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이드(Dec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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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미소
작품등록일 :
2024.08.04 21:47
최근연재일 :
2024.09.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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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글자수 :
130,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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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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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정리와 침식

DUMMY

어보미라고 불린 그건 끔찍하고 혐오스러웠다.

백귀들이 녹아내려 뭉친 듯 살덩이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육체 곳곳에 붉은 눈이 달린 얼굴들이 박혀있고 그들이 생전 입었던 옷들이 어지럽게 뭉쳐있어 보는 것조차 힘겨웠다.

본능적인 혐오감. 있어선 안 될 것들의 집합체.

그 거구가 살덩어리가 뭉친 주먹으로 땅을 찍어댄다.


쿵! 쿵!

아스팔트 도로의 파편과 살점이 한데 뭉쳐 날아다닌다.

하지만 놈의 목표물이었던 2 대장은 온몸에 쇳덩이를 짊어졌음에도 그 무게를 전혀 못 느끼는 듯 유연하게 회피하며 등 뒤 대형 망치로 손을 뻗었다.


퍽!

내려찍은 살덩어리의 연결 부분에 망치가 휘둘러진다.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진 망치에 맞은 부위가 포탄 맞은 듯 터져나갔다.

마치 대형 망치가 살점을 뜯어 먹은 것처럼 뜯겨 나가 덜렁거린다.

진득한 검은 피가 뜯긴 부위에서 흘러나와 도로에 퍼져나갔다.


“계속 쏴! 아니 석궁 말고 물 쏘라고! 저 덩치에 그 이쑤시개 꽂는다고 티가 나니? 이 시발놈아? 대장이 저놈 상대할 때 동안 계속 물로 견제하란 말이야!”

“각 팀별로 내부 정리해라. 외부는 우리가 막을 테니까. 서둘러!”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다. 아니 그러기엔 2 대장의 덩치가 꿀리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도 크기는 몰라도 무게는 차이가 없을 거 같다.


쾅! 쾅!

내 예상이 맞다는 듯 괴물의 주먹과 맞부딪치는 망치가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다.

주변으로 비산하는 살점이 점점 많아져 가며 그 크기가 점점 2 대장과 같아지고 있었다.

갈아서 죽일 생각인가? 무식하고.. 지저분하지만.. 먼가 좀 멋진 거 같은데?

역시 남자는 목소리보단 근육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구경 그만하고 와서 도와라. 빨리 안 하면 검문소 전체가 침식될 거다.”

“어...? 저기 안 도와 줘도 되요? 아직 안 끝났잖아요.”

“저길? 근처에 다가갈 수나 있겠냐? 그리고 이것도 급한 일이다. 너도 알텐데? 백귀 시체 놔두면 어떻게 되는지.”


내부로 들어온 놈들은 정리됐지만 아직 외부는 전투 중이었다.

벌집의 경비병들이 외부를 맡아 싸울 동안 내부 지원병들은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다들 익숙한 듯 움직이기에 나도 말없이 손을 거들었다.


진득한 검은 피들을 흘리는 백귀 사체를 들어 올려 준비된 리어카에 차곡차곡 쌓는다.

백귀를 처음 봤을 땐 영화나 소설에서 보던 좀비와 구분할 수 없었다. 특징과 행동 방식이 너무 비슷했으니까.그래서 망치를 대가리로 깨부술 때 이놈들이 피가 거의 나오지 않을 때에도 시체라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사체들이 쌓이자 진득하고 검은 피가 바닥에 고일 정도로 흘러 나온다. 마치 녹아내린 타이어 같았고 냄새도 그만큼 지독했다.

빗자루로 쓸어내고 쓰레받기로 모아서 양동이에 담아 리어카에 실는다.

이 모든 과정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다.


나와 새치 아저씨, 그리고 성태 형과 문신 형님이 한 팀으로 움직이며 사채를 날랐다.

방금 전에 일도 있고 해서 성태 형과는 일부러 멀리 떨어져 작업했다.

