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리가 털을 잘 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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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화의신
작품등록일 :
2024.07.31 19:06
최근연재일 :
2025.03.20 02:37
연재수 :
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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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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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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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하이스트(2)

DUMMY

인터넷으로 이사 온 뒤로 반응을 살펴보는 게 좋지 않다.

“이 정도면 잠재적 범죄자도 아니고 그냥 범죄자 수준인걸.”

각성자가 몰려있는 길드에선 그냥 탱커구나 하고 넘어가지만, 일반인이 보는 나는 무서운 사람일 뿐이다.


각성자면 사람들이 친해지기 위해 알아서 다가온다?

그것도 평범하게 생겼을 때나 가능하지, 덩치 큰 남자는 본능적으로 꺼려져서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게다가 하이스트는 도시 외곽이다.

사람 많은 곳이라면 주변에 보는 사람이 많아서 내가 걸어 다녀도 슬금슬금 피하는 게 전부지만 이곳은 인적이 드물어서 마주치는 사람은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도망간다.

그럴 땐 먼저 다가가 보라는 조언을 봤지만 내가 다가가기 전에 멀리서부터 돌아가거나 혹시라도 가까워지면 도망치고 있으니, 어쩔 수 있나.

이렇게 살아야지.


새집은 마음에 든다.

달동네에 있던 물건을 들여놓고도 공간이 남는 데다가 온전히 나의 집이니까.

예전엔 실수로 기지개를 켜다가 천장을 부숴서 얼마나 전전긍긍했었는지 원.


게다가 촬영 전용 방이 있다.

하모니카부터 피아노까지 온갖 악기가 준비된 데다가 창문조차 없앤 완벽한 방음.

벽은 전부 초록색이라 크로마키 천도 필요 없다.


촬영 세팅은 끝났고 이제 본격적으로 털을 팔아야지.

호랑이 퍼리로 변신해서 멕시코의 전통의상인 판초와 챙이 넓은 모자인 솜브레로를 쓰면 멋쟁이 완성.

이 상태로 컴퓨터의 방송 시작 버튼을 누르면 스트리밍이 시작된다.


—(레스타이거! 레스타이거! 레스타이거! 레스타이거! 레스타이거! 레스타이거!)

—(근육질 호랑이. 저는 근육질 호랑이를 좋아합니다.)

—(아주 강한 근육질의 깡패가 인상적으로 잘생겼네요. 저는 그가 그와 대화를 나누고 저와 어울릴 의향이 있는지 묻고 싶어 하는 그의 모습에 매료되고 있습니다.)

—(그가 저와 데이트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슈퍼 머슬! 와우! 마음에 들어요!)

—(헐크 호랑이)

—(뜨겁고 강력한 알파 수컷 호랑이.)


온갖 수상한 채팅이 올라온다.

나는 말하지 않는 게 컨셉이라 피아노 건반만 몇 개 치자 다들 소리가 잘 들리는지 별 반응이 없었고 그렇게 피아노 연주회가 시작됐다.

연주회라고 잘 치는 건 아니고 엉성하게 치지만 그게 내 매력 아니던가.

거인인 내게 그랜드 피아노는 어린이용 피아노와 같고 이걸 갈고리처럼 되어있는 손톱 끝으로 아슬아슬하게 치는 손재주의 영역이니까.

종종 손가락이 너무 커서 삑사리가 나지만 내가 피아노를 친다는 게 중요하지 잘 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피아노 치는 건 10분 남짓.

말도 없이 피아노만 계속 치면 재미없으니까, 여기까지 하고 준비해 놓은 식탁을 가져와서 카메라 앞에 뒀다.

엄청나게 큰 그릇에 온갖 재료가 섞이지 않은 채 정갈하게 놓인 비빔밥인데 숟가락으로 섞은 뒤에 한입씩 떠먹으면서 후원이 올 때마다 손을 흔들어줬다.

동영상으로 편집된 걸 보는 게 실시간보다 못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사람들의 행동에 반응한다는 것.

레스타이거 AI썰을 종식해 줬다.


비빔밥 위에 굴김치를 올려서 야무지게 먹고 후식으로 호빵과 식혜를 먹은 뒤에 방송을 껐다.

“실수한 거 없겠지? 반응 한번 보자.”


—ㅇㅇ

—제목 : 레스타이거 도대체 얼마나 먹는 거냐?

(그릇 크기 비교.jpg)

방금 쌀 20kg 먹은 거 같은데?


└달걀노른자 수 세보니까 60개였다 이게 사람이냐?

└덩치 크셔서 많이 드셔야 한다고

└털에 가려져서 그렇지 다 근육임

└참고로 저 정도 덩치면 배고파서 하루에 5끼는 먹어야 하는데 저 수준으로 5번 먹는 거임

└(사람 아니야 콘)

└진짜 사람 아니잖아

└퍼리도 사람이다


—세최털

—제목 : 매 끼니 맛있는 식사 가능♥

(호빵 먹는 레스타이거.gif)

요리 잘해요.


