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아들로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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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돌이
그림/삽화
찹쌀돌이
작품등록일 :
2024.07.30 16:29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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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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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하루

DUMMY

12 끝나지 않은 하루


블레이크 경이 탄 마차가 수도의 저택으로 들어섰다. 준비된 저녁식사도 모두 물린 채 3층 자신의 집무실에 들어간 블레이크 경은 오늘 처음 본 새 황제의 태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처음 본 건 아니지만···’

늘 황세자의 그늘에 가려 병약한 제 2황자에 불과했던 제이크 데 우노. 목소리를 들은 건 정말로 처음인 것 같았다.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크게 인상적인 기억이 없었다. 그저 황자들이 지내는 청색 궁전에서 처박혀 있었다는 것 말고는···


“아버지, 퇴청하셨어요?”

딸 에리 블레이크가 집무실을 문을 빼꼼 열더니 차와 식사가 든 쟁반을 든 하녀를 데리고 들어왔다. 블레이크 경의 집무실에 들어올 수 있는 건 사랑하는 딸 에리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드셔야 푹 주무시죠”

에리의 눈짓에 따라온 하녀가 집무실의 한 켠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 쟁반을 놓고 물러갔다. 쟁반에는 딱딱한 빵위에는 버터를 듬뿍넣고 구운 푸아그라와 송로버섯이 올려져 있었다. 온 방에 송로의 향이 진하게 퍼졌다.


블레이크 경은 입맛을 다셨다. 방금 전까지는 전혀 음식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는데 가장 좋아하는 푸아그라와 송로버섯의 냄새에 갑자기 식욕이 올라왔다.


“음··· 그래··· 그럼 조금 먹을까?”


에리는 기쁘다는 듯이 생긋 웃었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만큼이나 언제 말을 걸어야 하는지까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에리였기에 신경질적인 아버지가 적당히 배가 차서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는 집무실 창가에 기대어 이런저런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블레이크 경은 푸아그라가 올려진 빵의 바삭함을 음미하며 창가에 앉은 딸 에리를 쳐다보았다. 집무실의 어스름한 촛불 너머에 창가에 걸터앉은 에리카 블레이크의 모습은 실내용 드레스 차림만으로도 넘치게 아름다웠다. 커다란 둔부와 대조적인 잘록한 허리 풍만하게 부풀어오른 젖가슴. 길고 하얀 목덜미 위로는 블레이크가의 고귀한 핑크색 머리카락이 덮고 있었다. 마치 대리석으로 조각한 여신상에 누가 생기를 불어넣은 것 같았다.


‘저 아이를 제이드의 황후로 주었으면 큰 일 날 뻔했지!’


블레이크 경은 쩝쩝거리며 두 번 째 빵조각에 손을 뻗었다.


‘오만한 제이드 놈이 에리카를 두고 타샤 맥그리드를 황후로 맞았을 때는 미칠 지경이었는데. 3년도 못되어 둘 다 죽어버릴 줄 누가 알았나.’


블레이크경은 3년전 스무살의 에리카를 황후자리에 앉히려했다가 물을 먹은 뼈아픈 경험이 있었다. 일년 전 황후가 쌍둥이를 출산하다가 죽었을 때 이 부녀는 새로운 기회가 왔음에 매우 기뻐했다. 이번엔 제이드 황제가 아무리 거절해도 에리를 황후자리에 밀어넣을 생각이었다.


‘차라리 잘 됐어. 꼭두각시로 쓰기엔 영리한 형 놈보다 멍청한 동생이 더 낫지!’


두 조각의 빵으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블레이크경의 기분은 이전보다 무척 좋아졌다. 손가락에 묻은 기름을 빨고 있을 때 에리카가 다가와 찻잔에 차를 부으며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황제의 동생이 죽었다고 하더군요. 알루레곤의 말이 사실이었어요!”


대마법사 알루레곤은 데피부인만 찾아간 게 아니었다. 몇몇 세도가를 찾아가 군대가 입궁할 때 소요를 일으켜 황제의 동생을 죽이고 어린 안토니 황자를 황제로 세우겠다는 역모에 가담하길 부추겼다. 그리고 그 어린 황제는 이 슈가란드의 마지막 황제가 될 것이라고.


