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이드(Dec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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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미소
작품등록일 :
2024.08.04 21:47
최근연재일 :
2024.09.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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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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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0,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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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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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첫 번째 임무

DUMMY

새치 아저씨의 팀원은 나를 포함해서 5명이었다.

수염에 새치가 가득해서 본래보다 나이가 더 있어보이는 박덕배 아저씨.

잠깐의 불만을 표시했지만 잘 지내보자며 악수했던 박상철 형.

그리고 과거에 무슨 일을 했었는지 물어보기 겁나는 온 몸에 문신이 가득하고 과묵한 조우진 아저씨.

그런 아저씨 옆에 항상 붙어 있는 순한 얼굴의 최민지 누나.

마지막은 나였다.


새치 아저씨의 리더십이 뛰어난 건지 아니면 경비대장의 경고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 없이 날 받아들였다.

해가 뜨자마자 검문소에서 잠에서 깬 모든 이들이 저마다 팀끼리 뭉쳐 외부로 퍼져나갔다.

자마다 맡은 역할이 달랐고 서로 간의 인사나 대화는 없었다.

전부가 벌집에 소속되길 원하는 지원자들이었고 점수로서 경쟁하는 사이였다.


이런 외부 인력들이 하는 일은 벌집의 영역 내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특이 사항을 보고하는 일이었다. 그것들이 도움이 되고 가치가 있다면 점수를 얻어가는 방식이었다.

그것도 안 된다면 필요한 물품을 발품을 팔아 모아오는 고물상 역할도 했다.

점수를 얻는 건 매일 목숨을 걸 만큼 위험했지만 잃는 건 매우 쉬었다.


죽으면 끝. 그리고 같은 팀 내에 사망자가 나오면 대폭 깎인다.

벌집이 지금 가장 원하는 자원은 사람이다.

팀원들 다 버리고 혼자 살아오는 놈들은 안 받겠다는 의지가 점수에 담겼다.


그렇기에 새치 아저씨의 간단한 내 소개와 팀원들의 건조한 반응에도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적어도 텃새나 뒤통수를 치려고 한다면 본인들도 손해니까.

무엇보다 2 경비대장이 뒤에 있다는 소리가 이들에겐 컷나 보다.


“훅... 훅... 후우...”

“체력이 생각보다 엉망인데? 혼자 다닌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오랫동안.. 굶고 다녀서... 회복 중이에요.”


밖으로 나온 지 10분 만에 호흡이 가빠졌다.

혼자 다닐 때는 힘들면 숨어서 쉬고 다시 움직였기에 내 페이스에 맞춰 움직여 이런 일이 없었다. 하지만 팀이 생기고 이들에게 맞춰 움직이니 체력 차이가 시작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단순 정찰이라서 크게 생각 안 했는데 이렇게 비실댈 줄은 몰랐군.”

“... 열심히 할게요.”

“열심히는 의미 없다. 잘 해야지. 음.. 이봐 우진! 이 애 짐까지 들어라. 밥 늦으면 다들 지랄할거다.”


새치 아저씨의 말에 문신 형님이 말없이 다가와 내가 받은 할당량을 가져갔다.

등이 가벼워지자 살것 같았지만 내가 느끼는 건 만족이 아니라 창피함이었다.

쪽팔리다. 인재랍시고 들어왔는데 단순히 걷는데도 이러다니. 하지만 내 작은 키로 어른들을 따라가기에도 벅찼다.


“정해진 경로로 안전이 확보된 길이긴 한데.. 그만큼 시간이 중요하다. 오후 전에 모든 거점에 식량을 배급해야 하니까. 진우야 할 수 있겠냐?”

“... 갈 수 있습니다.”

“...그래.”


우리팀이 맡은 임무는 다른 외부 인력들과는 달랐다.

벌집이 영역 내에 세운 모든 거점에 물과 식량을 보급하는 일이었다.

이건 정규병력이 할만한 중요한 작전이다.


