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브로 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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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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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DUMMY

로건은 마법사다.

마법사에게 고블린의 귀가 마법 재료라고 가르치다니.

로건은 고개를 흔들었다.

“저걸 마법 주머니에 넣겠다고? 널린 게 고블린 귀야. 트롤이나 오우거라면 몰라도 저건 안 돼. 여분의 주머니도 없고.”

“상인에게 주머니를 사면 되지 않습니까? 혹시 오크가 나온다면, 오크는 쓸모있는 게 제법 있습니다.”

리안의 말은 타당했다.

로건은 마법 주머니 1개를 리안에게 주었다.

“딴은 그렇군. 나올 때마다 버리면 아깝지. 앞으로 여기에 몬스터 사체들을 담아.”

“예.”

“앞으로 이 주머니는 몬스터 사체 전용이다. 상인에게 주머니를 여러 개 사. 크기도 좀 다양하게. 먼저 그 주머니에 담은 후 다시 마법 주머니에 넣어라.”


여정은 다시 시작되었다.

상인 쪽은 무력이 절반으로 줄어서 로건의 무리가 선두에서 사람들을 이끌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저녁이 될 때까지 3번의 전투가 더 있었다.

마지막 전투에서는 리안까지 나서야 했을 정도로 치열한 싸움이었다.

마침 이때 로건이 약초를 찾아보겠다고 자리를 비워서 거의 전원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오크 15마리는 버거운 숫자.

전신이 근육 덩어리여서 물리력 자체가 다르다.

오크 하나가 성인 남자 2명에서 3명의 힘을 쓴다.

또 피를 보면 좀처럼 물러나지 않아서 여간 까다로운 몬스터가 아니었다.

로건의 마차를 끌던 용병은 마차 위에서 쉴 사이 없이 화살을 쏘았다.

얼마나 쏘았는지 어깨에 가벼운 탈골이 왔고, 용병 2명은 상처를 곳곳에 입었다.

그나마 용병 대장만이 피곤한 얼굴로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보살폈다.

리안이 합세하지 않았다면 오크 15마리에게 전멸할 뻔했다.

일행은 더 이상 전진할 동력을 잃었다.

부상도 많고 무엇보다도 지쳐서 무조건 쉬어야 했다.


야영지.

분위기는 우울했다.

용병 대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리안에게 말했다.

“이상하오. 멀링가 쪽에 몬스터가 많다지만 이 정도로 자주 나오지는 않는데 말이오. 당신이 나서서 막았지만 한 번 더 그 정도의 오크가 나타난다면 전멸할 수도 있소.”

“의뢰를 포기하고 위약금을 내거나 도망치겠다는 뜻이오?”

용병 대장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어중간한 위치에서 어디로 도망친단 말이오? 또 위약금을 물을 만큼 돈이 많지도 않소. 난 몬스터 출몰이 이상할 뿐이라오.”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모르겠소.”

“짐작 가는 것은 있지. 아무튼 심각하오. 상인 쪽에는 용병 1명만 남았거든. 그 용병마저도 중상으로 전투력을 잃었고.”

“음······.”

“다음 공격에서는 그들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오. 우리 쪽 지키기도 버거우니까.”

용병 대장은 로건을 흘금거렸다.

로건은 리안과 케인 외에는 다른 사람과 말을 섞지 않는다.

‘답답하군. 무슨 말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이때 로건은 고깔모자를 쓴 채로 모닥불을 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용병 대장 말이 맞아. 몬스터가 왜 이렇게 많지? 멀링가 영지는 작년에 몬스터 정리를 안 했나?’

케인은 커다란 솥에 고기 스튜를 만들어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여유가 있을 때나 내 것, 네 것이 있지.

지금은 따질 때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스튜를 먹고 조금 기운을 차렸다.

“로건님, 저녁을 굶으시면 건강을······.”

“케인.”

“네.”

“가서 상인에게 말해. 그쪽의 용병을 치료해주겠다고. 그 용병을 데려오너라.”

“예.”

케인은 서둘러 상인에게 달려갔다.

잠시 뒤.

상인은 사람 2명과 함께 들것에 용병을 싣고 왔다.

로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심. 살살 내려놓게.”

용병은 다리에 긴 자상을 입었는데 피를 많이 흘려서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이마에 손을 올려보니 열이 펄펄 끓는다.

“케인. 이럴 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어? 찾아서 읽어봐.”

케인은 서둘러 종이 뭉치를 꺼냈다.

그의 머리는 나쁘지 않다. 내용을 아직 외우지 못했지만 찾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 어떤 상처든 깨끗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독한 술로 상처를 씻는 것이 상처의 악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

“또. 자상을 찾아서 읽어봐.”

