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이드(Dec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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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미소
작품등록일 :
2024.08.04 21:47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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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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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로

DUMMY

분대장의 표정과 무전 내용으로 상황이 안 좋다는 건 지나가는 개도 알만했다.

문제는 얼마나 안 좋냐는 건데. 동선이 노출됐다. 그 말은 배신자가 있다는 소린가.

우리 중에?


“...넌 아니고 나도 아니면 남은 사람들 중에.. 젠장...”

“누군지 아세요?”

“.. 눈치는 있는 놈이군. 일단 이거 잘 숨겨놓고 있어. 느낌이 안 좋으니까. 뭔지는 알지?”


분대장은 작은 투명 플라스틱 용기를 건내주었다.

본적 있다. 물과 마석 조각으로 만들어진 마석 폭탄. 터지면 주변 일대 안개의 흐름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꽤 비싼 무기인데... 왜 날 주지?

의문이 들었지만 난 다른 팀원들이 가까이 오기 전에 얼른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예상은 가는데 이해가 안가. 왜 이렇게 까지 하는 거지? 선을 너무 넘었어.”

“아세요?”

“너 때문에 생겼는데 모르면 병신이지.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


나 때문에? 날 노리고 이 짓을 한다고? 궁금함이 밀려왔지만 모여드는 팀원들 때문에 표정관리를 하며 잠자코 기다렸다. 그러면서 왼쪽 손목을 살짝 꼬집었다.


[알아. 보고 있었다. 젠장. 나 지금 밖이다. 빨래방이라서 집까지 뛰어가니까 10분만 눈물의 똥꼬쇼를 해서라도 목숨 붙들고 있어.]


뭔 쇼? 10년 뒤엔 그런 쇼도 하나? 그런데 빨래방이라니 무슨.. 아.. 저쪽은 오늘 휴일이라고 했지. 10분... 내 조력자가 집에 들어가 마음 놓고 도와줄 시간이 10분은 필요하다고 한다.


“목표물 확보했습니다. 분대장님 복귀 준비할까요?”

“... 그래야 하는데 연락이 왔습니다. 강 형사님. 지원요청이.”

“지원이요?”


분대장은 함정이라고 판단한 방금 전의 무전 내용을 팀원들에게 설명했다.

난 한 발 떨어져서 사람들을 살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내가 못 보고 지나친 걸 태창이 형은 볼 수도 있기에 최대한 모두를 보려 노력했다.


“팀 전체의 연락이 끊긴 거면 위험하잖아요. 본대에 연락하죠.”

“24번은 임시팀입니까? 정규요? 그럼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위험합니다.”

“다들 겁이 많으시네. 그냥 뭔 일인지만 보고와도 되잖습니까? 점수 쳐주죠?”


사람들의 의견을 갈렸다. 나올만한 의견 같았고 이상한 점은 모르겠다. 분대장은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다 손을 들었다.


“요청은 거부한다. 본대에 복귀해서 정식으로 가는 게 낫다. 우린 임무를 속행하지.”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복귀를 지시하자 팀원들은 군 말없이 돌아갈 준비를 했다.

다행히도 우리 중엔 없는 건가? 미래 누나와 눈이 마주쳤다.

누나는 의문스런 눈빛을 보내와 난 누나의 가슴팍을 쳐다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물이었던 하드디스크를 건내받고 분대장은 서둘러 출발을 명령했다.

조금이라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촉했지만 얼마 안 가 무전기가 울렸다.


-치..치익... 여기는 24번..... 도움이....

“습격당하고 남은 미끼일 수 있다. 무시한다.”

“분대장. 동료가 위험해 처했는데 이러면 근무 태만으로 징계감입니다.”


부분대장이 던진 말에 분대장의 눈가가 일그러지며 한숨 섞인 말이 튀어나온다.


“...하아.. 강형사님.. 아니. 강철수 역시 너였냐?”


남은 팀원들은 이미 출발 전부터 미세하게 다른 분위기를 읽었는지 눈치껏 강형사라 불렸던 남자 주변을 교묘하게 둘러섰다.


