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이드(Dec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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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미소
작품등록일 :
2024.08.04 21:47
최근연재일 :
2024.09.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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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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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사정

DUMMY

2024년.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어느 빌딩.


대유행 감염병마저 버텨낸 중견기업의 사무실 안의 아침 공기는 무거웠다.

출근 시간이라면 아직 넉넉하게 남아 있었지만 사무실 안의 자리는 거의 다 차 있었다.

취업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린 시대에 사무실의 한구석을 차지한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생존자 대열에 끼어있다는 뜻이기도 했기에 사무실 안의 모두는 이곳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각자의 삶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개 같은 안개가 드디어 다 빠졌네.”


오직 한 사람.

탕비실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들여다보는 남자 한 명만이 이곳과 어울리지 않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사원 이 진우.

지도 교수님의 추천으로 인턴으로 들어온 회사에서 능력과 사교성을 인정받아 계약직으로 회사와 1년짜리 계약까지 했었지만,,,

남은 건 정직원이란 이름만이 남아있었으나 글러 먹게 되었다.

그가 인턴을 거처 회사에서 쌓아 올린 모든 노력과 신뢰가 박살 나는 데는 한 달이란 시간은 충분했다.


“오 좋은 아침. 나보다 일찍 여기 온 사람이 누구....어.. 진우씨.”

“안녕하십니까.”

“아... 예.”


길가에서 광견병 걸린 개를 본 것 마냥 넓지도 않은 탕비실을 죽 돌아가는 선배 사원의 모습을 보며 진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회사 내 괴롭힘이나 갑질이 아니었다. 그의 눈에 담긴 건 두려움뿐이었으니까.

사무실 자기 책상에서 욕설을 외치고 비명을 질렀던 놈이 정상으로 보일리가 없었겠지.


“봉수 우리 뽕쑤~ 일찍 출근했네? 표정이 왜 그래? 아침부터 허옇게 질려... 음..”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예. 진우씨도 일찍.. 그... 음.. 아 갑자기 배가..”


회사 내에서 미친개라 불리는 김 부장이 탕비실 입구에서 돌아 나갔다.

회사에선 직급이 깡패다. 하지만 인생 포기한 놈 앞에서는 직급이 무의미해진다.

아니 포기하게 되어버린 진우 앞에서는 미친개도 온순해져 버렸다.


11년 차 김 부장도 사무실에서 지랄발광하는 밑의 부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기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종놈처럼 일만 하다가 최대한 빨리 퇴사하겠단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나 보다.

사고치지 않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 정직원이고 나발이고 계약기간 전에 최대한 정리할 시간만 달라.

핏발이 선 눈과 살기마저 느껴지는 표정에 김 부장은 인사과의 압박을 자기 선에서 정리했었다.


‘대놓고 소리치고 욕하고 간질 걸린 새끼마냥 사무실 한가운데서 거품 물었는데 안 잘린 건 기적이지.’


김 부장이 왜 자신의 요구를 수용해 줬는지 진우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드라마에서도 이런 전개라면 쌍욕을 처먹고 급종연 때릴 전개였는데...


-그러니까 교수님 지금 급증하는 범죄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씀 이십니까?

-강력 범죄는 늘상 있어 왔습니다. 묻지마 범죄도 물론 있었어요. 하지만 잔혹한 범죄가 한 달에 열 건이 넘습니다! 게다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 흥분을 가라 앉히시고요. 경제가 어려워지고... 또 국내에 비율이 높아진 외국인들의 범죄인지도 따져봐야...

- 허튼 소리!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매달 신원 파악이 힘들 정도로 잔혹하게 살해되는 시신이 열 구가 넘게 나온단 말입니다! 이건 대 감염병의 새로운 변종입니다!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변종! 사람을 살인자로 만드는 병이라고!

- 마.. 마이크 꺼주세요.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이 교수님의 발언은 저희 방송과 협의 되지 않은..


탕비실 벽면에 붙어 있는 TV는 뉴스 앵커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이 보일 정도로 선명했다.

코로나의 변종이라.. 정신에 영향을 미치게 변이 됐다라...

어쩌면 김 부장은 저 소리를 믿는 게 아닐까? 진짜로 뒤가 없어진 진우가 어느 날 칼 들고 출근하는 상상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우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제는 사라진 손가락에 붙어 있던 회색 빛 실선의 흔적을 찾아보려 조금 더 그곳에 머물렀다.


------------------


숫자가 가득한 재무제표를 분석하는데 아침이 지나갔다.

거래처로 예상되는 곳을 분석하고 다른 부서에서 올라온 예상 수익과 비용을 비교하여 타당성을 검사한다.

해야 할 업무가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은 안개가 낀 것처럼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 채 점심시간을 맞이했다.


