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이드(Dec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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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미소
작품등록일 :
2024.08.04 21:47
최근연재일 :
2024.09.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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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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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동기화

DUMMY

나의 튜토리얼은 끝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끝내야 한다.

내 입장에서 나의 세상은 갑자기 망해버렸다. 그래서 변해버린 세상을 이해하기는커녕 살아남는 것조차 버겁기만 했다.

멀쩡한 다른 세상의 태창이 형은 나보다 더 혼란스러워했다.

그래서 우린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게임처럼 이해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느날 갑자기 나라는 케릭터가 생성되었고 게임이 시작된다.

장르는 생존 아포칼립스. 괴물들이 튀어나오고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이 온 세상을 덮어 거대한 던전처럼 되었다.

케릭의 상태는 시작부터 다 죽어가는 산송장의 상태라 플레이어는 최우선 과제로 외부활동으로 물자를 조달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 회복을 목표로 정했다.


그렇기에 난 음성 상태창의 미션을 받듯이 태창이 형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목표. 인근 수색 및 물자를 거처에 모아라.

보상. 니가 주운 물건 전부.

시간은 13시 02분. 한 곳당 30분 정도로 잡으면 해가 떠있기 전까지 열 집은 털 수 있을 거다. 그러니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 날’이후로 시간이 꽤 흘렀지만 대부분의 아파트는 온전히 남아있었다.

다른 생존자들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남아있는 건 아파트는 파밍의 장소로 매력적이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이렇게 직접 돌아보니 몇 가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첫 째는 얻을 수 있는 물품의 양이 투입되는 노동력에 비해 보잘 것 없었다.

한 집 당 통조림 한 두 개 운이 좋으면 과자나 라면 등 밀폐된 음식들이 있는 집들이 있었지만 내 세상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망했다.

많은 집들이 그 안에서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어버리고 버티고 버티다 도망치거나 아니면 생을 마감했다.


“감기약이라도 나와라. 제발.”


4번 째 집의 문을 따는데 시간은 40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찾은 거라고는 베란다에 감춰놓은 맥주 두 캔이 다였다.

수색을 빠르게 한 게 아니라 문을 열자마자 알 수 있다. 이 집은 남은 게 있나 없나 보이는 상태로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철컥.

“으어어어 헙! 다 다음집..”

쾅.


문을 열자마자 난 터져 나오는 비명을 입으로 틀어막으며 재빨리 문을 닫았다.

거실 천장에 밧줄로 목을 매달린 시신의 윤곽이 보이자마자 다음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기 전부터 예상은 했었다. 문틈으로 썩은 내가 풍겨왔으니까.

썩은 내가 풍긴다는 말은 집안에 안개가 들어차지 않았다는 말이다. 즉 안개에 오염되지 않은 곳이라 혹시나 하고 슬쩍 열었지만 바로 앞에 시체가 매달려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다.


예전이었다면 멘탈이 흔들릴 만한 부정적 이벤트라 생각되었겠지만 차라리 저렇게 정상적인 슬픔이 낫다.


“.... 표백제...”


아파트 파밍이 선호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를 7번째 집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문을 따고 내부를 확인하고 도주로를 눈여겨본다. 그리고 내부에 잠긴 방이나 공간을 확인 하는 차례에서 안방의 문이 닫혀있는 것을 보았다.

창문은 열려있었고 내부에 들어찬 안개를 헤치며 한 손에는 빠루를 다른 한 손에는 분무기를 든채 조용히 방문을 열어 봤다.


방 안 침대 위에 이 집의 모든 가족이 누워있었다. 젊은 부부 그리고 유치원생 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그들은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다.

피부가 조금 창백하긴 했지만 가슴만 조금 움직인다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입가에 묻은 거품의 흔적과 바닥에 나뒹구는 표백제로 볼 때 이들은 여기서 이렇게 죽은 듯하다.


