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이드(Decade)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한줌미소
작품등록일 :
2024.08.04 21:47
최근연재일 :
2024.09.04 13:24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1,345
추천수 :
64
글자수 :
130,766

작성
24.09.04 13:24
조회
30
추천
2
글자
13쪽

능력의 급수

DUMMY

벌집에 소속된 모두는 예외 없이 할당받은 일을 해야만 했다.

역할을 부여받고 일을 수행한 후 식량을 배식받는다. 농부, 대장장이, 의사, 전기기술자 등.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추가 성과가 있다면 역시 점수를 화폐처럼 지급했다.


사진을 찍고 이름과 함께 전산에 등록되었다.

정식 주민 2635번

벌집의 총 인원 수는 531명. 중간의 이천 정도의 숫자는 이제는 사라진 숫자다.

개인 사정으로 양호실에 붙어있게 된 나는 지난 이틀 동안 자연스레 의사 선생님의 잔심부름을 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중앙 건물 뒤편에 마련된 빨래터에 피 묻은 시트를 한 아름 안고 가는 중이다.


옛 고등학교였던 이곳은 총 5채의 건물이 있다. 행정실과 작전실 그리고 양호실 등이 있는 가장 큰 5층 짜리 중앙동, 다음으로 큰 ㄱ자로 중앙동과 이어진 주거지인 가동. 그리고 생산시설이 밀집해 있는 조금 떨어진 나동, 나머진 창고와 식당이 차지하고 있었다.


학생을 700명 넘게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지만 그때는 그저 공부하러 왔다가는 것뿐이었다. 이제는 그보다는 작지만 500명의 집이 되었기에 당연히 반드시 필요한 시설들이 자리를 차지해야 했다.


내가 가고 있는 빨래터 또한 중앙동과 가동 사이 공터에 지어진 장소였다.

세탁기가 10여 대가 있고 옆 청계천까지 지하 공사로 뚫어놓은 중앙 우물가에 이미 여러 명의 아줌마들이 어린애들을 데리고 아침부터 빨래가 한창이었다.

평범한 천 옷들이 아니라 이제는 갑옷이라 부를 것들은 사람의 세심한 손길이 필요했다.

안감에 쇠사슬로 대어진 외투를 빨던 아줌마 옆에서 물장난을 치던 아이가 날 발견하고 손으로 가리켰다.


“다중이 형이다.”

“이리 와. 엄마 옆에 꼭 붙어있어.”


의도적으로 무심한 척 내가 앉을 만한 돌을 골라 앉아 세탁감들을 물에 넣었다.

벌집 내의 학부모들은 애들이 내 곁에 가까이 오는 걸 싫어했다.

모험심과 만용이 섞인 애들에게 있어 밖에서 생활한 난 높은 호기심의 대상이었으니까.

내게서 헛바람이 들어서 자기 자식이 밖으로 나간다 땡깡부릴까, 마치 비행청소년 취급한다.


넓은 돌판에 시트를 올리고 주변에 비치된 나무 방망이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뭐든 다 아껴야 한다. 최대한 핏물을 빼고 세제는 조금씩 써야 했다. 날 슬금슬금 관찰하는 주변의 크고 작은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할 일을 했다.


퍽.. 퍽...

슬그머니 몸 안에 느껴지는 마나를 움직여 휘둘러 보았다.

전신에 퍼져 잠들어 있는 힘들을 깨워 오른손에 집중시킨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의지에 따라 이동하는 게 느껴지며 내려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퍽! 퍽! 빡!

“으헉! 헉.. 헉... 아이씨 또 찢어졌네”


내려치는 행동과 함께 몸속 힘의 흐름까지 동시에 하려니 힘 조절을 못했다.

오른손에 모이는 마나의 움직임이 불규칙하게 너무 강하거나 뚝뚝 끊겨서 근육이 아파온다.

에이씨 시트 또 찢어 먹었네... 의사 할아버지가 난리 칠 텐데.

