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브로 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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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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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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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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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DUMMY

로건은 멀링가의 별장을 떠났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또각또각.

말은 리드미컬하게 잘도 움직인다.

멀링가 영지와 ‘롱포드’ 영지를 연결하는 어느 길목.

로건은 일행도 없이 혼자 이동하는 중이었다.


‘에반님이 뭐라고 하셨더라?’

기억을 더듬자 에반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내가 마련한 은신처라면 최소한 그럭저럭 먹고는 살······.


로건은 고개를 저었다.

에반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마법에 관한 얘기는 한마디도 안 했다.

‘일단 은신처에 가봐야 알겠지만······. 마법서가 있으면 있다고 하셨을 텐데. 있을 확률은 상당히 낮지.’

그래도 괜찮다.

이렇게 살아 있는 게 어디인가.

이미 어엿한 마법사도 되었고.

은신처에 무엇이 있든, 설령 마법이나 다른 유산이 없어도 마무리를 해주고 싶다.

그의 옷을 묻고 묘비를 세워야지.

로건에게 있어 에반은 새 삶을 열어준 은인이요, 아버지란 이름으로 묶인 동료니까.


에반 레스터는 오린 영지에 장원 하나를 가지고 있고.

은신처는 그 장원 안에 있었다.

장원은 영지의 기사 한 명이 관리했는데, 그 기사가 바로 로건 레스터의 노예였다.

에반이 그렇게 해 놓았다.


‘은신처가 말 그대로 피신의 기능만 한다면 허탈할 것 같기는 해. ······그런데 북부가 넓긴 넓어?’


멀링가 영지 바로 위는 ‘롱포드’ 영지.


그다음은 섀넌 영지, 보일 영지, 자유도시 스트랜드까지 가야 한다.

스트랜드 위에는 슬라이고 영지.

그다음이 비로소 오린이었다.

주변의 온갖 영지를 다 빼고, 직선으로만 연결해도 이렇게나 많다.

루덴 북부는 그렇게나 거대했다.


‘급할 필요는 없지. 은신처의 방문과 북부를 여행하며 실력을 쌓는다.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니까 서두르지 말라고.’


설령 오린 장원이 누군가에게 털렸대도 괜찮다.

에반의 마법으로 감춰진 은신처는 자신이 아니면 열 수 없으니까.


푸르르.

로건은 말 위에서 상념에 잠겨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말이 갑자기 투레질했다.

동물은 인간보다 감각이 예민하지 않은가.

“위험은 없는 것 같은데?”

로건은 마나를 퍼드려 주위를 쓸어 보았다.

“아. 멧돼지?”

꾸에엑!

그는 손끝에서 마나를 쏘아 근처에서 흙 목욕을 하는 멧돼지를 쫓아냈다.

말이 바람결에 밀려오는 멧돼지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 * *


“이랴!”

로건은 한참 더 달리다가 천천히 말을 세웠다.

체력은 그대로인데 허리와 엉덩이가 아프다. 말 타는 거야 문제없지만 오래 타본 적이 있어야지.


마침 야영지가 보였다.

로건은 쉬어갈 겸 그곳으로 들어갔다.

야영지에는 일단의 무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척 봐도 상단을 호위하는 용병 일행.

몰골은 엉망진창이었다.

무엇에 당했는지 부상자가 여럿이고.

일단의 무리는 로건을 힐끔거리다가 상대가 혼자인 것을 보고 관심을 껐다.


그리고 용병 한 명이 다가왔다.

“쉬어가시려고? 어느 영지로 가시오?”

“롱포드 영지로 가오. 그쪽은?”

용병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롱포드요. 우리 용병단은 로레인 상단을 호위하고 있소이다. 함께 가시려오?”

“그럽시다.”

“환영하오.”


용병은 기뻤다.

이 훤칠한 젊은 남자는 튼튼한 말을 타고 왔고, 허리에는 멋스러운 단검을 차고 있다.

또 봇짐이 없으니 허리에 찬 것은 마법 주머니가 분명하다.

홀로 다니면서 저런 것을 가졌다면 자신을 지킬 힘이 있다는 뜻.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무슨 일일까?’

로건은 소란스러운 야영지에서 눈치껏 한 자리를 차지했다.

용병들의 말을 들어보니 산적을 만나서 된통 당했단다.

죽은 사람만 7명이라고.

남은 사람은 10명, 한두 시간 쉬고 다시 출발할 거란다.


로건은 그들 속에 섞여서 얘기를 듣다가 빙그레 웃었다.

‘처음 이세계에 떨어졌을 때도 이렇게 훔쳐 들었었는데. 그러고 보면 그때 이후로 혼자 있는 게 처음이지 않아?’


갈라실에서 군터 일행과 어울리고.

멀링가에서 지지고 볶으며 사람들과 부대끼고.

늘 마법과 수련에 매달리며 치열하게 살았었는데, 이렇게 갑작스러운 평화라니.


‘꼭 꿈꾸다가 깨어난 기분이네. ······그땐 긴장 많이 탔었지? 안 죽을라고.’