└이 새끼는 도대체 왜 품절이 안 되는 거임?

└우린 이유를 알지만 대답할 수 없다

└이게 독재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구나


└제발 아무나 데려가!

└환불하면 독기 올라서 폭군으로 변한다고

└흑화하면 철의 여인 됨


—ㅇㅇ

—제목 : 먹방 왜 보는 건지 몰랐는데 저걸 다 먹는 게 너무 신기하다

(비빔밥을 비비는 레스타이거.gif)

손 크기만 봐도 그릇 크기 짐작돼서 못 먹을 줄 알았는데 다 먹더라


└ㄹㅇ 먹다가 남길 줄 알았다고

└숟가락 뜰 때마다 이게 들어가? 이게 들어가? 이게 들어가? 하다가 그냥 포기하고 봄

└진짜 개맛있게 먹더라


└엄마한테 비빔밥 해달라고 해야지

└못 할걸? 품절이라

└?


—털붕이

—제목 : 참기름 <- 이 새끼 품절됨

(미국 온라인 마켓.jpg)

전 세계적 품절임 ㅇㅇ

님들 이제 참기름 못 먹음

이 또한 레스타이거의 은총임


└어 시발 내 참기름이

└참기름 업체 주가 +3365%

└이걸 지금 알려준다고?

└버억~


└좆됐다 창고업 하는데 쌀 빼낸다고 주문 보낸다

└쌀도 품절이야?

└우리가 먹는 쌀은 자포니카라서 전 세계적으로 먹는 쌀은 아님

└군량미 넘쳐나서 알빠노


—ㅇㅇ

—제목 : 한식집 운영하는데 좆됐다

물량 털리기 전에 업체에서 고추장 보내주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다음 물량은 언제 줄지 모른대

니들이 모르면 누가 아냐고


└엌ㅋㅋㅋㅋ 식혜도 품절행

└호빵 이 새끼도 품절임 그냥 없음

└계란 <- 의외로 품절 안 된 새끼


└간장은 왜 털리고 있는 거지?

└비빔밥 레시피에 간장 들어가는 거 있어서 그런 듯?

└풀매수간다


—ㅇㅇ

—제목 : 살다 살다 콩나물 100g에 5,000원까지 갈 줄은 몰랐지

(콩나물 가격 현황.jpg)

집에서 키우기 쉬운 콩나물 키워보실?


└옛날에 파 대란 보는 것 같네

└고사리는 진작 퇴갤함

└고사리는 우리밖에 안 먹지 않냐?

└ㅇㅇ 그래서 방송 시작하자마자 증발함

└고사리 캐러 간다 다뒤졌다


└아니 시발 내 사랑 굴김치가

└명복을 비십시오 휴먼


—털붕이

—제목 : 비빔밥 대란 일어남

(주문 폭주한 분식집.jpg)

이제 비빔밥 못 먹는다니까 다 주문 넣나봐 ㄷㄷ


└이제 학식에서 비빔밥 빠질 듯

└원가 올랐는데 비빔밥을 어떻게 주냐고 ㅋㅋ

└한식이 이렇게 고급화되는 걸 바라진 않았는데 ㅋㅋㅋ


└실시간 버섯 퇴갤함

└물가 오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ㅋㅋㅋㅋㅋ

└도라지 밴 ㅋㅋㅋ


—ㅇㅇ

—제목 : 그래서 지금 품절된 품목이 이거라는 거지?

(레스타이거의 비빔밥.jpg)

참기름, 들기름, 고추장, 호빵, 식혜, 간장, 콩나물, 고사리, 굴, 김치, 버섯, 도라지, 쌀(예정), 계란(예정)


└맛도리 다 밴 당했네

└쌀은 괜찮지 않을까?

└쟤네 쌀 종류 몰라서 막 사는것 같음 ㅎㅎ 인디카 쌀 물량 털리는 중


└겨울에 호빵 못 잃어

└못 잃는다고! 내 호빵 내놔!

└겨울 굴이 찐 맛도리인데 싹 쓸렸다


└ㅇㅇ)아니 시발 피자나 처먹지 갑자기 비빔밥을 처먹어서

└솔직히 맛있긴 해

└ㅇㅇ) 인정하는 바입니다


—퍼리조아퍼리최고

—제목 : 갤주님은 내게 돈을 주었다.

(+1,750% 주식창.jpg)

비빔밥이 보이는 순간 바로 풀매수 때렸습니다.

진정한 팬이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요?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도른 새끼 등장

└이게 야수의 심장이지

└님 빨리 매도하셈 내가 줍게


└퍼리는 돈이 된다(진짜임)

└유료 광고를 왜 함? 주식 사두고 음식만 먹으면 되는데

└엌ㅋㅋㅋ

└밥만 먹는데 세상을 바꾸는 남자

└그가 바로 갤주다


“온 세상이 지랄 났군.”

···


1층에 있는 레스 마트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개학이 가까워진 것이다.


“··· 사실 나도 학교 다니는 게 무서워.”