그리고 안개는 사람의 시체마저도 변질시키는 듯 그들의 죽음을 붙잡아 놓았다.

언제 죽었는지는 모르겠다. 마치 내가 문 열기 전까지 살아있을 수도 있을 만큼 그들의 죽음은 지금도 생생하다.


“우욱....우엑....”


난 집 밖으로 뛰쳐나가 헛구역질을 했다.

손 발이 떨리고 호흡이 거칠어진다. 머리가 어지럽다.

이상하다. 시체 썩는 악취도 부패해서 끔찍한 모습도 버틸 수 있었는데.

저들은 냄새도 안 나고 모습도 끔찍하지 않다.

하지만.... 난 저 모습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다.


[뭐야? 무슨 일이야?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데?]

“우욱.. 시 시체가..”

[젠장 잠깐 기다려. 담배 피러 나간다고 할 테니까.]


내 유일한 조력자는 언제나 나와 함께 할 수 없었다. 형은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었고 안타깝게도 형의 세상은 주말이 아니었다. 만약 주말이었다면 나의 감각을 통해 함께 할 수 있었겠지만 우린 그렇게 여유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위험부담을 안고 외부 활동을 시작했지만 너무... 힘들다.


중앙 비상계단에 숨어 숨을 골랐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숨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쉽지가 않다.


“허억...허억...후우...진정.. 진정해.. 진정하라고 시발. 이런 개 좆같은.. 왜 계속 심장이 뛰는거..”


점점 거칠어지는 숨소리와 미약하게 경련까지 일어나는 팔다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조금씩 나빠지는 것 같다. 이상하다. 충격적이지만 이 정도인가?


“이...시발 좆 같은 안개.”


아... 난 지금 외부에 있다. 안개에 접촉 중인데 아까 그 썩은 내 풍기는 목 매달린 집이라도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옥상에 왔다. 기다려. 동기화 한다. 감각 연결했고. 보인다. 뭐야 뭔 일이었길래 심장이 이렇게 뛰는 거냐? 식은땀도 나네? 다친 곳은 없어 보이고 맥박이 불규칙하다.]

“...안에 락스 먹고 죽은 가족을 봤어요.”

[그런 거 한 두 번 봤냐. 포탄에 찢긴 시체 위로도 기었던 놈이.]

“....애가... 유치원 가방을 매고 누워 있더라고요.”

[....개 시발.... 알았다. 혼자 서기 프로젝트는 잠정 보류다. 게임 난이도가 시발스러워 도대체 다른 놈들은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지속적인 정신 압박이라니. 풀었던 동기화 다시 올린다.]


나에게 있어선 앞으로 몇 년 뒤, 태창이 형의 세상에선 몇 년 전에 가장 어두운 던전이란 게임이 출시되었다고 한다. 로그라이크라는 흔한 장르의 생존형 게임이지만 특이한 특징이 하나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 관리. 체력이 0이 되면 케릭이 죽는 건 당연한거고 스트레스가 최대치를 넘으면 케릭이 죽는 게임이라고 한다.


그리고 시발스럽게 다행히도 태창이 형은 그 게임을 즐겨 했다고 했다.

그래서 변해버린 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는 시작부터 스트레스 관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동기화. 0에서 30으로 올린다. 지금은 내가 회사니까 이 정도가 한계야. 더 올리면 내 상사 대가리 후려칠 수도 있으니까.]

“큭.. 알았어요. 감사. 근데 상사 좋은 사람이라면서요?”

[응? 아 내 사수 말고 부장말이야.]

“아.. 머리 벗겨진 십새...”

[그만. 넌 욕은 자제해라. 욕도 정신 상태에 영향을 주니까. 그리고 여기서 동기화 더 올리면 나 사고 칠 수 있다. 아직 회사 더 다녀야 해.]

“후우....좀 살 거 같네. 이제 진정이 됐어요.”


