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1)
대련하고 쉴 때나 노쇼 당했을 때 틈틈이 공부 중인데 너무 어렵다.
내 대가리로 하이스트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어!
교수가 꽂아줘도 내 수준으론 바로 3진 학사경고를 당해서 퇴학당해 버릴 거라고!
그 누가 29살 먹고 하이스트에 입학할 줄 알았을까.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할걸.
생각해 보니 많이 했었잖아?
더 많이 할 걸···.
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맞은편에 인호 씨가 앉았다.
거대화 특성을 찍은 두 명이 같은 식탁에 있으니, 식탁이 좁군.
“선배님, 점심 먹고 시간 되십니까?”
“오늘은 오후 반차야.”
“네? 일벌레 민수 선배님이 반차?”
“일요일엔 쉬는데.”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그런 거 아니야. 땅 사러 갈 거야.”
평범한 회사라면 땅을 사러 간다고 하면 온갖 질문이 날아오겠지만 헌터는 수입이 워낙 높다 보니 투자에 관한 말이 자주 나와서 내가 땅을 산다고 해도 그러려니 했다.
“건물이 아니라 땅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던데. 아파트라도 올리실 건가요?”
“공장 지을 거야.”
“무슨 공장이요?”
“세제 공장을 생각하고 있어.”
“세제? 세제는 왜요?”
“돈이 될 거 같아서.”
세계 멸망 급위기가 오면 많은 사람이 죽고 이민 가는 사람이 늘어날 텐데 그때 가면 집은 넘쳐날 거다.
가치가 폭락할 자산을 제일 비쌀 때 사는 것보단 그 상황에서도 꾸준히 매출이 나오는 공장이 백배 나을 거라는 게 내 판단이다.
“저도 모아둔 돈으로 공장이나 지을까요?”
“갑자기? 무슨 공장 짓고 싶은데?”
“그냥 돈 되는 거요.”
“됐어. 모든 투자의 책임은 자신한테 있잖아. 휘둘려서 투자하는 것만큼 멍청한 것도 없어.”
나야 미래시를 할 수 있으니, 공장이 돈이 안 되더라도 결국 떡상할 걸 아니까 마음 편할 수 있지만 그걸 모른 채 수십억을 쏟아부어 놓고 매출이 안 나오면 속이 뒤집혀 버릴 거다.
“선배님처럼 행동하면 성공할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일 많이 하고 공부도 하고 대학교에 입학할 거고, 이젠 사장님까지 되잖아요.”
“세후 2억을 발로 차고 대학에 가는 건데?”
“그게 대단한 거죠. 아티팩트도 잘 만드신다면서요. 5차 산업혁명이 마법인데 아티팩트는 가장 최전선이잖아요. 그걸 만드는 장인 중 한 명이신데.”
다른 사람이 보는 나는 그랬구나.
···
대전 외곽에 가로세로 500m 크기의 땅을 산 뒤에 공장 건설이 시작됐고 완공만 기다리면 됐다.
그즈음 길마도 내가 공장을 짓는다는 걸 알았나 보다.
“민수 씨가 공장을 세울 줄은 몰랐네요.”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요?”
“외모만 보면 운동기구나 음식 쪽 공장을 세울 줄 알았습니다.”
“너무 외모 차별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편견이에요.”
“민수 씨가 편견이 너무 없는 거예요.”
“저도 제 얼굴을 볼 때마다 놀라지만 세제 공장이 뭐 어떻다고요.”
“자기 얼굴 보고 놀라는 수준에서 이미 글렀습니다.”
“앗. 아앗···.”
길마는 내가 쓸데없는 곳에 돈을 쏟아붓는 걸 걱정했지만 괜찮다.
사업 초기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건 예상했고 내가 사장으로서 자질은 없으니 전문 경영인을 고용했으니까.
“민수 씨라면 망해도 상관없겠죠. 아무 길드에 들어가도 금세 복구할 수 있잖아요.”
***
35살, 키 180cm, 몸무게 80kg, 이국현은 한국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였다.
‘그래봤자 돈 많이 받는 월급쟁이지.’
창업하기엔 위험 부담이 커서 대기업에서 엄청난 월급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날마다 실적 압박에 쪼들리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결혼하지 못한 것.
35살이면 아이가 있어야 할 나이임에도 일이 너무 바빠서 만나는 여자마다 끝이 안 좋았다.
