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세상에서 각성해 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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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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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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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기다렸어요

DUMMY

“이거 드세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낸 정은이 배를 붙잡고 쓰러져 있는 기훈에게 건넸다.


다행히 치명적인 부상은 아니었지만, 복부에 가해진 충격이 적지 않았던 상황.


“이, 이게.. 뭔데?”


힘겹게 고개를 든 기훈은 정은의 손에 들린 것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얼굴을 내밀어 냄새를 맡아봤다.


킁킁.


“아이! 이거, 오우거의 간 아냐!”


정은이 내민 것은 기력 회복에 아주 효과 만점인 오우거의 간이었다.


마을을 나서면서 조금 챙겨둔 것이었다.


“맞아요. 오우거의 간. 한번 먹어봐서 알겠지만, 기력 회복에는 이만한 게 없다구요.”


차분한 표정의 정은과 달리, 기훈은 오만상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아우. 어째 냄새가 더 심해진 거 같은데? 상한 건 아니겠지?”


“그렇지는 않을 거에요. 어제 오우거의 배에서 꺼내자마자 핏물을 빼고 삶아뒀거든요. 시간이 더 있었으면 완전히 말려서 가루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그것까지는 못했네요.”


“하아.. 고문이 따로 없구나.”


투덜거린 기훈은 정은의 손에 올려진 간 조각을 덥썩 주워 들었다.


숨을 한번 깊게 들이마쉰 그는 그대로 입에 털어 넣고는 꿀꺽 삼켰다.


입으로만 숨을 쉬는데도 냄새가 올라오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한번씩 헛구역질을 해대는 그였다.


“토하면 안돼요. 또 먹일테니까.”


매정하게 내뱉은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이미 정은이 챙겨준 오우거의 간 섭취를 마친 여자 아이와 아이의 아빠는 벌써 컨디션을 많이 회복한 듯 했다.


놀란 마음을 추스린 아이는 어느새 아빠의 품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부상자들을 챙긴 정은은 심율에게 다가왔다.


“오빠는 어디 다치신 곳 없으시죠?”


“난 괜찮아.”


심율이 입술을 실룩거리며 답했다.


마지막이긴 했지만, 그래도 정은이 자신을 잊지 않고 챙겨준 것에 내심 기분이 좋았던 것.


헛기침을 한 심율이 입을 열었다.


“아침 식사 후에 출발하자.”


“그래요, 오빠. 아침 식사하고 출발할게요, 여러분!”


정은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식사라고 해봐야 누룽지 몇 조각에 삶은 감자 등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간단하게 허기를 채운 이들은 다시 짐을 싸들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이동 중에 간간이 마물들이 출몰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덤벼들지는 않았다.


그저 멀리서 지켜보다가 입맛만 다시고는 되돌아갈 뿐이었다.


“왜들 저러는 걸까요?”


의아한 마음에 정은이 물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일행을 발견하는 족족 덤벼들던 놈들이었던지라.


“글쎄. 배가 부른 건가?”


답을 알고 있었음에도 심율은 애매하게 대답했다.


‘내가 그 정도로 세진거겠지.’


쥬루오스에 다녀온 이후, 심율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기감이 약한 인간들은 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마물들은 어느 정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것.


이제는 정말 어나더 레벨이 되어 버린 심율에게 섣불리 덤빌 수 있는 마물은, 적어도 이 근처에서는 없을 듯 했다.


‘덕분에 앞으로 귀찮은 일은 좀 줄어들겠군.’


이제 고블린 같은 조무래기 녀석들이 덤비는 일은 더이상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쉬다 걷다를 반복하며 몇 시간을 걸어간 일행은, 어느새 판교에 도착했다.


“저기 판교 표지판이 보여요!”


반가운 마음에 정은이 소리를 질렀고, 일행 모두 고개를 돌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이번 표지판 역시 원래의 위치가 아닌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다만 앞서 지나쳐 온 것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바닥에 널부러져 있지 않고 벽을 기대고 세워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쓰러지지 말라고 밑면에 돌까지 받쳐뒀고 말이다.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덕분에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근처에 인간들이 살고 있다는 증거겠지.’


심율은 제대로 방향을 찾은 것이 맞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일행은 이제 고속화도로에서 벗어나 판교 도심으로 진입했다.


“어마어마한 도시였나봐요, 판교라는 곳은!”


정은이 소리쳤다.


나머지 일행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도시의 풍경에 압도된 그들.


건물들은 모두 초토화되어 그 흔적만이 남아 있었지만 말이다.


‘바티아크인 새끼들.’


그들은 정말 철저했다.


지상은 말할 것도 없고, 지하까지도 철저하게 부숴놓은 흔적이 엿보였다.