가뜩이나 폭력성이나 정신 이상이 있나 정신감정을 몇 번이 받았는데 이걸로 오해 살 수도 있기에 되지도 않는 노력으로 이미 찢어진 걸 붙여보려 애쓰다 포기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면 경험치를 얻는다. 이건 꽤 섬뜩한 예상이 유추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극단적인 집단만 아니라면 잘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살인자는 그 피해자의 마나와 함께 그 안에 섞인 의지까지도 같이 잡아먹게 된다.


피해자의 성격, 말투, 행동 등이 얻은 경험치를 흡수할 동안 남아 살인자를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건 사람 미치게 하기 딱 좋은 저주와 같다. 자기가 죽인 사람의 영혼이 괴롭히는 것 같은 기분을 버텨야 비로소 완전히 경험치를 소화했다고 한다. 이걸 사람들은 혼팅이라 불렀다.

그렇기에 거의 대부분의 생존자 집단들은 여전히 살인을 최악의 범죄로 규정하고 금지한다.

한 명 죽일 살인자가 미쳐버려 연쇄살인범이 되기에 적합한 환경이어서.


그런데 내가 죽인 놈은 사람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려던 싸이코목사 새끼였다.

그것도 C급이라는 능력자. 혼팅의 강도는 급이 높아짐에 따라 강해진다. 이제껏 자기보다 급이 높은 사냥감을 잡은 사례가 흔치 않았다. 그런 놈을 잡은 난 한동안 양호실에 붙들려 행동을 감시당하고 알 수 없는 무수한 질문지에 답을 해야 했다.

괜찮은데. 난 혼팅이란 징후가 안 나타났다. 왜지? 이것도 동기화 때문인가?


“제발... 난 세뇌당했었다고!”

“지랄 말고 좀 빨리 가자. 추방형이잖아. 목숨은 붙여준다니까?”

“이대로 어딜 가라고.. 제발..”


양 건물 사이로 보이는 운동장 방면에서 소란이 일었다.

포승줄에 가벼운 차림으로 묶여 끌려가는 사람들이 십여 명은 되어 보인다.

이틀 사이에 벌집에서 색출해낸 김 목사와 접점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목사 새끼는 나에게만 영향을 끼친 것뿐 아니라 벌집 전채를 뒤집어놨다.

몇몇은 자진 신고로 통발이라 불리는 철창에 들어갔다. 그들이 특별한 배신행위를 한 건 없었고 그저 잠시 놀아났을 뿐이기에 안전을 증명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저기 있는 대부분은 모른척하며 숨어있다가 수사로 걸린 사람들이다.


두 대장은 경쟁하듯 저들을 찾아내었다.

1 대장은 심문과 증거 유추, 그리고 그동안 사망 사건을 되돌아 보면 접점이 있는 용의자들 중에서 합리적으로 추적해 내었다.

2대장은?

‘이 새끼? 너 왜 내 눈 피해? 너 그때 어디서 뭐 했어?’

‘어 자기는 땀은 왜 이리 흘리지? 덥나? 영상 3도인데 이상하게 많이 흘리네?’

따위로 잡아들이는데 신기하게 다 맞췄다. 1대장 보다 더 많은 배신자들을 찾아내었고 한창 놀려댄 근육남으로 인해 어제 교실 하나가 박살이 났다고 한다.


“그놈의 능력은 백귀의 살점과 채액을 매개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이었나봐. 놈이 죽으니까 그 안에 담긴 의지도 사라져서 세뇌도 풀리고 내부침식도 안 일어나더라.”


어느새 지아 누님이 내 옆에 가까이와 그나마 덜 젖은 돌부리에 걸터앉았다.


“그래도 원해서 그런 것도 아닌데 눈 가리고 맨몸으로 추방까지는 좀.”

“죽는 것보다는 낫지, 사망 사건에 연루된 놈들은 벌써 잿더미가 됐어.”


C급 능력자 하나 때문에 사람 여럿이 죽어 나간다.

C급이라... 10년 뒤 미래엔 판타지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설정이라고 한다.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인 건지 내 세상에서도 똑같은 등급표가 있었다.


E급 일반인.

D급 몸 속의 마나를 쌓고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자.

C급 그 마나에 의지를 실어 실체화시킬 수 있는 자.