그리고 민지 누나는 대걸레와 양동이를 들고 다니며 뒤처리를 했다.


전투는 끝나지 않았지만 이 작업도 중요했다.

이놈들이 죽은 후엔 사체에서 천천히 안개가 빠져나온다.

마치 그 안에 들어 있는 힘은 그걸 죽인 사람이 모두 뽑아가고 남은 독기만이 나중에 나오듯 주변을 침식시키는 지독한 악의가 풀려나온다.

그렇기에 거주지 주변에서 백귀를 잡았다면 멀리 버려버리거나 태워버려야 한다. 지금처럼.


“전부 실어서 뒤쪽 입구로 보내. 소각장까지 운반할 놈들 손? 너랑 너 갔다와라.”


이들은 꽤 익숙한 듯 신속하고 막힘없이 치워나갔다. 한참을 싸운 후에 하는 게 청소라니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방금 전 목숨을 건 싸움이 거짓말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욱신 쑤셔오는 팔 다리가 내 느낌을 부정했다.


쾅! 쾅!

“3소대! 멀리 돌아! 나머진 다른데로 유인해 봐! ”

방벽 밖은 아직 전투 중이었지만 소리는 점차 멀어져 갔다. 오늘치 싸움은 이제 마무리 단계인지 소란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게 병력을 따로 멀리 보내는 거 같았다.


“괜찮을까요? 안 도와 줘도?”

“오히려 화낼 거다. 자기들 사냥감에 숟가락 들이민다고.”

“예?”

“가끔은 니가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이 특이해서 이상할 때가 있다. 다 아는 걸 모르고 어떻게 살아남았지라고. 다른 사람이랑은 이런 대화 하지 마라. 의심부터 할 거다.”


외부에서 벌집으로 합류하려는 사람들 중엔 다른 세력에서 넘어오는 스파이가 가끔 있다고 한다. 내 사정을 어느 정도 들은 새치 아저씨였기에 내 무지를 이해해줬지, 아니었으면 다리 아래 매달렸을 거라고.


“이상하지 않아? 기껏 저렇게 벽 세워 놓고 문 열고 때려잡는 게?”

“숫자가 너무 많아서 벽을 타고 넘어오게 하는 것보단 좁은 입구를 열어 숫자를 통제하는 게 나으니까요. 이성이 없는 적들을 상대로 좋은 전술이라고 했어요.”

“니 안에 그 태창이라는 놈의 생각이냐?”

“예, 적의 숫자를 조절하며 전선을 안팎으로 확대해서 넓게 싸운다.”

“음...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말로 해석하니 그럴듯하군. 아니 우린 본능적으로 이게 유리한 걸 알았을지도.”

“어? 아니에요?”

“맞을 거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경험치와 레벨업 때문이지. 검문소는 서울 도심에서 몰려오는 괴수 무리를 막는 벌집의 관문이자. 사냥터다.”


경험치 그리고 레벨업. 많은 사람들 입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게임에서나 나올 만한 용어가 그것도 나이를 먹은 어른들 입에서 나올 때마다 어색했지만 이보다 더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 없었다.


이번 전투에선 다양한 무기들이 날아다녔다. 화살, 마체태, 소방 도끼, 쇠파이프 창.

하다못해 양동이로 퍼붓는 물까지.

딱 하나 없는 무기가 있다.

21세기에 무기라면 반드시 떠올려야 할 인류가 도달한 살상의 정점.

총이 없다.


원래부터 총기 규제였던 우리나라에서 근처를 수색하면 구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지만

세상은 천천히 망했다. 나라를 잃어버린 군대는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았었고 그들이 관리했던 무기들이 곳곳에 퍼져 얻는 게 불가능한 무기는 아니다.

하지만 총은 괴물과의 싸움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


경험치 때문이다. 괴물을 사냥하고 놈들이 품은 힘을 얻어낸다.

그리고 그러한 힘은 사냥꾼의 의지와 괴물의 인식에 영향을 받는다.

