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브로 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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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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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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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DUMMY

별장 지하실.

로건에게 잡혀 온 메리는 침대는커녕 나무 의자 하나 없는 곳에 3일째 갇혀 있었다.

천장에 달린 초 하나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끼이익.

철창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리안이 들어왔다.

로건에게 내일 메리를 고문하라는 명령을 받고 지금 알려주려고 온 것이다.

메리는 지하실 모서리에서 앉아 있다가 얼른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슬픈 표정으로 외쳤다.

“날 풀어다오! 배······ 배상하겠다! 얼마가 되든 물어주겠다!”

리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식적이군. 난 썩어빠진 귀족들이 어떤 연기를 하는지 알고 있지. 아무래도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어.”

그러자 메리는 아귀처럼 입을 쩍 벌렸다.

“카아악! 카악! 영주께서 네놈들을 가만둘 줄 아느냐!”

“내일부터 널 고문할 거다. 아주 지독하게. 그러니까 말을 해야 할 거야.”

양팔을 잃은 메리.

그녀는 허전한 상체를 마구 흔들었다.

“말? 무슨 말! 내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다고!”

“정보를 말해라.”

“정보?”

“네가 살아서 나갈 수 있는 쓸만한 정보. 값어치가 없으면 고문으로 죽을 것이고, 값어치가 크다면 이 감옥에서 나가겠지.”

“······.”

리안의 눈동자가 새파랗게 빛났다.

“나는 네 입에서 나오는 말이 쓸모없었으면 해. 내 손에 죽기를 진심으로 바라거든.”

리안은 몸을 돌렸다.

“잠깐! 기다려!”

“널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너 스스로 너를 구원할 수밖에 없다.”

쾅.

철창은 무정하게 닫혔다.

메리는 천장에 달린 촛불을 맥없이 올려다보았다.

‘정보······. 보물······.’


* * *


허드슨은 로건에게 마법사의 자질이 있는지를 시험당하고.

주인의 지시대로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근 후 깨끗하게 씻고 집으로 돌아갔다.

‘씻는 건 좋은 거구나!’

몸이 날아갈 듯 개운했다.

짜악!

“사, 삼촌······.”

허드슨은 부어오른 뺨을 매만지며 눈물을 글썽였다.

“해가 지면 바로 돌아와야지! 지금 달이 하늘 꼭대기에 걸렸다! 케인님이 안 계신다고 네가 케인님이라도 된 줄 알아? 어디서 게으름이야!”

“아, 아니에요. 주인님이 시킨 일을 하느라 늦었어요.”

삼촌의 아내는 허드슨을 빤히 쳐다보다가 소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도끼눈을 뜨고 이곳저곳을 살펴보고는 옷을 확 뜯어버렸다.

낡디낡은 옷이 반으로 쫙 찢어졌다.

“아앗!”

알몸이 된 허드슨은 허겁지겁 주저앉아서 양팔로 몸을 감쌌다.

그러면서도 포대 자루 같은 옷이 더 상할까 봐 재빨리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목욕하고 왔어! 이것 봐요! 깨끗하잖아요!”

삼촌은 눈을 부릅떴다.

“뭐라고? 주인님이 시키신 일? 시키신 일이 목욕이야? 이게 어디서 거짓말을!”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주인님께서 목욕하라고 하셨다고요!”

“그래도 이놈이! 여보, 안 되겠어. 회초리 가져와!”

“네!”

그때부터 허드슨은 매를 맞았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소용이 없다.

삼촌 부부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열다섯 살 허드슨.

별장에 와서 잘 먹고 볼에 살이 올랐다지만, 몸은 여전히 앙상했다.

뼈가 곳곳에 드러난 가냘픈 몸은 상처투성이에 피딱지도 적지 않게 붙어 있다.

그 위에 또 회초리질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등이며, 허리며, 허벅지며 전신에 피 그물이 쭉쭉 그어진다.

그러면서도 어깨 위와 양팔은 단 한 대도 치지 않았다.

얼마나 매타작을 당했던지.

허드슨은 흙바닥에 누워서 그저 숨만 몰아쉬었다.

“······.”

“이놈! 이놈!”

짜아악!

짜악!

“먹여주고 입혀준 은혜도 모르고! 에이, 씨! 이 독한 것이 소리 한 번 안 질러! 재수 없게!”

삼촌은 회초리를 내동댕이치고 몽둥이를 들었다.

그러자 아내가 그의 팔을 잡았다.

“안 돼요! 그럼 뼈 부러져요. 심부름을 못 한단 말이에요. 설탕과 꿀도 못 얻어오고요.”

“하!”

“여보!”

삼촌은 씩씩거리다가 몽둥이를 바닥에 던졌다.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도 거짓말은 안 했는데. 한 번만 더 속이면 그땐 정말 죽는 거야! 알았어?”

