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브로 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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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영운
작품등록일 :
2024.07.3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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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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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6화

DUMMY

“오호, 여관에 도착했다는 남자가 그 정도라고?”

“그렇습니다. 노예로도 쓸만하실 겁니다.”

“수고했다.”

마법사는 금화 주머니 하나를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는 바로 옆의 노예에게 말했다.

“초대장을 그 남자에게 보내라. 귀족인 것 같으니 격식에 맞추어서 오전에 보내.”

“예.”


마법사는 깊게 숨을 몰아쉬었다.

‘30년을 매달렸다. 앞으로 3년······. 앞으로 3년 정도만 더 파고들면 마법을 완성할 수 있어. ’


마법사 그레이.

그는 정신 마법, 그중에서도 기억을 조작하는 기법을 연마하고 있었다.


고대의 백마탑 ‘아레스’를 조사하여 얻은 신비로운 마법.

훼손된 이 마법을 복원하는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고, 이제 달콤한 결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마법사는 옅게 웃었다.

‘이 마법을 완성하면 마법 대전에 참여하여 백마법사들을 다 쓸어버리고 명성을 떨치리라.’

그래서 마법사들을 모아 마탑을 세우고 마법의 종주가 되는 것이 그레이의 평생소원이었다.


우당탕.

그때 노예 한 명이 허겁지겁 들어오다가 문턱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웬 호들갑이냐. 무슨 일인데.”

노예는 얼른 일어났으나 두려운 얼굴로 말을 못 했다.

“어허.”

“기, 기사 한 명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못난 놈. 그래, 어느 기사가 죽었지?”

“붉은 머리······.”

챙.

마법사는 쥐고 있던 와인잔을 노예에게 던졌다.

“그 기사는 심장에 마나 홀을 가진 고급 기사다. 그놈을 몰래 잡으려고 얼마나······ 됐다. 그냥 죽어라.”

“주, 주인님.”

“너의 단검으로 너의 심장을 찔러라. 지금 당장.”

노예는 푸들푸들 떨며 마법사의 말을 따랐고.

나머지 4명의 노예는 두려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를 30년이나 섬겼으니 당연히 자비를 베풀어야지. 단검을 단숨에 찔러넣어라. 그러면 고통이 없느니라.”

푹.

노예는 그렇게 죽었다.


마법사는 손을 흔들었다.

“이놈 치워. 그리고 나머지 기사들 데려와.”


곧 기사 2명은 의자에 묶였다.

입에 재갈을 물고 고개를 떨어뜨린 모양이 모든 것을 포기한 모습이었다.

마법사는 왼손바닥에 마법의 수정구를 올려두고.

오른손으로 한 기사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기사의 기억을 뽑아 수정구에 저장하는 과정이었다.


후우웅!

수정구가 빛을 뿜었다.

기억을 뽑는 것에는 그 어떤 고통도 없어서, 기사는 마법사가 무엇을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너도 참 인생 한심하게 살았구나. 뭘 그렇게 훔쳐. 넌 대체 기사냐, 도둑놈이냐?”

기사의 기억을 읽던 마법사는, 기사의 머릿속을 무자비하게 뒤적거리고 헤집었다.

그렇게 그레이는 나머지 기사의 기억도 다 뽑았다.


그리고는 수정구에 저장된 여러 기억 중 하나를 기사 1명에게 주입하기 시작했다.

즉 다른 사람의 기억을 넣는 것이다.

타인의 기억을 강제로 심어 사람의 정신을 혼란에 빠뜨리는 악랄한 행위.

이 마법에 당하면 미치광이가 된다.

본래는 그런 용도가 아니었으나 그레이의 손에서 무서운 흑마법으로 재탄생하는 중이었다.

그레이는 그런 실험을 하고 있었다.


‘좋아. 역시 기사로다.’

기사는 뇌가 타버리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꿋꿋하게 잘 버텼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한 명.

두 명

세 명의 기억까지 주입했을 때, 기사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놓아버렸다.


