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팩트(2)
길드도 회사고 돈이 되는 쪽으로 움직인다.
헌터가 살육에 미쳐서 탑에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아니라 돈 되는 자원을 위해 일을 하는 것처럼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 하는데 태양 길드는 아티팩트라는 새로운 돈줄을 만들었다.
처음엔 실드 아티팩트가 10억 원이나 해서 몇 개 팔리고 말 줄 알았는데 인기 폭발이다.
“나도 가질래!”
“엉엉. 내 돈을 가져가요.”
“오늘부로 태양 길드 지지를 철회한다. 오늘부터 지지 관계에서 벗어나 태양 길드와 나는 한 몸으로 일체가 된다.”
용박 씨가 말했다.
“살 사람만 사고 끝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인기 있을 줄은 몰랐어요.”
“실용성이 높으니까요.”
기존 실드 아티팩트는 구조의 불안정성 때문에 쉽게 파괴됐는데 내가 만든 건 안정된 구조 덕분에 유지되는 동안 거의 모든 공격을 막았다.
그만큼 마나 소모는 심하지만 중요한 건 맞고 나서 대처하는 게 아니라 맞기 전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
나조차 길마의 공격을 무조건 1번 막을 수 있다면 승률은 0%가 아닐 테니 수요는 충분했다.
“선배는 그런 마나 회로를 어디서 안 거예요?”
“그냥 이것저것 합치면 마나 소모는 심해도 더 단단해질 거 같더라고요.”
마법이 뭐 별거 있나.
좋아 보이는 효과 여러 개 섞어서 한 번에 발동하면 그게 고효율 마법이지.
실드 아티팩트를 역설계해서 구조를 알아낸다 해도 미국은 내가 하룬과 관련 있는지조차 모를 거다.
단순한 구조의 마나 회로 수십 개를 묶어놓은 게 전부니까.
···
4월에도 태양 길드는 팬 미팅을 했다.
이제 제일 길드라는 막강한 경쟁자가 생겼고 퍼리가 양지 진출을 한 만큼 많이 파급력은 줄어갔는데.
“나도 가입할 거야!”
“헌터, 헌터가 될래요.”
비전투 계열 각성자들이 대거 몰려왔다.
헌터가 대거 이민 갈 때 한 번 들어올 기회가 있었지만, 뭣도 모르는 길드에 들어가서 고생할 바엔 원래 직장을 붙들고 있던 건데 먼저 온 사람들이 정착을 잘했고 새로 생긴 부서에서 사람을 필요로 해서 입사하려는 것 같다.
물론 헌터로 일하면서 인성과 적성을 파악한 뒤에 다른 쪽으로 빠지겠지만 헌터로 일하는 동안은 돈을 많이 버니까 그것대로 좋겠지.
—ㅇㅇ
—제목 : 태양 길드 연전연승
(팬 미팅 현장.jpg)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본 퍼리라서 여기가 마음이 안정됨
└무근본 제일 길드랑은 다르지
└거긴 길마가 진심이잖아
└ㄹㅇ···.
—터리조아
—제목 : 사진 찍고 싶으면 오세요.
(제일 길드 팬 미팅.jpg)
제일 길드로 오시면 됩니다.
└님 왜 거기 있음?
└터리조아) 쉬는 날이에요.
└아니;;
└??? : 영약 토해내!
└이 새낀 그냥 퍼리를 좋아함
└ㅋㅋㅋㅋㅋ
—수리사랑
—제목 : 태양 길드 왔는데 쫄보라서 상담받으러 못 가겠어
(상담 창구.jpg)
나 헌터 같은 거 못하는데 진짜 어떻게 못 하냐?
아티팩트 제작 경력 쌓고 싶은데
└태양 길드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지
└제일 길드로 ㄱㄱ
└수리사랑) 거긴 그냥 받아줌?
└실력 테스트하고 바로 아티팩트 제작 부서로 감
└수리사랑) 마나 회로 새기는 마법밖에 모르는데
└그럼 태양 길드에서 비벼봐야지
—ㅇㅇ
—제목 : 자원 판매 부서 이거 수송차량 호위랑 집 지키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님?
(자원 판매 부서 공고문.jpg)
경비 개꿀이잖아
꽁돈 같은데
└빌런 쳐들어왔을 때 몸으로 안 막으면 소송당함
└ㅇㅇ) ㄹㅇ?
└진짜임 길드가 최선을 다해서 님 조짐
└자원 수송차량은 잘 안 털리는데 자원 모아두는 곳에 도둑 많이 든다고 알고 있음
└거기 한번 잘 털면 몇억인데 은행 털 필요도 없지
└장물은 어떻게 팜?
