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이드(Dec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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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미소
작품등록일 :
2024.08.04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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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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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과 옆집 늑대들

DUMMY

배를 타고 여행해 본 적은 없지만 외부로 작전을 나갈 때마다 마치 출항 준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벌집에서 나온 정규병 두 명과 다섯 명의 지원자가 포함된 작은 돚단배가 해가 뜨기도 전부터 안개의 바다로 나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번호?”

“2635번 이요.”

“이진우. 맞아? 쌓인 점수는 489점이야. 뭐가 필요한데?”

“초코바 두 개랑 소독제 하나 주세요.”

“초코바는 개당 50점 소독제는 어제 가격이 올랐어 400점이야.”

“그럼. 중고라도 남은 거 있으면 맞춰서 주세요.”

“귀찮아. 그냥 후불로 때리고 –11점으로 맞춰줄게. 괜찮지?”


검문소 중앙에 위치한 방들은 행정업무와 정규 경비병들의 숙소가 밀집해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작은 방에서 난 내 점수를 써서 필요한 물품을 요청했다.

최대한 다려봤지만 곳곳에 구겨지고 해진 구청 유니폼을 입은 여성이 민원 업무를 처리하듯 내가 말한 요청을 후불로 컴퓨터에 작성하고 물건을 제공해 줬다.


검문소에서 번호를 부여받고 일주일간 얻어낸 점수는 500점이 넘지 않았다.

이것도 보디빌더 대장이 뒤를 봐줬기에 후하게 얻어낸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했던 일이 세 번은 있었는 거 같은데...

초코바 두 개와 소독제 하나의 값 보다 못한 점수였다.

모자란 점수를 알아서 후불로 처리해 준 여성에게 감사를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음에도 난 고개 숙이며 감사하다 말하고 방을 나왔다.


벌집에 합류하기 위해 필요한 점수는 미성년자는 1000점, 여성은 3000점, 남성은 5000점이다. 여기엔 대납도 가능하며 점수를 현금처럼 방금 전 방에서 양도가 가능하다.

지금은 휴지 조각이 된 현금 대신 화폐로서 점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곳 작은 섬처럼 고립된 곳에서는.


다리의 모퉁이를 따라 길게 늘어져 있는 전선들이 보였다.

저 전선은 벌집과 이어져 있을 거다.

마치 안개라는 바다에 떠 있는 두 개의 섬에 조난당한 기분이다.


점수라는 화폐를 이용하는 작은 섬. 이 섬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공동생산 공동 분배라는 새로운 규칙으로 살아남았고 잃어버린 과거를 잊지 못해 점수라는 이름으로 사유재산과 거래를 인정했다. 그리고 바다에서 표류하던 생존자들, 나 같은 이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한데. 고작 초코바 두 개라니.”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까지 계산하면 그렇게 부당한 건 아니지.]

“그래도 사고 싶은 거 다 살 수 있었던 집에서 자랐었는데 적응하기 힘드네.”

[니집 망했다니까? 집이 망하기 전에 세상이 먼저 망해서 못 느끼게 됐지만 너 흑수저 된 거였다? 지금은 그 숟가락도 뺐겼지만.]

“....말을 해도.... 좋겠습니다? 집이 쫄딱 망한 경험을 가지고 계셔서.”

[많은 걸 배웠지. 너도 채권자라는 괴물을 만난다면 저 밖에 백귀 새끼들은 좆도 아니라 생각 할 거다. 최소한 저 새끼들은 말은 못하잖냐.]

“됐고 군장 쌌는데 좀 봐줘요. 이 정도면 됐어요?”

[양말에, 속옷에, 예비 운동화, 모포 하나, 최대한 줄여서 잘 쌌다.]


검문소에서 목적지까지는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였다.

태창이 형이 어제 자신의 세상에서 직접 걸어본 결과 도보로 족히 2~3시간은 걸린다고 했다.

물론 괴물도 없고 도시도 온전한 막는 거라고는 신호등 밖에 없는 세상에서 측정한 결과라 내 세상과는 다르지만.