“퇴직이다!”
그래서 대기업을 그만뒀다.
누군가는 성공 가도를 달리는데 거기서 멈춘 바보라고 할지 몰라도 통장에 10억 원이나 있는데 자신보다 잘난 사람이 어디 있을까.
—타끄
—제목 : 헌터는 보통 어디에 투자함?
(월급 인증.jpg)
ㄹㅇ 돈 이렇게 많이 버는 줄 알았으면 진작 헌터 하는 건데
└코인
└아아, 이건 적금이란 것이다. 원금과 연수익률 4%를 보장해 주지.
└말도 안 돼! 은행은 뭘 먹고 사는 거냐고!
└예금 3배 레버리지는 없음?
└ㅋㅋㅋㅋㅋ
└진짜가 나타났다
└리스크 없이 돈을 벌어준다고? 사기꾼이야?
└하방 막혀 있는 거 보소 ㅋㅋㅋㅋㅋㅋㅋ 씹스캠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상품이 있을 리 없잖아 www 돈 되는 걸 왜 알려주겠냐고 www
└시발ㅋㅋㅋ 구라도 적당히 쳐야지 원금 보장에, 이율까지 주면 쟤네는 뭐 먹고 사냐?
└ㅋㅋㅋㅋㅋ은행이 호구냐? 돈을 퍼주게?
—ㅇㅇ
—제목 : 월급 받았는데 세후 1,500만 원인가요?
(입출금 내역 스크린샷.jpg)
이거 세후인가요?
└길드에서 뭐 말해준 거 없음?
└ㅇㅇ) 없어요
└그럼 세전임 연말정산으로 절반 토해내야 함
└헐 그럼 750만 원밖에 못 버는 거임?
└소득공제 받고 싶으면 물건을 사
└그래서 차 사고 집사고 장비하고 하는 것임
└정보 기부하면 그만큼 소득을 줄여준다.
└기부 적당히 하면 절세됨?
└기부하는 것보단 세금 내는 게 더 절세됨
└그럼 기부를 왜 함?
└마음의 여유를 증명할 수 있지
—ㅇㅇ
—제목 : 하앙 헌터가 이렇게 많이 버는지 몰랐어요옷!
왜 지금까지 헌터하라고 칼 들고 협박 안 함?
└ㅁ?ㄹ
└왜 헌터 안 함?
└ㅇㅇ) 죽을 거 같아서
└뒤지는 일이면 헌터를 안 하지
└님 비전투 계열?
└ㅇㅇ) 태양 길드 맞음
└이건 부럽네
└딴 길로 빠질 수 있는 거 고트임
—용박이
—제목 : 차 뽑았어요
(스포츠카.jpg)
거대화 특성 찍으면 중고로 팔아야 하지만 일단 뽑았어요
└드래곤쉐이드? 저거 2억인데 금수저였음?
└랭크업 하면 갖다 판다는 게 충격인데
└우린 저거 평생 타야 한다고 ㅋㅋㅋ
└태양 길드가 잘 나가니까 거리에 외제 차가 많아짐
└기분 탓이 아니었음
—ㅇㅇ
—제목 : 누군 평생 공부하고 매일 일해야 월 천인데
(용박이.jpg)
누군 깔짝깔짝 일하고 월 천 넘게 버는 게 나라냐?
└꼬우면 아시죠?
└너도 각성해
“···.”
세상엔 자신보다 잘난 사람이 많았다.
그것도 너무 많았다.
예전에는 비전투 계열 각성자는 확실히 자신보다 밑이었는데 퍼리피아 파동 이후로 길드에서 각성자라면 대거 채용하는 바람에 운 좋게 각성한 게 전부인 놈들이 자신보다 더 우월해졌다.
‘어쩌면 그래서 퇴사한 걸지도 모르지.’
아등바등 살아봤자 각성자의 발아래에 깔릴 수밖에 없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니까.
그렇다고 우울하거나 그렇진 않았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모아둔 돈도 많고 어리고 예쁜 여자랑 연애도 시작했으니까.
‘결혼할 건데 직장이 없으면 안 좋게 볼 거야.’
돈이 많다고 통장 잔고를 보여줄 게 아닌 이상 무직은 결혼의 장애물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매일 아내랑 붙어있을 것도 아니니 느긋하게 일하며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직장이 있으면 좋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적당한 일자리.