예전에 군인이었다는 2 대장이 말한 적 있었다.


‘그냥 죽이기만 해서 강해진다면 대공포 버튼 누른 놈들은 지금 다 날아다녀야 했어.’


내가 널 사냥한다. 넌 나에게 죽는다. 이런 인식을 괴물에게 강하게 심어줄수록 경험치가 더 많이 들어온단다. 그렇기에 이런 방식의 싸움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직접 놈들을 쳐 죽이는 야만적인 싸움법이.


반면에 총의 이점은 사라졌다. 장거리에서 적을 사살한다는 건 안개로 인해 방해되었고 총알에 맞아 쓰러지는건 괴물 보다는 사람에게 더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시끄럽다.

총성 한 번에 한 두 놈 잡아야 할걸 온 동네 괴물을 다 잡아야 할 상황이 만들어진다.

슬프게도 총은 괴물보다는 사람에게 사용할 때가 더 효과적이다.


그렇게 해서 이런 전략이 나왔다. 몰려오는 놈들의 숫자를 조절할 수 있으면서 병력들을 돌려가며 막아내는 방식. 이건 거주지가 아닌 전초기지이기에 가능한 전술이다.

우리에겐 뒤에 벌집이라는 보급기지가 있으니까.


“살기 힘든 세상으로 변했다. 그런데 강해지는 방법을 찾아냈지. 사람들이 어떻게 될거 같냐?

다들 강해지겠다고 목숨 걸고 나오는 거지. 지 목숨 챙기는 놈, 먹여 살릴 가족이 있는 놈, 아니면 그걸 다 빼앗긴 놈. 그래서 자기 사냥감 건드리는 거에 민감하다.”


‘내 막타 뺏어 가지마라.’

머리를 스쳐 간 방망이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 경험치 얻는 거에 다들 민감하니까 성태 형이 그렇게 반응했다는 건가요?”

“... 아까 성태랑 부딧친 거 너 아니었지?”

“... 예. 그런데 그 형 행동이 정상이 아니었잖아요.”

“안다. 하지만 갈등을 놔둘 수는 없다. 잘 넘어가려면... 아무래도 니 상태에 관해 말해야 할 거 같다.”


2대장과 새치 아저씨 그리고 나는 내 상태에 관해 비밀로 하기로 했다.

반드시 숨겨야 하는 비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떠벌리고 다녀서 주목받는 게 좋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걸 아는 사람은 3명 뿐이었다.

나머지 팀원들은 몰랐고 그래서인지 지난 일주일간 팀원들과 보이지 않는 벽처럼 거리감이 있었다.

확실히 다중인격이라 미쳤다고 하면 될 거 같기는 한데..

난 조심히 새치 아저씨와 거리를 벌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태창이 형 보고 있어요?”

[그래. 생각 중이었다. 너도 이상하다 느꼈지?]

“형답지 않게 너무 감정적이었어요. 내가 할 만한 실수였다고 생각 되는데..”

[그래. 잠시 이성을 잃었다. 나도 방금 대화를 하면서 이상하다 생각했지. 그러니까 너 오른 손 확인 해봐라.]


오른손? 아.. 아까 백귀한테 물린 곳?

가죽장갑에다가 안쪽에 덧대서 뚫리지 않았는데?

검은 피로 덮여 진 장갑을 문질러 조금 닦아내자 이상함이 보였다.


“어? 장갑 색이? 침식됐다?”


검은 피가 뭍은 갈색 장갑 표면에 회색 선으로 이빨 자국이 생겨있었다.

급하게 장갑을 벗어서 손가락을 확인했다.


[침식이다. 아주 옅지만 손가락에 흔적이 남았어. 이것 때문이다.]

“...또 한 동안 고생하겠네.”

[젠장. 밤에는 물려 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입고 있는 옷까지 뚫다니. 부위가 너무 작아서 나조차 느끼지도 못했다.]


