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이드(Dec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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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미소
작품등록일 :
2024.08.04 21:47
최근연재일 :
2024.09.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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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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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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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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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꿀벌들의 일과

DUMMY

우린 걸었다. 말 없이 걷고 또 걸었다.

태창의 형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군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건 전투가 아니라 행군이라고. 그래서 체력 분배가 중요하기에 몸 상태를 수시로 생각하며 움직여야 했다.

그랬는데.. 자꾸만 칼을 휘둘렀던 오른손에만 신경이 간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뭔가 손에 묻은 것 같은 찜찜함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벌집에서 새로운 꿀벌이 생겼네. 침 쏘는데 아주 망설임 없었어?”

“애 건들지 마라.”


미래 누나와 함께 다니는 두 명의 남자 중 하나가 나에게 다가와 되지도 않는 농담을 건냈지만 분대장의 제지에 입을 다물고 떨어졌다.

대가리를 노랗게 염색해서 양아치처럼 보이려 하는데 난 누나와 다리 아래에서 꽤 많은 대화를 했었기에 저 남자도 간호 공무원을 같이 준비한 평범했던 친구란걸 알고 있었다.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 변하는 건가? 아니면 세상이 이렇게 돼서 스스로 변한 건가?

칼을 쥐었던 오른손만큼은 변한 거 같다.


“지나쳤나? 이쯤이면 공원이 나와야 하는데..”


미로가 되어버린 그리고 거리감을 상실하게 만드는 안개로 인해 선두로 가던 능숙해 보였던 분대장조차도 끊임없이 경로와 가진 지도를 비교하며 걸었다.

하지만 난 걱정하지 않는다.


[맞게 왔다. 여기서 동쪽으로 가면 마들역 방면이야. 이제부터는 동기화를 조금 올릴거다. 나도 지칠 수 있으니까 체력 분배 잘해라.]


탁.

<갈말근린공원>

발에 치인 표지판엔 공원의 입구라는 표기가 되어있었다.

태창이 형의 안내에 확신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다 바닥에 떨어진 표지판을 찾았다.

맞게 왔다. 여기서부터는 강변에서 벗어나 도심지로 들어가야 할 차례.


“분대장님 표지판이 여기 있어요.”

“어. 그래. 잘 찾았다. 여기서부턴 도심지다. 이제부턴 진짜로 긴장들 해라.”


모든 것이 변질되어 공원은 숲이라고 불려야 할 정도로 풀숲이 우거져 있었다.

높게 자란 풀잎 사이로 예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구조물들이 없었다면 여기가 공원인지도 모를 정도로.

그리고 사람이 사라진 이곳엔 따로 주인들이 있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크르르르...”

“왈! 왈!”

“들개 무리다. 물리지 않게 조심하고 원형으로 대형을 짜라.”


버려진 개들이 모여 수십의 들개 무리가 우리 주변을 맴돌며 따라왔다.

치와와, 말티즈, 리트리버 종류도 다양했지만 전부 눈이 붉게 물든 채 침을 질질흘려가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


빡! 깨갱!


조금이라도 틈이 보인다면 달려들었지만 서로의 옆을 지키며 풀숲에서 튀어나오는 놈들에게 무기를 휘둘러 내쫒았다.

안개의 영향을 받아 침식이 진행된 이것들에게 물리면 골치가 아파진다.

침식도 침식인데 문제는 광견병까지 옮겨 걸릴 가능성이 컸기에 어떻게 보면 이놈들이 더 위험했다.

백귀보다는 약하지만 짐승 특유의 속도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오는 것만 쳐내라. 몇 마리 잡아버리면 놈들도 포기하고 물러날 거다. 좀 더 쉬운 사냥감을 찾으려 하겠지.”


분대장의 말대로 간 보는 듯 주변을 맴돌던 놈들 중 몇 마리가 날붙이에 맞아 쓰러지자.

공원을 빠져나가는 동안 우리의 뒤를 더 이상 쫒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숲이 되어버린 공원을 지나 도심지에 들어섰다.