“벌써 자빠져? 명색이 기사인데 5명까지는 버텨야지.”

그레이는 한숨을 쉬고는 방금의 실험에서 몇 가지 실수를 고쳤다.

“자, 다음은 네놈이다. 너는 잘 버텨······.”


그레이는 움찔했다.

“어디서 이렇게 마법의 기운이 살살 퍼지느냐?”


마법사의 손가락이 재빠르게 열린 창문 밖을 가리켰다.

피잉!

손끝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쏘아져 창밖의 까마귀를 노렸다.

까아악!

정말 우연히 블레어 성 근처를 지나던 까마귀는 본능적으로 회를 치며 간신히 그레이의 공격을 피했다.

아니, 피했다기보다는 순전히 요행이었다.

놀란 까마귀는 하늘 높이 날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레이는 창가로 달려 나갔다.

그의 두 눈에 마나가 맹렬하게 모였다.

눈동자에 주변의 풍경이 한가득 확대되었다.

그리고 마법사의 눈동자에 까마귀가 맺히는 순간, 그는 오른손을 꽉 움켜쥐었다.

까아아아악!

까마귀는 절구에 찧어지듯 단박에 핏덩어리가 되어 땅에 떨어졌다.


“패밀리어가 아주 괜찮아 보이던데. 네놈 좀 하는구나? 이거 정말 월척이로군. 흐흐······ 약이 잔뜩 올랐으렷다. 어서 오너라.”


* * *


“뭐?”

로건은 까마귀에게 한창 단어를 가르치다가 퍼뜩 놀랐다.

바깥에서 즐겁게 날아다니던 다른 까마귀가 죽었다.


로건의 눈이 가늘어졌다.

까마귀는 상위 포식자.

더구나 마법으로 강화되어 매와 정면으로 붙어도 쉽게 밀리지 않는다.

날아다니는 동물이 까마귀를 죽이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마지막은 감정은······ 공포?”

로건은 바깥에 있는 까마귀의 감정이 격해지자마자 대번에 시야를 공유했다.

이때는 까마귀가 죽기 직전이다. 로건이 본 것은 짧은 장면 한두 개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냥꾼이나 기사가 활을 쐈다? 이 밤에? 이상하지. 마법사야. 마법사가 내 까마귀를 죽인 거야.”


까마귀가 풍기는 마법의 기운은 당연히 마법사가 가장 잘 알아본다.

그러나 까마귀는 그 마법사를 감시하지 않았고, 그저 날고 있었을 뿐이었다.

고의.

분명한 고의였다.


“이런 싹수없는······.”

그동안 까마귀에게 쏟은 정성이 얼마인데. 한창 연구에 탄력을 받고 있는데.

한껏 속이 쓰렸다.

한 마리가 죽었으니, 연구 성과의 50%가 날아간 셈이었다.


‘혹시 나보다 실력이 높은 마법사라면? 고깔모자와 뱅글의 마법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어차피 그냥은 못 넘어가.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지.’


당하고는 못 산다.

길고 짧은 걸 대보지도 않고 미리 겁을 먹고 물러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로건의 입술이 실룩했다.

“너 내가 찍었어. 널 찍어내고 다시 여행을 할 거다.”


2층 여관방.

로건은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이리 와.”

까악.

까마귀는 깡충 뛰기를 해 창가에 바로 섰다.


‘까마귀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성. 그 칙칙한 성이야. 그럼 뭐야? 너무 뻔하잖아. 나 여기 있다고 대놓고 알려준 거네?’


패밀리어는 마법의 기운을 풍기지만 하늘에 떠 있었다.

그러나 땅에 있는 마법사가 알아챌 정도로 강한 기운은 아니다.

성 앞을 지나가다가 성안에 있는 마법사에게 봉변을 당한 게 틀림없었다.


‘빚을 받고 싶으면 직접 와서 따지란 말이군? 그래, 오지 말라고 해도 간다.’


