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이드(Dec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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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미소
작품등록일 :
2024.08.04 21:47
최근연재일 :
2024.09.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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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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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

DUMMY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고 팀원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가는데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백귀 하나 잡는 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길을 걸었다,


“쓸만하더냐?”


무뚝뚝하고 저음의 중후한 목소리가 문신 아저씨의 복면을 뚫고 흘러나왔다.

짙은 농도로 복면을 다 통과되지 못한 건지 복면 내부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말하는 걸 처음 들었다. 험악하게 생긴 얼굴과 어울려 짐승의 울음소리 같았다.


자연스럽게 2 경비 대장이 떠오른다. 문신 아저씨의 두 배는 될 듯한 근육질의 입에서 나오는 가볍고 쾌활했던 목소리.

남자는 근육보다는 목소리인가? 그러고 보니 태창이 형 목소리가 굵었나?


“예. 떨지도 않고 서포트 잘해 주던데요? 밖에서 살았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거 같아요.”


문신 아저씨의 물음에 선두에서 걷던 상철이 형이 좋은 말을 해주었다.

무심한 듯하지만 이들은 아직도 날 관찰 중이었다.


“그것도 못 하면 병신이지.”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인해 그 안에 뉘앙스나 의도를 알기가 어려웠다.

마치 사실을 말한다는 듯 덤덤한 말투였으나 내용은 명백한 시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뭘 하겠나? 생긴 걸로도 가까이 가는 것조차 쫄리는데.


슬쩍 새치 아저씨의 기색을 살피니 복면을 썼음에도 떨떠름해보이는 표정이 보이는 것 같다.

팀장으로서 팀 내의 불화와 분열을 제지해야 했지만 망설이는 기색이다.

이해한다. 대놓고 시비 걸린 나도 무서워서 눈을 깔았는데.


이 팀에서 저 문신 아저씨의 얼굴을 마주 보고 눈을 안 깔 자신이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딱 한 사람만 빼고.


짝!

문신 아저씨의 몸무게에 딱 절반은 될 것 같은 여리여리해서 입고 있는 옷조차 커 보이는 민지 누나가 감히 아저씨의 팔뚝을 세게 쳐댔다.


“오빠. 애한테 사과해. 말이 심했어.”

“....”


죽고 싶은 건가? 맞은 팔뚝을 무심히 내려다보던 문신 아저씨가 누나를 쳐다... 아니 노려 보는 거 같다.마치 육식동물이 자신을 공격한 미쳐버린 초식동물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호랑이가 토끼의 눈을 피해 내리깔았다.

그러더니 문신 호랑이가 내게 어슬렁 다가왔다.


“미안하다. 내가 생긴 것만큼 입이 험해가, 가끔 이런다. 이해해라.”

“..아닙니다. 행님.”


조폭 영화에서나 들었던 행님 소리가 내 입에서 절로 튀어나왔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호랑이 앞발이 들리며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별다른 힘을 준 것 같지 않은데 내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아저씨 팔뚝에 그려진 잉어가 내 눈앞에서 한참을 헤엄치더니 멀어져 갔다.


“늦었다. 다들 좀 서두르자.”


새치 아저씨의 독촉에 다시금 다들 말없이 걸었다.

만약 저 문신 호랑이의 심기를 건들였다면 무조건 민지 누나를 찾아야겠다는 중요한 정보를 머릿속에 우겨넣고 열심히 발을 놀렸다.


청계천에 붙어있는 검문소에서 동쪽으로 나아갈수록 주변 건물의 높이가 점점 높아져갔다.

왕복 8차선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탁 트인 거대한 공터가 나왔다.

교차로다. 4 방향에서 건물들이 주변을 애워싼 거대한 장소가 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지인 백화점은 그중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저게 어떻게 안 무너진 건지 반쯤은 철골이 드러날 정도로 부서진 백화점 입구에 들어서자

위층 잔해 사이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정지. 여왕벌.”

“늦었소. 급하니까 빨리 내려와서 밥 받아 가주시오.”