잔해 위로 자라난 덩굴과 잡초 그리고 나무들만이, 세월이 얼마나 흐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고 있었을 뿐.


어떤 곳은 지하수가 빠져나가지 못해 마치 거대한 연못처럼 돌변해 버린 곳도 있었다.


이제는 거대한 유적지가 되어 버린 판교의 전경을 모두가 넋 놓고 구경하고 있는 사이.


“저기 또 뭔가 있습니다!”


이번에 소리를 지른 것은 기훈이었다.


모두들 기훈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따라갔고, 그 곳에는 거대한 요새로 보이는 구조물이 들어서 있었다.


“저기가 맞는 거 같아요! 우리가 제대로 길을 찾았나봐요!”


정은이 다시 외쳤고


“그래. 제대로 찾은 거 같네.”


심율이 맞장구를 쳐줬다.


그들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각, 판교시 최전방 지휘실 내부.


“방위대장님.”


“오셨습니까, 시장님.”


급하게 호출을 받고 지휘실을 찾은 권세준 시장을, 방위대장이 맞이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사람들을 인질로 붙잡고 이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요?”


보고 받은 내용을 재차 확인하는 권세준 시장.


“네. 그렇습니다, 시장님. 일단 직접 확인해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방위대장이 그런 그에게 망원경을 건넸다.


척.


권세준 시장은 건네받은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댔다.


짧은 시간 만에 목표물을 찾아 낸 권 시장.


“찾으셨습니까?”


“네, 찾았습니다. 그런데..”


권 시장의 시야에 인간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후,


‘저, 저건?’


그가 미간을 좁혔다.


얼핏봐도 범상치 않은 모습을 하고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온 것.


남자의 얼굴에 초점을 맞춘 그는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분명 젊은이가 맞는데.. 머리카락이며 눈썹이며, 저렇게 새하얄 수가 있나? 혹시 백색증 환자인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합리적인 추론을 한 시장은, 시선을 아래 쪽으로 내렸다.


‘이마에 쿠다가 없잖아? 그렇다고 바티아크인이라고 보기에는···’


좀 더 시선을 내린 권 시장이 두 눈을 번뜩였다.


‘눈이!’


망원경을 통해서였지만 분명 확인할 수 있었다.


흰자위가 있어야 할 곳에 검은 자위, 그리고 검은 자위가 있어야 할 곳에 흰자위.


그리고 그것은 권 시장에게 있어서 그렇게 낯선 이미지가 아니었다.


몇 번을 더 확인한 그는 망원경을 눈에서 떼고 방위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보셨습니까? 저 사람의 눈?”


권 시장의 질문을 들은 방위대장이 세상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봤습니다. 안 그래도 그와 관련해서 보고를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그때였다.


“저도 보게 해주세요.”


어느새 지휘실 안으로 들어온 여자가 권 시장의 손에 쥐어져 있던 망원경을 뺏으며 말했다.


권 시장의 딸, 혜린이었다.


“혜린아. 아빠 일하고 있는데..”


“알아요.”


평상시와는 다르게 막무가내인 딸의 모습을 보며 권 시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혜린은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댔다.


망원경 사용이 익숙치 않은지, 목표물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은 권 시장의 배는 걸렸다.


잠시 후,


‘말도 안돼..’


심율을 발견한 혜린이 입을 쩌억 벌렸다.


그렇게 한참을 망원경으로 심율을 관찰한 그녀가 이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해할 수 없는 딸내미의 행동에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내는 권 시장.


그 시선을 느꼈는지 혜린은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에요.”


여전히 뜻을 알 수 없는 혜린의 말에 권 시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람, 이라니?..”


“아버지께도 말씀 드린 적이 있었죠. 저의 꿈 이야기.”


혜린의 말에 권 시장이 눈을 아래로 깔고 생각에 잠겼다.


“아..”


그제서야 그는 딸이 해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잊을 만 하면 꿈 속에 나타나는 한 남자.


남자는 매번 딸의 손을 붙잡고 어디론가 데리 간다고 했다.


새하얀 머리, 텅빈 이마, 그리고 눈.


혜린이 묘사한 꿈 속의 남자의 모습도 딱 저랬고 말이다.


잠깐 더 창 밖을 내다보고 있던 혜린은, 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휘실 밖으로 뛰쳐 나갔다.


“어디 가는 거냐, 혜린아! 밖으로 나가면 안된다! 절대!”


권 시장의 애원은 허공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 



저벅. 저벅.


어느새 요새가 제법 가까이 보일 정도까지 이동한 심율 일행.


이렇게 보니 요새를 둘러싸고 있는 성곽이 더 높아 보였다.