나이도 있고 공부는 자신 없는데 외형까지 이질적이라 적응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길드에서처럼 먼저 말 걸고 먹을 것도 주고 겉도는 사람들하고 친해지다 보면 되겠지.


모르는 거나 물어보러 가야겠다.


***


하이스트 마법 개발부 교수 임호영은 김민수를 입학시키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민수 님이 사고 치면 퇴직해야지.’

극한의 알빠노 마인드!

어차피 퇴직할 시기도 왔겠다 수틀리면 나가면 됐다.


쿵! 쿵! 쿵!


교수실의 문을 박살 낼 것 같은 절제된 노크.

저런 노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하이스트 내에서 한 명뿐이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자, 문 위로 상체가 가려져 하체만 보이는 거인이 있었고 그 거인은 허리를 숙여서 문틀 상단을 잡고 교수실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마치 거대한 괴물이 먹이가 있는 곳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아 심장이 서늘하다.

연륜과 교수라는 직업이 강함 앞에서 쓸모없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진다.


문이 닫히고 밀폐된 공간에 단둘만 있게 되자 숨조차 쉬기 힘들다.

“안녕하세요. 모르는 부분이 있는데 화상으로 하기엔 좀 많아서 왔습니다.”

그렇다고 김민수가 난동을 부리진 않았다.

정확히는 난동을 부릴만한 이유가 없었다.

모든 사람은 그에게 친절할 수밖에 없고 어떤 피해도 입힐 수 없으며 김민수에게 피해를 보더라도 웃으며 넘어갈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김민수도 자신이 강한 걸 알아서 일반인을 억압하려는 느낌도 없었다.

어른이 아이에게 힘자랑하지 않듯 격차가 너무 나서 건들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됩니다.”

“물리는 너무 어렵네요. 더 공부해야겠어요.”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 아티팩트를 만들 때 이 부분이···.”

“아,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 위에 여러 가지 마나 회로를 올렸을 때 마나 간섭이 생겨서 길을 과하게 밖으로 빼둔 거예요. 이 구조는 안정성이 너무 낮아요.”

‘마나가 적은 나는 이론으로만 알고 실제로 해본 적은 없어서 모르던 건데 경험이 많아서 아는구나.’


한참 동안 지식을 교류하며 궁금한 건 다 해소했다.

“학생들이 민수 님을 무서워할 텐데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없죠. 괜찮아요. 특성 찍을 때부터 예상한 거라.”

“아쉽지 않나요? 평범한 삶을 놓친 게.”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앞으로는 더 잘 나가겠죠. 아쉽지만 후회는 없어요.”

그 대답에 알았다.

겉으로는 무섭지만, 덩치만 크지 속은 평범한 사람인 것을.

‘나는 외모만으로 판단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그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어. 부끄럽다.’


김민수는 지금보다 더 편하게 살 수 있다.

압도적인 덩치로 힘자랑만 해도 무서워서 따르는 자들이 생길 테고 불만을 억누를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건 쉬움이 아닌 옳음을 선택했다는 뜻.

“개학까지 2주 남았죠. 자주 와요. 사람들도 익숙해지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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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리가 털을 잘 팖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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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제 5차 산업혁명(2) 25.03.20 20 4 14쪽
100 제 5차 산업혁명(1) 25.03.10 29 4 12쪽
99 메가코프(3) 25.03.07 29 4 11쪽
98 메가코프(2) 25.03.06 29 3 11쪽
97 메가코프(1) 25.03.05 30 3 13쪽
96 3학년 2학기(2) 25.03.04 27 3 12쪽
95 3학년 2학기(1) 25.03.03 30 3 12쪽
94 국가 안정(2) 25.03.02 35 3 11쪽
93 국가 안정(1) 25.03.01 35 3 12쪽
92 고기(2) 25.02.28 32 3 11쪽
91 고기(1) 25.02.17 38 4 11쪽
90 식량난(2) 25.01.30 35 3 11쪽
89 식량난(1) 25.01.23 37 3 12쪽
88 개학(3) 25.01.06 42 3 12쪽
87 개학(2) 24.12.18 48 3 13쪽
86 개학(1) 24.12.01 51 3 11쪽
85 랩실(3) 24.11.18 49 3 12쪽
84 랩실(2) 24.11.06 52 3 12쪽
83 랩실(1) 24.11.02 50 3 11쪽
82 세종(2) 24.11.01 47 3 11쪽
81 세종(1) 24.10.31 49 3 14쪽
80 3년차(2) 24.10.28 54 3 10쪽
79 3년차(1) 24.10.27 55 3 11쪽
78 봉사활동(2) 24.10.26 52 3 13쪽
77 봉사활동(1) 24.10.25 53 3 13쪽
76 세최털(2) 24.10.24 54 3 12쪽
75 세최털(1) 24.10.23 56 3 10쪽
74 아산 2단지(2) 24.10.22 50 3 13쪽
73 아산 2단지(1) 24.10.21 57 3 12쪽
72 변화의 바람(2) 24.10.21 52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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