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이드(Dec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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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미소
작품등록일 :
2024.08.04 21:47
최근연재일 :
2024.09.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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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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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문소

DUMMY

“진짜로 재웅이가 경찰됐음?”

[그렇다니까.]

“나도... 아니지 형이 경영학 전공하고 양복 입고 회사 다닌다는 것도 아직 안 믿기는데?”

[하면 되더라.]

“아니.. 같이 술 먹고 담배 폈던 재웅이가 경찰? 김재웅 말하는 거 맞죠?”

[맞다니까. 친구도 몇 명 없었는데 다른 김재웅이 또 있겠냐?]


어제 저녁 다른 생존자들과 교류가 필요할 때가 되었다고 우린 동의했다.

내가 필요한 것들보다 남들에게 쓸모 있어 보이는 물건들만이 집안에 쌓여가자, 이제는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정보도 얻고 가진 물품도 교환할 겸 오늘 점심 무렵 천천히 집을 나섰다.


옆에 흐르는 청계천을 따라 쭉 뻗은 6차선 도로 위를 걸었다.

버려진 차들로 즐비한 엄폐물을 주변에 두며 서두름 없이 나아갔다.

오늘의 계획은 널널하게 잡았기에 천천히 걷는 동안 잡담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고

그러다가 나에게 있어 충격적인 미래의 사실 중 하나를 알게 되었다.


“아니 나랑 같이 전교 밑에서 놀던 재웅이가 경찰 시험을 합격했다고? 그 양아치가 왜 경찰임?”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지가 하고 싶었나 보지.]

“술 먹고 담배 빨던 일진이 경찰도 할 수 있음?”

[지랄하네. 누가 들으면 존나 막 놀던 새끼들인 줄 알겠다. 명문 사립중학교 다니던 새끼들이 무슨 얼어 죽을 일진이냐.]

“어...어? 님 대청중학교 나온 거 아님? 나랑 다른 사람인가? 그래도 학교에서 꽤 잘 나갔,,”

[염병 떨지 마라. 어설프게 숨어서 술 담배 먹던 걸 무슨 영움담같이 포장하냐. 그냥 사고도 제대로 못 치던 쫄보 새끼들 사춘기였다. 그러니까 그놈이 경찰 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지.]

“어... 음...”


안개 속 정신 압박을 버티는데 대화가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걸 우린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여유가 있다면 우린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주로 농담이나 나랑은 상관없는 미래에 흥미로운 이야기들....

그런데 지금은 정신이 더 나갈 거 같다. 태창이 형이랑 나에 관해 대화할수록 한 가지 의문이 점점 강해진다.


나....설마 병신이었나? 몰랐던 건가?

윽... 자기 부정, 혹은 흔들리는 자존감을 파고들어 안개가 정신을 흔들려 한다.


[잡담은 여기까지 지금부턴 긴장해라. 벌집의 영역이다.]

“나는 어떤 삶을.... 에? 아. 확인.”


16살 전반을... 아니 17살 전체를 돌이켜 보려던 내게 진지한 형의 목소리가 들려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경계했다.


6차선의 넓게 뚫린 도로 끝에 상당히 넓은 교차로가 보였다.

그리고 동쪽 노원역 방면으로 강물 위에 다리가 하나 세워져 있었다.

본래라면 없어야 할 구조물들이 다리 위를 차지하고 그 구조물 위에 사람 모습이 간간이 비친다.


강 반대편 고등학교를 점거한 벌집의 전초기지 겸 외부인을 받아들이는 장소. 검문소.

창문동과 노원을 잇는 다리 위에는 합판과 철판으로 세운 벽과 입구 역할을 하는 대형 버스들이 튼튼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어째 전보다 더 높아진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지금부터는 사람을 상대하는 거다. 괴물과 부대낄 때는 내가 항상 붙어 있었지만 사람은 다르다. 모든 걸 너 혼자 생각하고 결정할 거다.]

“그러니까 왜 그렇게 하는데요? 서로 상의하면 더 좋은 결정을 할 수 있잖아요.”

[....그 이유를 알게 되는 게 이번 미션의 목표로 하지.]