그리고 똑같은 지루한 행군이 반복되었다.

단지와 단지를 넘어 음험하게 내려다보는 것 같은 건물 사이를 지나고 걷다가 육안이나 동작감지에 걸린 숨어있는 백귀들을 때려잡으며 움직였다.

그리고 가는 도중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마주칠 수 있었다.


각자의 사정으로 혼자 아니면 소규모 단위로 버려진 도시 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랐었다.


죽은 아기를 유모차에 끌고 돌아다니는 정신 나간 여자가 있었다.

안개로 인해 죽음이 고정 되어버린 창백한 아기를 보고 언젠 가는 일어날 거라고 그저 깊게 잠든 거라며 홀로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그 여자를 지나쳐 걸었다. 여자의 목까지 회색빛이 차올라 있었다.


마들역 주변 상가 밀집 구역을 지날 땐 얼굴 절반에 화상자국이 남은 남자를 만났다.

홀로 스케빈저 생활을 한다던 그 남자는 벌집 사람들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담배 고블린이라고 불리는 그는 얼마나 담배를 모아놨는지 1년이 지난 지금도 벌집에 와서 담배와 물건들을 교환해 간다고 했다.

우리와 가지고 있던 담배로 물물교환을 하던 남자는 우리에게 자신이 알던 일가족을 확인해 줄 수 없냐며 한 갑의 담배를 넌지시 건내왔다.


“여기서 3블록만 가면 근린공원 옆 아파트 꼭대기 층에 가족이 하나 살고 있는데 그 집 애가 아프다더군요. 집안에 남자가 하나뿐이라. 벌집까지 애 데리고 갈 형편이 안 되나 봅니다. 꼭 제가 말해줬다고 좀 전해 주시고.”


시간은 13시를 조금 넘긴 오후였다. 가야 할 목표지점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가 볼만한 거리였고 분대장은 고민했다. 외부에서 하는 일 중 가장 우선으로 치는 건 인명 구조와 사람을 끌어모으는 거다. 맡은 임무와 새로운 의뢰를 저울질하던 중 미래 누나가 분대장에게 다가갔다.


“사람들 도와주면 점수 많이 주죠? 잠깐 갔다 오는 거면 찬성이에요,”


그 말에 분대장은 발걸음을 살짝 틀었다.

담배 고블린의 설명대로 12단지에서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아파트에 다가갔다.

그리고 숨겨진 줄을 잡아당겨 거주자들과 접촉했다.


제일 위층에서 사는 일가족은 총 4명이었고 아빠와 엄마의 품에서 남자아이와 그보다는 어린 여자아이가 우릴 맞이 해주었다.


“그놈이 말해줬다고요? 허.. 다음 거래에선 손해 엄청 보겠군.”


아이들의 아버지는 태연한 척했지만 집까지 찾아온 벌집 사람들을 보고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러곤 어린 딸을 들어 보이며 숨길 수 없는 걱정이 흘러나온다.


“애가 아픈지 일주일이 넘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단순한 감긴줄 알았는데...”


아이는 열이 높은지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그 모습을 보던 미래 누나가 다가갔다.


“잠깐 봐봐요. 음.. 옥상에 밭을 만들었다고요?”

“예 조그마낳게 비닐하우스로..”

“증상이 파상풍 같아요.”

“예? 하지만 그저 흙장난하는 정도인데? 녹슨 장비 근처도 못 가게 했습니다.”

“녹슨 쇠에 찔린 것보다 상처 난 손에 닿는 흙에서 더 많이 걸려요.”


누나는 간호사를 준비했었다. 나는 그걸 3일에 걸쳐 장대하게 들었고.

배운 걸 잊지도 않았고 세상이 변하고 더 쓸모 있는 지식이 되어버려 어느새 진짜 간호사가 된 듯한 모습이었다.

무장한 근육이 붙은 팔뚝으로 아이를 살피는 누나의 모습은 꽤 멋있어 보였다.