케인은 용병의 상태를 본 후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읽었다.

“상처에서 피가 멈추지 않을 때 상처를 불로 지져 출혈을 멈추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화상을 동반하기에 넓은 상처에는······. 로건님, 이 용병은 이 방법으로는 안 되겠는데요?”

“잘 보았다. 그럼 어떻게 하지?”

로건은 스태프의 힐링 마법으로 치료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케인과 리안을 가르치기 위해 이러는 것이다.

“한두 가지 방법이 더 있지만 모두 부적합해요. 술로 소독하고 바로 포션을 써야 합니다.”

“리안, 케인의 말을 들었지?”

“예.”

로건은 입맛을 다셨다.

마법 재료 중에 마취 효과가 있는 물약이 있었는데, 출발할 때 산다는 것이 깜빡하고 챙기지 못했다.

“이 용병은 상처가 깊고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피도 많이 흘렸고, 아직도 조금씩 흘러나와. 통증을 일으키는 방법은 모두 안 돼. 술로 씻은 후 포션을 쓰자. 저번에 쓰고 남은 포션을 다 부어라.”

리안은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대답하지 않았다.

로건은 언성을 높였다.

“내 말 못 들었나?”

“드, 들었습니다.”

“당장 해.”

로건은 나뭇가지를 주워서 꺾었다.

그리고 그것을 용병의 입에 물려 주었다.

“술을 부으면 몹시 따가울 것이오. 꽉 무시오.”

용병은 감격에 겨운 눈으로 로건을 쳐다보았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정말 행운이다.

용병은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리안은 상처를 술로 씻었다.

예상한 것보다 더 매운 통증.

용병은 이를 꽉 다물고 참았다.

“됐어. 그 정도면 됐다. 이제 포션 부어.”

“예.”

리안은 1/3정도 남은 포션을 정말 조금 부었다.

“다 부어. 상처가 딱 붙어야 한다.”

“예.”

포션을 다 쓰고서야 용병의 상처가 붙었다. 붕대를 단단히 감게 하고 회복제 1개를 마시게 했다.

용병의 혈색은 불그스름해졌고, 곧 잠이 들었다.

“내일 아침이 되면 움직일 수 있을 것이오. 데려가시오.”

상인은 몇 번이나 인사한 후 용병을 데리고 물러났다.

“리안, 네가 가진 포션으로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줘라. 적어도 움직일 수 있게는 만들어 놔야 해. 알겠지?”

“예.”


로건은 리안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을 보다가 용병 대장에게 말했다.

“이름이 무엇이오?”

“모린입니다.”

“몬스터가 많아서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소? 그 이유를 아는 것 같던데 뭣 때문에 이렇소?”

“멀링가 영지가 몬스터 토벌을 아예 안 한 것 같습니다.”

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토벌은 안 한 이유는 무엇일 것 같소?”

“후계자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둘째 공자가 작위를 받는다더군요.”

“내란으로 여유가 없었다? 그럼 몬스터 토벌을 안 한 게 맞겠군. 앞으로 5일 남았는데 몬스터가 점점 더 많아지겠구려.”

“그렇습니다. 거리로 보면 앞으로 이틀이 고비입니다. 돌아가려면 여기서 돌아가야 하고요.”

“아침까지 생각해 보지.”

“알겠습니다.”

로건은 갈라실에서 미리 만들어 둔 회복제 20개를 꺼내어 케인에게 주었다.

“용병들과 리안, 그리고 네가 마실 것이다. 지금 마시고 나머지는 내일 아침에 써라. 영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먹이면 돼.”

로건은 천막으로 돌아갔다.


용병 대장 모린은 회복제를 마시고 깜짝 놀랐다.

“혹시 이건 포션 아니오?”

사람들을 보살피고 돌아온 리안이 대답했다.

“이렇게 맛있는 포션 보셨소? 그리고 포션은 체력을 올리지 못하지. 이건 떨어진 기력을 끌어올리는 회복제요. 물론 약간의 상처 치료 효과도 있고.”

“대, 대단하군.”

“로건님의 호의를 잊지 마시고 주변 경계를 확실히 하시오. 케인, 너는 로건님의 곁에서 떨어지지 마라. 로건님의 지시가 있으면 빨리 알려야 한다.”

“예, 형님.”

케인은 로건의 천막 앞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천막 속.

로건은 고민했다.

전진이냐, 후퇴냐.

고블린, 오크라도 다수가 덤비면 사고가 날 수 있다.

