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아들로 환생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찹쌀돌이
그림/삽화
찹쌀돌이
작품등록일 :
2024.07.30 16:29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545
추천수 :
9
글자수 :
117,413

작성
24.08.06 00:00
조회
15
추천
0
글자
11쪽

장례식 (2)

DUMMY

16 장례식(2)

5일의 장례기간동안 이뤄지는 모든 절차에 참여하지 않겠다던 황제의 말대로 정말 새 황제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건 좋은데··· 그래도 황궁 안에선 찾을 수 있어야 될 것 아니냐고···”

루펠 몬티가 보고를 하러 왔다가 허탕을 치고는 빈 서재에서 볼멘 소리를 하고 있었다. 오늘도 황제는 어디로 갔는지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황제는 루펠과 데피부인에게 말한대로 청색궁전에 머무르고 있었다.


“나참, 무슨 황제가 청색 궁전에서 살겠다고!! 자기가 아직도 대학다니는 황자인줄 아나!!”


루펠은 부글부글 끓었다. 게다가 이 서재를 좀 보라지! 샌님 냄새가 풀풀 풍겼다. 웬 책들은 이리도 많은 지···앉아서 하는 공부보다 검을 들고 뛰어나가는 것이 직성에 맞는 루펠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황제였다.


“‘약초학’, ‘슈가란드의 고대 도시 청사진’, ‘신선한 야채를 키우는 법’, ‘고대 마법과 현대 마법의 이해’···. 뭐 이딴 책들을 다 보는거야? 어라? 이건 또 뭐야 ‘마담 에클레어의 완벽한 오븐요리’? 미쳤군 미쳤어··· “


서재에 쌓여 있는 책들을 훑어보던 루펠의 눈에 요상한 핑크색 책이 눈에 띄었다. 책은 교묘하게 뒤집어져서 꽂혀있었다. 자신도 야한 소설 같은 건 이렇게 두곤 했는데 설마? 제이크도? 짜식··· 너도 남자였군··· 하고 생각하며 루펠은 거꾸로 꽂혀있는 핑크색 책을 꺼냈다가 제목을 보고 박장대소하며 뒤집어졌다.


“크크큭 ‘여자꼬시는 마법술-러브 아티스트 XX?’ 미쳤네 미쳤어! 여자 꼬시는 마법이라니! 으키킥 세상에 그런게 어딨어!! 이런 책을 사는 사람이 있다니 세상에!!”


루펠경은 서재에서 나와 복도를 걸으면서도 자신이 본 핑크색 책을 떠올리면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흐흐흑···”

이제 거의 흐느낄 지경이었다. 루펠은 잠시 멈춰서 복도의 기둥을 부여잡고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 혈기왕성한 남자니까.. 그럴 수 있지···그러고 보니 실제로 레이디와 가까이 있는 건 본 적도 없군···’


루펠경은 황제의 형이었던 제이드 선황제와 친구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황궁과 대학에서 함께 마법과 무술을 배웠다. 두 사람과 제이크는 7살차이였으니 꽤 나이차이가 있었다. 열세살이 되어 제이크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어린시절 귀여웠던 꼬마는 어디가고 음침하고 비리비리한 샌님이 되어있었지만 루펠경은 제이크를 언제나 귀엽게 생각했다.


루펠의 짖궂은 장난에 제이크가 질겁을 할 때면 제이드가 중간에서 중재해줬다. 뭐 그다지 특별한 장난은 아니었다. 그저 술이나 담배를 좀 강력하게 권한다든가, 부둣가의 축제에 몰래 변장을 하고 가서 선원인 척 하며 아가씨들과 어울린다든가 하는 그런···소소한 청춘의 일탈이랄까. 이젠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하겠지만.


아련하게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던 루펠은 창 밖에서 들리는 아기들의 소리에 시선이 갔다. 거기엔 델과 로시부인이 두 쌍둥이를 데리고 장미를 구경하고 있었다.


“황자 황녀님!”

루펠도 제이드의 아이들을 본 적 없었다. 루펠은 장미가 있는 안뜰로 한달음에 내려갔다.


+++


황궁의 주방에는 전에 없이 데피부인이 나타났다. 데피 부인은 한 번도 주방에 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주방장은 여간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황제는 금식 중이라 따로 신경 쓸 것도 없었는데 데피 부인이 왜?’라고 생각했는데 데피부인의 행동은 더욱 수상했다.


“음식 재료를 보고싶군요”

“네..네 이쪽은 저장고이고.. 오늘 들어온 야채와 과일은 이쪽 냉장고에 있습니다.”