“..분대장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이번엔 선 넘으셨소. 애한테 보복한다고 둥지까지 건들여 가며 이 짓거리를 해? 기철이가 얼마 약속했나?”

“무슨 소리요?”

“어제 부랑자 놈들중에 마지막 놈. 입 놀리지 못하게 턱 잘라 올 때까진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이건 아니지.”

“아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지금 다른 팀 지원 요청 안 들렸습니까? 서둘러 가야지!”

“....기철이가 아니야?”


강 형사의 당당한 모습에 분대장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헌데 강 형사의 상태가 이상하다. 다급함이 얼굴이 떠오르며 팀원들의 의심어린 눈초리에도 신경도 안쓴 채 무전 요청에 집착하고 있다.


그때 난 느꼈다. 안개 넘어 시리도록 차가운 무언가가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내 ‘감지’에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음침하고 소름돋는 무언가가 여기로 오고 있다.


삑...삐빅

내 감각이 맞다는 듯 분대장의 손목에 붙은 동작 감지기가 접근을 알린다.


“지금 상황 파악이.. 젠장! 뭔가 온다! 대훈. 상철. 배신자 제압하고 나머진 은,엄폐 해!”

“다들 미쳤나! 빨리 안 도와주러 가면 내 딸이!”


분위기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기에 강 형사에게 휘둘러지는 쇠 파이프와 야구 배트엔 망설임이 없었다. 최대한 빨리 내부의 적을 제압하고 적을 대비해야 했다.


깡! 깡!! 퍼억!

“니들 전부! 내 손으로 찢어 죽일 거다!”


강 형사의 외침과는 다르게 우리 쪽은 그를 쉽게 죽일 수 없었다. 배신자에겐 들을 말이 많으니까. 그렇기에 뼈도 부술 듯이 내려치는 야구 배트는 머리가 아닌 다리 쪽이었다.


휘잉! 딸랑! 뚝.

“어... 몸이... 안 움직여?”


그 순간 상철이 형이 내려치는 동작 그대로 멈춰버렸다.

형 뿐만 아니었다. 뒤에 숨던 미래 누나도, 감지기로 위치를 파악하던 분대장도, 그리고 최대한 저 시리도록 차가운 기운에 멀어지려 뒷걸음치던 나도 멈춰버렸다.


손 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눈동자만 이리 저리 굴려가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려 애썼다.


[뭐해? 이 새끼야. 뭔가 온다잖아! 왜 안 움직... 다들 안 움직여?]


유일하게 태창이 형만이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한 듯 답답한 외침이 들려왔지만 내 입은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모두의 얼굴이 서서히 붉어진다. 안 움직이는 육체를 억지로 움직이려 애쓰는 것 같다.

지금 내 얼굴도 똑같겠지. 서서히 불안과 공포가 올라올 때쯤.


딸랑... 딸랑....

안개 너머 작은 종소리가 우리에게 먼저 다가왔다. 그 후 한 손에는 책과 한 손에는 작은 종을 흔들며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안개를 해치고 다가오고 있었다.


“복된 만남입니다. 온전한 하나이신 그분의 뜻을 전파하는 전도사, 김 목사입니다.

아.. 입은 움직이게 해드리죠. 전도는 대화에서 시작하는 거니까요.”

딸랑.

“강철수 이 미친 새끼. 광신도 새끼들한테 붙어먹은 거냐? 기철이가 아니라?”

“광신도라니...듣기 거북합니다. 일원교라는 은혜로운 명칭이 있는데,”


검은 옷에 남자 뒤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뒤따라 나타났다.

전부 어제 보았던 부랑자들처럼 남루하고 더러운 몰골들이었는데 한 가지 다른 건 그들의 피부는 마치 얼룩말처럼 회색 반점이 가득했다는 거다. 사람으로서 얼마 안 남았다는 신호.


그리고 더 끔찍한 건 그들 사이에 목줄을 차고 눈과 귀를 가린 백귀들이 마치 개처럼 이들 사이에 섞여 있다. 바로 옆에 사람이 아닌 것들이 서 있는데 저들은 신경도 안 쓰는 눈치였다.