외딴섬처럼 진우의 주변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입맛조차도 그를 피하는지 조용히 옥상에 올랐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다른 세상에서 넘어오는 섬뜩한 악의를 버티는 그에겐 하루하루가 위기였으니까.


“후우..... 끊었던 담배를 너 때문에 다시 문다.”


화창한 봄바람이 빌딩 위로 불어온다. 바람에 흩날리는 연기를 보다 잠깐 멈칫했다.

모두 점심을 먹으러 나가서 이곳엔 진우 한 명뿐이었으나 귓가를 스치는 바람 말고 그의 귓가엔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뭐라 했음? 근데 1 경비대장 그 여자가 온다는데 어떻함?]


10년 전의 목소리. 아직은 어린 17세의 과거의 그는 돌아버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금도 애쓰고 있다.

처음 저 목소리가 들린 건 한달 전 이었다.

여느 날처럼 긴장된 마음으로 출근을 준비하던 아침, 머리를 감으려 눈을 감았을 때 다른 세상이 그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다 죽어가던 뼈가 보일 정도로 얇은 손목이 난간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그가 본 처음의 광경이었다.

난간 아래로 보이는 회색의 괴물들 그걸 피해 죽음으로서 도망치려는 소년.

저걸 살리기 위해 한 달을 고생했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건 예정된 퇴사. 어쩌면 해고일지도.


‘포기 할 수도 있었다. 아무 증거도 없는 환영에 인생을 태우는 놈이 어디 있다고. 그냥 환상을 본다 취급하고 무시하면 끝날 일이었어.’


그러지 못했다. 그때는 동기화니 감각의 공유 따윈 없었기에 그저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병 취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다. 10년이나 어린 자신. 저 어린놈이 죽는 모습을 끝으로 평생 잠이나 잘 수 있을까? 고민할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기다려. 있다가 퇴근하고 노원에 함 가볼 테니까.”

[형이 가서 뭐하게요? 10년의 시간을 극복할 방법이라도 있음?]

“넌 시발 말을 너무 이쁘게 하는 게 문제다. 사전 답사 이 새끼야. 지형 정찰 뭐 그런 거.”

[헤헤. 수고.]


너무 잘 알기에 가끔은 죽기 직전까지 패주고 싶었지만 어쨌든 어린 자신이다.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


노원의 번화가의 고깃집에서 진우는 한숨을 돌렸다.

하루 종일 거리를 거닐며 어릴 적 살았던 동네의 지형을 다시금 머릿속에 확실히 집어넣었다.

어제 다른 세상의 소년이 몸을 의탁한 단체의 책임자가 바뀐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분명 그 군바리 대장과는 다르게 위험한 임무에도 투입될 것이 뻔했기에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야 했다.

이 고깃집에 온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고. 자리에서 기다리던 중 경찰복을 입은 남자 한 명이 문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어서오세... 경찰이 왜 저희 가게에?”

“아뇨. 손님으로 온 겁니다. 친구 만나러요. 여기 못생긴 새끼 혼자 오지 않았나요?”


진우는 한숨을 쉬며 경찰복을 입고 가게에 들어선 어디 내놓기 창피한 불알친구를 향해 손을 들었다.


“여기다. 이 새끼야.. 좀... 업무 끝났으면 환복 좀 하고 와라.”

“귀찮아. 그리고 이거 입고 고기만 처먹으면 문제 될 거 없다? 어차피 너 술 안마실 거잖아?

그 다른 세상의 소진우 때문에? 그지? 중진우쿤?”


양아치에서 경찰이 되어버린 김재웅은 어릴 적 모습 그대로였다.

만화 속 주인공들처럼 모험심 가득하고 반골 기질이 다분한 그런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가족에게도 말 못 할 초자연적인 것들에 관해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래서 그 소진우는 지금 뭐하든? 나는 찾았데? 나도 이 세계를 보고 싶다고! 막! 어! 눈감으면 보이는 다른 세상! 나를 찾아줘! 그래서 내 눈을 띄워줘!”

“목소리 낮춰 이 미친 새끼야. 정신병원 동반 입대 하고 싶냐? 일단 좀 먹고 얘기하자. 하루 종일 노원 일대를 걸어 다녀서 피곤하다.”

“니가 사는 거... 아니다... 미안하다.. 박봉인 내가 사야지. 넌 어째 몸은 좋아지는데 얼굴은 하루하루가 맛이 가고 있냐. 얻어 먹기도 미안하게.”


둘은 말없이 삼겹살을 시키고 흡입했다. 5 인분을 먹고 된장찌개에 밥까지 비벼 먹고서야

둘 사이에 여유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김재웅. 이 친구는 진우의 집안이 망하고 노원으로 이사갔을 때 유일하게 연락이 끊기지 않은 상류층 인맥이었다.