마법기술로 냉장고는 서늘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데피부인은 사과를 하나 꺼내들더니 가슴에 쓱쓱 문지를 뒤에 입에 넣고 우적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음! 아주 달콤하군요. 쩝쩝.. 신선하고..쩝쩝쩝..좋아요. 다음에도 내가 이렇게 검사하러 올 테니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시길!”


데피 부인은 나가는가 싶더니 다시 돌아와 주머니에 사과와 비스킷을 챙겨서 떠났다.

“내가 좀 필요해서..크흠..”


“왜..왜저러시지?” 주방장과 시녀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데피부인은 계속해서 이상한 곳에서 엉뚱한 모습으로 목격됐다. 정원에서 직접 물을 주기도 하고, 후원의 벤치에서 잠들어 있기도 했다. 늘 자신의 집무실에 처박혀서 서류를 검토하던 데피부인이 황궁의 여기저기에 출몰하자 시종과 시녀들은 당혹스러웠다.


데피부인은 뒤 뜰에 있는 미로 속으로 들어갔다. 사람 키보다 높은 향나무로 이루어진 미로정원은 누가 들어가도 그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미로의 여기저기에는 쉴 수 있는 벤치나 조각상이 놓여있었다.


꽤 깊숙이 들어간 데피부인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더니 작게 이야기했다.


“알보!(원래대로)”

마법책을 펼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스펠은 모든 마법을 해제하는 ‘알보’밖에 없었다. 빛과 함께 데피부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레몬색 머리에 파란 눈을 한 제이크가 미로에 서 있었다.


그는 벤치에 걸터앉아 아까 챙겨온 사과 비스킷을 우적우적 먹었다.


“아, 배고파 죽겠네···”


황제는 가져온 음식을 다 먹어치우고는 벤치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미로를 이루고 있는 향나무의 자로 잰듯한 직선이 마치 액자 프레임처럼 하늘을 담고 있었다. 황제가 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제이크는 편히 잠든 적이 없었다.


“젠장 이게 왕관의 무게인가보지···더럽게 무겁네”

형이 보고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살아남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지만 그는 고작 스무살짜리 어린애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 죽을 순 없어···”

방금 먹은 비스킷 덕분인지 미로가 자신을 숨겨주기 때문인지, 제이크는 잠시 편안하게 낮잠을 잘 수 있었다.


+++


그 시각 진짜 데피 부인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집무실에 처박혀있었다. 그녀는 황제의 주변은 물론 황궁의 모든 궁에서 일하는 사용인과 시종의 이름과 출신, 급여명세와 그들이 가지고 들어온 추천서들을 모두 꺼내놓고 씨름하고 있었다.


‘눈과 귀가 있는 모든 가구들을 바꿀 예정입니다.’


새 황제 제이크의 말이 떠올랐다. 데피부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정확하게 계산해서 예산을 집행하고, 의례를 황실의 법도에 맞추어 실행한다고 해도 이것은 완전한 실패였다.


‘여기 적힌 이름 중에 나를 신뢰하거나 내게 눈과 귀가 되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들은 황실부 장관으로서 데피부인의 명령을 거부하지 않고 이행했지만 그뿐이었다. 시키는 일만 할 뿐, 황제가 침전에 들지 않아도 누구도 부인에게 그것을 전달하지 않았다.


대학교의 일을 총괄하던 때 처럼 그저 맡은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면 될 줄 알았던 황실의 일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데피부인에게만 그렇지 않을 뿐, 그들은 어디선가 누군가의 끄나풀이 되어 누군가의 눈가 귀로서 첩자 노릇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내가 너무···낭만적이었군···멍청했어.’

데피부인은 자괴감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의 이런 부족함으로 인해 황실이 외부세력으로부터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려워졌다. 자신의 충성이, 그리고 성실함이 너무나 무력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들을 어떻게 쫒아내고, 또 어디서 사람을 구해오지?”


+++


오후의 장미정원은 햇살이 가득했다. 따뜻한 햇살을 가득 머금은 장미는 갖가지 색깔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너무 예뻐! 이것봐!!’

“뺘바 뱌뱌! 이이!!”


애니가 델의 품에 안겨서 눈 앞의 장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장미! 장미!’

“뱌뱌!! 쟈바!”


델은 애니를 데리고 한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눈으로만 보는거에요! 꽃들도 아픔을 느낀답니다. 손으로 만지면 꽃이 아야 해요!”


“그것보단 가시 때문에 황녀님이 아야한다고 말해야하는거 아닌가?”

안토니와 놀던 로시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요?” 델이 대답했다.

로시부인은 안토니의 양손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그럼요~ 아름다운 장미는~~ 가시를 품고있답니다~~ 그쵸 황자님? 만지면 안돼요 아야해요!”