어젯밤 계획을 세우던 중 형은 이상한 말을 했었다.

검문소에 가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판단되지 않는 한 형은 개입하지 않을 거라고.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며 대충 넘어갔었는데 땜질한 강철 벽을 보자 쫄려 온다.


“진짜 보기만 할거임? 우리 이주 전에 저기서 사고 치고 쫒겨나듯 나왔었는데?”

[저놈들도 우리 탓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몸 성히 보내줬잖아. 괜찮을 거다.]

“아 그때 괜히 형이 개입해서 사고 났다고 생각하는 거임? 에이 부끄러워서 그렇구나?”

[장난 그만해라. 잊지 마라. 난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니면 지켜만 볼 거다.]

“....확인.”


형은 정말 진지해진다면 오히려 욕을 하지 않는다.

진심인가 보다. 난 ‘혼자서’ 오늘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천천히 내 몸을 가려주었던 폐차 뒤에서 나와 길 한 가운데를 걸었다.

주변에 크고 작은 생존자 무리들이 있지만 벌집은 그 중 압도적으로 큰 규모의 집단이다.

그렇기에 저들은 외부 사람을 마주하는 데 있어서도 접근을 허용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규칙만 잘 지키면 날붙이 날아올 일은 없다.

눈에 띄게 천천히 대로 가운데로 접근할 것.

시간은 12시부터 16시 사이에 다가올 것.

그리고..


“정지! 거기서 멈춰! 너! 존만한 새끼! 무기 보여!”


가진 모든 무기를 드러낼 것.

높은 벽 위에서 찍어 내리듯 날카로운 경고가 날아온다.

내 오랜 친구인 통짜 쇠로 만들어진 빠루를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거래하러 왔어요! 나도 노원구 주민이었어요!”

“안 물어봤어 새끼야! 무기 보이라고!”

“이... 이게 다인데요?”

“너 같은 애새끼가 꼴랑 그거 하나 들고 나다닌다고? 장난하냐? 뒈지고 싶어?! 어디 소속이야?”

“어.. 저 혼자 인데요?”

“이 새끼가 대가리에 화살을....잠깐? 너? 다중이냐?”


다중이. 전에 처음 벌집을 들렀을 때 사고 친 내게 붙어버린 별명이었다.

안 좋은 기억을 아직까지 기억하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몰라 대답을 망설였다.


“네... 다중이입니다. 이주 전에 왔었어요.”

“밑에 옆문으로 들어와!”

[....]


아무래도 좋은 거였나 보다. 통과가 허락된 걸 보니.

관문처럼 세워진 버스 옆면에 난 출입문이 열리며 길이 생겼다.

모든 창이 철판으로 용접된 버스 안에 올라 내부에 들어서자 세 명의 남자들이 각각 의자에 널브러진 채 담배를 태우며 조심히 들어오는 나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지 지나갈께요. 실례합니다.”


땀과 피로에 찌든 내가 옷에 깊게 배어있는 그들은 조심히 지나가려는 날 무심하게 처다보았다. 왜 저렇게 빤히 보는거야.

부담스럽게...날 보던 아저씨 중 한 명의 입이 열리며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나 가신덴다..실례 하신다는데? 이 놈 혼자 왔다며?”

“주변 확인했는데 혼자 맞다는데?”

“어떻게 안 죽고 돌아다닌 거지? 애새끼 하나가? 의심스럽지 않아? 쁘락지 같은데?”

“잡을까?”


건조하게 오고 가는 음성만 들었다면 모르겠으나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그들에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며 들어왔던 입구로 뒷걸음질 쳤다.


“그.. 물물 교환하러 왔는데.. 가방에도 많이 들어있어요. 확인 해 보면..”

“어리버리하니까 더 수상한데. 멈춰라. 꼬마야. 가방에 뭐가 들어있을 줄 알고 가방에서 손 떼라.”


한 아저씨가 내 팔목만 한 대검을 꺼내 들었다. 모양새가 딱 던지겠다는 동작이라 가방으로 가던 손이 한순간에 멈춰버렸다.