백귀들은 좀비와는 다르다. 물리면 감염이 아닌 침식 당한다라고 표현한다.

맨손의 내 피부는 하얬다. 부족한 일조량과 매일 갑옷처럼 둘러맨 옷들로 인해 하얗게 변한 피부 위로 희미하게 회색 선이 보인다.

그리고 그 선에 악의가 세어 나온다.

불안감, 피해 망상, 우울, 불안, 이 악의들이 점차 몸을 잠식하고 끝내 머리에 닿으면 새로운 백귀 한 마리가 세상에 나온다.


“....”

“....”


아.. 손을 들여다 보는걸 멈추고 장갑을 끼려는데 성태 형과 눈을 마주쳤다.


“아악!”

“젠장. 이 새끼 물렸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려간다. 난 재빨리 장갑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걸 꺼내 끼었다.

소란이 난 곳을 보자 한 남자의 손을 문 백귀 대가리가 붉은 눈을 빛내며 매달려 있었다.


“확인 사살 확실하게 하라니까. 골통을 부숴놓으라고. 물린 놈 따로 빠지고 다들 하던거 마저하쇼.”


경비병이 별거 아닌 일이란 듯 상황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그러고는 물린 남자에게 다가가 물린 부위를 확인하며 물었다.


“죽을래? 아니면 담길래?”

“제 젠장.. 나 사 살거야. 살고 싶어!”

“그러니까 담궈질 거냐고.”

“이 날씨에 강물에서 3일을 버티라고? 그건 죽는 거랑 다름이 없잖아!”

“그럼. 지금 죽던지.”


그러면서 경비병은 조용히 칼을 꺼내 들었다.


“할께! 한다고! 근데 정말 살 수 있는 거야?”

“있어. 백귀에 물린 시간이 얼마 안 지났다면 물에 들어가 침식을 버틸 수 있다. 그 다음은 정신력 싸움이야. 버티면 사람으로 나오는 거고 못 버티면..뭐”

“몇 명이나 성공했는데?”

“10”

“열 명?”

“10%. 열 명 들어가면 하나 나오더라. 다들 알지? 혹시나 물렸다면 빨리 하는 게 좋을 거다. 어차피 있다가 전부 확인 할 거야. 늦으면 니들 손해니까. 물렸다면 지금 말해라.”


그 소리에 몇 명이 주춤거리며 경비병에게 다가갔다.

숨겨 봤자 소용없다. 어차피 자기 손해이니까. 조금이라도 살 확률이 높을 때 밝히는 게 나았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다시 한번 성태 형과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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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능력의 급수 24.09.04 30 2 13쪽
22 익숙한 천장 +1 24.09.02 30 3 12쪽
21 양날의 검 +1 24.09.01 35 3 13쪽
20 어그로 +1 24.08.30 40 2 13쪽
19 둥지에서의 하룻밤 24.08.29 33 3 13쪽
18 꿀벌들의 일과 24.08.27 36 3 12쪽
17 능력과 경험치 24.08.26 37 2 14쪽
16 출항과 옆집 늑대들 24.08.25 35 2 13쪽
15 어른의 사정 +2 24.08.23 44 2 12쪽
14 바뀐 대가리 +1 24.08.22 39 2 12쪽
13 철창 속 정화 24.08.20 40 2 12쪽
» 정리와 침식 24.08.19 46 2 12쪽
11 야간 전투 24.08.18 45 2 13쪽
10 마석 24.08.16 46 1 13쪽
9 첫 번째 임무 24.08.16 54 2 12쪽
8 합류 24.08.13 56 3 12쪽
7 다중이 24.08.12 60 3 12쪽
6 검문소 24.08.10 63 2 13쪽
5 우리 집 24.08.09 71 2 14쪽
4 안전 귀가 24.08.06 85 3 12쪽
3 동기화 24.08.05 104 6 13쪽
2 튜토리얼의 끝 24.08.04 129 5 12쪽
1 삼위일체 24.08.04 180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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