아버지가 4선의 국회의원으로 잘 나가는 집안의 자식이 사업이 망한 진우와 계속 함께 한다는게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었지만 이 남자 또한 집안의 문제아였다.


부유한 가정 속에서 태어난 낭만파. 국회의원인 아버지 옆에서 보았던 수 많은 지저분한 것들을 용납하지 못한 그는 집을 뛰쳐나와 독립하여 경찰이 됐다.

기울어진 가세로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된 진우와는 다르게 스스로 부와 권력을 버린 그는 소설을 좋아하고 동심을 포기하지 않는 낭만주의자였다.

그렇기에 어려운 부탁을 할 수 있는 친구였다.


“그래서 나는 왜 보자고 한 거냐? 당분간 적응하느라 바쁠 거라며?”

“신원 조회 좀 해줘. 이름은 정지영 나이는 가만 있어봐... 10년 전이 27세 였으니까 지금은 37세이고 육상 선수 출신이란다.”

“....돌았냐? 사적으로 민간인 사찰을 청탁하는 거냐? 너 내가 지금 뭐 입고 있는지 안 보이냐?”

“.... 어쩔 수가 없다. 소진우가.. 근데 왜 그 애를 소진우라 부르냐? 왜 난 중진우고?”

“ 그 애는 어리고 작으니까 소진우고 넌 소라 하기엔 몸땡이가 크고 대라고 부르기엔 속이 존나 좁으니 중진우다.”

“....아무튼 소진우가 의탁한 단체의 감투 쓴 사람이 그 여자라고 한다.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향인지 알아봐야겠어. 그 사람 말고도 몇 명 더 있을 거고.”

“그래서 그 범죄행위를 경찰 친구인 나한테 부탁하겠다?”

“... 최대한 10년 전의 김재웅을 찾아보라고 해볼게.”

“뭐 흠흠... 그냥 신원 조회만 우연히 한 거니까... 그리고 우연히 술김에 너에게 말 할 예정이고... 이 대재웅이 어린 아이의 생명이 위험하다는데 모른척할 수도 없고 경찰의 본분은 시민의 안전이니까.”

“혀가 길어진다. 그럴 땐 그냥 닥쳐라. 나쁜 짓인건 변하지 않으니까.”

“넌 나쁜 친구로구나. 알면서 시키고.”

“... 어린애 목숨이 달려 있다는 건 사실이니까.”


진우의 눈에는 지금도 그 소년의 시선이 아른거렸다.

말세의 세상에서 합판과 뼈대가 드러난 골조의 방안, 구석에 숨죽여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시선이.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눈앞의 친구는 이 광경을 못 본다. 오직 자신의 설명과 지속적으로 피폐해져 가는 그의 외관으로만 짐작할 뿐이었기에 진우는 처음으로 친구에게 물었다.


“그런데. 넌 날 왜 믿는 거냐?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을 왜 믿어준거야?”

“일찍이도 물어본다. 하긴 그렇게 몰려있어서 주변 볼 여유도 없었겠지. 내가 판타지 소설 많이 읽잖아. 그러니까 언젠가 이런 날이 올걸 대비하고 있었지. 그게 주인공이 나인 줄 알았는데 너라서 문제지만. 내 말대로 상태창 외쳐봤어?”

“가끔은 너와 의절한 너의 아버지의 마음을 알 거 같다.”

“이 새끼가? 도와주는 친구한테 패드립 보소?”


낭만이 가득한 친구에 웃음에 진우는 오랜만에 꾸밈없는 웃음을 만들 수 있었다.


“좋은 시절은 끝났군. 그래도 대비는 얼추 끝마쳤다.”


맥락 없는 말이 진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친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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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능력과 경험치 24.08.26 37 2 14쪽
16 출항과 옆집 늑대들 24.08.25 35 2 13쪽
» 어른의 사정 +2 24.08.23 44 2 12쪽
14 바뀐 대가리 +1 24.08.22 39 2 12쪽
13 철창 속 정화 24.08.20 40 2 12쪽
12 정리와 침식 24.08.19 45 2 12쪽
11 야간 전투 24.08.18 45 2 13쪽
10 마석 24.08.16 46 1 13쪽
9 첫 번째 임무 24.08.16 54 2 12쪽
8 합류 24.08.13 56 3 12쪽
7 다중이 24.08.12 59 3 12쪽
6 검문소 24.08.10 63 2 13쪽
5 우리 집 24.08.09 71 2 14쪽
4 안전 귀가 24.08.06 85 3 12쪽
3 동기화 24.08.05 104 6 13쪽
2 튜토리얼의 끝 24.08.04 129 5 12쪽
1 삼위일체 24.08.04 180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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