이 팀은 합류가 확정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점수는 충분히 확보를 했으나 자리가 나기를 기다린다던가, 아니면 너무 빠른 합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불만을 가질 수 있어 적당히 시간을 때우는 팀이란 소리였고 거기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외부인보다는 벌집 내부 사람들과 더 교류할 수 있는 보급 역할이 떨어졌다.


“우선은 시가지 중심부에 백화점으로 간다. 가장 큰 곳부터. 안 머니까 힘내라.”

“넵.”


나로 인해 걸음이 늦춰졌고 맡은 짐까지 대신 짊어짐에도 누구 하나 불평을 내뱉지 않는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는데 견제는커녕 오히려 무관심에 가까운 반응이라 이게 더 쪽팔리 게 만들었다.


“후욱... 후욱... 나도 동기화면 이까짓 거 아무것...”

[닥쳐라. 심호흡하고 복면에 물 적셔. 걷는 것만 생각해라.]


짜증. 울분. 그리고 창피함으로 다른 사람들의 무관심이 오히려 조롱처럼 느껴지기 시작하자 화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필요 이상의 감정 변화, 살짝 등 떠밀리는 듯한 피해망상.

안개의 충동질이다. 정신을 다잡고 심호흡했다.


끼릭 끼릭 뽕.


수통을 꺼내 조심히 복면에 물을 적셔 하관을 덮었다.


공수증으로 인한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며 오히려 내 정신에 악영향을 줄 거 같지만 이래야 한다. 잠깐 시간이 지나자 멋대로 올려오려는 감정들이 누그러지며 힘들다는 단 하나의 감정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안개 속 괴물들은 해와 물을 싫어한다. 이게 안개에도 적용이 되나 보다.


혼자 다닐 적엔 이런 게 필요 없었다. 물이 부족한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내겐 동기화라는 스킬이 있었다. 나의 부족한 체력과 정신력을 태창이 형이 보조 해주는 것만으로도 외부 활동에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 내 동기화는 1%.

최소한의 감각을 남긴 채 온전히 나의 힘만으로 이들을 따라가고 있다.


[이놈들이랑 다닐 때는 동기화를 끈다. 최소치만 남기고 너 혼자 하는 거다.]

‘왜요? 경비대장은 내가 능력자라서 잘해주는 거잖아요? 비실대면 생각 바뀔지도 모르는데?’

[안전을 보장하고 키워준다고 했다. 그럼 이용해야지. 동기화는 강력한 무기인 만큼 너의 성장을 방해한다.]

‘그게 무슨? 그러다가 약속 취소하면?’

[그럼 그전까지 최대한 빨아먹고 다른 방법 알아보면 되지. 우리가 약속 어긴 건 아니잖아?]


철저하게 계산적이다. 이들의 호의마저도 최대한 이용한다.

태창이 형은 동기화는 양날의 검이라고 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렇게 걸어보니 바로 알겠다.


온전한 내 힘만으로는 이들을 따라가기에도 벅찼다.

혼자였다면 이렇게 무리하게 움직이지 않았을 거다. 언제든 도망칠 수 있게 여력을 남겨놔야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내겐 보호자 겸 팀원이란 게 생겼다.

내가 죽거나 다치면 이들의 점수가 박살나기에 날 쉽게 버릴 수도 없는 팀원들이.


이게 어른인 건가? 차갑고 이성적으로 계산한다.

나였다면 어떻게 해서든 빨리 인정받기 위해 애썼을 거 같은데. 나도 크면 저렇게 된다는 건가?


짝!

쓸데없는 생각들이 계속 꼬리를 물고 튀어나오자 내 뺨을 쳤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복면을 다시 눌러쓰고 슬쩍처다보는 팀원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다시 걸었다.


훅,.. 훅....

검문소와 백화점의 거리는 대략 600m 정도. 이제 절반을 걸어 온 것 같은데 이상하게 힘들다. 대낮이라 거리가 말도 안 되게 늘어났을리는 없고..

