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브로 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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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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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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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DUMMY

다음 날 이른 아침.

로건은 푸짐한 한 상을 주문했다.

“걸판지게 차려.”

“예?”

“무슨 뜻인지 몰라?”

케인은 주눅 든 표정으로 말했다.

“아, 알고 있습니다.”

“좋은 음식으로만 골라서 식탁을 꽉 채워라.”

“예.”

이것은 시위이고, 테스트다.

로건은 마법사의 이름이 어디까지 통할지 궁금했다.

어디까지 건드려야 선을 넘은 건지, 넘지 않은 건지를 말이다.

곧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화가 많이 나셨구나. 그럴 만도 하시지.’

케인은 로건의 마음을 짐작했다.

귀족들 간에는 셀 수도 없이 벌어지는 흔한 신경전.

그래서 케인은 온갖 솜씨를 다 부려서 식탁을 차렸다.

얼마나 맛있는지.

로건은 목적마저 잊어버리고 음식에 집중했을 정도였다.

‘역시 먹는 게 최고야.’

그는 엄지를 들었다.

“아주 맛있다. 너희도 먹어. 용병들에게도 나눠주고.”

리안과 케인은 로건의 마음이 풀어진 걸 보고 안심했다.

“예.”

덕분에 리안, 케인, 용병들이 호강했다.


로건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그 기사가 오는 것을 보고 잔을 내려놓았다.

“또 무슨 일이오?”

“루드 갈라실 공자님께서 정중히 초대하셨소.”

“거절하겠소.”

기사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 아침 식사를 보니 느끼는 바가 있군. 어제의 일은 사과드리겠소. 그 일은 공자님과 관계없소이다.”

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여기까지는 통하는군. ······초대는 가야지. 안 받아주면 이번에야말로 난리를 칠 테니까.’

로건은 기사를 따라갔다.

그리고 루드 갈라실에게 먼저 인사했다.

힘이 깡패인 세상.

너무 뻣뻣하게 굴면 목이 부러진다.

“처음 뵙겠습니다. 로건이라고 합니다.”

“루드 갈라실이오. 반갑소이다.”

공자는 반갑게 로건을 맞이했다.

하릴없는 대화의 연속.

내용도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로건은 적당히 맞장구를 치다가 눈을 반짝였다.

루드 갈라실은 북부 어디에 있는 던전을 조사하려고 한다.

그리고 스카웃 제의를 했다.

로건은 이리저리 돌려 물어보았지만 루드 갈라실은 걸려들지 않는다.

계약하기 전에는 알짜배기 정보를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하긴, 갈 것도 아닌데 더 알아서 뭐 하려고.

‘꼭꼭 숨기는 걸 보니 찝찝한 구석도 많아. 사냥개로 쓰이다가 죽을지도 모르지?’


로건은 딱 잘라 거절했다.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1만 골드는 어떻소?”

“죄송합니다.”

“1만 5천 골드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몸을 뺄 시간과 여유가 없군요.”

루드 길라실은 입맛을 다시다가 포기했다.

그리고 초대를 받아준 로건에게 조그마한 찻잎 상자를 보내주었다.

이러면 로건도 인사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입을 싹 닦고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덜컹.

덜컹.

로건은 마차의 흔들림에도 꾸벅꾸벅 졸았다.

“로건님.”

“······.”

케인은 ‘흠흠’ 하더니 조금 더 목소리를 높여 다시 말했다.

“로건님.”

“그래.”

“기사님이 오셨습니다.”

로건은 마차에 달린 나무 창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오?”

“왜 답례품이 없소? 나 때문에 그런 거요?”

“마땅한 게 없어서 생각 중이오. 저녁에 답례하려고 했소.”

“잘도 거짓말을. 입에 침이나 닦고 말씀하시오.”

“저녁에 답례하겠다지 않소?”

“끙.”

하겠다는데 더 말하기도 뭣했다.

마법사란 게 다 이렇지.

기사는 투덜거리면서 돌아갔다.

로건도 인상을 썼다.

‘귀족 놈들, 정말 귀찮게 하는군.’

마법사가 되면서 어느 정도 신분의 틀을 벗었는데 여전히 부족하다.

‘이래서 내 땅이 필요하다니까.’


얼마나 더 갔을까.

휘이익!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얼마나 선명한 소리인지, 마나가 담겼음이 분명했다.

마차는 즉시 멈추었다.

로건은 하라신의 마법 단검이나 스태프를 들까 하다가 고깔모자만 쓰고 바깥으로 나왔다.

리안은 바로 보고했다.

“오크 떼가 나타났습니다. 200마리가 넘습니다.”

“몇 마리?”

“최소 200마리입니다.”

