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이드(Decade)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한줌미소
작품등록일 :
2024.08.04 21:47
최근연재일 :
2024.09.04 13:24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1,342
추천수 :
64
글자수 :
130,766

작성
24.08.22 20:57
조회
39
추천
2
글자
12쪽

바뀐 대가리

DUMMY

남자와 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한심하고 유치한 물음이다.

신체 구조상 남자가 이길수 밖에 없다.

격투기 선수인 여자가 아무리 훈련을 해도 건장한 성인 남성을 상대로 싸움에서 이기긴 힘들다. 한심한 질문이지.. 그런데 말이야.


남자와 여자 둘 중 누가 더 오래 살까? 아니 오래 살아남을까?

안개와 괴물이 없던 시절에도 통계적으로 여성의 수명이 높았다.

그리고 지금 매일매일 육체와 정신 모두 한계를 느끼게 만드는 환경에서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원래 남자라는 생물이 그렇다. ‘괜찮아 안 죽어’ 또는 ‘어? 될 거 같은데?’를 유언으로 가장 많이 남기는 놈들이다. 그런 상태에서 약간의 충동질, 이성을 흔드는 정신 압박을 준다면 며칠 전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야밤에 백귀 무리의 침공으로 3명이 죽었고 그 3명 다 남자였다.

흥분에 못 이겨 전선을 이탈하여 먼저 달려간 두 명과 부주의로 손이 물려 수장된 사람 한 명.


남자는 이성이고 여자는 감성이라는데 안개는 끊임없이 이성을 뒤흔들어 스스로 죽음에 다가가게 만든다.

그리고 여성들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감정 따윈 매달 겪는 경험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똑같은 정신 압박 속에서도 숙련자들의 생존율이 높은 건 당연할지도 몰랐다.

남자든 여자든 약한 사람은 이미 다 죽었다. 살아남았다는 건 강하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1 대장 정지영 누님은 독보적이었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저 근육질의 군인 아저씨와 대등한 대장 자리를 차지했으니까.

잘려 나간 오른손 대신 쇳덩이로 만든 의수에 붙어있는 칼날이 나를 향하고 있을 때,

난 어처구니없게도 두려움이나 억울함이 아니라 다른 걸 가장 먼저 떠올렸다.

‘존나 멋지잖아?’

그런 생각을 하며 팔, 다리 붙들려서 벌집에서 쫓겨났었다.


그런 강한 여성이 검문소 경비대장으로 온다는 사실이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이 큰가 보다. 다리 중앙에 위치한 유일한 tv가 놓인 대합실에서 시체처럼 누워있는 사람들 틈에 끼어 조용히 tv를 보던 중 옆에 누워있는 아저씨들이 떠들어댔다.


- 니 와 묵노? 니 뭔데 묵고 있노?

-치익~ 미션 실패!


“저거 봤던 거잖아. 다른 거 없냐?”

“리모콘에 손대면 잘라버린다.”

“...나와. 한따까리 함 하자.”

“에헤에~ 이 사람들 또 지랄이네. 같이 나가서 이거나 피워보자고, 내 새로 조합한 건데 기가 막히 다니까.”

“야 이 새끼 믿고 따라가지 마라. 저번에 새로 만들었다면서 떨이랑 똥오줌 섞어서 만든 거 냄새 맡았다가 반나절을 구토했었다.”

“똥 오줌이라니? 이 새끼가! 화학이야 화학. 전에 메탄으로 약 만들었단 소리가 기억나서 시험 삼아 해본 거라고. 나도 만드는데 고역이었어. 근데 이건 달라. 밖에 민들레 있지? 이게 안개 속에서 자란 놈들이라 갈아서 말리면 환각 작용이 있는걸 발견 했다니까? 해보라고 죽여줘.”

“이 시발놈이 날 시험체로 써?”

“야 근데. 니 1 대장 그년한테 걸리면 점수고 나발이고 진짜 뒤진다. 괘안켔나?”

