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이드(Dec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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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미소
작품등록일 :
2024.08.04 21:47
최근연재일 :
2024.09.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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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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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0,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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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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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다중이

DUMMY

“일주일만 인가? 아 이주 전이라고? 시간 참 빠르네. 그래. 혼자 살기 팍팍하지? 다시 올 수밖에 없었겠지. 밖에서 혼자 버텨보라고 하면 나도 자신이 없는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우리 다중이 아주~ 그냥 남자야? 응? 남자.”


굳은 살이 박힌 커다란 손바닥이 내 등을 쳐댄다.

검문소 내에 모두와 비교해 봐도 경비대장의 근육은 유달리 크고 우람해 보였다.

그런데 몸은 크고 묵직한데 이 아저씨의 입은 상당히 가벼운거 같다.


“그러니까 그만 사서 고생하고 들어오라니까? 응? 지금 고개 끄덕인거야? 생각이 있나보구나? 그래? 이야~ 내 근무날에 아다리 맞게 오고, 혹시 노린거야? 아 그건 아니야? 그래, 그래. 그게 뭐 중요하니 왔다는 게 중요하지. 삼촌이 힘 좀 실어 줄 테니까.”


한 5분은 지났나? 나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거대한 체격 차이에 대한 압박으로 고개만 위 아래로 또는 좌우로 도리도리만 했다.

계속되는 질문에 대가리만 흔들다 보니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검문소 중앙에 위치한 경비대장의 방안 의자에 앉아있었다.

근육도 그렇고 저 아저씨의 호의가 상당히 부담스럽다.


“코코아 좋아해? 잠깐 이거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어라. 할 일이 있어서 갔다올테니.”


직접 섬세하게 두터운 팔뚝을 돌려가며 코코아까지 타주고 경비대장은 방을 나갔다.

세상이 변하고 아직 인정이란 게 남은 걸까? 턱도 없는 소리.

그랬다면 이주 전 다 죽어가던 나를 쫒아내지 않았을 거다.


“다 벗으라고! 이 새끼들아!”

“여... 여자도 여기서 벗어요?”

“백귀 새끼들이 남녀 가려가면서 무냐? 어디 물린데 없나 확인하게 다 벗어!”

내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코코아를 내려다보며 왜 여기에 있나 고민을 시작하려 할 때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대장 방의 창문은 양쪽 입구를 모두 볼 수 있었다.

내가 들어왔던 반대편의 입구에서 새로운 방문자들에 대한 검문이 한창인 듯했다.


남자와 여자들이 섞인 무리가 다리 중앙에 일렬로 세워져 있다.

다들 20에서 30대의 젊은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니 나이든 사람이나 내 또래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검문소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줄을 세우고 모두의 옷을 벗기며 그들의 몸 상태를 확인한다.

규칙에 의한 공적인 확인과 여성들의 몸 위를 흝어대는 사적인 방망이의 움직임이 섞여갈 때 쯤 한 곳의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이 새끼 물렸다!”

“아니야! 피부병이라고! 원래 피부색이 이랬어요!”


한 여성이 나체에도 불구하고 억울한지 자신의 허벅지를 가리키며 항변했다.

변해버린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여성은 억울함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지목한 경비대원에게 다가가려 했다.


“물러나! 오지마! 니 짐 전부 챙겨서 나가.”

“제발.. 점수가 몇 점 안 남았어요. 제 동생이라도 받아줘요!”

“가.. 가까이 오지마! 시발년아! 진짜 쏜다!”


피융... 푹!


... 몇 번의 고성, 오고 가는 서로의 주장.. 그런 건 없었다.

경비대원이 날린 화살이 여성의 눈동자를 관통하고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이 도착하기도 전에 사고가 터지자 사건 현장으로 다가가는 경비 대장의 근육이 화난 듯 꿈틀거리는 게 여기서도 보였다.


“에이....시발.... 야 이거 치워!”

첨벙.


방금 새로 생긴 시체 하나가 다리 아래로 사라졌다.

그리고 방문자 중 몇 명의 얼굴이 멍해져 초점이 사리진 것 빼고는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변해버린 세상이다. 법도 공권력도 사라진 각자도생의 시대.


책상 위에는 아직도 김이 올라오는 코코아가 놓여있다.

그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이 안개처럼 보여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난 확인 절차도 없이 들어왔네요?”

[....]

“김형태.. 그 경비 대장이 봐준 걸까요? 내게 왜 이런 호의를 줄까요?”

[....]


대답이 없다. 보고는 있을 텐데.. 진짜로 나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라는 건가?

그래도 없다면 모르겠는데 내겐 의논할 수 있는 절대로 헤어질 수 없는 조력자가 있지 않은가?

태창이 형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잠시 고민했다.


“설마 함정 아님? 날 이렇게 여기로 유인하고 이 코코아에 뭘 탔다던가?”

[...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그리고 말했다. 생명에 위협이 없다면 난 개입 안 한다고.]


