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하고 싶어 미쳐버린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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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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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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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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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드래곤즈

DUMMY

경기는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마광길은 1번 타자로 나가서 투구수 17개를 빼고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5번 타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구태우는 웃으면서 마광길을 맞이했다.


“요즘은 감독님 옆 자리에 안가네?”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시는 모양이죠.”


원래 노강수에게 마광길은 보호 1순위였다.

다른 팀에게도 보호해야 했지만 같은 편 내부에서도 질투나 시기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전에 마광길이 벤치 클리어링에서 상대방 투수를 피떡으로 만든 이후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걸 알았다.

남자의 세계에서 싸움을 잘한다는건 본능적인 존중을 이끌어냈다.

원래도 마광길에게 막대하는 선배는 없었지만 요즘은 선배들이 마광길을 조금 어려워하는 기색까지 있었다.


“흐흐. 그럴만도 하지. 그 날 경기장에 있었던 선수는 다 그럴거야.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로 보는게 더 무서웠으니까까.”

“형은 괜찮으신가보네요.”

“난 네가 아무 이유 없이 사람 패고 다니지 않을거라는거 아니까. 너 야구 이기고 싶어서 미친 놈이잖아. 갑자기 선배 쳐서 출장정지 당하고 싶을리 없지.”

“그건 그렇죠.”


벤치 클리어링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는 많아봐야 10 경기 출장 정지이지만 선배가 후배를 괴롭히면 30 경기 출장 정지를 당할수도 있었다.

후배가 선배를 폭행하면 유교 문화에 지배되고 있는 한국 야구에서 얼마나 많은 출장 정지를 당할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건 그렇고 다음에는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면 나한테 맡겨.”

“네?”

“내가 처리해줄테니까. 내가 너만큼 아니더라도 주먹 좀 쓰거든. 그리고 출장 정지를 당해도 너보다는 내가 빠지는게 팀 승률에 도움이 될거고. 내가 너 대신해서 개수작을 부리는 놈은 박살을 내버릴테니까.”


확실히 괜찮은 방법인거 같아서 마광길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태우는 섭섭하다는듯이 말했다.


“내가 진심으로 제안했지만 그래도 예의상으로는 말려야 하는거 아니냐?”

“아, 농담이었나요?”

“아니, 진담이야!”


팀의 최고참과 막내가 투닥거리며 말을 주고받자 다른 선수들도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러는 사이에 2번 타자가 안타를 치고 진루했고 3번 타자가 아웃을 당했다.

구태우는 보호 장비를 차고 타석에 나가면서 말했다.


“그럼 이 형님이 점수 내는걸 구경하고 있으라고.”


**


이번 시즌 구태우는 오랜만에 야구가 재미있었다.

지금까지는 팀의 중심으로 자신이 뭔가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려 왔었다.

아무리 강한 투수를 만나도 아무렇지 않은척 해야 했고 결과를 만들어내야 했다.

모든 선수가 자신을 의지했지만 자신은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했다.

감독이나 코치에게도 의지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타석에 들어가면 철저한 혼자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진작에 깨달았다.


그리고 마광길이 건파우더즈에 드러온 이후에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마광길이 투수의 힘을 다 빼놓고 2, 3, 4번 타자까지 지나가면 자신이 타석에 들어설때 투수는 최소 두 단계 이하로 실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자신의 타율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마광길의 노력이 자신의 타석까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자신은 막내에게 의지할 생각이 없었지만 막내가 자신을 도와주는게 느껴졌다.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공의 실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이던 눈은 가물가물했다.

몸은 무거웠고 힘과 체력은 떨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팀의 5번 타자를 맡을 정도의 실력은 가지고 있었고 힘이 빠진 투수에게 휘둘릴 정도로 약해지지는 않았다.

변화구 이후에 갑자기 들어오는 빠른 공에 반응하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침착하게 볼은 걸러내고 애매한 공은 커트했다.

순식간에 풀카운트가 만들어졌다.

덕아웃으로 돌아가느냐 1루로 가느냐 공 하나 스윙 하나에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투수가 유인구로 자신을 속일지 빠른 직구로 승부를 할지 유인구인척 하면서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변화구일지는 공이 오기 전까지 절대 알 수 없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며 본능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걸 알면서도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흡!”


이 공이다 싶으면 힘차게 배트를 휘둘러 보았다.


틱!