└묵혀뒀다가 주웠다고 하면 끝임 물건에 이름표 붙여놓은 거 아니잖아
—ㅇㅇ
—제목 : 부산물 가공 부서 <- 이거 좋음?
(부산물 가공 부서 공고문.jpg)
엄마가 위험한 일은 하지 말라고 해서 헌터로 일하다가 여기로 빠질 건데 정보가 별로 없네
└몬스터 해체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만 할 수 있는 전문직임
└헌터보다 근무 시간은 많아도 돈은 헌터만큼 받을걸?
└실력 있는 사람이 적어서 기술사 자격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고 들음
└몬스터 해체 전문직 맞음
└ㅇㅇ) 돋보인 줄 알았는데 평판이 좋네
└일이 힘들고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
—ㅇㅇ
—제목 : 태양 길드 입사 문의
(게시판 글 목록.jpg)
올리는 새끼들 부러우면 개추
나만 각성 못 했어
└야 너도? 난 했는데
└ㅋㅋㅋㅋㅋ
└각성이 전부는 아니잖아 근데 난 했어
└ㅋㅋㅋㅋㅋ
└ㅇㅇ) ㅆㅂ 나만 각성 못 했어
—세최털
—제목 : 4월은 팬 미팅 일정이 많네요
(4월 달력.jpg)
참여하려면 갤 관리가 힘들어질 것 같네요
└4월에 퍼리 행사만 9개?
└헤으응 콜록콜록
└코올록!
└숨이 안 쉬어져요!
└작년까지만 해도 길드에서 퍼리를 추진할 줄 몰랐는데
└ㄹㅇㅋㅋ
└각성자 중에 퍼리가 있다였는데 이젠 퍼리만 내세움
고랭크 헌터는 다 미국 갔지만 퍼리피아 파동은 이제 가라앉는 분위기다.
“고부가가치 산업을 이어갈 수 있다면 바뀐 건 없으니까.”
***
전태양은 보고서를 봤다.
‘고블린 촬영물의 인기가 상당해. 이 정도로 매출이 많이 나올 줄이야.’
고블린 촬영물 부서가 길드를 홍보하고 광고 수익과 피규어 판매로 매출을 올리고 신입까지 유입시키는 가장 중요한 부서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유행에 편승해 보려고 시작한 게 태양 길드의 머리채를 잡고 강제로 끌어올릴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음? 레스타이거가 또 우리를 홍보해 줬군.”
“퍼리라면 다 홍보하고 다닙니다.”
퍼리 정상화를 이룬 자, 레스타이거.
태양 길드만 홍보해 주는 게 아니라 경쟁자 홍보를 더 많이 해주지만 결국엔 파이가 커지며 가져가는 게 더 많아지니 나쁠 건 없었다.
‘길드원은 많이 늘었지만, 탑에서 나오는 수익은 별로 안 늘었군.’
지금 대세는 아티팩트 제작.
전 세계에서 비전투 계열 각성자가 태양 길드에 입사하기 위해 몰려들었고 나날이 길드원 수를 갱신하면서도 매출이 급등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레스타이거, 뭐하는 퍼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맙다!’
고양잇과 퍼리면서 압도적으로 큰 키와 덩치로 대형 고양잇과의 매력을 뽐내는 자.
단 한 번도 양지로 나오지 않았지만, 그가 세상에 관심을 비출 때마다 관심을 받지 못해 말라 죽어가던 무언가가 살아난다.
그것은 또 하나의 기적, 레스타이거의 은총이다.
‘흠··· 보다 보니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이만큼 거대한 호랑이 퍼리를 쓰다듬고 육구를 만질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지도.’
얼굴만 보면 무섭고 사나워 보여도 기지개를 켜거나 잠을 자는 모습은 귀여워서 갭모에에 덕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이해됐다.
심지어 매일 2번이나 게시글을 올리는데도 구독료가 10달러밖에 안 되니 입문 난도가 낮고 만족도는 높을 수밖에.
보고서를 보고 있는데 알림이 왔다.
“하이스트 교수 임호영? 모르는 사람인데. 응접실로 안내해.”
대전 최고의 과학자 양성 기관 하이스트.
헌터로 일하다가 길드 마스터가 된 자신과는 백만 년쯤 떨어진 곳인데 무슨 일로 온 걸까?
응접실로 가자,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하이스트 마법 개발부 교수 임호영입니다.”
그가 말하길 실드 아티팩트를 빌려서 마나 회로를 역설계했는데 그 수준의 아티팩트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해했다.
