을 거야’

자신이 아버지 블레이크 경이었다면 당장 황제의 곁을 파고들어 알루레곤의 위협을 잘라버리고 황제의 구원자가 되어 이 권력을 잡았을텐데! 에리카는 아버지가 굼뜨거나 혹은 계산만 지나치게 많이 한다는 생각을 했다.


지루한 장례예식이 끝나가고 있었다. 기도와 경전 암송, 축복과 애도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황제의 관 앞에 꽃을 놓을 사람은 바로 쌍둥이들이었다. 형의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은 새 황제에 대한 평가는 최악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것이다.


“황세자 쌍둥이님의 헌화가 있겠습니다.”


델은 인형들 사이에서 햄스터로 변신한 황제를 꺼내 의자 밑으로 살짝 내려줬다. 햄스터는 빠르게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


루펠의 호위를 받으며 델은 쌍둥이를 데리고 관으로 나아가 아이들을 대신해 헌화를 했다.


“오 신이시여!!”

쌍둥이를 보자 건너편에 서있던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그러나 그 장면을 지켜보던 귀족들의 반응은 달랐다.


“저 유모는 누구야?”

“처음보는 영애인데?”

“왜 저런 사람이 유모지?”

“옷은 또 왜 저래”


델은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관 앞에서 모든 예를 다 갖췄다. 루펠은 자신 또한 한미한 가문의 영애가 황세자 쌍둥이의 유모를 한다는 것이 불만이긴 했지만, 귀족들의 시선에도 침착하고 완벽하게 예법대로 행하고 있는 델의 모습에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델 블랙···블랙이라면···’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같기도 한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헌화를 마친 델이 쌍둥이를 데리고 돌아서서 루펠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이처럼 아무런 장식도 없는 (리본 하나 조차도)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처음이었다. 짙은 초록빛이 감도는 델의 검은 머리카락은 드레스만큼이나 단순한 하얀 실크 모자 아래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는 주근깨가 희미하게 올라와 있었다. 주근깨라니. 이 여자는 나이가 몇인데 분칠도 할 줄 모르는건가? 분칠한 얼굴에 꾸며낸 홍조, 붉은 입술 그리고 달콤한 향수냄새···부드러운 몸짓과 풍만한 몸매. 그런 존재야말로 ‘여자’라고 정의했던 루펠 몬티에게 델 블랙은 어떤 기준에서 한참 벗어난 존재같았다.


‘뭐해요?’

델은 말을 할 수 없으니, 기다리다 못해 먼저 루펠을 앞서서 자리로 향했다.


‘이크’

그제서야 루펠도 정신을 차리고 델과 쌍둥이를 호위했다.


“그러면··· 이제···”

예식을 마무리하던 대 신관 마리안느가 말하는 도중에 신전의 뒤 편에서 시종이 큰 소리로 외쳤다.


“황제 폐하 납시오!”


황제가 등장했다는 말에 장내가 술렁였다. 귀족들은 어리둥절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성들은 절름발이 황제의 얼굴을 보려고 서로 밀치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황제 제이크 데 우노의 구두소리가 신전에 울렸다. 거구에 호탕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던 형과는 달랐지만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약간 웃고 있는 듯한 처진 눈매의 황제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대신관 앞에 섰다.


평소 흐트러진 채로 다녔던 레몬색 머리카락도 깔끔하게 뒤로 넘겨놓으니 단정한 이목구비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빛나는 레몬색 머리에 깊은 바다처럼 푸른 눈동자가 황족 데 우노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나도 사랑하는 형님을 배웅하고 싶은데···”

멍하니 서있던 대신관은 급히 선포했다.


“제국의 수호자 황제 제이크 데 우노 폐하의 헌화가 있겠습니다.”


새 황제는 더 없이 우아한 몸짓으로 관 위에 꽃을 바치며 짧게 기도했다. 비록 형과는 대조적인모습이었지만, 젊고 여린 제이크의 모습은 백성들을 감동시켰다. 절름발이에 약쟁이, 변태라는 소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정하고 고귀한 모습이었다.

알루레곤이 퍼트린 소문덕에 오늘의 등장이 더욱 긍정적인 반전이 되어버렸다. 그런 제이크의 모습을 바라보는 알루레곤의 눈에선 핏줄이 터져 충혈이 될 지경이었다. 알루레곤에게 매수되었던 몇몇 귀족들도 귀신을 본 듯한 표정으로 황제를 쳐다봤다.


대 신관이 예식을 마무리하는 동안 신하들이 급하게 의자를 가져왔지만 황제는 앉기를 거부하고 대 신관 앞으로 나아갔다.


“마리안느 대 신관. 오늘 부탁할 일이 하나 더 있네.” 황제는 몸을 돌려 귀족들과 백성들을 향해 입을 열였다.


“나의 사랑하는 형 제이드 데 우노는 우리 부모님의 기쁨이었고, 어린 동생의 그늘이었고, 아내의 지극한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우리 슈가란드를 비추는 태양이었으며 제국민의 울타리요, 지키는 성벽이었다.

사랑스런 황제 제이드를 영광을 신에게 돌린다. 그가 영원한 안식 속에서 평안하길!”


그의 연설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제이크의 목소리는 여리고 청아했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울림이 있었다.