암구어 확실히 안 하면 1 경비대장에게 개 털린다며 궁시렁 거리는 소리와 함께 2층에서 사람들이 내려왔다.

확실히 정규 병력들은 옷차림부터 달랐다.

기술자들이 만들었는지 그들이 입고 있는 평범한 옷들 사이로 은빛 쇠사슬이 언뜻 비친다.

안감에 쇠사슬로 갑옷처럼 덧댔나 보다. 백귀 따위는 이빨도 안 박힐 거 같은데?


보기만 해도 무게가 상당해 보이는데 기온이 낮아서 다행이지 여름엔 죽어 나갈 거 같다.

내 우려와는 달리 잔해를 타고 내려오는 그들의 움직임은 민첩했다.

무고한 민간인은 다 죽었다. 살아남았다면 강하다는 증거다.


교묘하게 막혀있던 입구가 치워지며 들어갈 길이 생겼다.

1층의 커다랗고 어수선한 로비에선 거점의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복면을 내리며 우릴 환영해 주었다.


“오늘은 좀 늦게 오셨네. 어라? 처음 보는 애인데? 요즘엔 애들도 외부로 돌리나?”

“이번에 우리 팀에 새로 들어온 애요. 인사 드려라.”

“안녕하세요. 이진우입니다.”


형식적인 인사가 오가고 가지고 온 식량과 물을 분배했다.

그동안 사람들의 모습과 장소를 훑어보는데 뭔가 이해가 안 갔다.

여긴 중요장소로 인원들이 점거한 거점이다. 이들이 지키고 있는 건 지하에 있나?

식품 코너? 식량을 지키는 건가? 하지만 안개에 접촉된 건 먹을 수 있어 보여도 결국 못 먹는데?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채 개방되어 있었다.

이들이 주변을 감시하는 위치도 2층이나 3층 무너진 잔해들 사이에 숨겨진 거점이다.

지키고 있는 게 지하가 아닌가? 그럼 뭐하러 여기 있는 거지?


“시간이 빠듯하니 바로 가야겠소. 다음 사람들도 기다리고 있으니.”

“아 다음에 올 때 새끼 돼지한테 말해 뒀으니 몰래 양주 한 병 받아다 주쇼.”

“기억해 두겠소. 새끼 돼지 양주 한 병.”


궁금증을 풀 새도 없이 우린 나 때문에 촉박해진 일정으로 다음 장소로 출발했다.


“그런데 백화점에선 뭘 지키고 있는 거에요? 필요한 건 다 벌집으로 옮기면 되잖아요?”

“나중에 설명해 주마. 이동 중엔 필요한 대화만 한다.”


잠시 묻어두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백화점 다음은 주유소였고 그 다음은 아파트 단지 사이에 교묘하게 자리 잡아 물건들이 온전한 대형 매장이었다.

돌다 보니 공통점이 보인다. 거점을 방어하는 병력들은 지켜야 할 대상에서 한 발 떨어져서 근무를 서고 있었다.

백화점은 지하가 아닌 지상 2층 위에서 주유소와 대형 마트는 그 옆 건물에 자리를 잡고 감시 중이었다.


“마치 안개에 절여진 자원들을 남들이 훔쳐 갈까 보호하는 모양인데요?”

[유통기한이 있는 것들을 관리 한다라. 안개에 변질되어 못 쓰게 된 것들인데 이걸 되돌릴 방법이 있다는 건가?]


몰랐었는데 휘발유에도 유통기한이 있었다. 이것 또한 음식들처럼 안개 속에서 변질되어 자동차에 넣고 돌리면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태창이 형 말대로 방법이 있는 건가?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우리의 궁금증은 얼마 가지 않아 풀리게 되었다.


“정지. 필요한 곳은 다 돌았다. 이젠 우리도 쉬면서 밥 먹자.”


시각은 오후 15시 24분. 늦은 점심이었다.

마지막 들른 곳에서 어젯밤 소음이 났던 구역을 확인해 달라는 장소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고 쉴 곳을 찾았다.