동기화라는 능력의 최대 장점은 한계를 넘어선 물리적 힘을 주는 게 아니었다.

내 정신을 보호하고 보조 해주는 다른 의지가 있었다는 게 최대 장점이었다.


온전하고 꾸준하게 안정된 정신력은 체력을 소모하는 데 있어 엄청난 영향을 준다.

슬쩍 다른 팀원들을 보니 다들 물로 적신 복면 안으로 침묵을 유지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안개와 싸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정신력을 아끼기 위해 불필요한 다툼이나 충돌을 피하려는 거다.


나는 말도 안 되는 행운을 얻었다는 걸 알았다.

이건 임무 수행 겸 내 개인 훈련이다. 태창이 형은 이 기회를 뼛속까지 챙겨 먹을 생각이었구나. 내 조언자가 이런 사람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크면 내가 저렇게 된다는 거지?

나쁘지 않아.


각오를 다잡고 묵묵히 걸었다.

다들 각자 살아남은 가닥이 있는지 체력도 정신력도 범상치가 않다.

그렇게 앞 사람의 발만 보며 걷고 있던 중 선두가 멈춰 서는 게 느껴졌다.


삑..삑..

제일 선두에서 걷던 상철이 형의 손목에 달린 기계에서 작은 비프음이 들려왔다.

벌집에 기술자들이 동작 감지기를 개조해서 만들어 준 정찰 장비였다.


“어? 감지기에 움직임이 잡힙니다.”

“어딘데?”

“7시 방향 30m 정도요.”

“이 근방에 우리가 아는 생존자는 없다. 백귀가 밤사이에 흘러 들어온거 같은데?”

“잡고 가죠. 꿀 빠는 임무만 받으면 우린 언제 렙업합니까? 이럴 때라도 경험치 먹어야죠.”

“3분 준다. 빨리 갔다 와.”


나름 머리가 좋아 명문대 학생이었다는 상철이 형의 요구에 새치 아저씨는 허락했다.

벌집의 영역은 넓지만 그만큼 취약했다.

확보된 진로라도 이렇게 특이 사항이 시작부터 튀어나온다.


“어이 진우야. 서포트 좀 해보자. 할 수 있지?”

“네? 아 네!”


쇠로 된 야구방망이를 돌리며 앞서 걷는 상철이 형 뒤를 따랐다.

아침에 지급받았던 목에 걸고 다니던 무기를 들어 장전을 시작했다.


슈욱..슈욱...

쇠로 만들어진 공기 압축식 물총을 들어 올렸다.

괴물을 맞이하러 가는데 완전 안 어울렸지만 가장 효과적인 무기다.

이전엔 난 분무기를 들고 다녔었다.


“긴장하지 마. 그냥 물총 싸움 같은 거다. 맞추지 못 해도 뿌리는 것만으로도 놈들의 움직임을 멈출 수 있어.”

“아.. 알아요. 혼자서도 분무기 들고 다녔으니까.”


내 말에 알았다는 듯 끄덕이고는 전혀 긴장감 없는 모습으로 형은 치킨집에 들어섰다.


괴물들이 싫어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해 그리고 또 하나는 물이다.

괜히 강 근처에 자리 잡은 벌집이 이 일대에 가장 큰 집단이 된 게 아니다.


상철이 형이 천천히 방방이를 내밀고 엉망이 된 내부를 나아갔다.

난 뒤에서 언제든지 쏠 수 있게 준비된 자세로 붙었다.


조명이 없는 닭집 안.

안개에 가려진 해는 어두운 실내를 밝혀 주기엔 충분치 않았다.

기울어진 벽면으로 인해 생긴 사각지대가 여기저기 생겨있다.


습관적으로 생각한다.

퇴로는? 들어 왔던 곳, 그리고 가게 후문에 하나. 하지만 저 조금 열린 문 너머 뭐가 있는지 모른다. 그리니 퇴로는 뒤뿐이다.