로건은 염력으로 마차 위에 올라서 전방을 살펴보았다.


루드 갈라실이 선두.

50m 거리를 두고 로건.

그리고 로건의 뒤를 바짝 붙어서 상인 무리, 평민 3명이다.

앞에서는 이미 전투가 벌어졌지만, 50m는 전투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벌어주었다.

용병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마차를 둘러쌌다.

그래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앞에는 루드 갈라실의 무리가 있고, 로건은 마법사이니까.

상인 무리는 뒤로 멀찍이 후퇴했다.


로건은 마차 지붕 위에 서서 감탄했다.

“대단한데?”

오크라고 절대 무시할 게 아니다.

저 육중한 몸체가 200이나 되고 보니 땅이 다 흔들렸다.

루드 갈라실의 무리는 전체가 무력 집단.

마나를 다루는 기사가 3명.

병사들은 정예병 같았다.

병사들은 기사 2명의 지휘 아래 루드 갈라실을 보호하는 방진을 짰다.

그리고 용병단의 용병들은 5명씩 뭉쳐서 산개하며 오크들과 격전을 벌였다.

나머지 기사 1명은 자유롭게 움직이며 오크를 도륙했다.

곳곳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터지는데 마나를 다루는 기사의 주위로는 오크의 비명뿐이었다.

크아아!

쐐액!

기사의 검이 오크의 대가리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그리고 검을 회수하지 않고 달려 나가며 검을 더 뻗었다.

파악!

검 끝이 오크의 두개골을 뚫고 튀어나왔다.

기사는 검을 뽑으며 팔을 펼치듯이 횡으로 검을 그었다.

싸아악!

오크의 머리통이 허공에 붕 떴다.

‘군터라면······ 못 하겠군. 마나가 있어서 가능한 동작들이야.’

로건은 잠시 더 기사를 관찰하다가 땅으로 내려왔다.


“리안, 너는 여기서 케인을 보호해라. 그리고 용병 대장, 모린이라고 했소?”

모린은 얼른 말했다.

“저희 다섯 명은 큰 전력이 못됩니다. 더구나 저를 제외하고는 오크에게 상대가 안 됩니다. 그런데 저 용병단은 모두 D급입니다. 저와 비슷한 실력을 갖춘 자도 네댓은 보이는군요.”

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안과 마차를 보호하면서 이쪽으로 넘어오는 오크를 처치하시오. 나는 오크를 손 좀 봐야겠소.”

리안은 급하게 말했다.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로건은 레비테이션으로 땅에서 발을 띄웠다.

“안 돼. 케인을 지켜라. 나는 후방에서 지원만 할 것이다.”


허공에 떠 있는 로건.

휘이익!

그의 몸은 뒤로 조금 밀렸다가 화살처럼 쏘아졌다.

용수철이 튀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병사들이 짠 방진 옆에 도착했다.

“어서 오시오!”

루드 갈라실은 크게 반겼다.

모두 분전하고 있고 이길 수 있지만 사상자가 계속 나오니까.

“돕겠습니다.”

“고맙소! 여봐라, 서둘러라!”

루드 갈라실이 고개를 끄덕이자 기사가 소리쳤다.

“마법사를 보호하라!”

병사 10명이 방진에서 이탈하여 로건을 둘러쌌다.

그리로 루드 갈라실은 나머지 병사 10명에게 보호받으며 로건의 뒤로 쑥 빠졌다.

‘능숙하군. 마법사와 협공한 경험이 많은 것 같다.’

로건은 속으로 감탄하며 마법을 펼쳤다.

얼마든지 무스펠로 가능하지만 그런 실력까지 드러낼 필요는 없다.

“윈드 스트라이크.”

로건은 오크 한 마리를 가리키며 마나를 훅 뿜었다.

순식간에 바람이 뭉쳤다가 오크 한 마리에게 날아갔다.

바람은 보이지 않으나 워낙 사납게 회오리치고 있어서 주위 먼지와 이물질을 다 날려 버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바람의 마법임에도 그 형체가 다 보인다.

그러나 오크가 그것을 막을 재주는 없었다.

크아아아아!

회전하는 바람의 구체는 날카롭기 짝이 없고 물리력까지 갖추었다.

가슴을 두들겨 맞은 오크.

뒤로 펄쩍 튕겨 나가며 가슴이 걸레짝처럼 찢어졌다.

가죽은 물론이고 가슴뼈까지 부러져 내장이 훤하게 노출되었다.

끔찍하도록 위력적이었다.

그런데 윈드 스트라이크는 끝나지 않았다.

로건은 마나를 끊지 않고 그 구체를 유지했고.

염력으로 이리저리 굴렸다.