주변에 널려 있는 아파트 중 3층에 올라 아무 문이나 따고 내부에 들어섰다.


창문이 열려있었는지 안개가 들어찬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팀원들은 외부 창문과 커튼을 처대며 집 전체를 최대한 외부와 격리된 밀실로 만들려 했다.

안개의 특징 중 하나는 신기하게 밀폐에 가깝게 공간이 만들어 진다면 농도가 점차 연해진다는 거다. 물론 많은 시간을 사람이 거주하고 있어야 조금씩 변화가 일어난다.

마치 개 같이 높은 난이도로 만들어진 생존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들을 위해 마련된 최후의 안전장치처럼.


이런 현상으로 실내와 실외에서의 차이가 크기에 거점 또는 집이 매우 중요해졌다.

괜히 내가 우리 집의 위치를 안 들키려고 죽어라 개고생한 게 아니다.

쉴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에 지금 팀원들의 노력은 내가 보기엔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잠깐 쉬었다 가는 장소에서 우리가 필요한 농도가 낮아진 휴식처를 얻기엔 불가능했으니까.

내 생각과는 달리 음식을 나눠 받은 팀원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문신 행님과 야수 조련사 누나는 좀 떨어져서 둘이 오붓하게 앉아 음식을 먹는다.

문가에 자리를 잡고 안쪽에 누나를 앉히며 보호하는 듯이 자리를 잡는다.

컨셉이 미녀와..야수인가? 미녀보다는 청순하다는 게 어울리는 수수해 보이는 여대생과 조폭 두목의 로맨스라니. 난 행님과 눈 마주치기 전에 얼른 시선을 돌렸다.


상철이 형은 베란다 창 쪽에 붙어 외부를 경계하며 쉬었고 나와 새치 아저씨만이 한 가운데 앉았다.


“쉴 때는 확실히 쉬어야지. 처음 온 사람도 있으니 마석을 쓰지.”


마석? 게임에서나 나올 용어들이 어른들 입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느낌이 이상하다.

새치 아저씨 품에서 투명한 플라스틱 소주병이 하나 나왔다. 이미지완 다르게 임무 중 술을 먹나 싶었지만 병 안에는 다른 게 들어 있었다.

내부엔 검은색 돌조각 같은 게 보였다. 고체 같으면서도 표면이 액체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신기한 돌이었다.


“백귀 말고 다른 괴물 본 적 있나? 여기선 보기 힘들겠지만 서울 중심부로 갈수록 말도 안되는 괴물들이 존재한다. 그놈들을 사냥하면 몸속에서 이런 게 나오지. 우린 이걸 마석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뚜껑을 열고 아저씨는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었다.

아주 조심히 끝부분을 칼로 잘라내는데 마치 터질 수 있는 폭탄 대하듯 신중히 긋는다.

자른 손톱만큼이 떨어져 나가고 칼 끝에 올려진 조각이 미리 대기하고 있던 물컵 안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물컵 주위로 서서히 안개가 밀려나기 시작하며 방을 넘어 문틈들 사이로 밀려 나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오... 졸라 신기해.”

“... 그건 좀 반응이 너무 애 같다.”

“하지만 신기한데요?”

“리액션은 풍부해서 맘에 드는군. 보여주는 맛이 있어.”


내 반응이 흡족했는지 새치 아저씨의 입은 멈출 줄 몰랐다.


“세상 모든 건 저 안개라는 미지의 힘과 영향을 주고 받는다. 편하게 마나, 그리고 이 검은 돌은 마석이라고 부르지. 아까 백화점의 물품을 왜 벌집으로 안 옮기고 거기서 지키냐고 물어봤지? 이 주먹밥을 예를 들어보자. 이걸 안개 속에 놔두면 어떻게 될까?”

“안 변해요. 썩지도 변색도 없이 시간이 멈춘 듯 고정되어 버려요.”

“그래. 마나의 영향으로 그렇게 되지. 하지만 사람은 좀 다르다.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보단 살아있는 의지를 가진 생명체들은 다르다고 해야겠군. 의지를 가진 생명체는 마나를 체내에 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구로서 사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요?”