B급 마나를 제어하는데 극에 달해 마나 그 자체에 개인 고유의 색을 나타내는 자.

A급 자신의 완고하게 다져진 의지로 현실에서 ‘영역화’를 실현 시킬 수 있는 자.


이 설명을 지아 누님에게 들었을 때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마침 옆에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우리 눈치를 보더니 전부 자리를 떴다. 지금이 타이밍이다.


“근데 C등급은 그렇다 치고 그 위에 등급 본 적 있어요?”

“없지.”

“근데 그런 구분은 어떻게 했어요? 본적도 없는데?”

“아. 설명 안 했구나? 벌집은 가맹점이야. 본점은 따로 있어. 목동 경기장에.”

“목동 경기장? 서울 반대편에 있는 거기요?”

“서울의 중심부는 여기완 달라. 엄청난 괴물들과 그 괴물들을 사냥하는 헌터라는 자들이 있는 곳이야. 거기서 가장 강한 세를 가진 연합이란 곳에서 이곳으로 사람을 보냈어. 생존자들을 모아 이겨낼 수 있는 집단을 만들어 놓으라고. 그게 벌집이야.”

“그럼 거기에 A급들이 있다는 거죠?”

“그 이상도.”


A급은 거의 전략 병기 수준이라고 한다. 건물을 맨손으로 부수고 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는 초인들. 그런 사람들보다 더 높은 등급의 사람도 있다니 도대체 이 마나라는 건 뭘까?

편하게들 마나라고 부르지만 전문가나 학식 있는 과학자들 사이에선 공식 명칭이 있다고 한다.

우주에 분명 존재하나 관측할 수 없는 암흑물질.

그게 모종의 이유로 우리에게 내려와 세상을 이 지랄로 만들었다는 게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이라고 한다.

사람이나 세상이 개판 난 걸 보면 썩 어울리는 이름이긴 하다.


내가 잡은 김 목사란 놈은 그런 곳에서 온 놈이라고 한다.

그리고 왠지 그곳에 우리가 찾는 단서가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노원이라는 초보존에서 고렙존인 서울 반대편을 갈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하는데.

조급한 마음에 지아 누님을 쳐다봤다.


“어떻게 하면 가진 능력을 키우고 강해지죠?”

“모르지. 연합엔 커리큘럼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긴 기껏해야 C급 3명 아니 너까지 4명이잖아. 각자 알아서 길을 찾는 중이야. 정해진 방법 같은 건 없어.”

“그게 무슨....말이 되네?”

“능력이라는 거 개인 의지와 재능에 영향을 받아 발현되는 거야. 지영 언니의 의수는 섬세하게 진짜 팔처럼 움직이지. 이걸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을까? 그 근육질 놈은 어떻고? 너도 마찬가지 잖아 다중 인격을 어떻게 남을 알려줘.”

“혼자 찾아라?”

“고유 능력은 그렇지만 공통 능력은 알려줄 수 있다더라. 뭐 예를 들면 전기나 불을 뿜는다던가 염력이라던가 그런거. 그런데 네 능력은 뭐야?”

“아 저는 동기화라고 다른 세...”

[야이! 미친 새끼야!]

“겍.....”


아오 혀 씹었다. 난 머릿 속에 울려오는 고함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머리가 멍청해도 병신은 아니다. 내 비밀을 아무 꺼리낌 없이 잘 모르는 여자에게 말하려 했다고? 순간 그녀와 슬그머니 거리를 벌렸다. 그 모습을 보던 지아 누나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간다.


“들켰네? 어? 야 그 시트 꼬지마. 진짜로 나 그걸로 후려칠려고?”

“대답 여하에 따라서.”

“역시 네 그 다른 인격이 답변을 막은 거지? 나 기자 출신이었어 알지? 인터뷰하는 게 업이었다고. 이상하게 저 안개가 내려앉은 뒤로 내가 질문하면 사람들이 ‘답’을 술술 해주더라고.”

“그 그럼?”

“아마 이게 내 능력일 거야. ‘취재’가.”

“증명은?”

“하 참.. 지영 언니가 배신자들 심문을 누구한테 맡겼을 거 같니?”