“돈 많은 헌터가 공장 하나를 차리고 싶어 하는데 국현 씨가 도맡아서 처리해 주면 돼요. 아는 게 없어서 전부 맡긴다고 하니까 처리하고 통보만 해달래요.”
“아직 부지도 안 샀는데 벌써 월급을 준다고요? 일할 것도 없는데요?”
“월에 1억은 넘게 버는 헌터라서요. 300만 원은 돈도 아니에요.”
“··· 저야 좋죠.”
곧 생길 회사를 책임지는 전문관리인이 되었지만, 일이 존재하지 않았다.
전문관리인이 되고 한 일주일쯤 지나자, 고용주가 봐둔 땅을 매입해 주고 공장을 지을 건설사를 찾아다닌 게 전부.
‘문자로 뭐를 하라고 지시한 게 전부야. 일을 이렇게 대충 처리해도 되는 건가? 내가 중간에 돈을 들고 나르면 어떻게 하려고?’
물론 지인을 통해서 소개받았기에 그럴 가능성은 작지만 벌써 들어간 돈만 10억 원이었다.
그래서 어렴풋이 알아버렸다.
그들과 자신은 사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김민수 : 일이 어떻게 처리됐나 알고 싶은데 한 번 만나죠
‘고용한 지 한 달 만에 목소리를 들어보겠네.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면 좋겠다.’
까다로울 리 없다고 생각했다.
큰돈을 맡겨놓고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을 정도로 부유한 헌터일 테니까.
카페에서 만난 고용주와의 만남은 최악이었다.
“반갑습니다. 김민수입니다.”
“이국현입니다.”
자신의 키가 큰 편인데도 고개를 들어올려야 보이는 얼굴과 넓은 어깨에 두꺼운 몸.
곰이 앞에 서 있어도 무서울 텐데 곰보다 더한 거인이 자신을 바라보며 인간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들어본 적 있어. 고랭크 헌터가 범죄조직과 연관되어 있다는 소문을···.’
분명 무조건 김민수는 범죄자다.
생긴 게 그렇고 느껴지는 기세도 그랬다.
다행이라면 김민수는 지금까지 일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막히는 것도 없고 모든 게 무난히 진행됐으니 책잡을 만한 부분이 없던 것!
“공장은 언제 완공되죠?”
“반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내년에 가동되겠네요?”
“그렇습니다.”
굉장히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공장이 늦게 지어지는 건 자신의 탓이 아니니 한 소리 들을 일은 없었다.
“일은 계속하실 거죠? 사람이 중간에 바뀌면 껄끄러워서요.”
“계속 일할 겁니다.”
‘거절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생매장당할 거 같아.’
잘살고 있는 사람을 그렇게 쉽게 죽이는 게 말이 되나 싶어도 김민수 앞에 앉아있으면 그럴 것만 같다.
의심이 아닌 확신!
김민수의 생김새라면 분명 그럴 거다!
큰돈을 맡아서 처리해 주는데도 김민수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한국대를 수석으로 졸업해서 대기업을 10년이나 다닌 엘리트인 것조차 모를지도 몰랐다.
그에게 필요한 건 학력이나 경력이 아닌 귀찮은 일을 대신 해줄 사람이니까.
그날 만남은 충격적이었지만 공장이 완공되는 올해 말까진 별일이 없는 데다가 달마다 300만 원씩 받을 수 있다는 건 좋았다.
‘딱히 불법적인 일도 안 할 것 같아. 돈이 많으니까. 이제 손 씻고 정상적인 일을 하려는 건가 보네.’
김민수를 주선해 준 사람에게 물어보니 요즘 잘 나가는 헌터라고 했다.
검색해 보니 정말 잘 나가는 헌터가 맞았다.
“··· 부럽네. 젊고 강하고 돈도 많고 뭐든 할 수 있어서.”
지금까진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는데 이젠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있다.
저런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어떤 노력이든 할 수 있을 텐데.
그 시각 김민수는 집에 가서 밤새도록 코스프레에 쓸 옷을 만들고 입은 뒤에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온리펄스에 올렸다.
—아름답습니다!, 훌륭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스러운 귀여운 호랑이 댄서인 그가 무대에서 멋진 동작을 선보이며 응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습니다.
—아름답고 푹신한 강력한 알파 수컷 호랑이.
—브라보!
“어휴, 나니까 하는 거지 이걸 누가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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