로건은 짜증을 참으며 마구간에 있는 야생마와도 패밀리어 감각을 열어 놓았다.

혹시라도 여관 주변에 이상이 있다면 말이 먼저 발견할 수도 있기에.

그리고 까마귀에게 회복제를 먹였다.

그 후 아공간에서 마나를 머금은 스크롤 1장을 꺼냈다.

카반의 마법 상점에서 산 마법 물품.

단독 마법에는 못 쓰지만, 간단한 원소 정도는 담을 수 있었다.


“불이지. 그놈의 집구석에 불을 싸질러······ 하.”

이런 날씨에 불은 어울리지 않았다.

로건은 마법어 중 바람의 원소를 스크롤에 잔뜩 적었다.


“죽어라.”

로건은 까마귀를 쓰다듬었다.

“그놈을 만나면 뭐라고 말하라고?”


-죽어라!

“좋아.”

-죽어라! 죽어라! 죽어어어라!

“오, 잘했어.”


로건은 스크롤을 돌돌 말아 까마귀의 발톱에 끼워주었다.

“만약 마법사를 보면 일단 도망쳐. 그리고 멀리서. 정말 멀리서 죽어라! 라고 소리쳐. 위험할 것 같으면 부리로 이 스크롤을 찢고 도망가고. 알았지?”


까악!

패밀리어가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긴 명령을 알아들을까?

로건은 상황을 봐가면서 일일이 가르쳐주기로 했다.


“가. 가서 살펴봐.”

로건은 까마귀가 죽은 장소에 새로운 까마귀를 보냈다.

푸드득.

까마귀는 죽은 패밀리어 옆에 내려앉았다.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다.


로건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정도면 그냥 화풀이다. 정신 나간 것.’


그는 속이 부글부글 끓다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했다.


의뢰서를 붙인 마법사는 블레어 성에 산다지 않았는가.

까마귀가 죽은 곳은 성 앞이었다.


그러면 성에 사는 마법사가 섀넌 영지에 몇 명이나 있을까?

큰 성이 집 한 칸처럼 흔한 것도 아니고, 의뢰서의 마법사 말고는 없을 확률이 극히 높았다.


카반 마법 상점의 마법사는, 블레어 성의 마법사가 우울증이 심한 것 같다고 했다.

화풀이가 우울증과 바로 연결되었다.


로건은 맥이 탁 풀렸다.

‘내가 처음 본 성이 블레어 성이고, 카반에 의뢰서를 붙인 마법사가 까마귀를 죽인 놈이야. ······30년 동안 공부만 하다가 드디어 미쳐버린 거군. 그래, 성도 우중충한 게 너하고 딱 닮았다.’


로건은 의자에 앉아서 차갑게 말했다.

“불쌍하다고 봐줄 것 같아? 어디다 대고 행패야. 움직여.”


푸드득.

까마귀는 땅을 박차고 날아서 성 전체를 은밀하게 탐색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리고 샅샅이. 성 외곽을 돌면서, 그렇지. 창문도 하나씩 확인해.’

그렇게 까마귀는 성의 곳곳을 관찰하다가 이상한 곳을 발견했다.

성의 모든 문과 창문이 닫혀 있는데 단 한 곳만 창문이 열려있다.


까마귀는 하늘에서 한동안 배회하다가 창문으로 다가갔다.

주위의 동정은 별다를 게 없었다.

‘조용하게.’

까마귀는 날갯짓 소리조차 내지 않고 창문틀에 앉았다.


어두 컴컴한 방.

날이 흐려서 달빛이 약하다.

그러나 까마귀의 시력에는 충분했다.

새는 비어있는 방임을 알면서도 섣불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기특한 녀석······. 잘하고 있어.’

절반쯤은 로건의 뜻을 받아서 움직이는 상태.

그리고 본래 까마귀는 비인간 인격체로 분류될 정도로 영리하다.

감정이 풍부하며, 무엇보다도 반복 훈련 없이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습성과 능력이 있었다.