거칠어지던 숨이 골라지고 심신이 안정된다. 안개로부터 지속적으로 받아오는 정신적 압박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동기화. 우린 이 현상을 동기화라 표현한다.

태창이 형은 나의 감각과 감정을 공유한다. 그렇기에 어쩔 땐 나보다 내 상태를 더 정확하게 판단하기도 했다. 그런 태창이 형이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우린 연결 되어있다. 너의 감각이 그리고 감정이 내게 영향을 미치고 내가 그걸 느낄 수 있어. 그런데 말이야. 그 반대는 어떨까?]


그래서 만들어진 기술이 동기화다.

내가 겪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부담을 태창이 형이 일정 부분 부담하는 기술.

지금 우리의 동기화율은 30%.

매고 있는 가방과 들고 있는 빠루가 좀 더 가벼워진 느낌이다.

그리고 조금씩 쑤셔오던 두통이 사라졌다.


“됐어요, 마저 수색하고 갈게요. 근데 괜찮겠어요? 일해야 하는데?”

[크윽. 이 짓도 계속하니까 적응되더라. 걱정마. 부장 새끼가 건들지만 안으면 입 닥치고 키보드만 두들기다 퇴근할 거다.]


내가 겪는 모든 부담을 형이 30% 대신 맡는다. 주말에 집에서 침대에 누워 나와 연결된다면 더 높은 동기화를 할 수도 있지만 형은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

나와 마찬가지로 형도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위험을 안고 가는 위태한 삶을 살고 있다.

동기화를 어떻게 하는지 나는 모른다. 형의 능력이니까.

형 또한 감각의 영역이라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냥 편하게 게임 옵션 건들 듯 0에서 30으로 변경했다고 이해하는 편이다.


잠시 정비를 하고 나는 계단을 올랐고 태창이 형은 옥상에서 내려간다고 했다.

시각은 15시를 조금 넘겼다. 얻은 소득은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하나 못해 나는 필요 없을지라도 벌집에서 물물교환할 물건이라도 찾아야겠다.

가장 좋은건 약인데.. 가볍고 가치가 가장 높다. 영양제라도 얻는다면 최고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성장에 필요한 영양이니까.


똑.. 똑...

크힉... 크어....


얼마의 시간이 흘러 몇 집을 더 확인하고 5층에 다달을 무렵 노크로 안쪽을 확인하던차 안에서 반응이 들려왔다.

‘감각’을 올려 본다. 철판의 현관문 너머 기척을 느끼기 위해 집중했다.

서늘한 공기와는 다른 시린 안개의 기운이 흐름이 느껴지며 안쪽에서 시리도록 차가운 뭉친 기운이 현관문 쪽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조용히 속삭이듯 태창이 형에게 예고를 날렸다.


“백귀...안에 백귀가 있다. 형 들려요?”

[후우... 몇 마리가 느껴지냐?]

“하나.. 하나 뿐이에요. 잡아 보죠.”

[잠시만 주변 확인하고 좋아. 아주 잠시만 동기화를 올린다. 50이다. 충분할 거야.]


좀 더 가벼워진 빠루를 세게 쥐고 조용히 문을 땃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뒤로 빠지며 문 뒤로 숨었다.


철컥

크어어어!

빡!


문을 열자마자 튀어나오는 머리를 향해 거침 없이 쇠지렛대를 내려쳤다.

내 얇고 마른 팔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힘이 빠루에 담겨 놈의 골통을 부시고 박혀들어갔다.


“상황 종료.”

[아 확인. 남은 위협은?]

“확인 중. 없음.”

[적당히 하고 집에 들어가라. 내가 죽겠다.]

“알았어요.”


바닥에 쓰러진 그것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피부는 회색 빛이고 눈은 붉게 충혈되어 인터넷에서 보던 무서운 귀신 짤 같이 보인다.

백귀다. 안개에 잡아먹혀 변질되어 버린 사람의 모습.