지... 지금이 도와줄 상황 아닌가? 위험하잖아! 지금! 태창이 형!


“이.. 이주전에도 한 번 왔었어요. 그러니까.. 거래도 하고... 그러다가 다중이라고 별명도 붙고...”

“다중이?”

“왜 아는 놈이야?”


칼 날아올 거 같아서 되는 데로 지껄였는데 아저씨들 중 한 명이 내 별명에 반응했다.


“너야? 기철이 옆구리 칼빵 논 게?”

“어... 그건 그때 증거도 없이 막 저를 광신도라고 모함해서...”

“성인 남성 둘이 제압을 시도했는데 한 놈 턱을 돌려버리고 기가 막히게 옆구리 쑤셨다면서?”

“아... 그게.. 그러니까...”

“통과!”


예? 뭐라고요?


“기가 막히게 찔렀다더만. 방탄판 사이로 한치만 높게 올라갔어도 그놈 골로갈뻔 했다더라.”

“뭐여.. 그게 저놈이여? 어린 놈이었다고는 들었는데? 너무 말랐잖아?”

“깡이 있는 놈이었네. 그럼 인정이지.”

[....]


그러고선 자기들끼리 인정한다며 담배에 불을 붙여 내게 건내려 했다.

난 최대한 정중하게 사양하며 그들이 비켜준 사이를 걸으며 검문소 내부로 들어올 수 있었다.


......

......



“뜯지 않은 생리대 두 봉지, 포장된 건전지 5통, 오 타이레놀 5알. 이건... 뭐냐? 무좀 연고?

아니 이 귀한 걸 어디서? 이건 따로 빼놔. 이따가 나한테 개인적으로 팔아라.”


물건이 주인을 잘 만난다면 가격이 달라진다. 내겐 필요 없는 게 다른 사람에겐 절실할 수 있으니까.

합판과 철판으로 이루어진 검문소는 다리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생각보다 넓은 내부엔 많은 방들이 있었고 중앙엔 물을 길어 올리는 커다란 도르레가 보였다.


들어오자마자 나는 개인적으로 사고파는 상인들보다는 벌집 소속의 공식 거래 창구에 내 가방을 쏟아부었다. 흥정에는 불리하지만 최소한 말도 안 되는 사기는 치지 않을 거란 믿음으로 머리가 반쯤 벗겨진 아저씨의 감정가를 기다렸다.


내부엔 벌집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외부인들의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전에는 거의 못 봤던거 같은데...

벌집 사람들과 외부인은 특징적으로 다른 점은 없었다. 다들 밖에 널려있는 옷을 주워 입고 쇳덩이들을 옷 여기저기에 달아 놓은 모습에선 차이점을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거대한 집단에 소속되어 가지는 작은 여유와 강 위를 점거하여 충분히 공급되는 물로인한 그들의 장비의 상태가 외부인과 구분되게 만들었다.

외부에서 거래를 위해 방문한 사람들 얼굴은 때와 얼룩보다는 피곤함과 좌절감이 더 짙게 붙어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냄새가 너무 심했다.

물을 구할 수 없는지 아니면 씻기 귀찮은 건지 공수증이 있는 나보다도 냄새가 심해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윽... 방금 지나간 남자는 이빨이 전부 썩었나 보다. 아니 여자였던가?


“... 다 해서 식량으로 바꿔달라고?”


계산을 마쳤는지 대머리 아저씨가 날 보며 물어왔다.

고개를 끄덕이자 아저씨는 턱을 긁적이며 손가락을 접었다.


“보존기간이 길면 이틀 치, 통조림이나 햄 같은 것들 말이야.”

“양으로 주세요. 무조건 양으로 많이.”

“양만 보겠다라? 맛까지 포기하면 일주일 치.”

“...종류가 뭔데요?”

“쥐고기, 비둘기, 귀뚜라미 말려서 갈아낸 가루.. 나머지는 모르고 먹는 게 나을 거다. 배 채우는 데는 이만한 게 없지.”

“먹고 안 죽어요?”