‘알려주는 건 별거 아닌데 스파이 아닐까?’
실드 아티팩트에 들어가는 마나 회로를 10개로 쪼개서 2,000명이 해당 부품을 만들고 마지막에 합치는 게 전부라서 괜찮을 것 같았다.
“말로 설명해 드리죠. 이렇게 해서··· 이렇게 만듭니다.”
“만날 순 없나요? 저희도 아티팩트를 만드는데 양산 수준까지 간 적이 없습니다.”
“안 됩니다. 아티팩트 제작자들의 신상이 노출되는 건 제가 원치 않습니다.”
길드와 계약은 위약금만 내면 양쪽 다 일방적 해지가 가능해서 괜히 신원을 드러냈다가 돈으로 매수당하는 일은 사양이다.
“제작자 중의 한 명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아무나 상관없습니다.”
‘정보를 캐내다가 용박 씨에 도달하고 싶은 건가. 마침 좋은 수단이 있지.’
“비서, 민수 씨한테 연락해서 시간 되면 올라오라고 해. 상황도 설명해 주고.”
5분이 지나자, 김민수가 응접실에 도착했다.
걸을 때마다 울리는 땅과 다가올수록 거대해지는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인간 김민수.
자신은 강하기에 괜찮지만, 일반인에게 김민수는 인간의 형태를 한 괴물 그 자체다.
“안녕하세요. 김민수입니다.”
“임. 임호영입니다. 혹시 실드 아티팩트를 만드신 분입니까?”
“네.”
임호영이 자신을 바라보며 지랄하지 말고 진짜 제작자를 데려와달라고 눈짓했지만 꿀릴 건 없었다.
양산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실드 아티팩트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김민수니까.
“저는 일이 바빠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비서는 남아서 도와드리다가 와.”
‘어딜 우리 기술자를 빼가려고. 절대 못 줘.’
10분 후에 비서가 돌아왔다.
“무서워서 그런지 질문을 하다가 돌아갔습니다.”
“흥. 어딜 우리 길드원을 빼가려고.”
“민수 씨는 관심 있던 것 같았어요.”
“아니, 왜?!”
“저도 모르겠습니다.”
···
그 이유는 며칠 지나지 않아서 알게 되었다.
수련실에서 대련하는데 김민수가 말했다.
“저 하이스트에 입학할 겁니다.”
“네?”
순간 너무 어이없어서 월도에 맞아 죽을뻔했다.
“8월에 계약 끝나잖아요. 2학기부터 하이스트에 입학하려고요.”
“아. 아니. 민수 씨 공부 잘해요?”
“특기생 전형? 그런 거 있다던데요. 면접에서 이상한 짓만 안 하면 꽂아준대요.”
“졸업하려면 4년이나 걸리는데 너무 귀찮지 않습니까?”
“돈도 많고 성적은 F만 안 맞으면 졸업할 수 있으니까 학벌 세탁으로 괜찮을 것 같아요.”
종종 헌터 중에도 학벌을 세탁하겠다며 은퇴 후 대학교에 가는 경우를 보긴 했는데 김민수가 그럴 줄은 몰랐다.
‘학벌은 학벌이지 과시용으로 쓰는 게 아니야!’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 예전부터 계약 기간이 끝나면 은퇴를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다.
계속 길드에서 일한다면 모를까 계약 기간이 끝나면 볼 일도 없는데 그 이후의 인생을 간섭하는 건 오지랖일 뿐.
“거기서 뭘 배우고 싶은데요?”
“아티팩트 제작이요. 제가 좀 잘 만들잖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말단 제작자 1명을 부르는 건데···.’
김민수는 놓치고 싶지 않은 인재다.
귀한 탱커인 데다가 랭크업 속도가 빠르고 뛰어난 교관이 되어 태양 길드의 한 축을 맡은 사람이니까.
그것과는 별개로 아티팩트 제작 능력도 매우 뛰어났다.
실드 아티팩트를 개량한 것도 김민수고 최초로 상용화한 것도 김민수니까.
어쩌면 하이스트로 간 뒤에 지금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어디서든 뛰어나고 잘 적응하는 인재인 민수 씨가 떠난다는 건 태양 길드가 민수 씨를 받아들이기에 부족하다는 뜻이겠지.’
만약 태양 길드가 아티팩트 제작에 도움을 주고 하이스트라는 학벌보다 더 나은 업적을 줄 수 있다면 태양 길드에 남았을 테니까.
“졸업하면 다시 오고 싶은 길드가 되어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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