“...형 안녕?”

“.... 안녕?”

가족의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생 쯤 되는 남자아이가 내게 인사를 해온다.

이 중에 다가오기 만만한 크기는 나뿐이라 날 보는 눈에 호기심 가득한 게 보인다.

문득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거 동생이랑 나눠 먹어.”

“와 초코바.”


내가 점수로 환산한 초코바 중 하나를 아이에게 건냈다. 대가도 없이 그저 충동적으로.

그 작은 걸 건내 받은 아이의 웃음은 순수해 보였다.

그리고 건내는 도중 아이와 닿은 손끝에서 이제껏 느껴지지 않았던 칼날의 감촉이 떠올랐다.


“고맙습니다. 해야지? 그런데 중학생쯤 되나? 벌집에 사람이 부족해요?”

“아뇨. 그냥 사정이 있어서요. 저 말고는 미성년자는 나오지 않아요.”


아이의 엄마는 벌집의 사정에 대해 궁금한 듯 여러 가지를 물어왔다.

문득 궁금해져 되물었다. 왜 위험하게 이곳에서 사냐고.


“여러 무리에 들어가 봤어. 근데 대부분 밖의 위협보다 안에서의 싸움으로 무너지는 걸 보니 사람이 아무리 모여도 소용이 없구나 싶더라고. 실제로 우린 이곳에 살아 있지만 그들은...”


그렇게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어른들의 대화가 끝나가는 게 보였다.


“복귀하면 말해 보죠. 의사가 나올 순 없지만 약품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대가는 잘 준비하시고.”

“아휴 그럼요. 무리를 해보더라도 최대한 성의껏 준비 해놓겠습니다.”

“제가 말한 항생제 구해서 하루에 한 알씩 먹이시고 애 몸에 상처 꼼꼼히 확인하세요.”

“아휴 여선생님 감사합니다. 이건 별거 아니지만 답례로.”


우린 가족이 챙겨준 봉지를 받아 들고 나왔다.

안에는 크기가 작은 감자들이 적지 않게 들어있었다.


“능력 있는 남자군. 일가족 모두 데리고 살아남다니. 아무래도 벌집에 합류시키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강 형사님?”

“....예? 아 예. 그렇죠. 적어두겠습니다. 가족 있는 인원이라면 신뢰도가 높으니까요. 설득 작업을 해보라 해놓겠습니다.”


난 옥상에서 보이지도 않건만 작은 손이 흔들리는 걸 따라 손을 들어 흔들려 했다.

멈칫.

칼을 쥐었던 오른손이다.


“사람 목 자를 땐 섬뜩하더만 이럴 땐 애 같네.”

“...자꾸 건드네. 형 그 노란 대가리 잘라줄 때도 섬뜩해져 줄 테니까 신경 끄쇼.”


내가 들어 올리려던 손을 멈추었을 때 노란 대가리가 또 와서 건든다.

가뜩이나 오른손에 떠오른 감촉이 떨어지지 않아 기분 드러운데 내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들이받을 생각으로 답한 건데 반응은 의외였다.


“하하.. 미래한테 들었던 것보다. 더 재밌는 놈이네. 다중이라고? 우리 친해져 보자.”

“...보통 친해지고 싶으면 다른 사람이랑 이렇게 시작해요?”

“..그게 참.. 미안 직업이 직업이었던지라 말투가 이렇게 되버렸어.”


남자 간호사였다고 했었나? 그거랑 무슨 상관이지?

하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은 사람 같았다. 그저 말투가 거슬릴 뿐이지.


“자 모두 모여봐라.”


출발을 기다리던 팀원들을 분대장이 불러 모았다.


“시간이 애매하다. 시간은 15시 40분. 오늘 내로 목적지엔 갈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밖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데 그 주변엔 안전 가옥이 없다.”

“그런면요?”