내 세상은 그 3시간의 거리를 하루로 잡아야 했다. 즉 무조건 외박은 확정이란 소리였기에 필요한 걸 챙기는 것도 신중해야 했다.


지금은 근육이 붙어 다른 사람들의 발을 맞춰 쫒아갈 수 있었지만 언제든 긴급상황이 생긴다면 체력을 남겨둘 여력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짐을 챙기는데 혼자라면 많은 고민을 했겠지만 내게는 행군 경험이 있는 조언자가 있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행군할 때 체중의 절반이 사람이 짊어질 수 있는 짐의 최대치다. 넌 대략 20kg이지. 하지만 그의 절반으로 맞춰라. 반드시 필요한 것만 챙겨.]


...20kg 정도를 짊어지고 다닐 짐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막상 짐을 쌓자 생각보다 의외로 포기해야 할 물건이 있었다.

밤을 지새우기 위한 집에서 가져온 내 애착 모포를 끝으로 모든 확인이 끝났다.

방금 얻은 것들을 가방에 넣고 난 발걸음을 옮겼다.


포장마차에 방수포를 뜯어와 구역을 만든 곳으로 향했다.

만들어진 여러 방들 중에서 미리 들었던 곳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큰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들에 사람들이 앉아 대기하고 있었는데 열악한 환경에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지 저마다 마음의 준비를 하는 듯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 중 중앙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보던 남자가 들어오던 나를 보더니 손짓했다.


“니가 마지막이군. 와서 앉아라.”

“예.”

“좋아 브리핑을 시작하지. 나와 여기 강형사 두 명이 너희의 인솔자 겸 관리자다. 호칭은 분대장과 부분대장으로 통일하지. 우리 일곱 명은 상계 14단지 803호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벌집에서 요청한 물건을 가져오는 게 임무다. 목표는 하드 디스크. 작전은 간단하다. 갔다가 무사히 돌아온다. 이동 경로는 이렇다.”


탁.

자신을 분대장이라 소개한 남자는 테이블 위에 펴진 지도를 짚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어디 부동산에서 쓰이던 아파트 조명도를 가져와 펜으로 그려가며 열심히였다.

내가 사는 현실과는 맞지 않는 화려한 색채의 작전지도를 보니 문득 쓴웃음이 나왔다.

저 그림에 회색으로 짙게 덧 칠을 해야 그나마 현실에 맞는 진짜 지도가 될텐데...


“청계천을 거슬러 올라 최대한 위험 구역을 줄인다. 물론 여긴 하나로 마트 쪽 놈들 영역이랑 겹치지만 도발만 안 한다면 충돌은 없을... 어이 거기 학생? 지금 웃기냐?”

“.... 아닙니다.”

“왜 주둥이에 웃음을 걸어놨었냐고 묻잖아.”

“그냥... 그림이 너무 밝아서요.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그랬습니다.”

“대가리에 꽃밭을 만들었나. 가뜩이나 애 하나 딸려 와서 기분 좆같은데.”


뭐지? 이 남자도 왜 시비지? 요즘엔 시비거는 게 패시브인가 나만 보면 다들 이런다.

키도 작고 어려서 만만하다 이건가? 내가 가진 능력을 함 보여줘?

얼굴 찌푸리면서 야이 시발년아. 이랬던가?

하지만 내 멍청한 짓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만하시죠. 1 대장 쪽이라고 이러시는 거면 정식으로 항의할 겁니다. 차별하는 사람이랑은 작전 못나가겠다고요.”


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내 옆자리에 있던 상철이 형이 먼저 나섰다.


“붙어먹었다고 편들어 주는 건 이해 하겠는데. 차별이 아니다. 달마다 외부 작전에서 사람들이 두, 세명씩은 꼬박꼬박 죽어 나간다. 넌 저 자라다 만 놈이랑 밖에 나가고 싶나?”

“이미 결정된 일이고 이 애는 야밤에 호드 무리에 맞서서 같이 막았고 통발에 들어가 3일을 버티고 나왔습니다. 같이 다닐 수 있냐 물어보면, 당연하죠. 충분합니다.”