“······.”

“이게 누구 복장 터져 죽는 꼴을 보고 싶나! 말을 해!”

퍼어억.

삼촌이 허드슨의 배를 걷어찼다.

“여보! 그만요!”

허드슨은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렸다.

깨끗이 씻은 몸은 흙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삼촌은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네 엄마가 죽었을 때 넌 다섯 살이었어. 네 엄마가 나하고 피가 섞였냐? 그냥 남이야!”

“······.”

“죽은 우리 형 자식이 너라고? 네 엄마하고 결혼하자마자 죽었는데 그걸 어떻게 믿지? 그런 널 누가 거둬주었지?”

허드슨은 누운 채로 실눈을 뜨고 말했다.

“삼촌요.”

“그래! 내가 안 거두었으면 넌 굶어 죽었어. 그 추운 겨울에 말이야. 네 엄마도 내가 묻어주었다.”

“알고 있어요.”

“그래? 그럼 절대로 잊지 마. 콱!”

삼촌 부부는 방으로 돌아갔다.

피칠갑을 한 허드슨은 두 손을 땅에 짚고 힘겹게 일어났다.

현기증과 통증으로 한참이나 휘청거리더니 찢어진 옷을 들고 다른 방의 문 앞에 섰다.

똑똑.

작게 두드렸을까?

허드슨은 한 번 더 두드렸고, 방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

“왜?”

“저기······.”

삼촌 부부의 큰아들은 벌거벗은 허드슨을 훑어내리며 한심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꼬라지 하고는. 왜 불렀냐고.”

“옷이 찢어졌어. 바늘과 실을 빌려줘.”

큰아들은 손을 내밀었다.

먹을 걸 달라는 뜻이다.

“오늘은 못 얻었어.”

큰아들은 인상을 팍 썼고, 그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벌써 며칠째야? 형, 빌려주지 마.”

삼촌의 작은 아들이었다.

허드슨은 다급하게 말했다.

“비, 빌려줘. 케인님이 수도에 가셔서 이젠 음식을 못 얻어와. 너희도 알잖아.”

큰아들은 눈을 부라렸다.

“그럼 다른 사람에게 얻든지!”

“그럴만한 분이 없어.”

“훔쳐! 훔치면 되잖아!”

허드슨은 울먹였다.

“난 못해. 그런 거 싫다고.”

“이게!”

큰아들은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때 다른 방에서 삼촌이 크게 소리쳤다.

“빌려줘!”

“에이!”

큰아들은 방에서 바늘과 실을 찾아 허드슨의 앞에 던졌다.

“내일까지 맛있는 거 안 가져오면 죽을 줄 알아.”

“형, 케이크도.”

“들었지? 비스킷도 가져와.”

“······.”

큰아들은 몸을 돌리는 허드슨에게 말했다.

“잊지 않았지? 주인님의 금화와 보석을 훔쳐 오는 거. 나 다음 달에 성인이야. 바로 결혼해서 독립하면 너도 좋잖아? 내가 없으니까 말이야. 큭······.”

쾅.

문이 거칠게 닫혔다.

허드슨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이라고 할 것도 없다.

소년이 무릎을 구부리고 누워야 할 정도로 작은 방.

허드슨은 동화 속 난쟁이가 쓸 법한 작은 나무 침대에 앉아서.

열린 창문으로 쏟아지는 달빛 아래에서 바느질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포대 자루 같은 옷을 쓰다듬었다.

그것은 소년의 어머니가 죽을 때 덮고 있던 넝마였다. 그것을 허드슨이 옷으로 만든 것이다.

‘어, 엄마······.’

후드득.

눈물이 떨어졌다.


* * *


다음 날 아침.

로건은 밤새도록 마법서를 읽다가 날을 샜다.

‘어디 마법 도서관 같은 곳은 없나? 있으면 가서 뼈를 묻어 버리려니까.’

그는 창밖에서 요란하게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눈을 비볐다.

그리고 줄을 잡아당겼다.

리안은 1층에서 용병들과 얘기하다가 천장에 달린 방울에서 소리가 나자 서둘러 서재로 올라갔다.

서재가 비어있어서 베란다로 나가니 로건이 보였다.

로건은 커피를 마시다가 손짓으로 그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별장에서 너와 싸웠던 기사 말이야.”

“길로틴요?”

“그래. 그 길로틴이 죽었다더군.”

“아······.”

길로틴은 심장 어림에 제법 깊은 상처를 입었었다.

‘그래도 죽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운도 없지.’

리안은 씁쓸하게 웃었다.


낡은 갑옷과 검을 들고 나타난 길로틴.

그가 평민 출신 기사란 걸 바로 알아 보았다.

길로틴이 얼마나 고달프게 기사 생활을 한 지는 안 봐도 훤했다.