마탑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식인들이 통치하는 새로운 국가를 시작하겠다는 야심을 불태우며 ‘시대의 요구’, ‘새로운 바람’등 거창한 수식어를 갖다 붙였지만 결국은 황실을 장악해서 자신과 함께 섭정을 할 파트너를 모집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풉! 크크크큭”

블레이크 경은 찻잔을 든 채로 부들부들 떨며 웃음을 참았다. 음흉한 두꺼비 알루레곤이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아버지의 반응에 에리는 당황해서 토끼눈을 뜨고 쳐다보고 있었다. 블레이크 경은 겨우 웃음을 멈추고서는 드디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뜨끈한 장미차가 지나가며 느끼한 푸아그라의 기름이 쑥 내려가는 개운한 기분이었다. 블레이크경이 에리를 보고 말했다.


“동생은 살아있어. 오늘 공식적으로 황제로 즉위했지.”

“네? 죽었다던데요?”

“아냐, 다른 놈이 죽었겠지··· 어쨌거나 알루레곤은 실패했다. 새 황제는 멍청한 어린애야! 정말 먹음직스럽지 않니?

에리! 나는 네가 그 얼간이의 황후가 되었으면 한다. 기름에 튀긴 푸아그라처럼 그 놈의 애간장을 녹일 자신이 있느냐? 이 애비는 처음부터 알루레곤처럼 나눠 먹는 건 성에 안찼어.”


+++

블레이크 경의 상상보다 더 추악한 형태로 알루레곤은 폭주하고 있었다. 마탑의 가장 높은 방에서 변신도 하지 않은 거대한 두꺼비 같은 알루레곤이 길길이 날뛰었다. 모든 물건들은 폭파되어있었고 그 앞엔 서른명의 마법사들이 서서 벌벌 떨었다.


“어떻게 실패할 수가 있지? 그 놈이 제 발로 녹색궁전에 들어와 즉위식을 다 끝내버렸잖아!”


“그가 마지막 마차에 타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관을 호위하던 열 두 기사 중에 금발의 왜소한 기사가 있어서 당연히 그가 제이크 데 우노인 줄 알고···”


한 마법사의 변명에 알루레곤의 눈이 뒤집어졌다. 파충류의 눈처럼 초록색이 되더니 포효하기 시작했다.


“멍청한 것!”

알루레곤이 손을 뻗자 손 끝에서 검은 끝이 뻗어나가더니 말을 한 마법사의 심장에 꽂혔다. 마법사는 피를 토하며 괴로워했다. 이내 평정을 찾은 알루레곤은 거미줄 같은 검은 끈을 거두어 들였다. 그는 마법사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방 안에 있던 서른명은 각자 그런 공격을 받은 듯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그는 장례식 기간에도 앞에 나서지 않을거야! 게다가 폭동으로 죽는다는 건 다시 하기엔 이미 써버린 카드라고!! 그를 죽일 방법이 뭐가 있을까? 자꾸 늦어져선 안돼. 블레이크 놈은 벌써 우릴 배신했어!”


“쿨럭..독을 쓰시면 됩니다.”


한 마법사가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이야기했다.


“병약하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약이나 음식에 독을 타는 방법은 어떨까요”

새 황제는 마나가 미약해서 마법사 하나만 보내도 죽일 수 있지만, 사람을 죽일 정도의 마법을 쓴다는 건 마탑 소행이라고 자기소개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독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게다가 죽고나면 어쩔건가. 이미 온 백성이 죽은 줄 알고 있는 사람이 죽었다는데··· 다른 작전을 고민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쳐버리면 안된다고 알루레곤은 생각했다.


“좋아. 계속 말해봐..”


+++

그저 마법군대의 귀환으로 끝날 줄 알았던 긴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이번 전쟁에 참여했던 마법사들은 조금 지체되긴 했지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일년 만에 돌아온 마법사들과 가족들의 해후에 도시의 저택마다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비록 선황제의 애도기간이긴 했지만 오늘 밤은 저택마다 늦게까지 웃음소리와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직 고요한 저택은 카텔리니 가의 수도 저택이었다. 아들과 사위의 귀환을 위해 준비한 음식들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시신을 수습해 왔습니다···”

장남 루도의 무거운 목소리에 아버지 카텔리니 경이 천에 쌓인 주검 앞으로 나아왔다.


“확인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 이미 훼손이 심하게 돼서···”

루도의 말에도 카텔리니 경은 시체를 싼 천을 들췄다.


“흐흑···흐흐흐흑. 으아아아아악”

카텔리니 경은 이내 다시 천을 덮고 시신 위에 엎드려 오열했다.