안토니는 로시부인이 말하는 리듬이 재미있어서 꺄르륵 웃었다. 정원 나들이는 언제나 즐거웠다.


‘힝..만지고 싶은데···’

“삐이···삐이이···”

애니는 수긍하지 못한 듯 장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얍!! 잡을거야!!’

“뺩!! 삐얍!”


애니가 튀어나갈 기세로 몸을 흔들자 델이 놀라서 애니를 붙잡았다.


“헛, 안돼요 황녀님!! 떨어져요. 잠깐만!”


이들을 보고 한 걸음에 달려온 루펠 몬티가 유모들과 아기들이 놀라지 않게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천천히 걸어왔다. 몬티 경의 큰 키와 근육질의 몸매는 장미정원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루펠은 강하고 투박한 손을 뻗어 근처에 있던 푸른 장미 한송이를 꺾더니 손가락으로 줄기를 쓸어서 가시를 제거했다. 가시를 없앤 장미를 애니 앞에 들이밀며 말했다.


“황세자 쌍둥이께서 가지지 못할 것은 없지요”


델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루펠을 쳐다봤지만 장미를 받은 애니는 좋아서 펄쩍 뛰었다.


‘꺄 장미다 장미! 오빠 파란 장미야!!’

“뱌뱌댜 바바뱌! 꺄르륵”


루펠이 안토니와 애니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황실 친위대장 루펠 몬티, 황자님과 황녀님을 뵙습니다.”


“몬티경”

안토니와 애니를 안고있던 로시부인과 델도 몬티경의 이름을 부르며 목례를 올렸다.


“로시부인···아 그리고···우리가 만난적이 있던가요?”

몬티는 초면인 델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델 블랙입니다.”

“델..블랙···양”


블랙···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신이 이름도 알 수 없는 미천한 가문이 황궁의 유모라고? 루펠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황자와 황녀를 맡는 유모라면 슈가란드의 가장 영향력있는 가문이어야 할 것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인사권자인 데피부인이 황세자 쌍둥이를 우습게 여긴다는 것인가?


루펠은 고개를 돌려 로시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장에서 임신 소식을 듣고 선황제께서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황후 폐하의 소식을 듣고 비통한 중에도 아기님들을 향한 부성으로 견디셨구요···.결국···돌아오지 못하셨지만···”


루펠의 말을 듣던 로시부인이 눈물을 흘렸다.


“황자 황녀님이 두 분 다 못뵈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어리고 건강하신데···”

“로시부인이 잘 돌봐주신 덕도 크지요.”

루펠이 분위기를 바꾸기위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 제가 한 게 무엇이 있겠어요.”


루펠은 아기들을 귀여워하며 바라보았다. 루펠이 내민 손을 안토니가 꼭 붙잡았다. 유모들과는 다른 거칠고 딱딱한 기사의 손···


안토니의 고사리 같은 손이 자신의 손을 잡자 루펠은 그만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는 눈물을 참고 아기의 부드러운 손을 잡으며 충성을 맹세했다.


“황자님 황녀님은 이 루펠 몬티가 꼭 지키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황제의 아들로 환생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5 로시부인의 복귀 24.08.12 10 0 9쪽
24 핑크색 여우 두마리 24.08.11 17 0 10쪽
23 인간열쇠 24.08.10 18 0 10쪽
22 장례식 (8) 24.08.08 21 0 12쪽
21 장례식 (7) 24.08.06 18 0 11쪽
20 장례식 (6) 24.08.06 16 0 10쪽
19 장례식 (5) 24.08.06 16 0 11쪽
18 장례식 (4) 24.08.06 14 0 13쪽
17 장례식(3) 24.08.06 13 0 10쪽
» 장례식 (2) 24.08.06 16 0 11쪽
15 장례식 (1) 24.08.05 17 0 10쪽
14 하얀 까마귀가 날면 24.08.05 16 0 10쪽
13 모두의 아침 24.08.04 19 0 10쪽
12 끝나지 않은 하루 24.08.04 18 0 11쪽
11 긴 하루 24.08.03 17 0 11쪽
10 암펠다리 소동 24.08.03 18 0 10쪽
9 한 입 거리 24.08.02 20 0 10쪽
8 킹 메이커 24.08.02 24 0 10쪽
7 어느 오후의 풍경 24.08.01 23 0 10쪽
6 신의 물방울 24.08.01 26 0 9쪽
5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24.07.31 30 1 10쪽
4 어느 완벽한 하루 24.07.31 33 2 10쪽
3 바티안 교수의 방문 24.07.30 33 2 10쪽
2 먹고자고 먹고자고 24.07.30 37 2 11쪽
1 마지막 소원 24.07.30 56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