최소 세 사람의 키를 합쳐 놓은 정도는 되어 보였다.


콘크리트 더미를 쌓아 올린 뒤 시멘트 질까지 해놓은 터라 마감 상태도 양호했고, 쉽게 무너지지도 않을 것 같았다.


요새 안으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정지! 정지! 더이상 접근하면 발포한다!”


확성기를 통했기 때문인지 목소리는 꽤나 거칠었다.


척.


심율을 비롯한 일행 사람들은 일단 확성기의 명령에 따라 발걸음을 멈췄다.


“이, 이제 어떻게 해요. 오빠?”


겁을 먹은 듯 굳은 표정의 정은이 심율을 향해 물었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심율이 답했다.


“기다려 보자고. 어떻게 나오는지.”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고,


잠깐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잠시 후,


끼익.


덜컹.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성곽의 정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철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열명 남짓의 총으로 무장한 남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협적인 모습에 기훈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는 금방이라도 검을 뽑아 들 수 있도록 왼손을 허리 춤에 가져다 대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죠, 심율님? 무기를 들고 있는 거 같은데요?”


총이라는 건 생전 처음 보는 이들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율 또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두 눈을 치켜 뜨고는 남자들을 노려봤다.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할 경우, 허리 춤에 찬 검을 뽑아서 전부 베어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척.


다행히 저들은 운이 좋았다.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힌 뒤 멈춰선 그들은 더 이상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심율의 일행을 노려보고 서 있기만 할 뿐.


그리고 그순간.


저벅. 저벅.


남자들의 뒤 쪽에 서 있던 한 여자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윤기가 흐르는 짙은 흑갈색 머릿결.


그것이 감싸고 있는 고혹적인 얼굴.


헐렁한 옷차림에도 걸을 때마다 드러나는 육감적인 몸매.


여자는 어떤 남자가 보더라도 반할 수 밖에 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무장한 남자들을 지나쳤고,


그 순간 또 다시 확성기에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정지! 정지! 멈추라고! 권혜린!”


목소리는 애절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여자는 멈추지 않았고,


어느새 심율 일행과 무장한 남자들의 한 가운데로 진입해 있었다.


그때였다.


‘응?’


다른 일행들과 마찬가지로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심율의 미간이 좁혀졌다.


저벅. 저벅.


여자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어느새 심율의 바로 앞까지 도달해서는 멈춰섰다.


심율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녀가 말했다.


“기다렸어요.”


라고 말한 여자는 한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심율은 아무 대응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입을 쩌억 벌리고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


‘어떻게 이런..’


심율은 여자가 낯설지 않았다.


권혜린.


에크네스와 써큐버스의 환영에서 등장한 바로 그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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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화 기다렸어요 24.09.18 21 1 12쪽
32 31화 안덤빌거냐 24.09.17 24 1 12쪽
31 30화 완전 꿀단지구나 24.09.16 30 1 13쪽
30 29화 쥬루오스 24.09.13 33 1 14쪽
29 28화 포탈이 뭔지 아세요 24.09.12 34 2 13쪽
28 27화 반드시 복수한다 24.09.11 37 2 15쪽
27 26화 한시간 준다 24.09.10 42 1 13쪽
26 25화 깔끔한 솜씨다 24.09.09 47 1 14쪽
25 24화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24.09.06 54 3 13쪽
24 23화 네 녀석의 운도 여기까지다 +1 24.09.05 63 1 11쪽
23 22화 제 손을 잡아요 24.09.04 62 1 14쪽
22 21화 수색대 24.09.03 72 3 12쪽
21 20화 청계산 입구 역 24.09.02 85 1 15쪽
20 19화 조건이 하나 있어요 24.08.30 82 3 13쪽
19 18화 일종의 던전인 셈이죠 24.08.29 89 3 13쪽
18 17화 이런 사진을 24.08.28 97 3 12쪽
17 16화 저 분이 정말 24.08.27 99 2 11쪽
16 15화 패기만은 인정해주마 24.08.26 106 1 11쪽
15 14화 안 아프게 해줄게 24.08.23 114 2 13쪽
14 13화 나 혼자 간다 24.08.22 123 3 13쪽
13 12화 언제까지 도망만 쳐댈거냐 24.08.21 139 3 10쪽
12 11화 살려주세요 +1 24.08.20 151 5 12쪽
11 10화 강남 24.08.19 167 6 9쪽
10 9화 겨우 너같은 애송이라니 24.08.16 184 8 14쪽
9 8화 그냥 죽여 버릴까 24.08.15 205 10 9쪽
8 7화 인간 따위가 감히 +2 24.08.14 218 13 10쪽
7 6화 쿠다가 24.08.13 236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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