“나 제이크 데 우노는, 형의 황좌를 이어받아. 나 또한 슈가란드의 울타리로 살다가 울타리로 죽을 것을 이 자리에서 거룩하고 유일하신 신의 이름 앞에 맹세하노라. 여기 함께 눈물 흘리는 자들 모두 내 증인이요 내 형이 내게 남긴 유산이라! “


‘저런 재주가 있다니······’

블레이크 경은 예상과 다른 제이크의 행보에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알루레곤의 잡스러운 작전에 동요하던 백성들은 순식간에 새 황제를 지지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이번 판은 알루레곤의 패배였다. 새 황제는 감동적인 연설을 이어 나갔다.


“또 하나! 이 나라와 백성 말고도, 나의 사랑하는 형이 내게 남긴 유산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여기 있는 나의 조카들이다. 내가 전쟁에서 돌아와 내 혈육과 상봉하기 전부터 나의 진정을 왜곡하고 음해하는 세력이 있으니, 세간에 떠도는 대로 내가 내 조카를 죽이고 내게서 나는 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주려 한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에, 오늘 이 자리에서 이 아이들을 내 호적에 올려 나와 조카를 모욕하는 그 어떤 시도도 불식시키리니, 나는 오늘부로 두 아이의 아비가 되어 별빛처럼 그들을 인도하려 하노라. 더불어 내 몸에서 난 어떤 자식보다도 이 아이들의 황위계승서열이 우선할 것을 천명한다!”


“뭐..뭐라고!” 에리카 블레이크 입에서 작은 소리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황후가 될 계획의 큰 암초가 생긴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블레이크경은 여전히 뜻 모를 미소만 짓고 있었다.


“황제폐하 만세!” “만세!”

“신이시여 슈가란드를 축복하소서!”

“새황제를 축복하소서!”


백성들이 먼저, 그리고 눈치를 본 귀족들이 환호를 질렀다. 황제는 몸을 돌려 대신관에게 말했다.


“이 입양의 공증인이 되어주시오. 대 신관 마리안느”

황제는 두 아이를 번쩍 들어올려 안았다. 사람들의 소리에 놀랐던 아이들도 황제의 품에서 꺄르륵 거리며 웃었다. 황실에 대한 오해가 종식되고 사랑이 넘치는 황실을 증명하는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나 대 신관 마리안느는 신의 이름으로 안토니 데 우노와 애니 데 우노가 황제 제이크 데 우노의 아들과 딸이 되었음을 선포하노라.”


숨어있던 쥐새끼 황제가 튀어나와 말도 안되는 입양절차를 마무리했다. 황궁에서 나온 안건이라면 대신관도 대마법사도, 장관들도 누구 하나 찬성하지 않았을 말도 안되는 절차였다. 그러나 이 상황에선 아무도 여기에 반기를 들 수 없었다. 백성들의 폭발적인 지지가 그들을 위협하기 때문이었다. 데피부인은 한 쪽에 서서 어제 오후 황제가 옥수수 스프를 먹으며 하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

[지난 오후]

“쩝쩝.. 내가 조카들을 입양할 수 있다네! 민심을 이용하면!”

“민심이요?”

“그렇지...꿀꺽 꿀꺽··· 그들은 황제가 된 나를 시해하기 위해 민심을 자꾸 이용하지 않나? 암펠다리에서 노란머리의 기사 한 명만 골라서 죽인 것이 정말 백성들의 광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음..정말 맛있군..”

황제는 숟가락을 놓고서 데피부인과 델을 향해 웃었다.


“그들은 자신의 부족한 힘을 민심의 힘으로 채우려고 해. 마침 나도 힘이 부족하니 나도 민심이란 걸 이용해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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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아들로 환생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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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로시부인의 복귀 24.08.12 10 0 9쪽
24 핑크색 여우 두마리 24.08.11 16 0 10쪽
23 인간열쇠 24.08.10 18 0 10쪽
» 장례식 (8) 24.08.08 21 0 12쪽
21 장례식 (7) 24.08.06 17 0 11쪽
20 장례식 (6) 24.08.06 16 0 10쪽
19 장례식 (5) 24.08.06 16 0 11쪽
18 장례식 (4) 24.08.06 14 0 13쪽
17 장례식(3) 24.08.06 13 0 10쪽
16 장례식 (2) 24.08.06 15 0 11쪽
15 장례식 (1) 24.08.05 17 0 10쪽
14 하얀 까마귀가 날면 24.08.05 16 0 10쪽
13 모두의 아침 24.08.04 19 0 10쪽
12 끝나지 않은 하루 24.08.04 18 0 11쪽
11 긴 하루 24.08.03 17 0 11쪽
10 암펠다리 소동 24.08.03 17 0 10쪽
9 한 입 거리 24.08.02 20 0 10쪽
8 킹 메이커 24.08.02 24 0 10쪽
7 어느 오후의 풍경 24.08.01 23 0 10쪽
6 신의 물방울 24.08.01 26 0 9쪽
5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24.07.31 30 1 10쪽
4 어느 완벽한 하루 24.07.31 33 2 10쪽
3 바티안 교수의 방문 24.07.30 33 2 10쪽
2 먹고자고 먹고자고 24.07.30 37 2 11쪽
1 마지막 소원 24.07.30 56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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