“좋은 시절 다 갔지. 그래도 대마까지는 봐준다더라. 어디 가서 씨앗이나 구해봐야지.”


바로 발밑에 강이 흐르고 있는데도 꾀죄죄한 남자들이 대합실 평상에 모여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난 구석에서 조용히 전에 방영되었던 예능을 보며 쉬고 있었고.

큰 전투가 있고 난 후 휴식은 중요하다. 몸도 중요했지만 특히 마음이.

몸은 다치면 티가 나지만 사람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아주 작은 계기로 순식간에 무너지는 게 사람 마음이라 부족한 전력에도 과거 예능과 영화, 드라마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라면 그게 뭐든 tv는 항상 틀어져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걸로도 부족했는지 사람들 사이에선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약들이 사고 팔렸다.

쉽게 말하면 마약. 사람들은 대놓고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다.

근데 경찰도 국가도 안개가 집어삼켰는데 법이나 윤리가 살아남을 수 있나. 제일 먼저 잡아먹힌 게 그 둘이다.

지금 남은 건 쇠로 무장된 벌집의 규칙뿐이다. 그것도 상당히 유동적으로 변하는.


2 대장은 군인이었다. 그래서 2 대장의 관리 감독하에 검문소는 군대처럼 움직였다.

군대 경험이 없는 내가 처음 검문소는 마치 군대처럼 돌아간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각이 잡히고 명령과 복종이 철저한 곳인 줄 알았다.


개뿔. 좋은 게 좋은거다란 모토 아래 검문소의 기강은 개판이었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결과만 좋으면 된 거다.

혼자 먹지 마라. 다 같이 먹자. 벌집의 규칙? 난 못 봤는데 넌 봤어? 어라 내 주머니에 왠 담배가 생겼네? 이 친구. 경우가 있는 친구였구만. 이제 우린 전우야. 전우야 담배나 빨러 가자.


도대체 대한민국 군대는 어떤 곳이었을까?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군대란 곳에 호기심이 들 정도였다. 군필자인 태창이 형은 이게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데 이런 곳에 합류하게 된 나는 매일 이런 걸 바로 옆에서 보며 불안감이 조금씩 차올랐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굴러간다. 아무 문제 없이.


조금씩 불안해하니까 태창이 형이 설명을 해줬다.

2 대장은 전형적인 군대 간부 스타일이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놈을 선호하고

일 처리의 과정은 개입하지 않고 결과가 좋다면 그에 맞는 보상을 해준다.

또 규칙을 어기는 짓을 한다면 다 같이 하고 그에 따른 이득도 손해도 모두 같이 짊어진다.

그렇기에 검문소 내부에 공공연하게 마약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데 감시하지 않았다.

이렇게 돌다가 정말 괜찮은 약물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면서.

걸리면? 그놈만 운이 나쁜 거지 뭐. 선만 넘지 마라. 그런데 그 선이 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2 대장 밑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제일 위에 대가리가 바뀌었단 소리에 주름진 얼굴이

요즘 더욱 구겨졌다.

1 대장은 규칙과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이었다.


‘이 애가 어떻게 여기 있지? 내 눈에 띄면 팔 한쪽 잘라버린다고 했을 텐데?’

‘내 권한으로 받아줬다. 내 감시하에 생활하다가 내 밑으로 올 거다.’

‘경비병에게 상해를 입힌 놈을 처벌 없이 내 보내 준 것도 참았는데 합류시켰다고?’

‘그럼 미친년아 혼자 살려고 발버둥 치는 애를 모른 척할까? 내가 데려갈꺼니까 신경 꺼.’

‘....잠깐. 나도 지켜봐야겠어. 다친 건 우리 애다. 그러니 어떤 놈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앞, 뒤가 꽉 막힌 규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사람.

tv를 보며 유도리가 없는 년이라고 욕하는 아저씨들과는 다르게 나는 1 대장이 마냥 나쁜 사람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팔, 다리 붙들려 끌려 나갔을 때, 내 손에 식량을 조금이나마 쥐어주던 사람이 1 대장이었다.