그러니까 왜 그렇게 하는 건데? 형의 생각을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게 되었다.

최소한 이 코코아가 함정이 아니라는 걸. 단순히 그 경비 대장이 날 마음에 들어하는 건가?

하지만 왜? 잘 아는 사이도 아니잖아?

고민 중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가 돌아오나 보다. 근데 발소리가 하나가 아닌데?


끼이익. 벌컥!


“어이구.. 근무 시간 조정을 좀 해야겠네. 애들이 날이 바짝 섰어. 바로 무기부터 나가네.”

“사망자는 줄었지만 부상자가 너무 많소. 들어오는 외부 인력 감시하기도 빠듯하고..”

“에이 자기도 개방정책에 수혜자면서 그렇게 말하니까 섭섭한데?”


우람한 경비 대장의 뒤로 키는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수염에 새치가 가득한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방금 전 사람이 사람을 헤치는 모습이 공개적으로 일어났지만 이들의 반응은 그저 업무 중 작은 사고가 지나간 것 같다.


이럴 때마다 피부로 느껴진다. 아 세상이 지랄 난지 정말로 1년이 넘었구나.

괴물을 보며 비명 지르는 민간인은 이미 다 죽었구나.. 남은 건 살기 위해 발악하는 생존자들이구나 하고.


“이 애요? 나보고 보모 역할로 맡아달라는 애가?”

“에이~ 자기야. 너무 열 내지 말아봐. 내가 찍어 논 애인데. 특별히 자기한테 부탁하는 거야.”

“이유나 압시다. 대장의 부탁이라면 웬만한 건 들어주겠는데 나도 딸린 식구가 있잖소.”

“꼭 벌집에 들여오고 내 밑에 들이려는 이유? 지금부터 만들어 보려고.”


합류는 생각했지만 누구 밑에 들어간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다중이. 아니지 이름은 이진우 17세 99년생. 와이씨 이렇게 보니 더 어려보이네. 사태 전 상계고등학교 진학 예정이었고. 다행히 벌집 학교 전산망에 기록이 남아있었어. 그러니까 신분은 확실하지. 신원은 확실하고 전부터 죽 봤었지만 어디 소속도 없이 혼자 움직이더라고 지금 사는 곳은 창동 19단지 근방. 맞지?”

“....”


내가 사는 위치까지 대략 파악하고 있다. 그렇게 조심하며 행동했는데...

살짝 올라오는 긴장에도 대장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집도 가깝고 그동안 사고 친 것도 없고 이만한 나이대에 청소년이 밖에서 혼자 사는 거 본 적 있어?”

“호구 조사는 다 합니다. 모범 시민 아니었던 놈 찾기가 더 힘들지. 문제는 지난 1년간 뭐 해 먹고 살았냐는 거요. 그 사이에 미친놈 되기엔 충분한 시간이니까.”

“맞는 말이야. 그러니 다중아 말해 봐라. 넌 어떻게 살아남았니?”


.... 1년간 기절해 있다가 얼마 전에 일어났습니다.

말 못 한다. 그러면 내 눈에도 화살 하나가 생겨날 테니까.

그래서 난 태창이 형과 사실을 조금씩 섞어 만든 알리바이를 떠올렸다.

가족과 피난 생활을 했었다. 외가가 부자라서 강원도에 있는 별장에서 1년간 버텼었다.

그러다 식량이 떨어지고 밖으로 나왔다가 가족과 헤어지고 집으로 혼자 돌아온거다.


“음.. 1년간 먹을 식량이 있었나?”

“어.. 삼촌 중에 외할머니한테 철이 없다고 맨날 혼나던 분이 있었어요. 그분 취미가 생존 물품 모으는 거였거든요. 해외에서 막 통조림 엄청 사들였더라구요.”


이건 진짜 사실이다. 삼촌 중에 자기는 생존주의자라면서 돈 많은 외할머니에게 갖은 구박을 받으며 물품을 모으던 삼촌이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면 삼촌이었는데.

문제는 사태가 터지고 물품을 모아놓은 그 근처도 난 가보질 못했다.

어.. 그러고 보니 그 삼촌은 살아 있을 수도?


“어때? 이 정도면 면접은 합격이지?”


경비 대장은 장난스런 웃음과 함께 새치 아저씨를 쳐다본다.


“..사연 없는 놈 없지. 내가 궁금한 건 대장이 왜 이렇게까지 이놈에게 눈독을 들이냐는 거요. 당신 이런 사람 아니잖아?”

“능력자. 이놈 능력자일 확률이 매우 높다.”


경비대장의 말에 새치 아저씨의 눈빛이 달라진다.

새삼 나를 다시 관찰하듯 천천히 움직이는 시선에 기분이 별로다.


능력자.

괴물을 잡으면 잡은 사람은 알 수 없는 힘을 흡수한다.