“아아... 전도사님 전 노력했습니다. 최대한 약속 장소로 이들을 이끌고 가려 했는데..”

“강철수 형제여. 압니다. 알아요. 괜찮습니다. 본래 보다 힘을 더 소모하겠지만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걱정마세요. 그래도 저들에게 성체를 먹인 공은 사라진 게 아니에요.”

“그 그럼 제 딸은...”

“약속대로 그분의 품에서 하나 되어 만날 겁니다.”

“아.. 아아.. 감사합니다.”


그동안 봐왔던 차분하고 맡은 일을 이성적으로 처리하던 부분대장은 사라지고 무릎 꿇고 목사란 자의 바지를 붙잡고 울부짓는 짐승만이 남았다.

이 모든 광경을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한 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어야 했다.


[헉... 헉... 시발.. 도착했다. 기다려. 어떻게 해서든 방법 찾아볼 테니까. 최대한 보고 들어라.]


지금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잖아. 태창이 형. 젠장! 몸도 안 안움직이는데 분위기 때문에 말 조차 함부로 못 하니 답답해 미칠거같다,

이거 능력인가? 저놈 능력자라는 건가?


“김 목사라고? 그래 원하는 게 뭐요?”


분대장을 괜히 단 게 아니라는 듯 이 상황에서도 그는 침착하게 검은 옷의 남자에게 협상을 요구했지만.


“여러분 모두를 원합니다. 하지만 분대장. 당신은 전도가 어렵겠군요. 강 형제?”

“뭐? 크헉! 너 이 배신자 새끼!”


검은 남자의 눈짓에 망설임 없이 강 형사의 마체테가 분대장의 배를 꿰뚫었다.


“죽으면 안 됩니다. 신의 종으로서 봉사해야지요.”

“예. 전도사님.”


배가 꿰뚫려 쓰러진 분대장 위로 백귀 한 마리가 다가가자 강 형사의 마체테가 그 백귀의 팔을 그었다.


“끼에엑!!”

“참으렴. 그래. 말 잘 들어야지. 신의 종으로 흘린피여. 성스럽도다.”


검고 진득한 피가 분대장의 상처로 흘러내린다. 좆 됐다. 돌이킬 수 없다.

우린 눈 뜨고 분대장이 당하는 걸 지켜만 봐야 했다.


“끄아아아아앆!!!”

“거부하지 마세요. 제 능력은 전도입니다. 흔히들 착각합니다. 이 세상은 지옥이 되었다고.

아니에요. 우린 모두 이미 죽었고 이미 지옥에 빠져있는 겁니다. 그런 길 잃은 어린 양들을 어여삐 여기시어 그분께서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저의 말씀을 따르는 신의 군대가 되세요.”

“조까!!! 시바새끼야아아아악!!!”


목사의 주변으로 소름끼치는 무언가가 퍼져나간다. 그러자 부랑자들과 백귀들 모두가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는 모습을 취했다.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시리도록 차가운 힘이었다. 이것이 능력자인가? 격이 다르다는?


‘재수 없으면 정신계 능력자 마주쳐서 뭐에 당했는지도 모른 채 개죽음 당할 수도 있다.’


그래도 시발 이건 너무 하잖아! 손끝 하나 못 움직이고 당해야 한다고?!


“끄흑...흑...”


팀원들 중 한 둘씩 울음 섞인 안간힘이 입술 사이로 세어 나온다.

공포와 절망이 우리 사이에 퍼져나갔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마치 흥미로운 장난감 보듯이 보던 김 목사가 말했다.


“소용없습니다. 어제 여러분은 성체를 드셨어요. 아 성체라 하면 이들의 살점입니다. 그게 몸 속에 남아 있는 한 여러분은 제 능력 안에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 우엑! 개 시발 역겨운 새끼! 어떻게 사람한테 백귀를 먹일 수 있냐!”


헛 구역질을 하며 도대체 내가 그걸 어떻게 먹었나 고민했다. 어제 먹은 거라고는 감자밖에...