로건은 피식거리며 허리에 달린 주머니를 풀어 헤쳤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식사 거리를 꺼냈다.

사실 마법 주머니는 아니다.

손을 넣고는, 아공간에서 도시락을 꺼낸 것이었다.


아공간에는 마법 주머니가 10개나 있고, 그중 5개에는 각종 식자재가 가득 담겨있다.

오린 영지까지 그것만 먹어도 될 정도로.

로건은 스테이크와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꺼냈다.

그렇게 식사를 시작했다.


‘맛있군.’


아공간은 시간이 멈추니 스테이크는 여전히 따듯했다.

힐끔거리는 자들이 있었지만, 로건은 이제 이런 시선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워워. 착하지.”

식사를 마친 로건은 투레질하는 말 앞에 건초를 내놓았다.

그리고 말이 마시는 물통에 회복제 하나를 슬쩍 풀었다.


“언제까지 쉴 거야! 가자고!”

“그래요! 자, 갑시다!”

일행과 로건은 다시 출발했다.

용병 대장이 로건에게 다가오더니 대화를 시작했다.

봄이 되어 먹을 게 없으니 몬스터는 물론이고 산적까지 들끓는다고.

용병 대장은 당연한 얘기를 한 후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실력이 C급은 되지 않소?”

“그 정도는 되오.”

“그렇지! 잠시만 기다리시오.”


용병 대장은 말을 몰아 마차를 타고 있는 상인에게 갔다.

그러더니 상인과 얘기하고는 다시 돌아왔다.

“어차피 롱포드로 가는 길이 아니오? 가는 길에 우리 용병단과 합류합시다. C급 수준으로 보수를 주겠소. 어떻소이까?”

로건은 담담하게 말했다.

“싫소.”

“아니, 왜? 산적이나 몬스터가 나오면 어차피 힘을 합쳐야 할 것이 아니오?”

“잡는 거야 같이 잡겠지. 그런데 난 누구 뒤치다꺼리는 질색이오.”

대장은 시원하게 웃었다.

“성질하고는, 하하! 하긴 뒤쪽에서 따라오는 사람들도 거절하더군. 그중에 3명은 검술 솜씨 좋던데. 다들 부자들이야!”

대장은 관심을 끊고 멀어졌다.


‘검술 솜씨가 좋다고?’

로건은 말의 속도를 조금 늦추어 뒤따르는 사람들과 합류했다.

상인과 용병 무리를 따르는 사람들로, 10명이나 된다.

그런데 이 10명은 하나의 무리가 아니어서 쉽게 섞일 수 있었다.

그저 눈인사면 끝.

로건은 이들 중에서 무력이 있는 3명을 바로 알아보았다.

등에 활을 메고.

허리에 화살통과 단검을 차고 있었다.


‘입은 걸 보면 사냥꾼인데? 그럼 검까지 잘 쓰는 사냥꾼? 오호, 실력이 있기는 한가 보군.’


로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았다.

이들은 오늘 오전에 만났던 산적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산적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공격의 합을 맞추어 갔는데, 그때 산적들이 서로에게 소리쳤던 이름들이 줄줄이 나온다.


잠자코 듣던 로건은 귀에 익은 이름 하나에 깜짝 놀랐다.


‘베스? 베스라고? 설마 내가 아는 그 베스는 아니겠지?’


베스.

그는 이세계에 와서 처음 만난 용병들.

군터, 핸서, 베스 중에 요리 담당 베스가 아니던가.


로건은 더욱 주의 깊게 듣기 시작했다.

그러자 ‘베스’라는 이름이 또 들린다.


‘그러고 보니 군터는 매년 정기적으로 이 길만 왕래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내가 북부로 움직이면 다시 만날 거라고도 했지. 높은 확률로 마주치게 될 거라는 건 알지만······. 아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로건은 어이가 없었다.

군터와 핸서의 이름은 나오지도 않았다.

군터 일행과 다시 만나는 것은 둘째치고, 그들은 산적이 될 사람이 아니었다.


“몬스터다! 오크!”


앞쪽에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났다.

한창 산적 얘기를 하던 사람들은 똘똘 뭉쳐서 길가 옆 나무 아래로 모였고.

등에 활을 걸친 사냥꾼 3명은 가장 앞에 나섰다.

한 사냥꾼이 로건에게 말했다.

“우리와 합류하지 않겠소?”

“아니. 난 앞에서 상황을 지켜봐야겠소.”


로건은 말을 달려 앞으로 나아가 용병들 옆에 섰다.


용병들이 킬킬거렸다.

“저 산적 놈들! 우리를 잡으려고 매복했다가 오크에게 걸렸어.”

“꼴 좋다! 꼴 좋아!”

“하하! 오크에게서 살아남으면 다음에는 우리가 네놈들을 죽여주마. 아주 탈탈 털어주지!”

그때 한 용병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발리를 죽인 놈들! 다 찢어 죽일 거다!”