또 중형 이상의 몬스터는 안 나타난다고 하지만, 그런 말을 100% 믿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트롤은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오우거는 이길지 질지 잘 모르겠네? 이대로는 곤란한데.’

꾸역꾸역 길을 갈 수는 있으나 사상자는 필연.

만약 오우거가 나온다면 절반 이상은 죽지 않겠나 싶었다.

‘리안과 케인은 살릴 수 있을 거야. 그러려면 내가 고용한 용병들을 고기 방패로 써야 하는데······. 아무리 문화 적응이라지만 그 정도까지 썩으면 안 돼.’

“점호?”

케인이 천막 바깥에서 말했다.

“안전 제일. 8개월입니다.”

‘그래, 일단은 안전 제일이야. 또 8개월이나 남았어. 급할 게 없다니까?’

로건은 턱을 매만졌다.

상인 쪽은 자신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처지.

계속 길을 나아가면 그쪽은 다 죽고 말 것이다.

‘갈라실로 돌아가서 다시 정비한다. 내가 며칠 양보하면 모두가 살잖아.’

로건은 두꺼운 모포 위에 몸을 누이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눈이 말똥말똥하다.

잠도 안 오고.

바깥에서도 소란이 일어났다.


로건은 서둘러 바깥으로 나왔다.

“기사다! 병사들도 왔어.”

“용병단도 있다! 살았다! 우린 살았어!”

사람들은 야영지에 들어오는 일단의 무리를 보며 크게 기뻐했다.

리안과 용병 대장은 서둘러 그들과 대화한 후 로건에게 보고했다.

멀링가 영지로 가는 용병단.

갈라실 백작의 3남 ‘루드 갈라실’이 멀링가 영지를 거쳐서 북부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루드 갈라실의 호위로 기사 3명, 병사 20명.

또 30명으로 구성된 용병단.

총 54명이나 된다.

야영지가 제법 넓었음에도 그 전체가 붐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호, 묻어가겠네? 잘 됐어.’

로건은 천막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런데 몇 분도 안 되어 천막 밖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제일 좋은 자리군. 천막을 옮겨라. 이곳에 공자님께서 머무실 것이다. 그리고 천막의 주인은 공자님께 인사를 해라.”

케인은 허겁지겁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일단 제가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아니야. 됐어.”

기사는 검을 반쯤 뽑았다가 세차게 검집에 집어넣었다.

챙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막 주인은 나오너라. 공자님께 허리를 숙여 인사드려라.”

로건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은 누구 아래에 있는 것을 싫어해서 월급쟁이로 산 적이 없다.

그 때문에 사업 자금을 모을 때 고생했지만, 기꺼이 감수했다.

그러나 회사를 운영하면서 고개 숙일 일이 왜 없었을까.

그런 스킬은 이미 만렙이었다.

‘로건 레스터의 작위를 밝힐 수도 없고······. 그냥 적당히 넘어가자.’

로건은 갈색 스태프를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염력을 뿜었다.

펄럭하고 천막 앞쪽이 활짝 젖혔다.


로건이 밖으로 나와서 기사를 쳐다보았다.

“내가 꼭 허리를 숙여야겠소?”

기사는 당황했다.

“마법사신 줄 몰랐소.”

“이제 알았으면 됐소. 천막은 옮길 테니까 기다리시오. 인사는 생략하겠소.”

기사는 로건을 한번 훑어내렸다.

“그래도 인사는 나누는 게 어떻소? 이 파티의 주인인데.”

“파티 주인은 저쪽 상인이오. 나는 자리를 양보한 걸로 도리는 충분히 했소이다?”

로건은 핸서에게 이 세상의 정보를 듣다가.

마법사들의 자존심이란 게 굉장해서 귀족들도 어느 정도 눈을 감아준다는 얘기를 듣고 매우 기뻐했다.

그래서 바깥에서의 자신은 괴팍한 마법사로 설정한 상태였다.

그는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말했다.

“왜 말이 없소? 파티 주인은 상인이라니까?”

“······.”

기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마법사는 귀족 대우를 받는 데다가, 루드 갈라실은 3남으로 차기 후계자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의 신분은 거기서 거기.

기사는 말도 없이 그냥 돌아갔다.


로건은 손짓으로 리안을 불렀다.

“천막을 옮겨라. 그리고 내일부터 기사와 용병대의 뒤를 따라간다. 지금부터 우리는 우리만 챙긴다. 상인도 알아서 하라고 해. 알아들었지?”

“예.”

“그래.”

로건은 옷을 몇 번 털고는 세워 놓은 마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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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화 +10 24.09.01 15,901 38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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