오크 한 마리를 찢어 버린 구체는 염력에 힘입어 다른 오크에게 달려들었다.

켁!

이 오크는 오른쪽 어깨가 잘리고 터져버렸다.

그렇게 바람의 구체는 당구대 위의 공처럼 튕겨 다니며 오크들을 갈아버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기가 막히게 인간들은 피해 다닌다.

윈드 스트라이크는 30마리의 오크를 죽이거나 재기 불능으로 만든 후에야 사라졌다.

용병과 병사들은 그 무서운 솜씨에 뒷골이 쭈뼛거렸다.

기사들도 입을 벌리는 게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간혹 마법사의 마법을 볼 기회가 있는데, 이렇게 독특하고 위력적인 마법은 본 적이 없었다.


“파이어 핸드.”

그러자 허공에 대문짝만한, 불로 만든 손바닥이 나타났다.

그것은 심장이 박동하듯이 커지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면서 불꽃과 뜨거운 열기를 사방에 흩뿌렸다.

게임에서 나온 마법.

당연히 여타의 파이어 핸드와 달랐다.

로건은 파이어 핸드로 오크 무리 외곽을 훑었다. 불꽃이 튀어 용병들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튀게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마나 소모가 크고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파앙.

파앙.

크아악!

외곽의 오크들은 전기 파리채에 맞은 파리나 모기처럼 자지러졌다.

가로로 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다.

마치 두더지 잡기처럼.

파앙! 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오크는 납작하게 피죽이 되면서 바싹 구워졌다.

‘저, 저럴 수가······.’

루드 갈라실은 소름이 돋는 팔을 쓸어내렸다.

과연 저런 마법들을 기사가 막을 수 있을까. 극히 어려울 것이다.

파이어 핸드는 오크 20마리를 죽이고 사라졌다.

벌써 50마리를 로건 혼자 죽여 버렸다.

기사들에게 죽은 오크도 수십이 넘고.

용병들도 그만큼의 수를 줄였다.

그러나 전투 본능이 생존 본능 보다 앞서는 몬스터가 오크다.

남은 오크는 백여 마리.

그들은 집단으로 뭉쳐 공격하지 않고 멋대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내키는 대로 뛰어다니며 닥치는 대로 공격했다.


‘안 되지.’

이러다가 잘못되면 케인이 있는 뒤가 위험해진다.

로건은 다시 마법을 펼쳤다.

양손을 합장하듯이 모았다가 활짝 펼쳤다.

모방을 통해 조금이라도 마법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포그.”

순간 시야를 흐리게 하는 자욱한 안개가 나타났다.

안개는 뒤로 가는 길목을 넓게 차단했다.

그러자 오크들은 차가운 안개 쪽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본래 눈앞의 것부터 공격하는 습성이어서 몇 마리 이탈하지 않았지만, 그것마저 안개가 차단한 것이었다.

기어이 안개에 들어간 한두 마리 오크는 짙은 습기에 1m 앞도 보지 못했고 숨까지 가빴다.

그렇게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밖으로 나오면 리안을 비롯한 용병들이 합공하여 재빨리 죽여버렸다.


로건은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으드득.

오크 한 마리가 목뼈가 부러지며 즉사했다.

로건이 파리를 후치듯이 손을 바깥으로 쳐냈다.

케애애액!

오크 한 마리가 물리력을 동반한 마나를 얻어맞고 얼굴 뼈가 부서졌다.

눈알이 툭 삐져나와 땅에 떨어졌다.

로건은 그렇게 염력으로 오크들을 하나씩 때려죽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위험에 처한 상당수의 용병이 목숨을 건졌다.

염력은 매우 교묘해서 뾰족하고 날카로운 마나가 눈, 코, 입을 부지불식간에 찌르곤 했다.

한 줌의 마나로 오크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니 최고의 효율이다.

이제 오크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다.

남은 오크들은 상처투성이에 체력도 거의 소진해서 기진맥진.

로건은 그때서야 마법을 멈추었다.

전투는 이내 종료되었고.

넓은 땅에 오크 200마리의 시체가 가득했다.

“······.”

“······.”

침묵.

그리고 뒤이은 함성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와아아!”

“이겼다! 이겼어!”

“루드 갈라실 공자님 만세!”

“만세!”

“마법사님 만세! 기사님 만세!”

“만세!”

한동안 이어지던 흥분은 기사와 용병 간부들의 제재로 가라앉았다.

루드 갈라실은 인사를 건네었다.

“내 이런 마법은 처음 보오. 정말 대단하시오.”

루드 길라실은 로건이 초급 마법사인지, 중급 마법사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하기야 로건 자신도 아리송한데 검술을 수련한 루드가 알 턱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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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0화 +10 24.09.05 15,396 39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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