심각하게 난도질 된 시신의 손에 끼워진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반지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플로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 전쟁에 참여했다가 돌아온 루도와 안도 형제도 동생의 죽음 앞에 분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플로라의 남편이자 이 집의 사위인 로씨가문의 제나 로씨도 이 곳에 있었다. 황실 친위대장 루펠 몬티도 이 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시신을 수습하고 황실을 대행해서 이 저택에 와 있는 참이었다.


이미 몇 시간 전에 플로의 죽음을 듣고 어머니는 실신해서 침대에 누워있었고 그 곁을 플로라가 지켰다. 흥분한 폭도들이 플로를 제이크인 줄 알고 난도질 한 덕에 시신을 온전히 찾는데만 4시간이 걸렸다. 시신이 집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플로라가 뛰쳐나왔다. 루펠 몬티는 젊은 마법사의 희생을 애도하기 위해 슈가란드의 국기를 시신에 펼치고 있었다. 플로라가 국기를 빼앗아 집어던지며 분노했다.


“이것이 나라에 충성한 마법사의 최후인가요? 내 동생이 황제랑 닮아서 죽었다니 그게 말이 돼요? 황제는!! 황제는 자기 형의 관도 지키지 않고 마차에 처박혀 뭘 한거야!! 그 동생이 죽었어야 했어 형을 죽인 반역자!!”


이성을 잃은 플로라를 남편과 오빠들이 제지했다.


“플로라 그만해.”

“무슨 소리야 플로라!”


“놔!! 이런다고 플로가 돌아와?! 내 동생 돌려내!! 우리 플로 살려 내라구!! 으아악”


저택 안에는 아직도 시나몬이 듬뿍 들어간 애플파이의 향이 진동했다.


+++

아직도 긴 밤은 끝나지 않았다. 황세자 쌍둥이의 방이 있는 청색 왕궁으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들어왔다. 정무회의가 끝나고 들렀던 데피 부인도 돌아간 지 오래고 이미 밤이 늦어 책을 읽던 델도 옆에 딸린 작은 방에 들어가 자고 있는 시간이었다.


찰칵.


문이 열리는 소리와 인기척에 안토니는 잠이 깼다. 하지만 여전히 비몽사몽간에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참 나.. 누가봐도 우리 집안 아이군”


누군가 잠든 애니의 침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안토니는 졸린 눈을 비볐다.


‘누구지? 남자 목소리···’

다시 스르륵 잠이 들려고 하는데 다시 소리가 들렸다.


“엥? 이건 뭐야? 얜 누굴 닮은거지?”

그 사람도 놀랐는지 조금 큰 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안토니는 눈을 반짝 떴다. 달빛이 안토니의 짙은 갈색 머리위를 비췄다. 올리브 그린의 눈동자가 빛났다.


“내가 깨웠니? 미안하다. 다시 자렴”

남자의 손이 조용조용하게 안토니의 가슴을 두드렸다. 어둠 속에서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지···꿈일까···’

안토니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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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아들로 환생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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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로시부인의 복귀 24.08.12 10 0 9쪽
24 핑크색 여우 두마리 24.08.11 16 0 10쪽
23 인간열쇠 24.08.10 18 0 10쪽
22 장례식 (8) 24.08.08 20 0 12쪽
21 장례식 (7) 24.08.06 17 0 11쪽
20 장례식 (6) 24.08.06 15 0 10쪽
19 장례식 (5) 24.08.06 16 0 11쪽
18 장례식 (4) 24.08.06 14 0 13쪽
17 장례식(3) 24.08.06 12 0 10쪽
16 장례식 (2) 24.08.06 15 0 11쪽
15 장례식 (1) 24.08.05 17 0 10쪽
14 하얀 까마귀가 날면 24.08.05 16 0 10쪽
13 모두의 아침 24.08.04 19 0 10쪽
» 끝나지 않은 하루 24.08.04 18 0 11쪽
11 긴 하루 24.08.03 16 0 11쪽
10 암펠다리 소동 24.08.03 17 0 10쪽
9 한 입 거리 24.08.02 20 0 10쪽
8 킹 메이커 24.08.02 24 0 10쪽
7 어느 오후의 풍경 24.08.01 22 0 10쪽
6 신의 물방울 24.08.01 25 0 9쪽
5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24.07.31 30 1 10쪽
4 어느 완벽한 하루 24.07.31 33 2 10쪽
3 바티안 교수의 방문 24.07.30 33 2 10쪽
2 먹고자고 먹고자고 24.07.30 37 2 11쪽
1 마지막 소원 24.07.30 55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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