그것을 마나라 부르든 무협처럼 기라고 부르든 그것도 아니면 경험치라 부르든.

일정 정도의 힘을 얻는다면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 중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인다고 한다.

하나 이상의 능력을 보이면 그들을 능력자라 불렀다. 서울 중심부에서는 헌터라고 불린다는 걸 얼핏 들은 적이 있다.


“능력자라.. 이 애가? 초자연적 능력을 얻으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지. 저 밖에 백귀라도 때려잡을 수 있는 전투력과 재능. 그런데 이 애가 밖에 놈들 중 하나라도 잡을 수 있나?”


믿을 수 없다는 듯 내 위아래를 훑어본다.

이들은 한 가지 오해를 하고 있다. ‘내’가 능력자인건 맞다. 나도 이게 초능의 영역인지 얼마전에야 알게 되었다.


‘감지’ 난 안개 너머 괴물들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달 동안 살아남은 나는 내가 감이 정말 좋아서 괴물들을 피해 다닌다고 여겼었지만 확률이 계속되자 이상함을 느꼈었다.

그리고.


‘동기화’ 또 다른 세상에서 나에게 육체적 정신적 지원을 하는 능력.

이건 태창이 형의 능력이다.

사람이 둘이라서 능력도 두 개인가? 아직은 우린 모른다. 아직은.


“어이 꼬마야. 그래서 네가 가진 능력이 뭔데? 보여줘 봐라.”


고민하던 사이 새치 아저씨가 굵은 목소리로 요구해 온다. 어쩌지? 백귀 하나 잡아와 달라고 해야 하나?


[대답하지 마라. 이건 목숨에 관련된 문제가 확실하군. 동기화를 올린다. 주도권을 양보해라. 내가 직접 대화하지.]


오? 드디어? 도와줄 생각인거야? 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전신에 힘을 풀었다.

긴장해서인지 뻣뻣하던 몸을 이완시키며 기다렸다.


[동기화 51%. 주도권이 내 쪽에 있다. ‘협조’ 해줘.]


동기화가 올라가 임계점인 50%를 넘는다면 또 다른 현상이 일어난다.

심장에서부터 시리고 차가운 기운이 서서히 풀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 차가움이 전신을 타고 흐른다. 나와는 다른 의지가 몸에 깃들어 가는 걸 난 얌전히 받아들였다.

저 의지는 100% 믿을 수 있다.


내가 보는 시각이 느껴지던 촉각이 멀게 느껴진다. 마치 다른 사람의 눈과 귀로 세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내 입이 자동으로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왜? 너의 뭘 믿고 내 패를 까야 하나?]”


내 입을 통해 다른 세계의 의지가 튀어나온다.

퉁명스런 대답을 들은 새치 아저씨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지는 게 보였다.


“이.. 애새끼가 지금 대장이 이뻐해 준다고 뵈는 게 없나...”

“하하하하하하하~ 덕배씨! 푸하하하하 박사장! 아니야! 크큭... 저놈 시비 거는 거 아니야.”


본격적으로 화를 내려던 새치 아저씨는 갑자기 자기를 말리며 웃어 재끼는 경비 대장을 어처구니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크큭...쟤 별명이 다중이라고 했잖나. 저놈 다중인격이라고.”


대장의 말을 곱씹던 새치 아저씨의 눈동자가 점점 커져가는 게 보였다.


“다중인격? 세상에.... 정신 계통일 확률이 높잖아?! 아니 근데 이놈 왜케 정상적으로 보이지? 정신 계통인데??”


덥수룩한 수염의 새치 아저씨는 표정 변화가 풍부한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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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익숙한 천장 +1 24.09.02 30 3 12쪽
21 양날의 검 +1 24.09.01 35 3 13쪽
20 어그로 +1 24.08.30 40 2 13쪽
19 둥지에서의 하룻밤 24.08.29 33 3 13쪽
18 꿀벌들의 일과 24.08.27 36 3 12쪽
17 능력과 경험치 24.08.26 37 2 14쪽
16 출항과 옆집 늑대들 24.08.25 35 2 13쪽
15 어른의 사정 +2 24.08.23 44 2 12쪽
14 바뀐 대가리 +1 24.08.22 39 2 12쪽
13 철창 속 정화 24.08.20 40 2 12쪽
12 정리와 침식 24.08.19 45 2 12쪽
11 야간 전투 24.08.18 45 2 13쪽
10 마석 24.08.16 46 1 13쪽
9 첫 번째 임무 24.08.16 54 2 12쪽
8 합류 24.08.13 56 3 12쪽
» 다중이 24.08.12 60 3 12쪽
6 검문소 24.08.10 63 2 13쪽
5 우리 집 24.08.09 71 2 14쪽
4 안전 귀가 24.08.06 85 3 12쪽
3 동기화 24.08.05 104 6 13쪽
2 튜토리얼의 끝 24.08.04 129 5 12쪽
1 삼위일체 24.08.04 180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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