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이드(Dec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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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미소
작품등록일 :
2024.08.04 21:47
최근연재일 :
2024.09.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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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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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에서의 하룻밤

DUMMY

안전 가옥이라고 들어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을 장씨라고 소개한 이곳의 관리자는 툴툴대던 모습과는 달리 알아서 찾아와 준 꿀벌들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이것저것을 요구해 댔다.


조금만 가면 도로 한복판에 큰 구덩이가 있는데 거기 빗물 좀 퍼 와 줘라.

건물 내부에 갖다 둔 양동이에 물 좀 채워 넣어라, 백귀들 얼씬도 못 하게.

전파 탑이 시원치 않아. 무전이 잘 안 터진다. 가서 확인 좀 해봐라.


안전 가옥은 피난처이면서 동시에 벌집에서 통신 도구로 쓰이는 라디오 중계기 역할도 하고 있는 중요 거점이었지만 계속되는 주문에 분대장의 미간이 서서히 찡그려졌다.


“아니 유지가 힘들면 인력을 더 신청하던가. 그리고 안전 가옥 관리자는 두 명 아니야? 한 놈은 어따 팔아먹었냐?”

“엊그제 갔어. 손을 물렸다고 지랄지랄해서 봤더만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혼자 나가서 뒈져버리더라.”

“... 지금 조사 중이겠군.”

“그래. 내가 개짓거리 안 했나 살펴보신단다. 쌍놈들. 그냥 날 범인으로 찍고 여기저기 뒤지더라.”


침식은 좀비에게 물린 것과는 다르다. 몸에서 일어나는 감염과는 달리 정신에 더 큰 영향이 있다는 게 사람들 사이에서 정설처럼 여겨졌다.

버티고 이겨내면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장씨 아저씨의 동료는 그러지 못했나 보다.


안전 가옥으로 만들어진 상가 중앙에 위치한 이곳은 전에는 분식집이었는지 주방이 붙어있는 작은 방안에 짐들을 풀어 놓고 감자를 쪄먹었다.

먹으며 통성명하던 중 내 차례에서 장씨 아저씨가 말했다.


“어리네? 중학생이냐? 이쁘장하게 생겼네.”


감자 먹다가 사레 걸릴 뻔했다.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난 아빠 닮았는데? 엄마 닮은 친형이 저 소리 듣는 건 많이 봤어도.


[혼자 살다가 정신 나갔군. 가까이 가지 마라.]

“....”


이거 은근히 기분 나쁜데. 태창이 형은 나랑 똑같이 생겼잖아? 그래도 장씨 아저씨에게서 슬그머니 거리를 벌렸다.


“그런데 여기 마실 건 없습니까?”

“마실 거? 저기 정수기 있잖아? 녹슬어 보였어도 성능은 좋아.”

“아니 그거 말고... 마실만 한 거..”


상철이 형이 손을 꺾어 보이며 친근하게 물어오자 장씨 아저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임무 중인 놈이 술을 찾냐? 없어 임마. 그리고 나 술 안 마셔.”

“에이.. 술 안 먹는 사람이 어딧다고.”


상철이 형의 아쉬움을 무시하고 분대장은 우리에게 각각 할 일을 분배했다.

장씨 아저씨의 사적인 요구가 아니라 안전 가옥을 보강하는 공적의 성질이 있었기에 우린 아직 남은 해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그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나와 미래 누나는 주변 웅덩이에 고인 물을 퍼와 상가 내부 곳곳에 배치된 양동이에 모으는 역할을 맡았다. 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백귀가 접근하지 못하게 싫어하는 것들을 퍼트려 놓는 작업이었다.

그냥 대놓고 놓는다면 약탈자들의 눈에 띄기에 잘 숨겨서 배치하는 세심함이 필요했지만 혼자 있었을 때 맨날 했던 일이라 어렵지 않았다.


한창 흙탕물을 양동이에 부어 넣고 잘 숨기고 있는데 미래 누나가 다가왔다.


“익숙해 보이네?”

“혼자 살았었으니까요.”

“역시 내가 팀원은 잘 뽑았어.”