“...특별 대우는 따로 없다. 낙오되면 알아서 살아와라.”

“그럴 겁니다.”


그 후 간략한 설명이 더 이어졌다.

상철이 형은 내 보호자의 역할을 잊지 않았는지 대신 나서 주었고 옆에서 조용히 설명을 해주었다.

나처럼 청소년이 팀에 포함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짐 덩어리가 될 확률이 높으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불만을 터트리기 전에 한 번 미리 털고 가는 거다.

밖에 나가서 말 나오지 않게. 친절한 설명이었다.


[친절하고 재밌는 새끼네,]


그 친절함이 내 진짜 조력자에게도 조금은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을 해주면 어디 덧나냐고 자기 일은 스스로 하라며 불친절한 상태창에 조금 더 불만이 쌓인다. 모든 브리핑이 끝나고 우린 조용히 검문소에서 나왔다.

시간은 06시. 해가 떠오르자마자 우린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경로는 아까 들었던 대로 청계천 강변을 거슬러 올라 최대한 붙어서 거리를 줄여갔다.

검문소라는 섬에서 나와 표류하는 돗단배가 된 심정으로 회색빛 바다속으로 들어섰다.


실제 바다에 자연스럽게 생긴 섬들과는 다르게 안개의 바다에는 생존자들이 만들어 낼 섬들을 정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큰 무리가 모인 집단들의 위치는 대략 정해져 있었다.

강 근처이면서 넓은 부지와 외벽이 존재하는 건축물.


대표적으로 벌집이 있다. 운동장이 딸린 5층짜리 고등학교라 교실이 많아 사용할 방들이 많았고 외벽은 철책이 세워져 있어 기본 토대에 보강공사가 용이하다.

변해버린 세상에선 최적의 입주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런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쓸만한 장소들이 강 주변에 있었다.


그렇기에 벌집과 자주 충돌하는 대형 마트를 점거한 또 다른 생존자 집단이 200m 근방에 위치해 있다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정지. 마트 쪽 놈들이다. 사냥이라도 가나 본데?”

“저놈들도 꽤 버틴단 말이야. 지금쯤이면 마트 내 음식은 죄다 썩었을 거고 보존식도 간당간당할 텐데.”

“막 사는 놈들까지 걱정할 여유 없다. 조용히 피해 가고 아니면 너희들은 우리 명령 전까진 나서지 마라. 대화까지는 가능한 놈들이니까.”


강을 따라 북서로 올라가던 중 다른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외벽을 끼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도로 중앙에서 대놓고 어슬렁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사람들보다는 짐승, 늑대 무리 같았다.


선두에선 리더를 따라 자유롭게 이동하는 회색빛 짐승 무리.

그들의 복장은 두터운 옷 위로 회색 가죽이 덧대어져 전체적으로 회색 늑대를 연상시켰다.


“미친놈들, 백귀 살가죽을 벗겨서 무두질을 해놨네.”

“그... 아무리 죽었다지만 저러면 침식당하는 거 아닙니까?”

“백귀는 무는 행위에서 침식의 의지가 가장 강하다. 사냥당한 놈들 피부 껍데기 뒤집어 쓴다고 해도 미약해. 하지만 아예 영향이 없진 않지.”

“그리고 역겨운 것도 크고.”


팀원들 사이에서 그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정규병 두 명은 혐오감을 더 크게 보였다.

벌집과 마트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사람들이 모였다고 했다,

두 집단의 방향성은 처음부터 달랐다고 하는데 벌집은 괴물과의 싸움을 못하는 또는 꺼리는 사람들도 받아들여 생산 인력으로 생활하게 해주었고 마트는...

단순했다. 강자존. 센 놈이 대장이다. 이 규칙 하나 밖에 없었다.

중간에 긴 스토리가 있다 했지만 결론은 저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기술자나 전문직등 문명의 잔재를 포용하지 못한 전사 집단은 하루하루 사냥에 의존하는 짐승 무리가 되었다고 한다.


“뭐여? 이 쥐새끼들처럼 숨어 다니는 놈들은 우리 뒤통수치려고 염탐 중이었냐?”