“아.”

“그래도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이다? 이건 전투와 관련 없는 능력이라 알려지면 안되.”

“그런데 제겐 왜 알려준 거에요?”

“내가 말해줬니? 니가 알아챘지. 난 C급에 못 미치나 봐. 제어가 안되. 사람들과 대화하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더라고. 그래도 너니까 중간에 이상함을 알아챘지 다른 사람들은 내가 되게 사교성이 좋은 줄 알아. 막 비밀도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말이야.”

“음..”

“능력이란 이런거야. 모호하고 딱떨어지지 않는 실체화지. 그래도 그렇게 거리 두지마 몰랐으면 모르되 넌 이미 ‘취재’를 알잖아. 이제부턴 안통할거야. 그러니까 너도 니 능력 잘 숨겨.”


찜찜함을 애써 누르고 다시 앉았었던 돌 위로 슬그머니 엉덩이를 원위치 시켰다.


“그럼 결국 방법을 혼자 찾을 수 밖에 없네요.”

“그렇긴 한데. 너한테 멘토가 붙을 거야 그거 말해주러 왔어.”

“멘토?”

“지영 언니랑 그 근육 돼지가 너 서로 데리고 가겠다고 한참 싸웠는데 결국 교장선생님의 중재로 다른 사람이 널 맡기로 했어.”

“그게 누군데요?”

“벌집의 첫 번째 능력자이자. 가장 미친.. 아니 이건 못 들은 걸로 하고 아무튼 대머리에 이상한 놈이 이따가 너 찾아갈 거야. 그 사람 따라가면 돼.”

“대머리?”


내 되물음에 지아 누님의 눈가가 다시 한번 휘어진다. 저 눈 상당히 매력적이면서 짜증난다.


“미리 말해주면 재미없잖아. 이상하긴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럼 나 간다?”


뜻 모를 말만 남기고 누나는 멀어져 갔다. 난 조용히 조력자의 의견을 물으려 했다.


“뭔 소린지 알아요?”

[... 죄송합니다. 제가.. 그 갑자기.. 약을 안 챙겨 먹어서...]


태창이 형의 말이 들렸지만 저건 내게 하는 말이 아니다. 아마도 또다시 사무실에서 나 때문에 고함친 거 같다. 형에겐 많이 미안하다. 그의 회사 생활은 얼마 안 남았겟지.

내가 안전해진 만큼 형의 사회 생활은 위험해져 간다. 해결책이 필요한데.. 저건?


지아 누님이 간 방향에서 오물통을 짊어지고 한 남자가 다가온다. 아는 사람이다.


“잠깐 얘기 좀 하지.”


내가 깔빵 놓았던 최기철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디케이드(Decade)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능력의 급수 24.09.04 31 2 13쪽
22 익숙한 천장 +1 24.09.02 30 3 12쪽
21 양날의 검 +1 24.09.01 35 3 13쪽
20 어그로 +1 24.08.30 40 2 13쪽
19 둥지에서의 하룻밤 24.08.29 34 3 13쪽
18 꿀벌들의 일과 24.08.27 36 3 12쪽
17 능력과 경험치 24.08.26 37 2 14쪽
16 출항과 옆집 늑대들 24.08.25 35 2 13쪽
15 어른의 사정 +2 24.08.23 44 2 12쪽
14 바뀐 대가리 +1 24.08.22 40 2 12쪽
13 철창 속 정화 24.08.20 40 2 12쪽
12 정리와 침식 24.08.19 46 2 12쪽
11 야간 전투 24.08.18 46 2 13쪽
10 마석 24.08.16 46 1 13쪽
9 첫 번째 임무 24.08.16 54 2 12쪽
8 합류 24.08.13 57 3 12쪽
7 다중이 24.08.12 60 3 12쪽
6 검문소 24.08.10 64 2 13쪽
5 우리 집 24.08.09 71 2 14쪽
4 안전 귀가 24.08.06 85 3 12쪽
3 동기화 24.08.05 104 6 13쪽
2 튜토리얼의 끝 24.08.04 130 5 12쪽
1 삼위일체 24.08.04 180 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