“그러고 보니까 고맙단 말도 안 했네요. 팀원으로 뽑아줘서 고마워요.”

“아냐. 내가 고맙지. 생각해 보니까. 다리 아래에서 3일 동안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너 정말 잘 버텼더라. 정신 나간 내 이야기 끝까지 대답해 주면서 다 들어줬잖아.”


이 누나도 오해하고 있었다. 침식을 버티는데 나는 별로 안 힘들었다. 태창이 형이 고생했지. 그래서 반쯤은 제정신이 아닌 누나의 일대기를 들어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었다.


지방에서 할머니와 둘이서 살다가 공무원을 준비하고 합격해서 서울로 올라와 수습 기간을 가지던 와중 종말이 터져버린 이야기,

그리고 누나와 같이 다니는 두 명은 보건소에서 일했던 시절부터 같이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더러운 꼴을 그때 다 봐서인지 살아남을 수 있었나 봐.’


철창에서 나갈 때 누나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었다.

도대체 간호사들 사이에 무슨 문화가 있길래 말투까지 바뀌고 침식을 이겨낼 정신 단련을 해주었던 걸까? 그 시절부터 누나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물건이 있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누나의 가슴팍에 시선이 머물렀다.


“어딜 보니? 너도 남자라 이거야?”

“아니 누나가 말한 그거. 쓸 일이 없었으면 해서요.”

“아... 뭐 사람 일은 모르니까. 충전하기도 힘든데 말이야. 그런데 너 상철이란 사람이랑 오래 다녔어?”

“아뇨. 한 이주 됐나? 왜요?”

“아니 그냥. 다 된 거 같다. 들어가자.”


뭐지? 관심 있나? 상철이 형이 한 살 연하였던가? 하긴 같이 다니는 동기들은 이젠 거의 형제 같다고 했으니까. 이거 내가 다리를 놔줘야 되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안전 가옥으로 되돌아갔다.


시각은 17시 34분. 다른 사람들은 이미 맡은 일을 마치고 밤을 지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상철이 형이 슬그머니 웃으며 다가온다.

난 슬쩍 미래 누나의 기색을 살폈지만 눈에 띄는 표정 변화는 없었다. 티를 안 내는 타입인가보다.


“이거 봐라. 내가 말했잖아. 술 안 먹는 사람 못 봤다고.”

“소주병이네요. 반 정도 들었네. 근데 임무 중인데 마셔도 되요?”

“한 잔씩 마신다고 허락받으면 되지 내가 본 분대장 형님은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냐.”


언제부터 형님이라 부른 건지, 사람이 친화력은 좋다. 상철이 형은 뒤에서 들어오는 분대장을 보자 눈을 빛내며 다가갔다.


“유지 보수 좀 해라. 그리고 안개 속에 계속 놔두면 침식되서 전파탑 자체가 기능을 멈추잖아. 가뜩이나 안개 때문에 수신 거리가 얼마 되지도 않는데.”

“혼자 사는데 저길 어떻게 매일 관리하냐. 갈 때마다 살 떨리는구만.”


전파탑을 살펴보고 오던 분대장과 장씨 아저씨는 살갑게 다가가는 상철이 형을 의문스럽게 바라 보았다.


“분대장 형님. 제가 말했잖습니까. 술 안 먹는 사람 없다고. 하하. 이거 어떻게 이따가 한 모금씩?”

“... 상철아. 임무 중 음주는 금지다. 그리고 남의 토템에 함부로 손대는 거 아니다.”

“아니 그래도 한 잔씩 정도는 괜찮... 예? 토템이요?”


웃으며 다가가려던 상철이 형이 분대장의 얼굴과 반 정도 들어있는 소주병을 번갈아 처다 보았다.

토템이라... 소유자의 정신을 지탱해 줄 의미 있는 물건.

저 소주병은 장씨 아저씨의 토템이었나 보다. 옆에 있던 장씨 아저씨가 슬쩍 웃어 보였다.


“...그.. 다시 갖다 놓겠습니다.”

“죽은 사람 물건 가지고 있어 뭐하나, 산 사람 입에 넣어야 의미 있지.”