어떻게 사람이 백귀가 되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아까 표백제 먹고 죽은 가족은 안개에 휩쌓여도 시체로 남아 죽음을 유지하는데 이놈은 살아서 움직인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백귀로 변하는 건가?

좀비와 비슷한데 차이는 좀비는 시체로 움직이지만 이들은 살아 있는 상태에서 변한 것 같다.


“....”


어쩌면 아마도 어쩌면 이 모습 안에 사람이 남아있지 않을까?

쓸데없는 생각.

바닥에 쓰러진 놈은 무서운 외형을 가졌다. 붉은 눈에는 사람의 이성이나 감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느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쾌한 감각이 이놈에게서 느껴진다. 이건 사람의 형상을 닮은 무언가다. 우리완 다른 전혀 이질적인 무언가.


그리고 쓰러져 죽은 백귀의 주변으로 안개가 피어오른다. 아주 미약하게 집중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의 희미한 흐름. 그 흐름이 내게로 흘러들어온다.

우리가 이 세상을 게임처럼 생각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가 이거다.

괴물을 잡으면 그 괴물 내에 쌓여있는 안개가 잡은 사람에게로 흘러들어온다.

강하면 강할수록 큰 힘이.

그래 마치 레벨업하는데 경험치를 얻는 거 같다.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을 얻는 거라 찝찝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마주쳤던 다른 생존자들은 이걸 각성이니 마나니 하면서 괴물 사냥을 선호하는 편이었기도 하고.


아직까지 괴물 잡다가 물려 죽었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경험치를 과도하게 먹어 위험해졌다는 말은 못 들었다. 괴물같이 강한 사람들은 있다고 들었지만.

처음에 나는 소설 속에나 나오던 레벨업이니 각성이니 하며 설레기도 했지만 나와는 다르게 태창이 형은 강하게 의심했다.


[야이 원숭이 새끼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없어. 전부 의심해라.]

“....”


우린 같은 이진우인데 좀 다르다. 내겐 없어진 10년이 형에게는 큰 변화를 줬나 보다.


만약 동기화 전이었다면 내 심장은 지금쯤 미친 듯이 뛰고 있었겠지. 흥분과 두려움 등으로.

하지만 지금은 차분하다. 마치 한발 물러서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거 같다.

동기화라는거 어쩌면 나라는 지분의 30%를 태창이 형에게 빌려줌으로서 내 감정과 감각을 그만큼 덜 느끼는 걸지도 몰랐다.


삐빅. 삐빅.

손목에 시계가 울린다. 설정 해둔 시간인 17시다.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출발할 시간.


“지치네. 집에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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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익숙한 천장 +1 24.09.02 29 3 12쪽
21 양날의 검 +1 24.09.01 34 3 13쪽
20 어그로 +1 24.08.30 40 2 13쪽
19 둥지에서의 하룻밤 24.08.29 33 3 13쪽
18 꿀벌들의 일과 24.08.27 35 3 12쪽
17 능력과 경험치 24.08.26 36 2 14쪽
16 출항과 옆집 늑대들 24.08.25 34 2 13쪽
15 어른의 사정 +2 24.08.23 43 2 12쪽
14 바뀐 대가리 +1 24.08.22 39 2 12쪽
13 철창 속 정화 24.08.20 40 2 12쪽
12 정리와 침식 24.08.19 45 2 12쪽
11 야간 전투 24.08.18 45 2 13쪽
10 마석 24.08.16 45 1 13쪽
9 첫 번째 임무 24.08.16 53 2 12쪽
8 합류 24.08.13 56 3 12쪽
7 다중이 24.08.12 59 3 12쪽
6 검문소 24.08.10 63 2 13쪽
5 우리 집 24.08.09 71 2 14쪽
4 안전 귀가 24.08.06 84 3 12쪽
» 동기화 24.08.05 104 6 13쪽
2 튜토리얼의 끝 24.08.04 129 5 12쪽
1 삼위일체 24.08.04 17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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