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브로 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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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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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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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DUMMY

루드는 마법 경지를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참았다.

네 실력을 다 알려달라고 하면 쌍욕을 먹을 테니까.

로건과 신경전을 벌이던 기사마저도 얼굴에 경외감이 어려있었다.

로건은 루드가 떠나자 기사에게 말했다.

“오크 사체는 절반만 받겠소. 대신 작업은 그쪽에서 해주시오. 우리는 인원이 적거든.”

“알겠소이다. 수고하셨소. 그리고 고맙소.”

“그럼.”

로건은 덤덤한 표정으로 기사와 헤어졌다.

리안과 용병들은 아직도 놀란 모습이다.

안개에 시야가 막혔지만 중간까지는 보았으니까.

“리안, 있다가 오크의 사체를 받아. 그리고 야영지에 도착할 때까지 나 찾지 말고.”

탁.

로건은 가볍게 마차 문을 닫았다.

숨을 몇 번 고른 후 긴장을 풀고 전투를 복기했다.

상상 전투.

그동안 로건은 상상 전투를 수도 없이 했다.

함부로 위험을 감수할 수 없기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마법을 연구했다.

로건이 씩 웃었다.

‘통한다. 나쁘지 않아.’

그 정도가 아니다.

로건이 그동안 배운 마법은 8가지 마법.

오늘 사용한 마법은 윈드 스트라이크, 파이어 핸드, 포그, 염력 4가지.

절반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로건은 마차의 의자에 등을 기대고서 눈을 감았다.

‘마나는 많이 쓰지 않았어. 게임의 마법은 소모량이 적은 것 같아. 무엇보다도 마나 회복 속도가 엄청났어.’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레벨이 오른 느낌은 있나?’

로건은 몸 안의 마나를 몇 번이고 돌리며 감각을 확인했다.

알쏭달쏭했다.

‘일부러 많이 잡았는데 부족했나? 아니야. 이 정도 잡았으면 반응이 있었어야 해.’

게임 시스템이 있어야 레벨 업도 되는 모양이다.

“상태 창?”

무반응.

로건은 피식 웃고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 깊은 잠에 빠졌다.

마차가 덜컹거리는 데도 깨어날 줄 몰랐다.


* * *


야영지.

밤과 새벽은 싸늘하다.

초봄이라 더욱 그랬다.

로건의 손끝에서 마법의 불이 튀어 나가 모닥불 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활활 타는 불에 손을 뻗어 몸을 녹였고.

케인은 근처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용병들은 좀 떨어져서 장비를 손질하고, 리안은 마차를 손질한다.

로건은 눈가를 천천히 문질렀다.

마차에서라도 한숨 자고 났더니 한결 개운하다.

스튜는 점점 맛있게 졸여지는 중이었다.

리안은 마차를 수리하고 돌아왔다.

“오크 사체에서 모은 이와 무기를 받아두었습니다.”

“그래. 난 고블린의 마비침 외에는 쓸 곳이 없어. 나머지 부산물은 네가 알아서 처리해. 케인, 저녁은?”

“네. 다 됐습니다.”

케인은 스튜와 빵을 돌렸다.

긴장되는 날의 연속.

로건은 용병들에게 계속 음식을 나눠주도록 했다.


그렇게 식사가 막 시작되는데 기사가 나타났다.

“오늘 수고 많으셨소. 루드 갈라실 공자님께서 저녁 식사에 초대하셨소.”

“피곤해서 안 되겠소. 대신 차를 한 잔 드릴 테니까 잘 말해주시오. 케인?”

“네.”

“갈라실 공자에게 카페라테 1잔을 갖다 드려라. 시럽도 한 스푼 넣고. 계핏가루도 조금 뿌리면 좋겠군.”

“예.”

기사는 케인에게 물었다.

“카페라테는 무엇이냐?”

“설탕과 계핏가루를 넣은 따뜻한 음료입니다. 차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오호.”

로건은 손을 흔들었다.

“케인, 2잔을 만들어라. 이 기사에게도 드려. 루드 공자의 것을 만드는 동안 먼저 한 잔 마셔보시오.”

“그러면 고맙지요.”

기사는 모닥불 앞에 털썩 앉았다.

“그러면 기사님의 것부터 만들겠습니다.”

케인은 커피와 우유를 데운 후, 레시피에 적힌 용량대로 찻잔에 붓고 시럽도 한 스푼 넣었다.

톡톡.

찻잔 위로 계핏가루가 떨어졌다.

케인은 나무 쟁반에 카페라테와 비스킷을 놓고 그것을 기사에게 주었다.

“맛있군.”

부드럽고, 달콤하고.

계핏가루 향이 은은하게 입안을 맴돌았다.

마나를 다루는 기사는 감각이 예민하다.

그는 정신이 조금 드는 느낌에 로건을 쳐다보았다.

“차의 효능이 좋소이다. 이거 물건이오.”

로건은 기사가 마신 카페라테를 회복제로 만들지 않았다.