‘이거 가지고 가라. 추방형을 받은 사람에겐 일정 정도 식량을 줘야 한다. 사형은 아니니까,’

차가운 표정 뒤에 스스로를 규칙에 옭아맨 여자가 보였었다.

멍하니 tv를 보는데 상철이 형이 대합실 출입문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헤이 다중아 여깄었네? 형이 좋은 거 구해왔다. 이거 봐. 흑인나오는 야동이야. 귀한거다?”

“....혼자 많이 보슈.”

“니가 모르나 본데 스트레스 푸는데 딸치는 게 가장 효과가 좋다니까? 검증된 거야.”


... 그걸 시발 어떻게 검증했을까? 존나 싫지만 궁금하긴 하다.

나와 한 번 마찰이 있었던 상철이 형은 별일이 아니었다는 듯 오히려 전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1 대장의 요구로 헬스 아저씨는 날 남기고 벌집에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벌집으로의 합류가 약속된 우리 팀은 전부 따라가야 했지만 그렇다면 난 혼자 검문소에 남기에 돌봐줄 사람이 하나 있어야 한다고 했었고 상철이 형이 자원해서 남기로 했다.


“처음에 너랑 있을 땐 꺼림칙했거든 이제껏 혼자 살아남은 놈이 행동도 그렇고 말투도 정상적으로 보였단 말이야. 개판 난 세상에서 착하게 존댓말 꼬박꼬박 붙여가며 말 잘 듣는 놈이 저 백귀들보다 소름 끼치는 건 너도 인정할 거야.”


팀원들과 거리를 좁힐 수 없었던 이유를 둘 만 남게 되자 상철이 형이 말해주었다.

나는 나름대로 눈에 안 띠고 잘 보이려고 착한 척, 말 잘 듣는 신병 컨셉으로 들어왔는데 그게 오히려 팀원 눈엔 의심스러웠다고 한다. 새치 아저씨의 보증이 있어서 아무 말 안 했지만.

거기다가 자주 중얼거리듯 혼잣말하면서 등 뒤에서 따라오는 놈이 있어 가끔은 소름끼쳤다고.

그런데 내가 다중인격에 가끔 미친놈이 된다는 설명을 듣자 이들은 안심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적당히 미친놈이었구나? 우리가 오해 했네. 믿을 만한 놈이었어.


그래서 2 대장이 모두를 데리고 복귀하던 마지막 날 처음으로 팀원들과 대화란 걸 할 수 있었다.

....미쳐 버린 세상이다.


“그런데 너 1 대장이랑 아는 사이야? 그 누님 널 아는 눈치던데?”

“내 팔 자르겠다고 난리 치고 난 도망치던 그런 사이?”

“부럽다야. 섹시한 누님의 관심을 다 받고 난 처다도 안 보더라. 그래도 나름 엘리트 코스 밟은 놈인데.”


이 형도 어지간히 말이 많다. 아니 검문소 내엔 모두가 말이 많았다.

서로가 옆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수시로 확인하는 것처럼 실없는 농담, 의미 없는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귀찮지만 상철이 형을 무시하진 않았다. 철창에 갇힌 3일 동안 밥과 이불에 뜨겁게 대운 돌덩이를 규칙적으로 챙겨준 게 이 형이었기 때문에 마냥 밀어내긴 그랬다.


“이진우. 그리고 최상철 여기 있나?”

“예. 여깄습니다.”

“따라와라. 대장이 부른다.”


우린 아직 팀이 정해지지 않아서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부르는 걸 보니 결정이 났나 보다.

우릴 찾았던 경비병을 따라 다리 중앙에 위치한 경비대장 방에 올랐다.