내 물음에 잠시 고민을 하더니 새치 아저씨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근육을 키워 말도 안 되는 힘을 낸다던가, 회복력을 올린다던가, 아니면 특이한 정신적 상상을 현실화시킨다던가.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극대화되고 우리가 살았던 예전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것들을 실체화시키는 사람들이 생겨났을 때 우린 그들을 능력자라 부른다.”

“....”


태창이 형의 말로는 2 경비대장의 근육은 도저히 내츄럴로는 만들 수 없는 근육량이라고 했다. 10년 뒤 널리 알려지게 될 헬스인들의 꿈인 불법 약물 없이 커다란 근육을 가질 수 있는가의 해답이 경비 대장이라고 한다.

물론 약물 대신 마나라는 게 대체 되었지만... 별 차이 없나? 마나는 완전히 몸에 좋은 건가라고 누가 물어오면 대답할 자신이 없다.


지금 세상 어딘가에서 꾸준히 약을 공급받는다는 건 불가능하기에 경비대장의 근육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현실을 넘어선 초자연적인 무언가를 실체화한다면 능력자라고 분류할 수 있다.


“이 마석은 그런 힘이 농축된 결과다. 순수한 힘의 결정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이런 방식으로 사물에 쌓인 마나를 걷어낼 수 있다. 백화점에 쌓여 있는 먹을 수 없는 식량들을 빠르게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이지.”

“어? 그럼 자원들을 벌집 근처에 다 옮겨 놓고 사용할 수 있게 천천히 바꾸면 되잖아요?”

“말했지. 사람들 또한 몸속에 마나를 쌓을 수 있다고? 의지를 가진 생명체가 가까이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품은 마나가 강하면 강할수록 주변 물건은 영향을 받는다. 수백의 사람이 모인 벌집 근처에 자원들을 가져다 놓으면 이 방법을 쓰기 전에 식량들이 안개 독을 품은 채 서서히 부패 되기 시작할 거다.”


사람. 의지. 그리고 영향.

실내에 오래 머물수록 그 공간에 안개는 점점 밖으로 밀려나 안전 가옥이 만들어진다.

살고 싶은 사람의 의지가 발현되어 일어나는 현상인가? 말이 되는 거 같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희망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 그럼 백귀는요? 사람이 안개에 잡아먹혀 변한 백귀에 그 마석을 쓰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까요?”


나름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는데 날 보는 새치 아저씨의 표정이 이상하다.

눈에 무언가 담겨있는 거 같다.


“하지 마라. 끔찍한 걸 보게 될 테니. 시도조차 하지 마.”

“....”


더는 묻지 않았다. 아저씨의 목소리에 담긴 건 고통이었다.

잠깐의 휴식 이후 우린 단 하나의 대화 없이 검문소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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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어그로 +1 24.08.30 40 2 13쪽
19 둥지에서의 하룻밤 24.08.29 33 3 13쪽
18 꿀벌들의 일과 24.08.27 35 3 12쪽
17 능력과 경험치 24.08.26 36 2 14쪽
16 출항과 옆집 늑대들 24.08.25 34 2 13쪽
15 어른의 사정 +2 24.08.23 43 2 12쪽
14 바뀐 대가리 +1 24.08.22 39 2 12쪽
13 철창 속 정화 24.08.20 40 2 12쪽
12 정리와 침식 24.08.19 45 2 12쪽
11 야간 전투 24.08.18 45 2 13쪽
» 마석 24.08.16 45 1 13쪽
9 첫 번째 임무 24.08.16 54 2 12쪽
8 합류 24.08.13 56 3 12쪽
7 다중이 24.08.12 59 3 12쪽
6 검문소 24.08.10 63 2 13쪽
5 우리 집 24.08.09 71 2 14쪽
4 안전 귀가 24.08.06 85 3 12쪽
3 동기화 24.08.05 104 6 13쪽
2 튜토리얼의 끝 24.08.04 129 5 12쪽
1 삼위일체 24.08.04 17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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