“무슨 원시인 보듯이 하는데 우리도 임마. 회사다니고 스테이크 썰어 먹었던 놈들이야. 위생 철저히 한다고. 먹고 안 죽어.”

“알았어요. 근데 영양제 같은 건 없어요?”

“영양제? 약? 아 그래 넌 키도 커야 하는구나. 근데 비싼데? 이걸론 부족해.”

“.....그냥 양으로 많이 주세요.”


물물교환이라 정해진 가격은 없지만 덤탱이 맞는 기분이다.

대머리라서 그런가 이 아저씨 상당히 인색한거 같은데..


“너 혼자 돌아다닌다며?”

“예? 아 예.”


내 몫을 담아주던 아저씨가 목소리를 낮추며 주변을 둘러본다.


“나갔을 때 말이야. 혹시 말이야 술이나...그... 비아그라 알어? 안다고? 그런 거 구하면 나한테 따로 팔아야. 내가 제값 쳐줄게.”

“.... 구하면 모아볼게요.”

[.....]


제값을 쳐준단다. 그럼 지금은 제값이 아니란 말이잖아.

그래. 게임에서도 상인들이랑 거래하려면 신뢰도 같은 걸 먼저 쌓아야 효율이 증가한다.

일단은 안면 익힌다 생각하고 조용히 있다가 가자.


태창이 형은 본인이 약속한 대로 거래가 마무리 될 때까지 조용했다.

나 스스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는 건가? 이러면 임무 완료인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태창이 형의 시선이 느껴지는 거 같다. 아마 본인 방에 누워 계속 지켜보고 있는 중일거다. 구박도 많이 하고 욕도 잘하지만 형은 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할 거라는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나’니까.


“자 조금 더 넣었다. 살아서 또 보자? 겁대가리 상실한 다중아?”

“감사합니다. 대머리 아저씨.”


통성명 따윈 없었다. 다음에 다시 왔을 때 만날 보장이 없었다.

둘 중 하나가 잘 못 되거나 아니면 둘 다.

그렇기에 이곳에서는 주고받는 것만 확실하면 된다.


이곳은 저 밖에서는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생존자들이 모여 거래라는 문명이 있던 예전이라면 당연하게 했던 일을 할 수 있게 만든 장소였다.

그렇기에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부담 없이 주고받아서 헤어진다.

짐을 챙기려는데 부담스러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어이~ 다중아. 오랜만이다! 이야~ 삼촌은 너 다시 돌아올 줄 알았다니까. 삼촌 팀에 들어오고 싶어서 왔구나?”


잘 모르는 아저씨다. 이름과 얼굴만 안다.

김 호철. 40대. 벌집의 제 2 경비대장.

군복에 선글라스를 끼고 부담스러운 근육을 나시로 뽐내는 아저씨가 내게 가까이 오고 있었다.

문제는 저 아저씨 자기를 삼촌이라 부르며 날 상당히 좋아한다.

부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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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어그로 +1 24.08.30 40 2 13쪽
19 둥지에서의 하룻밤 24.08.29 34 3 13쪽
18 꿀벌들의 일과 24.08.27 36 3 12쪽
17 능력과 경험치 24.08.26 37 2 14쪽
16 출항과 옆집 늑대들 24.08.25 35 2 13쪽
15 어른의 사정 +2 24.08.23 44 2 12쪽
14 바뀐 대가리 +1 24.08.22 40 2 12쪽
13 철창 속 정화 24.08.20 40 2 12쪽
12 정리와 침식 24.08.19 46 2 12쪽
11 야간 전투 24.08.18 46 2 13쪽
10 마석 24.08.16 46 1 13쪽
9 첫 번째 임무 24.08.16 54 2 12쪽
8 합류 24.08.13 57 3 12쪽
7 다중이 24.08.12 60 3 12쪽
» 검문소 24.08.10 64 2 13쪽
5 우리 집 24.08.09 71 2 14쪽
4 안전 귀가 24.08.06 85 3 12쪽
3 동기화 24.08.05 104 6 13쪽
2 튜토리얼의 끝 24.08.04 130 5 12쪽
1 삼위일체 24.08.04 180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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