그것이 까마귀의 본성이었다.


그래서 로건은 명령하지 않고 패밀리어를 지켜만 봤다.


자신은 멀리서 보지만 까마귀는 현장에 있다. 그리고 동물의 생존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자 과연 까마귀는 독오른 고양이처럼 집요하게 주변을 경계했다.


10분.

30분.

로건은 묵묵히 기다렸다.

푸드득.

까마귀는 40분이 지나서야 경계를 풀고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응? 잠깐만!’

로건의 뜻에 까마귀는 다시 창문틀에서 앉아서 대기를 했다.


‘넌 또 뭐야? 이 야밤에 뭐하고 돌아다니는데?’


이번에는 여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야생마가 여관 주인이 주변을 기웃거리며 바깥에서 은밀하게 돌아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블레어 성의 마법사에게 로건이 여관에 있으니 잡아가라고 알린 남자. 이 사실을 로건이 알 리 없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해도 의심스러운데, 여관 주인은 야생마에게 다가가서 눈을 빤짝였다.


-넌 내 거야.


로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게 미쳤나?’

훔치겠다는 뜻으로밖에 안 들렸다.


-네 주인은 곧 마법사님에게 노예로 끌려가니까.


로건은 손톱으로 톡 하고 탁자를 한번 찍었다.


‘아하, 날 팔아먹었네? 그러면 저놈은 여관 손님들을 블레어 성의 마법사에게 몰래 팔아먹는 인신매매범이란 말이 된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푸르륵.

히이잉.

여관 주인은 떠나려고 하다가 야생마가 부드럽게 울자 말을 쳐다보았다.

히이잉.

말은 눈동자에 정을 담뿍 담고서 남자를 쳐다보았다.

눈망울이 어찌나 초롱초롱하고 촉촉한지.

그 후 야생마는 여관 주인에게 온갖 아양을 떨기 시작했다.

‘와······ 보기와 달리 사람을 엄청나게 좋아하네? 정말 순한 말이었구나.’


야생마는 비어있는 말구유를 머리로 툭툭 치고, 여관 주인을 쳐다보았다.

“배고파?”

히이잉.

“허! 너 정말 똑똑하다. 알았어.”

남자는 야생마가 너무나 기특해서, 다가가 말의 목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숨이 콱 막혀 비명도 못 지르고 죽었다.

야생마가 남자의 목을 물어뜯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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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1화 +17 24.09.16 10,689 336 12쪽
50 50화 +17 24.09.15 11,819 309 12쪽
49 49화 +25 24.09.14 12,694 334 13쪽
48 48화 +62 24.09.13 13,719 347 19쪽
47 47화 +11 24.09.12 14,167 382 12쪽
» 46화 +15 24.09.11 14,623 441 12쪽
45 45화 +15 24.09.10 15,394 411 13쪽
44 44화 +14 24.09.09 16,311 411 12쪽
43 43화 +9 24.09.08 16,788 470 18쪽
42 42화 +15 24.09.07 16,910 430 13쪽
41 41화 +23 24.09.06 16,940 408 12쪽
40 40화 +11 24.09.05 17,452 434 13쪽
39 39화 +21 24.09.04 17,864 479 13쪽
38 38화 +13 24.09.03 18,124 479 13쪽
37 37화 +15 24.09.02 17,778 462 14쪽
36 36화 +16 24.09.01 17,921 423 13쪽
35 35화 +5 24.08.31 18,365 424 13쪽
34 34화 +13 24.08.30 18,501 4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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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12 24.08.28 18,432 429 12쪽
31 31화 +9 24.08.27 18,505 418 12쪽
30 30화 +11 24.08.26 18,527 449 12쪽
29 29화 +4 24.08.25 18,502 414 12쪽
28 28화 +6 24.08.25 18,735 453 12쪽
27 27화 +12 24.08.24 19,052 450 12쪽
26 26화 +9 24.08.23 18,910 476 12쪽
25 25화 +8 24.08.22 19,150 45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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