공이 배트 위를 스치면서 포수 머리 위로 날아가는게 느껴졌다.


‘막내는 이걸 어떻게 매번하는거지?’


구태우는 그게 신기했다.

자신도 근성이 있는 타자고 어떤 타자들보다 오랫동안 승부를 지속하는걸로 유명했다.

하지만 자신은 매번 안타나 홈런을 노리다가 타격감이 좋지 못해 파울이 되는것뿐이었다.

죽느냐 살아서 나가느냐 하는 선택의 순간에서 늘 살아서 나가는걸 선택했다.


하지만 막내는 달랐다.

죽느냐 조금 더 살다가 죽느냐는 선택을 했다.

프로에 올라오는 인간은 모두 보통 이상의 승부욕을 가지고 있었고 제정신으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리 없었다.


‘해탈이라도 한건가. 무슨 야구 부처라도 되나.’


야구를 하다보면 포수가 일어나 한걸음 뛰어야 할 정도로 공이 빠지는 날도 있었다.

그런 공은 정상적인 타격폼에서는 절대 칠 수 없었다.

그리고 마광길은 공이 스트라이크 존에서 멀리 빠져도 몸을 던져서라도 배트를 공에 가져다 대었다.


‘처음부터 그러기 위해서 두 다리를 절대 움직이지 않는것 같기도 하고.’


수많은 야구 선수들이 프로 리그에 들어왔다가 사라지는것을 보면서 어지간한 신입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된 구태우였다.

마광길의 전략은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마광길의 생각을 하다보니 잡생각이 사라졌다.

투수는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포심을 던졌다.

구태우는 아무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딱!


배트의 중심에 공이 맞는 소리가 들렸다.

공이 쭉쭉 뻗어나가는게 보였다.

더 보지 않아도 홈런이었다.


구태우는 활짝 웃으면서 두 손을 높이 들었다.


‘이 좋은 맛을 포기한다고?’


역시 막내를 이해하기 힘든 구태우였다.

덕아웃에는 동료들이 신나서 선배의 헬맷을 손으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한쪽 구석에서 마광길은 자신이 홈런을 친것처럼 씩 웃고 있었다.


**


오늘도 경기는 잘 풀리고 있었다.

건파우더즈의 타자들이 아무리 하위권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힘이 다 빠진 투수를 상대로 헛스윙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적당히 안타와 홈런이 나왔고 1회부터 점수가 나왔다.

3대 0.

괜찮은 시작이었다.


그럼 건파우더즈의 선발 투수도 영향을 받았다.

1회부터 득점 지원을 받은 날과 받지 못한 날은 마음의 부담감 자체가 달랐다.

3점은 투수가 어지간히 미치지 않으면 한 이닝에 쉽게 내주지 않는 점수였다.

솔로 홈런 하나를 맞아도 괜찮을 점수였다.

투수는 부담감이 없으면 흔들림 없이 공을 던질 수 있었다.


건파우더즈의 타자와 투수 모두가 힘을 발휘하니 자연히 이기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마광길은 3회에 두번째 타석에 나갔고 16구 승부 끝에 실수로 안타를 치고 2루까지 나갔다.

2루에서는 드래곤즈가 자랑하는 2루수 장진호가 있었다.


적당히 큰 키에 잘빠진 몸매.

괜찮은 얼굴에 뛰어난 야구 실력.

피지컬이 워낙 좋다보니 고교 시절부터 야수 유망주로 불렸고 5툴 플레이어로 주목을 받던 선수였다.

마광길은 이 선수를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의 1회차 인생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2루수였다.

자신이 메이저에 진출한 투수였을때는 괜찮은 적이었고 자신이 메이저에 진출한 타자였을때는 괜찮은 라이벌이었다.

언젠가는 메이저에 가서도 활약을 할 선수였다.


하지만 이번 삶에는 달랐다.

원래는 이번 년도부터 포텐셜이 폭발하여 주목을 받아야 하는 타자였지만 마광길이 그냥 잘하는 타자가 아니라 야구판을 뒤흔드는 타자가 되니까 드래곤즈 내에서만 화제가 되는 수준에 그쳤다.

장진호는 자존심이 강하고 그 자존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야구를 열심히 하는 선수였다.

프로 데뷔 후 과한 플레이로 부상을 당하고 이번 시즌에야 꽃을 펴보려고 하는데 준수한 성적에도 모든 관심을 도둑 맞았으니 마광길을 좋아할수가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마광길은 예의바르게 인사를 했지만 장진호는 짜증을 낼 뿐이었다.