상철이 형은 장씨 아저씨의 말에 얼굴이 살짝 피었지만.


“라고 하고 싶은데 제자리 돌려놔라. 시불놈아. 그거 처먹었으면 니 배 갈랐을 겨.”

“죄.. 죄송함돠.”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밤은 여지 없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크아아~ 키엑!

텅! 텅!


변해 버린 세상에서 쉘터를 만든다는 건 굉장히 고민되는 일이다.

벌집같이 머릿수로 밀어붙여서 안정된 곳도 있었지만 나 같이 혼자 살거나 소규모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최대한 높은 층에 사는 이유가 있었다.

낮의 세상과 밤의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


지금도 도시 곳곳에서는 낮 동안 건물이나 어두운 구덩이에 숨어 웅크렸던 괴물들이 밤 거리로 쏟아져 나와 소란을 일으킨다.

잠을 자기 힘들 정도로 간간이 들려오는 소리에 흠칫흠칫 놀라며 옆에 놓아두었던 빠루에 자동으로 손이 갔다.


“장 형님. 형님은 이런 데서 어떻게 주무십니까?”


사정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상철이 형이 대표로 장씨 아저씨에게 소근거렸다.

10살 이상은 차이 나는데 형님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뭐? 어떻게 자냐고? 귓구멍에 이거 꽂아. 없으면 휴지라도.”

“으헉! 형님 말소리 좀 줄여요!”


아저씨의 대답은 고함 소리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았다.

그 무신경함에 다들 예민해져 눈초리가 날카로워지자 대수롭지 않게 말을 잇는다.


“이 새끼들이? 여기 살고 있는 내가 니들한테 눈치 안 주는데 꼴아 보는 눈들 보소.

저것들 안개가 미약한 곳은 감지를 못해. 이것들아. 기본적인 거 아냐. 여기서 미친 척하고 총 같은 거만 안 쏘면 걸릴 일 없다고. 그리고 저건 폼으로 설치했냐?”


아저씨는 방 한 구석에 설치된 cctv화면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는데 깨우면 대가리 깨버릴 거라며 모포를 얼굴까지 뒤집어 썼다.


안개 속 괴물들은 마치 물고기가 물 밖을 인식하기 힘들듯이 안개가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소음이나 진동을 잘 알아채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안개를 걷어낸 공간에서 밤을 보낸다는 게 중요하다.

자다가 영문도 모르고 죽을 일은 없었지만 다들 불안한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에는 낮에는 못했던 서로 간의 대화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름이 이대훈 맞죠? 형님이시라고?”

“난 이대훈 그리고 저긴 내 친구 최미래, 정대찬.”

“아이고 형님 누님들. 이제 인사드립니다. 최상철입니다. 그런데 다들 의사셨다고?”

“아니. 간호사. 너는?”

“아휴 전 대학생이었죠. 그런데 세 분 다 전문직이셨는데 외부로 도십니까? 안전하게 벌집에서 생활 가능한데?”

“저놈 때문에. 대찬이 저놈 충격으로 실어증 걸리고 배웠던 기억 싹 다 날라갔거든. 그치 대찬아?”

“....”

“이야. 끝까지 친구를 챙기는 우정이라니 멋지십니다.”


참. 사람이 붙임성은 좋은 거 같다. 저 모습을 보며 주변을 확인하곤 조용히 속삭였다.


“태창이 형?”

[왜?]

“아니 보고 있나 해서.”

[퇴근하고 이제 집 도착했다. 불침번은 내가 서줄 테니 편하게 자라 동기화도 40으로 잡는다.]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굳이? 경보기까지 있는 안전한 곳인데?”

[어차피 내일 휴일이야. 괜찮아. 혹시 모르잖아. 그리고 불침번이란 거 연습 좀 해보게.]

“...그럼 잘게요.”

[그래.]


내가 자는 동안에도 감각은 남는다. 귀로 들려오는 소리, 피부로 느끼는 감촉. 만약 이상이 발생한다면 자는 동안에라도 태창이 형이 소리쳐 깨워줄 수 있다.

그 대가로 태창이 형은 날 밤을 새야 한다는 거지만....