그저 커피의 각성 성분인 카페인, 그리고 설탕 때문이다.

“입에 맞는다니 다행이군. 공자가 마실 카페라테를 조금 더 드리지. 그것을 답례품으로 하겠소. 내일 아침 보내드리리다.”

“고맙소이다.”

기사는 케인에게 카페라테 한잔을 받아들고 루드 갈라실에게 돌아갔다.

“루드 공자에게는······ 유리병에 카페라테를 담아서 갖다줘. 10잔 분량 정도 담아. 식으면 단맛이 떨어지니까 시럽을 조금 더 넣고.”

“예.”

용병 대장 모린은 부드럽게 말했다.

“로건님. 그 음료의 가격은 얼마나 합니까?”

로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를 받아야 할까.

이 세계에 커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루덴 왕국에는 없는 것 같았다.

‘커피 재배 기후가 어떻게 되더라? 한 번 알아봐야겠군.’

로건은 대충 말했다.

“기본 음료는 20골드 정도? 방금 만든 카페라떼는 몇 골드 더 받아야겠지.”

“비싸군요.”

“구하기 힘드니까. 희소성이 사라지면 가격도 내려가지 않겠소?”

역시 사치품.

모린은 돈을 내고서라도 한잔 부탁할까 하다가 포기했다.

이번 의뢰에 자신이 받는 돈은 80골드, F급 용병들은 각각 10골드씩이었다.


여정은 계속되었고.

몬스터도 계속 나타났다.

그러나 이전처럼 대단위는 아니다.

많아 봐야 3, 40마리 정도.

로건은 모린과 용병들만 보내어 몬스터 토벌을 돕게 했다.

마법사가 도와주었으면 하는 눈치야 뻔하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루드 갈라실마저도.

일행은 며칠 만에 멀링가 영지에 도착했고, 로건은 사람들과 헤어져 고급 여관에 자리를 잡았다.

여관의 이름은 ‘달빛’인데 갈라실 영지에 있는 고급 여관과 이름이 같다.

일종의 프랜차이즈.

왕국 전역에 퍼져 있으며, 3대 상단 중 하나인 로레인 상단이 직영하고 있었다.

“후······. 피곤하네.”

육체적 피로는 없지만, 정신적 피로를 제거해야 공부와 수련이 더 잘될 것이다.


* * *


이 고급 여관은 마구간, 넓은 뒷마당, 별채도 5채 있다.

각 별채에는 작은 공터까지 딸려있고.

다음 날 로건은 그중 한 공터에 있었다.

“예.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허리에 힘을 빼시고 말 위에 몸을 얹는다는 느낌으로 계시면 됩니다.”

말 위에 앉은 로건.

승마를 배우는 것이다.

리안은 말고삐를 쥐고 천천히 걸으며 말을 이끌었다.

워낙 순한 말이라 로건은 쉽게 감각을 익혀 갔다.

“리안, 오면서 보니까 멀링가에는 귀족의 별장이 많은 것 같더라?”

“예. 멀링가를 찾는 귀족이 많다더군요.”

“뭣 때문에?”

“멀링가 가문이 운영하는 검투장이 꽤 유명하지요.”

“그런가. 아무튼 영주 성에 바깥에서 머물 거야. 저택까지는 필요 없고 그보다 작은 별장 정도가 좋겠어. 한적한 곳. 마을의 외곽도 좋아. 음······ 장원이 딸린 집도 괜찮고.”

갈라실에 있는 때는 돈이 궁해서 사람들과 부대꼈지만, 여유가 있으니까 입맛대로 살아야지.

“마당도 넓어야지요?”

“물론이지. 한 번 알아봐.”

로건은 한동안 승마를 더 배우다가 여관 별채로 들어갔다.

여관의 개인실에서 나와 별채를 통째로 빌린 것이다.

케인이 매일 커피 원액을 만들어야 하기에 독립된 공간이 필요했다.


* * *


별채의 방으로 돌아온 로건.

그는 커피 자루를 탈탈 털면서 혀를 찼다.

‘가내 수공업을 벗어나질 못하니.’

매일 커피 자루를 뒤집어서 원두 가루를 모아야 한다.

말이 날마다지, 간혹 잊어먹고 안 뒤집거나 뒤늦게 원두 가루를 모으곤 했다.

그렇게 한 달에 4, 5일은 손해를 본다.

요즘은 케인이 매일 원두 가루를 받아서 원액을 만들기에 빠지는 날이 없지만.

빡빡하게 모으면 1달에 6천 잔.

용량을 안전하게 잡으면 5천 잔이다.

로건은 오크통에 원액 1천 잔을 채워서 한 달에 4통씩 모으고, 남은 1천 잔은 사비로 쓰려고 따로 빼둔다.

모아둔 돈까지 있어서 경제적인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며칠 뒤.

로건은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별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조금 비싸군.”

영주 성과 걸어서 1시간 거리.

별장과 조금 떨어진 곳에 마을도 1개 있다.