다른 용병이 뛰쳐나가려는 그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이봐! 지금 뛰어들어서 뭘 어쩌려고? 진정해. 저놈들을 죽일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


로건은 산적과 오크가 싸우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았다.

몬스터의 괴성과 인간들의 비명이 난무한다.

처절하고.

치열했다.


‘그래, 원래 이랬지. 날것의 생명이 날뛰는 땅. 별장에만 있다가 나오니까 이것마저도 새롭네?’


오크는 40마리.

산적은 30여 명.

그렇다면 산적은 매우 불리하다.

아니, 벌써 다 죽어 나가고 겨우 5명이 남았다.

그러나 산적들도 있는 힘을 다해 싸워서 오크 역시 10마리가 남았다.

취이익!

카악!

10마리 오크는 똑똑했다.

몬스터는 산적 5명을 포위하고서 공격하고 있었다.


로건은 처음부터 대충대충 구경했지만, 이젠 그마저도 흥미가 떨어져서 시선을 거두었다.

“음?”

그러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죽어서 땅에 누워있는 많은 산적 중에, 유독 한 명이 자신의 눈길을 잡아당기는 것 같다.

“······.”

왠지 모르게 익숙한 뒤태.

로건은 눈에 마나를 모아 시력을 높여가다가, 눈이 커다래졌다.


‘군터? 군터잖아!’


히이잉!

로건은 너무나 놀라서 말 등을 걷어차 앞으로 나아가며, 오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하라신의 단검을 뽑아서 앞을 겨눈 채 소리쳤다.

“비켜! 비켜라!”


로건의 바로 앞은 오크 무리.

다음은 산적 3명.

군터는 가장 뒤에 쓰러져 있었다.


“아아!”

“살았다!”

3명 남은 산적들은 로건이 말을 타고 자신들을 구하러 오자 눈물까지 흘렸다.

카악!

카아악!

남은 오크들은 일제히 콧김을 뿜더니, 말을 타고 접근하는 로건에게 달려들었다.

파앙.

로건은 말 등을 박차 날아오른 후 그대로 오크 속에 떨어졌다.


싸아악!

하라신의 단검이 매끄럽게 오크의 목을 잘랐다.

마나 전도율이 뛰어난 마법의 단검.

그냥 휘둘러도 오크 정도는 쉽게 가른다.

그런데 마나까지 담겼으니, 정말 두부가 썰리는 것처럼 오크의 몸뚱이가 베어졌다.

“비켜!”

검 빛이 전후좌우로 계속 번뜩였다.

오크들이 입은 가죽 갑옷은 하라신의 단검을 견디지 못했다.

모조리 잘려 나갔다.

케엑!

케에에엑!

텅!

어느 한 마리 오크는 튼튼해 보이는 철갑옷을 입었다.

하라신의 단검은 거기에 아주 잠깐, 찰나에 걸렸다가 힘차게 휘둘러졌다.

그러자 철갑옷과 그것을 입은 오크까지 한꺼번에 두 쪽이 났다.


용병들이 탄성을 질렀다.

“마나!”

“B급!”

“와! 마나다!”

“아싸! 이젠 트롤이 와도 쉽게 죽지는 않겠어!”

사방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고.

즐겁고 활기찬 소음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로건은 7마리 오크를 순식간에 정리하고. 누워있는 군터에게 달려들었다.


“군터!”


인성이 된 사람.

체술과 검술의 스승.

산적과 함께하다니 믿을 수 없고.

오크에게 당하다니, 더욱 믿을 수 없었다.


로건이 그의 몸을 흔들었다.

“군터씨!”

“······.”

군터는 거의 정신을 놓치기 직전이었다.


“안 돼! 정신 차려요!”

로건은 서둘러 상급 포션을 꺼냈고, 바로 따서 군터의 입에 흘려 넣었다.

그러자 군터가 피를 한가득 토했다.

로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쉽지는 않겠어.’

내장 조각이 상당히 나왔다.

포션은 만능이 아니다.

상처를 붙일 수는 있어도, 떨어져 나간 조직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내상이 이 정도로 심각하면 자칫 목숨이 위태로웠다.

군터는 포션을 절반 이상 토했지만, 그래도 정신이 드는 모양인지 실눈을 떴다.

“······.”


“군터? 정신이 들어요?”

로건은 당장 스태프를 꺼내고, 힐링을 펼쳐 마법의 빛 아래에 그를 두었다.

포션보다 회복 속도는 느리지만, 치료의 범위는 더 넓으니까.

군터는 그제야 옅은 신음을 흘렸다.

“으음······.”

로건은 자신의 무릎에 군터를 받치고 다급하게 말했다.

“군터씨. 저예요, 로건.”

“!”

그는 로건과 시선이 마주치자 눈을 부릅떴다.

정말 꿈인가 싶었다가.

그의 푸른 눈에 담긴 걱정을 보자 정신이 확 들었다.


“로건님?”

“그래요. 나 로건이에요. 괜찮아요?”


군터가 입에서 피를 튀기며 살려달라고 악을 썼다.

“핸서를! 핸서를 구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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