우리가 방벽 삼아 등지고 걷던 외벽 위에서 한 남자의 말이 들려왔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접근한 남자의 기척을 알아내지 못했다.

회색빛의 그는 짐승과 같은 감각이라도 있는지 조용히 지나치려던 우리를 발견하곤 관찰하 듯 내려다 보고 있었다.


“벌집 소속이다. 외부 작전으로 지나가는 중이고.”

“쫄보 새끼들. 이제야 기어 나오기 시작하네. 어쩌냐? 이쪽은 우리가 다 털었는데?”

“그냥 지나가는 거요. 멀리 가야해서.”

“그럴거면 통행세를 내야지.”

“우리끼리 무의미하게 칼질할 거 아니면 지랄 그만하지?”

“흐흐. 역시 니들도 별 수 없구만. 비전투 인원이 어떻고 도덕과 윤리가 어떻고 하더만 굶으니까 본성 나오네.”


노골적인 적의가 보였다. 같은 인간을 사냥감 바라보는 듯한 남자의 시선에서 어느새 멀리 있던 다른 늑대 무리까지 이쪽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싸움인가? 우리끼리? 사람들끼리 의미 없는 창,칼을 휘둘러야 하나? 잠깐... 무의미?

사람들도 죽으면 경험치를 주나?

순간 소름 돋는 가정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빠루를 쥔 손에 땀이 차올랐다.


“지나가라. 오늘은 우리도 바쁘니까. 그리고 무전기는 뒀다가 국끓여 먹냐? 미리 통보 좀 해라. 이번처럼 몰래 다니다 걸리면 염탐하는 걸로 간주하고 죽일 거다.”

“그러지.”


내 염려와는 다르게 외벽 위 남자는 우릴 선선히 보내주었다.

느낌이었지만 날 스쳐 지나가듯 보는 그의 눈과 마주친 것 같다.

그냥 다 같이 잘 살면 안 되나? 간단한 물음이 머리에 떠올랐는데 회색 남자는 할 말이 남았는지 잠시 멈춰섰다.


“니들이 빼간 배신자들에게 전해. 우리가 곧 찾아갈 거라고.”

“네 놈들이 버린 사람들을 받아 준거다. 나이 들었단 이유로 약하단 이유로 내쫒았던건 니들이야.”

“강한 놈이 살아남는 건 당연하잖아? 하지만 우린 도망쳐도 좋다고 한 적이 없어. 니들이 훔쳐 간거다.”

“편할 대로 생각하는군.”

“그게 우리 방식이야. 조만간 또 보지.”


저들과의 충돌은 정해져 있는 문제처럼 보였다.

우린 등 뒤에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두고 임무를 위해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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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익숙한 천장 +1 24.09.02 29 3 12쪽
21 양날의 검 +1 24.09.01 35 3 13쪽
20 어그로 +1 24.08.30 40 2 13쪽
19 둥지에서의 하룻밤 24.08.29 33 3 13쪽
18 꿀벌들의 일과 24.08.27 35 3 12쪽
17 능력과 경험치 24.08.26 36 2 14쪽
» 출항과 옆집 늑대들 24.08.25 35 2 13쪽
15 어른의 사정 +2 24.08.23 43 2 12쪽
14 바뀐 대가리 +1 24.08.22 39 2 12쪽
13 철창 속 정화 24.08.20 40 2 12쪽
12 정리와 침식 24.08.19 45 2 12쪽
11 야간 전투 24.08.18 45 2 13쪽
10 마석 24.08.16 46 1 13쪽
9 첫 번째 임무 24.08.16 54 2 12쪽
8 합류 24.08.13 56 3 12쪽
7 다중이 24.08.12 59 3 12쪽
6 검문소 24.08.10 63 2 13쪽
5 우리 집 24.08.09 71 2 14쪽
4 안전 귀가 24.08.06 85 3 12쪽
3 동기화 24.08.05 104 6 13쪽
2 튜토리얼의 끝 24.08.04 129 5 12쪽
1 삼위일체 24.08.04 17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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