이 별장은 멀링가의 기사단장이 주거지로 썼던 곳이다.

기사단장은 은퇴하면서 가족과 함께 영지를 떠났고, 별장은 빈집이 된 지 2년이 넘었다.

“바로 앞의 장원까지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따로 팔지는 않겠다고 하더군요.”

“장원? 땅은 제법 넓소. 하지만 100명 소출량이라던데 뭐 얼마나 돈이 되겠나? 그냥 정원으로 꾸미면 딱 좋은 크기요.”

“하기는 그렇습니다.”

로건은 집을 빌리려고 했지만 기사단장은 장원을 포함해 팔려고 했다.

가격은 5만 2천 골드.

경제적인 여유도 있고 이 근방에서는 가장 마음에 들기에 사기로 했다.

여차하면 다시 팔아도 되니까.

“2천 골드는 그냥 깎아주시오. 그냥 5만 골드로 합시다. 영주 성에 신고비도 내야하고 당신 소개비도 줘야지. 집수리도 돈이 제법 들어갈 것 같소.”

“음······.”

“2년이나 안 팔렸다면서? 가격은 점점 더 내려갈 것이오. 오히려 손해 아니오?”

중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지요. 5만 골드로 맞춰보겠습니다. 그럼 대금은 어떻게 할까요?”

로건은 회복제 1개를 꺼냈다.

“이건 회복제라는 거요. 들어보셨소?”

“알지요. 멀링가 기사님들도 한두 개씩 가지고 계시는걸요. 영주님의 명으로 멀링가에 들어오는 회복제는 전량 영주 성으로 회수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로건은 미소를 짓다가 말했다.

“집값을 회복제 53개로 하겠소. 집값, 소개비, 영지 등록까지 전부 해결해 주겠소?”

중개인은 잠깐 셈을 하다가 말했다.

“충분합니다. 아니, 조금은 남을 것 같은데요?”

“그럼 빨리 처리해 주면 되겠군. 계약금으로 회복제 3개를 먼저 주고 서류를 가져오면 나머지 50개를 주지.”

“이틀만 시간을 주십시오. 물론 집은 지금부터 쓰셔도 됩니다.”

그렇게 로건은 별장을 샀다.

커피 53잔으로.

로건은 마법사여서 멀링가 영주가 크게 반길 것이다.

부름에 응하지 않더라도 영지에 마법사가 머무는 자체가 전력 상승이니까.

“케인, 뱅가드 상단 지점에 들러서 내가 여기 있다고 알려줘. 루크가 물건을 보내면 이곳으로 바로바로 보내도록 해달라고 말해 놔. 편지를 써주마.”

“예.”

“용병 길드에 의뢰를 넣어라. 별장을 지킬 호위병 6명을 구해. C급 3명, D급 3명으로. 2인 1조로 움직이면 되겠어.”

“그러면 돈이 좀 나갈 텐데요?”

로건은 손을 휘저었다.

“그냥 해.”

“알겠습니다.”

“집 관리를 할 하인도 몇 명 구해. 용병이 있으니까 남자 하인으로만. 괜한 말썽은 질색이야.”

“예.”

로건은 케인이 나가자 리안을 불러들였다.

“용병 6명을 별장 경비병으로 쓸 것이다. 케인이 사람을 구해오면 네가 통솔해라. 인부를 대거 불러 별장을 수리해. 목책을 허물고 돌로 다시 쌓아. 목수를 불러서 집과 내부, 마구간, 별채도 손을 보고.”

“장원은 어떻게 하지요?”

“글쎄다? 조금 애매하지?”

“어제 마을에서 자경대 몇 명이 찾아왔었습니다. 장원을 맡겨주면 세금을 내겠다고 하더군요.”

로건은 턱을 쓰다듬다가 말했다.

“고용한 사람들까지 해서 우리 먹을 건 나오겠지?”

“100명 소출량인데 실컷 먹고도 남지요. 3명 정도만 쓰면 충분할 거예요.”

“그래? 그럼 뱅가드 상단에 말해서 농사지을 노예 3명을 보내달라고 해라. 가족이 딸려있어도 상관없다.”

노예 시장은 대 영지에만 있기에, 상단에 부탁해야 했다.

“차라리 영주 성에서 농노를 사면 어떻습니까?”

“음?”

그건 몰랐다.

“농노들은 가족과 함께 삽니다. 그래서 가족이 있는 농노를 사면 그 가족까지 값을 내야 하지요. 노동력이 없어도 그렇습니다.”

로건은 그 애매한 장원에서 돈을 벌 생각이 없었다.

“먹을 게 남잖아? 그거야 뭐.”

“농노는 평생 농사만 지었지 않겠습니까? 로건님, 농노가 낫습니다.”

“그래, 농노로 해. 일꾼 3명 포함해서 가족까지.”

“가족의 수는 몇 명까지 할까요?”

“알아서 해.”

“예.”

그렇게 한 달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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