아... 감자. 시발 그거 저 배신자 새끼가 쪘다.

김 목사는 역겹도록 인자한 얼굴이었지만 그곳에 붙어있는 눈은 우릴 보고 즐거워하는 악의가 비쳐 보였다.


“자 여러분은 이제 저의 복음을 듣고 충실한 교인이 되어 벌집에 복귀할 겁니다. 아 걱정마세요. 백귀가 되는 건 분대장 하나뿐일 겝니다. 저자는 교화시키기엔 정신력이 만만치 않아 보여요. 하지만 여러분은 다릅니다. 교인이 될 기회를 드리는 거에요. 이들의 피를 마시고 제 힘을 받아 들이세요. 교에 귀이하시는 겁니다.”


“으아... 안돼... 죽고 싶지 않아... 김 목사님! 김 목사님 제가 그 쁘락찌가 되겠습니다! 자발적으로요!”

“최상철 형제? 맞으시죠? 이미 들었습니다. 형제의 입은 상당히 가볍다는 걸.”

“으아악 야이 개 새끼야! 너 내가 반드시! 으아악!”


부랑자들이 달라붙어 팀원 모두의 입을 벌리고 그 안으로 검은 피를 흘려넣으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곁으로도 다가온다.

두렵다.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 자동으로 덜덜 떨리는 게 느껴졌다.

의지대로 움직이지는 못하는데 공포로 인한 떨림은 할 수 있다는 거야? 죽고 싶지 않아...

아니 죽는 것보다 이건 더 하잖아...제발....


[야 발가락 집중해 봐.]

“으헉..깜짝이야.”


공포로 순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 조력자를. 왜 이제 와!

내게 다가와 강제로 입을 벌리려던 광신도들이 내 반응에 잠깐 멈칫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요구대로 발가락에 신경을 집중해 봤다. 어? 움직인다?


[저 새끼 능력이 뭔지는 모른다. 하지만 니들은 통하는데 ‘나’는 안 통하는 거 같지?]

“그 그렇다면,,”


의식 그리고 몸의 떨림. 무의식적 신체 반응은 할 수 있다. 그런데 태창이 형은 내 의지가 아닌 다른 세상의 의지다. 그렇다면.


[기회는 한 번이다. 계획이 있으니까. 저 새끼 어그로 좀 끌어봐.]

“어 어그로요? 어...어떻게?”

[노래를 부르든 욕을 처하든 저 새끼가 가까이 오게 만들어 보라고. 어리버리 탈 시간 없어 이 새끼야! 팀원 다 죽으면 기회도 없다!]

“야이 씨발년아!!! 이 씨꺼먼 새끼야!!! 이 개새끼야!!!”


갑작스런 내 외침에 김 목사가 나를 쳐다본다.

끌었다. 어그로.

그리고 존나 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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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양날의 검 +1 24.09.01 34 3 13쪽
» 어그로 +1 24.08.30 40 2 13쪽
19 둥지에서의 하룻밤 24.08.29 33 3 13쪽
18 꿀벌들의 일과 24.08.27 35 3 12쪽
17 능력과 경험치 24.08.26 36 2 14쪽
16 출항과 옆집 늑대들 24.08.25 34 2 13쪽
15 어른의 사정 +2 24.08.23 43 2 12쪽
14 바뀐 대가리 +1 24.08.22 39 2 12쪽
13 철창 속 정화 24.08.20 40 2 12쪽
12 정리와 침식 24.08.19 45 2 12쪽
11 야간 전투 24.08.18 45 2 13쪽
10 마석 24.08.16 45 1 13쪽
9 첫 번째 임무 24.08.16 53 2 12쪽
8 합류 24.08.13 56 3 12쪽
7 다중이 24.08.12 59 3 12쪽
6 검문소 24.08.10 63 2 13쪽
5 우리 집 24.08.09 71 2 14쪽
4 안전 귀가 24.08.06 84 3 12쪽
3 동기화 24.08.05 103 6 13쪽
2 튜토리얼의 끝 24.08.04 129 5 12쪽
1 삼위일체 24.08.04 178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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