“조금 돌아가긴 하지만 뒤쪽 9단지에 벌집에서 만든 안전 가옥이 있다. 오늘은 거기서 묶지.”

“분대장. 어차피 목표지점이 전부 아파트 단지라 아무 집이나 골라잡고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소.”


분대장과 부분대장의 의견이 갈렸지만 분대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 임무에 시간제한은 없습니다. 부분대장. 안전하게 무사히 물건만 수거 해오면 되는 거요. 유일한 문제가 식량이었는데 다행히 하루 버틸 양을 구했잖습니까?”


분대장의 손에는 작은 감자들이 들어있는 까만 봉지가 대롱거렸다.

계획은 분대장의 의견에 모두가 동의하는 걸로 확정되었다.

목표지점에서 멀어져 되돌아 가는 수고를 해야 했지만 죽는 것보단 나으니까.


단지 사이를 구분 짓는 도로를 넘어 아파트 벽면에 12에서 9로 바뀌는 단지로 넘어왔을 때 분대장이 무전기를 들어올려 주파수를 조정하곤 입에 가져다 대었다.


“아 여긴 18번 꿀벌. 들리나? 둥지를 이용하고 싶다.”

- 18번? 니들 14단지 간다며? 왜 여길 와?

“중간에 민간인 구호 활동으로 시간이 지체됐다. 묶을 곳이 필요하다.”

-... 맨입으로?

“감자 좋아하나?”



그러곤 상대적으로 멀쩡해 보이는 상가로 들어섰다.

안쪽은 복잡한 미로처럼 작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조였다.

분대장은 와본 적이 있는 듯 중간에 설치된 트랩들을 알려주며 안쪽으로 우릴 인도했다.


건물의 가장 안쪽 10평 정도 되어 보이는 공간에서 한 사람이 나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이여~ 김상득이~ 분대장까지 달고? 출세했네? 누군 여기서 뺑이 치는데?”

“개소리 말어. 니 꿀 빨려고 자원했잖아. 물 있냐? 이거 좀 쪄봐라.”

“왠 감자야? 이 주변에 밭까지 만든 생존자가 있었나?”

“괜찮은 자원 같다. 일가족이 함께 사는데 거기 남자가 꽤 괜찮아 보여.”

“아~ ”


안전 가옥이라는 곳에 들어오자 분대장은 그동안에 무거웠던 근엄함을 내려놓은 듯 안전 가옥을 지키던 남자와 격 없이 행동했다.


“다들 알아서들 쉬고. 내일 아침 출발하지.”


우린 지고 있던 짐을 풀고 각자의 공간을 정하며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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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능력의 급수 24.09.04 30 2 13쪽
22 익숙한 천장 +1 24.09.02 29 3 12쪽
21 양날의 검 +1 24.09.01 35 3 13쪽
20 어그로 +1 24.08.30 40 2 13쪽
19 둥지에서의 하룻밤 24.08.29 33 3 13쪽
» 꿀벌들의 일과 24.08.27 36 3 12쪽
17 능력과 경험치 24.08.26 36 2 14쪽
16 출항과 옆집 늑대들 24.08.25 35 2 13쪽
15 어른의 사정 +2 24.08.23 43 2 12쪽
14 바뀐 대가리 +1 24.08.22 39 2 12쪽
13 철창 속 정화 24.08.20 40 2 12쪽
12 정리와 침식 24.08.19 45 2 12쪽
11 야간 전투 24.08.18 45 2 13쪽
10 마석 24.08.16 46 1 13쪽
9 첫 번째 임무 24.08.16 54 2 12쪽
8 합류 24.08.13 56 3 12쪽
7 다중이 24.08.12 59 3 12쪽
6 검문소 24.08.10 63 2 13쪽
5 우리 집 24.08.09 71 2 14쪽
4 안전 귀가 24.08.06 85 3 12쪽
3 동기화 24.08.05 104 6 13쪽
2 튜토리얼의 끝 24.08.04 129 5 12쪽
1 삼위일체 24.08.04 17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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