자신도 팔과 다리를 심하게 다쳤지만 포션과 회복제로 바로 치료했는데.

길로틴은 아무 치료도 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제법 괜찮은 남자였는데. 다음 생에는 부디 훌륭한 주군을 만나시길. 나처럼 말이오.’


로건은 다소 우울해하는 리안을 보며 의문을 느꼈다.

‘길로틴과 리안은 아무 관계도 아니잖아? 표정이 왜 저럴까?’

그는 베란다 테이블에 손톱을 톡톡 찍다가 말했다.

“네가 길로틴은 죽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리안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판단을 잘못했습니다. 길로틴은 포션을 살 돈이 없으니까요.”

“가난한······ 기사? 아하, 네가 종자 생활을 할 때의 기억을 길로틴에게서 보았구나. 그래서 네가 우울했어.”

“!”

리안은 그만 등에 소름이 돋았다.

평소에도 자주 느꼈지만 말 몇 마디로 상황을 파악하는 저 능력은 마법보다 더 무서운 것 같았다.

“그럼 포션을 썼을 때만 길로틴이 죽지 않는다는 거였네? 너의 잘못된 판단을 고치자면 말이야.”

“아니요. 포션 없이도 살 수 있는 상처였어요. 운이 나빠서 상처가 도졌겠지요.”

순간 로건은 눈살을 찌푸렸다.

‘길로틴은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데 나쁜 운이라니? 오히려 운이 좋아야 정상이다. ······영주가 나한테 돈을 뜯어내려고 길로틴을 몰래 죽인 거군.’

“로건님?”

로건은 화제를 돌렸다.

리안은 알아봐야 기분만 잡친다.

불행한 길로틴을 안타까워하면서.


“오늘 영주 성에서 행정관이 올 거야. 보나 마나 길로틴 때문이다. 메리의 명령을 받고 별장으로 쳐들어왔지만, 본래는 영지 소속 기사니까.”

“영주가 배상금을 달라고 하겠군요.”

“오, 맞았어. 이대로 가면 케인을 따라잡겠는데?”

리안은 쑥스럽게 웃었다.

로건은 베란다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장원에 색색의 곡식들이 물결쳤다.

“배상금을 깎아야지. 명분은 그쪽과 이쪽이 반반씩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행정관이 오면 협상을 할 거야.”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행정관이 다녀간 후에 메리를 족치겠습니다.”

“그래, 괜히 시끄러운 일이 생길지도 몰라.”

로건은 베란다 아래로 손가락을 뻗었다.

“행정관은 그냥 별장 앞 테이블에 앉혀 놔. 내 집에 들어오는 걸 허락하지 않겠다.”

“예.”

“허드슨이 안 보인다. 불러와라.”


* * *


로건은 베란다에서 서재로 자리를 옮겼다.

‘영주 이놈이 너구리야. 확 뒤집어 놓으면 멀링가를 떠나야 하는데 언제 다시 자리를 잡아? 시간 낭비, 돈 낭비. 수련은 어쩌고? 나만 손해잖아.’

로건은 피식 웃었다.

“그래, 지금은 즐기라고. 너구리 굴을 불 싸지를 날이 머지않았으니까.”

그러다가 또 한숨을 쉬었다.

멀링가 영지가 좋을듯싶어서 자리를 잡았는데, 어째 조용한 날이 없다.

뭔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느낌.

계속 이러면 마법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빨리 정리하고 치워버려야겠어. 여기 터가 안 좋은가 봐.’

로건은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허드슨을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이럴 애가 아닌데? 역시 오늘은 별장에 안 온 거야. 그렇다면······.’


그때 리안이 나타났다.

“별장에 허드슨이 없어서 하인을 집에 보냈습니다. 하인이 돌아와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무슨 일이야?”

“허드슨은 몸살이 나서 몸져누웠다고 합니다.”

“하인이 직접 봤고?”

“예.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끙끙거리고 있다고 합니다.”

로건은 콧등을 찡그렸다.

“그건 아니야. 녀석은 우직하고 성실해. 설령 몸살이 났어도 여기 와서 쓰러졌을 것이다. 아마 허드슨에게 빌붙은 놈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겠지.”

“무슨 말씀이신지······.”

“허드슨은 매를 맞고 사는 것 같더군. 다쳐서 못 오는 거야. 이것들이 등 따습고 배부르니까 별짓을 다 하는구나.”

순간 리안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자신도 한때는 농노였지 않은가.

그 말만으로도 허드슨의 상황이 훤하게 보였다.

“네가 직접 가서 데려오너라. 포션과 회복제도 챙겨 가고. 치료부터 해서 데리고 와.”

“예.”

“용병 둘을 데리고 가라. 매를 맞았다면 때린 것들에게 벌을 내려야지. 농노들 싹 조사해.”

“어떤······ 벌을 줄까요?”

로건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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