다른 사람과는 달리 난 장씨 아저씨 다음으로 잘 잘 수 있었다.



------


“....출발 하지.”

“ 끌끌. 호텔이 따로 없지? 다들 잘 잔 얼굴이라 뿌듯하구만. 그래도 제일 어린 친구가 깡이 제일이네. 꿀벌 일이 체질인가봐?”


장씨 아저씨는 싸게 해줄테니 자주 오라며 우릴 배웅 해줬다.

다들 피곤이 붙은 얼굴들로 남은 거리를 줄이며 아침 일찍 출발했다.


똑같이 선두에는 분대장이 후미엔 부분대장이 나머진 중간으로 대형을 가지고 얼마 남지 않는 목적지까지 빠르게 걸었다.

하루를 괜히 묶었나 싶을 정도로 남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1시간도 안 되어 도착한 14단지에서 목표로 했던 아파트가 보였고 분대장은 주변 경계를 명령했다.


“나머진 대기 하고 상철이랑 부분대장 둘이 목표물 확보하고 내려온다.”


그 말에 두 명이 아파트를 올랐고 우린 흩어져 주변을 경계했다.

난 분대장 옆에서 경계를 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대장의 무전이 울렸다.


-찾았습니다. 말한 것과 일치하는 검퓨터를 찾았고 하드 수거했습니다.

“혹시 모르니 그 집에 있는 모든 하드를 다 챙기세요.”


목표물인 하드디스크를 확보하고 두 사람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문득 물어도 되나 싶어 그동안 안 물어봤던 질문을 하려고 분대장을 쳐다보았다.


“근데 그 디스크 안에 뭐 들었나 물어봐도 돼요?”

“별거 아니다. 그냥 드라마나 영화가 2테라 정도 들어있는 물건이지. 벌집에서 다들 본 거 또본다고 난리들 쳐서 이번에 구하러 나온 거지. ”


진짜 별거 아니구나 싶을 때 분대장의 무전기가 울렸다. 무전기에선 장씨 아저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치익.. 여긴 둥지. 18번 꿀벌?

“여긴 18번. 무슨 일인가?”

-별건 아니고 그 주변에 24번 꿀벌이 연락이 끊겼다고 확인 좀 해 달라는데?“

”....“


잠시 분대장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약간 잠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맨입으로?“

”... 나중에 술 한 잔 사지.“

”....알았다.“


대화에서 이상한 점이 있었다. 장씨 아저씨는 술 안 마신다고 했는데?


”어쩐지 어제 습격했던 놈들, 우리 동선을 알고 쫓아온 거 같더라니.“


분대장은 작게 말했지만 내 귀엔 잘 들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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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능력의 급수 24.09.04 30 2 13쪽
22 익숙한 천장 +1 24.09.02 30 3 12쪽
21 양날의 검 +1 24.09.01 35 3 13쪽
20 어그로 +1 24.08.30 40 2 13쪽
» 둥지에서의 하룻밤 24.08.29 34 3 13쪽
18 꿀벌들의 일과 24.08.27 36 3 12쪽
17 능력과 경험치 24.08.26 37 2 14쪽
16 출항과 옆집 늑대들 24.08.25 35 2 13쪽
15 어른의 사정 +2 24.08.23 44 2 12쪽
14 바뀐 대가리 +1 24.08.22 40 2 12쪽
13 철창 속 정화 24.08.20 40 2 12쪽
12 정리와 침식 24.08.19 46 2 12쪽
11 야간 전투 24.08.18 46 2 13쪽
10 마석 24.08.16 46 1 13쪽
9 첫 번째 임무 24.08.16 54 2 12쪽
8 합류 24.08.13 57 3 12쪽
7 다중이 24.08.12 60 3 12쪽
6 검문소 24.08.10 63 2 13쪽
5 우리 집 24.08.09 71 2 14쪽
4 안전 귀가 24.08.06 85 3 12쪽
3 동기화 24.08.05 104 6 13쪽
2 튜토리얼의 끝 24.08.04 130 5 12쪽
1 삼위일체 24.08.04 180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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