전에 쓰던 2대장 과는 다르게 방 안은 여러 가지 가구들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 아저씨는 책상에 커피포트, 그리고 옷걸이만 딸랑 있었는데 노트북에 충전 다발에 각이 잡히게 꽂혀 있는 무전기 등, 진짜 경비대장의 방 같이 느껴진다.


1 대장 정지영 누님은 중앙 의자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짧은 단발에 잘 잡힌 근육, 갈색 피부에 날카로운 고양이 눈을 가졌다.

이렇게만 본다면 성격 있는 누님이었겠지만 누님이 서류를 들고 있는 오른팔은 쇳덩이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치 첨단 의수같이 세심하게 종이를 넘기는 그건 진짜 팔처럼 움직였다.

하지만 전자장치나 전선 등과 같은 과학 기술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식하게 튼튼하게 만들어진 관절 부근이 정교한 무기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분명 저 누나의 ‘능력’과 관련되어 있겠지. 모르겠으면 능력자라 생각하면 편하다.


“아 그래. 진우 그리고 그 새끼가 붙여준 보호자 최상철. 대학생이었다고?”

“옙. 누님. 한국대. 정치학과였습니다.”

“대장님이라고 불러라.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얼굴 찢어버린다.”

“옙... 누... 아니 대장님.”

“둘 다 신원은 확인됐고 내가 이곳에 있을 때는 너희도 똑같이 다른 사람들처럼 점수를 쌓아야 한다. 그러니까 내일 작전 있을 거니까 준비해.”

“예? 하지만 우린 팀도 꾸리지 못했는데요? 최소 4명은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라. 얼마 전에 자리가 난 팀이 있으니까. 저기 기다리고 있네.”


열린 방문 너머로 아는 얼굴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최미래. 나와 3일을 다리 아래에서 버틴 누나였다.


“네가 팀이 없다는 걸 들은 저 애가 널 받아 준다더군. 내일 너흰 상계동에 위치한 버려진 아파트들 중에서 지시한 물건을 가져와야 한다. 그러니 쟤 따라 가라.”


명령이었다. 짧고 간결하고. 설명이 부족한.

상계동까지 가려면 하루로는 부족했다. 즉 밤을 저 밖에서 지새워야 한다는 소리다.


[좋은 시절 끝났군. 그래도 대비는 얼추 끝마쳤다.]

“알겠습니다.”


괴물과의 싸움은 자신이 없다. 다른 사람들보다 강하지도 않다.

하지만 살아남는 거라면 난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그건 내 조력자도 마찬가지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디케이드(Decade)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능력의 급수 24.09.04 30 2 13쪽
22 익숙한 천장 +1 24.09.02 30 3 12쪽
21 양날의 검 +1 24.09.01 35 3 13쪽
20 어그로 +1 24.08.30 40 2 13쪽
19 둥지에서의 하룻밤 24.08.29 33 3 13쪽
18 꿀벌들의 일과 24.08.27 36 3 12쪽
17 능력과 경험치 24.08.26 37 2 14쪽
16 출항과 옆집 늑대들 24.08.25 35 2 13쪽
15 어른의 사정 +2 24.08.23 44 2 12쪽
» 바뀐 대가리 +1 24.08.22 40 2 12쪽
13 철창 속 정화 24.08.20 40 2 12쪽
12 정리와 침식 24.08.19 46 2 12쪽
11 야간 전투 24.08.18 46 2 13쪽
10 마석 24.08.16 46 1 13쪽
9 첫 번째 임무 24.08.16 54 2 12쪽
8 합류 24.08.13 57 3 12쪽
7 다중이 24.08.12 60 3 12쪽
6 검문소 24.08.10 63 2 13쪽
5 우리 집 24.08.09 71 2 14쪽
4 안전 귀가 24.08.06 85 3 12쪽
3 동기화 24.08.05 104 6 13쪽
2 튜토리얼의 끝 24.08.04 130 5 12쪽
1 삼위일체 24.08.04 180 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