“오늘은 왠일로 안타를 쳤어?”

“좀 더 승부하고 싶었는데 실수로 배트 중심에 맞아버려서요. 팔을 아무리 뒤틀어도 파울이 안되더라구요.”

“어휴. 지겨운 새끼.”

“제가 지겹습니까? 오늘은 왠지 자주 볼거 같은데 큰 일이네요.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거든요.”


이제 마광길은 자신의 전략이 모두 드러난 상태였다.

인터뷰에서는 착한 척을 하며 타격감이 모자라서 파울이 많다고 둘러댔지만 그가 일부러 파울을 만든다는건 야구팬까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마광길은 주먹까지 보통이 아니란것이 알려져 있었다.

어지간히 또라이가 아니라면 말로만 툭툭 건드리지 손을 쓸 생각은 하지 못했다.


마광길은 장진호가 자신의 잘생긴 얼굴을 소중히 여긴다는걸 알기 때문에 그가 절대 자신에게 덤비지 않을것도 알았다.


그리고 리볼버가 마광길에게 말했다.


“오늘이 토요일이지? 매 경기 1번 타자로 9회까지 뛰니까 아무리 젊은 몸이라고 해도 지칠 수 밖에 없지. 하지만 오히려 좋아. 네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안타가 더 많이 나오니까.”


그 말은 사실이었다.

마광길은 화요일에 파울을 가장 많이 때렸고 일요일이 될수록 파울은 줄고 안타가 느는 기이한 타자였다.

마광길은 리볼버를 보면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장진호는 으르렁 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쉽지 않을거다.”

“왜죠?”

“송하경 선배가 이를 갈았거든.”


마광길에게는 기억으로만 남은 이름이었다.

원래는 드래곤즈가 잘나갈때 토종 선발로 이름을 날렸던 선수고 나이가 들어서는 계투로 지내는 선수였다.

마광길이 데뷔를 했을때는 거의 플레잉 코치나 다름 없었다.

경기에서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고 마주치더라도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이번 삶에서도 잊혀져 가는 전설 정도로만 여겼지 전략적으로 대비를 해야 하는 선수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 선배님은 거의 플레잉 코치 아닙니까? 작년에도 몇 경기 안나오신걸로 알고 있는데.”

“너 하나 날뛰는게 보기 싫다고 하시더라고. 감독님께 부탁해서 제대로 뛰어보겠다고 하셨어. 기대해도 좋아.”


리볼버는 그 소리를 듣고 말했다.


“흠흠. 송하경이라. 젊었을때는 대단한 투수였는데 말이지. 그 늙은이가 마운드로 자진해서 오를 정도로 네가 꼴보기 싫었다고... 이해가 되기는 하네. 네가 우리 편이어서 다행이지 다른 팀의 선수였으면 갈아마시고 싶을 정도로 싫었을테니까.”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마광길은 평소처럼 4회에 드래곤즈의 선발 투수를 내려버렸다.

드래곤즈는 준비해둔 계투를 올려서 4회를 막았다.

그리고 5회가 되자 비장한 표정의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갔다.


131승.

한국 야구에서는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성적을 보유한 송하경이었다.

전성기에 150을 넘던 구속은 140을 겨우 넘기는 수준으로 바뀌었지만 급한 상황에 1이닝 정도는 믿고 맡길 수 있는 투수였다.

그런 노장이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마운드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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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화 해치스 +1 24.09.07 97 6 11쪽
37 37화 드래곤즈 24.09.06 109 5 12쪽
36 36화 드래곤즈 24.09.05 104 8 12쪽
35 35화 드래곤즈 24.09.04 119 7 11쪽
34 34화 드래곤즈 24.09.03 123 8 11쪽
» 33화 드래곤즈 24.09.02 128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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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화 대책 24.08.30 137 9 12쪽
29 29화 대책 24.08.29 144 8 11쪽
28 28화 대책 24.08.28 140 8 11쪽
27 27화 대책 24.08.27 150 7 12쪽
26 26화 대책 24.08.26 153 7 12쪽
25 25화 대책 24.08.25 150 9 12쪽
24 24화 눈치 24.08.24 157 8 12쪽
23 23화 눈치 24.08.23 163 6 12쪽
22 22화 눈치 24.08.22 157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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