사각지대는? 총 3곳, 주방 그리고 화장실, 마지막으로 제멋대로 쌓여있는 테이블 더미.

남은 건? 적은 어디에?


두근.. 두근...

세상에... 동기화가 없으니까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땀이 흐른다.

이렇구나.. 혼자서는 이런 느낌이구나.. 모든 감각을 온전히 느끼자 버려진 가게 안의 공기에서도 위험함이 느껴지는 거 같다.


퍽! 퍽! 딱! 퍼억!


갑자기 여기저기 방망이를 처대며 상철이 형이 전진한다.


끄엑?


소리에 반응하듯 회색빛 얼굴에 붉은 눈이 주방과 홀로 통하는 서빙 창구에 대가리를 내밀었다. 어두운 조명에 저런 얼굴이 튀어나오자 알고 있었는데도 소름이 돋았다.


“ 끄엑!!!”


놈이 좁은 공간으로 몸을 우겨 넣으며 튀어나왔다.


“기다려. 거리가 좁혀지면 쏘는 거야. 지금.”

찌익~

담담한 상철이 형의 말에 따라 물총을 쏴 보냈다.

내가 쏜 물줄기가 놈의 허벅지에 닿았다.

그러자 놈은 마치 창에 맞은 듯이 다리에 힘이 풀리며 오던 속도 그대로 넘어졌다.


쿠당탕!!


바닥을 쓸며 넘어지는 놈이 관성으로 나와 상철이 형 사이를 지나쳐 갔다.

언제 챙겼는지 가게 식탁보를 놈의 머리에 던지고 형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바둥거리려는 대가리를 내려쳤다.


퍽! 퍽!


내려치는 데 실린 힘이 평범하지 않다.

안정적인 높이에서 반복해서 내려쳐 놈의 머리통을 완전히 박살 낸다.


“음.. 이젠 느낌도 안 나네. 나도 백귀로 렙업하는 건 끝났나 봐.”


덮혀 있는 천 쪼가리 아래로 아주 희미한 흐름이 만들어지며 상철이 형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천천히 형의 몸으로 흡수되는 게 보인다.

나에겐 이렇게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게 안 보이나 보다.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느낌으로 힘을 얻는다고 설명한다. 괴물을 잡으면 점점 강해지는 거 같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눈과 감각을 공유하는 태창이 형조차 이 흐름이 안 보인다고 한다.


내가 가진 ‘감지’라는 스킬이 태창이 형은 느낄 수 없어서 매번 브리핑해야 하는 것처럼 형과 나 사이에는 조금씩 차이점이 발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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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능력의 급수 24.09.04 30 2 13쪽
22 익숙한 천장 +1 24.09.02 29 3 12쪽
21 양날의 검 +1 24.09.01 35 3 13쪽
20 어그로 +1 24.08.30 40 2 13쪽
19 둥지에서의 하룻밤 24.08.29 33 3 13쪽
18 꿀벌들의 일과 24.08.27 35 3 12쪽
17 능력과 경험치 24.08.26 36 2 14쪽
16 출항과 옆집 늑대들 24.08.25 34 2 13쪽
15 어른의 사정 +2 24.08.23 43 2 12쪽
14 바뀐 대가리 +1 24.08.22 39 2 12쪽
13 철창 속 정화 24.08.20 40 2 12쪽
12 정리와 침식 24.08.19 45 2 12쪽
11 야간 전투 24.08.18 45 2 13쪽
10 마석 24.08.16 45 1 13쪽
» 첫 번째 임무 24.08.16 53 2 12쪽
8 합류 24.08.13 56 3 12쪽
7 다중이 24.08.12 59 3 12쪽
6 검문소 24.08.10 63 2 13쪽
5 우리 집 24.08.09 71 2 14쪽
4 안전 귀가 24.08.06 84 3 12쪽
3 동기화 24.08.05 104 6 13쪽
2 튜토리얼의 끝 24.08.04 129 5 12쪽
1 삼위일체 24.08.04 17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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