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세상에서 각성해 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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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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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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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살려주세요

DUMMY

홀로그램 영상은 이제 대침략 이전의 시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인간 세상은


'...평온해?'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심율은 홀로그램 영상으로 표현되는 인간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식당에 앉아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


스티커 사진을 찍기 위해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


이것 저것 입어보며 옷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발견된 공통점은


'밝다.'


밝은 표정들이었다.


꺄르르륵.


그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 지 다들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웃고 떠들고 있었다.


게힐라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이상하다 생각하며 보던 심율도, 이제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이게 무슨.. 기분이지?'


그리고 그때, 심율의 마음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매우 낯설지만 너무나도 좋은 기분.


행복감.


심율은 잠시 행복감에 취해 인간들의 세상을 지켜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잘 살고.. 있었던 거잖아?'


바티아크인의 도움 없이도, 오히려 지금보다도 훨씬 더 잘 살고 있었던 거잖아? 인간들은.


훨씬 풍요롭게, 자유롭게


그리고 행복하게.


그럼, 이 모든 평화를 앗아간 것이 바티아크인들이라는 말이잖아?


결국 심율은 감춰져 있던 진실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바티아크인들에 대한 더 큰 분노로 이어졌다.


그들은 심율에게서 꽃님이만을 앗아간 것이 아니었다.


종팔이 형에게서 아버지만을 앗아간 것도 아니었고.


그들은 모든 것을 앗아간 것이었다.


심율과 종팔, 그리고 꽃님이와 종팔이 형의 아버지가 누릴 수 있었고 누려야 했던 그 모든 것들을.


뿌득. 뿌드득.


심율이 이를 악물었다.


그는 다짐했다.


더욱 더 처절한 복수를.


너희들이 한 짓, 배로 갚아 주겠어.


"이..."


심율의 눈이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던 그 순간.


홀로그램은 다시 현재 강남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응?"


그리고 그 곳에는 한개 분대 정도의 바티아크인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아마도 경작지의 인간들을 관리하는 감시병들인 것 같았다.


2열 종대로 헤쳐 모인 그들은, 대형을 유지한 채 게힐라트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근무교대 시간인가 본데. 근데 왜 이걸 보여주는 거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 사이,


대열에서 한 명의 병사가 이탈하더니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우물 옆으로 잽싸게 달려갔다.


"응?"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그는,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우물 바로 옆 바닥에는 살짝 파여진 구덩이가 있었고, 그는 품에서 꺼낸 것을 조심스레 그 안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그 위에 흙을 덮었다.


다시 한번 주변을 살핀 그는 잽싸게 대열로 복귀했다.


그렇게 홀로그램 영상은 끝이 났고, 마나들은 다시 여기 저기로 흩어졌다.


심율은 여전히 미간을 좁힌 채, 우물 쪽으로 걸어갔다.


'아무 의미없는 장면을 보여줬을 리는 없을텐데.'


라고 생각하며 우물 옆 그곳에 도달한 심율.


가까이서 보니 급하게 흙을 덮어 놓고 간 흔적이 보였다.


'숨길라면 제대로 숨겨 놓든가..'


맨손으로 몇 번 흙을 퍼내니


"오?"


약한 녹색 빛을 내는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심율은 조심스럽게 물건을 꺼냈다.


포션이었다.


그리고


'독?'


포션의 표면에는 독극물을 상징하는 표시가 새겨져 있었다.


표시 바로 밑에는


-주의: 신체 마비나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음.


살떨리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심율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독극물 포션을 왜 여기에 숨겨 놓고 간 것인지,


그리고 마나 홀로그램이 하필이면 그 모습을 왜 보여준 것인지 알길이 없었기 때문.


'챙겨 놓으라는 뜻이겠지?'


심율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는 포션을 품 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경작지 끝에는 우거진 숲이 있었다.


숲 안으로 들어가 잠깐을 걷자


'담장?'


못해도 사람키의 네다섯배는 되어 보이는 높이의 담장이 앞을 가로 막고 섰다.


마물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막아 놓은 것 같았다.


담장 꼭대기의 높이를 가늠해 본 심율은 자세를 낮추고 뛰어 오를 준비를 했다.


"으음."


타앗.


힘차게 바닥을 차고 오른 심율은


"헛."


척.


가까스로 담장 꼭대기를 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


'쳇.'


도약하는 힘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한번에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심율은 담장에 올랐다.




척.


담장 반대편으로 넘어온 심율은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폈다.


"후우."


이제서야 게힐라트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셈이었다.


다시 말해, 심율에게 있어서는 완전히 미지의 영역에 접어든 것이나 다름 없다는 의미였다.


'별 다를 건 없어 보이네.'


일단 이 곳도 반대편과 마찬가지로 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숲이었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히익!"


'뭐야 이건?'


괴상한 그림이 새겨진 표지판이 떡하니 서 있었던 것.


표지판은 굉장히 오래된 듯 여기저기 녹이 슬고 벗겨져 있었지만, 그림의 모양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녹색 바탕에 흰색으로 채워진 그림은 여신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커다란 별이 달린 왕관을 쓰고,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으며


길게 늘어뜨린 머리가 벌거벗은 상체를 가리고 있고


양쪽으로 벌린 두 팔로는 마치 물고기의 꼬리 지느러미를 연상케 하는 것들을 붙들고 있는 여신.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그림이었지만, 심율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길이 없었다.


덕분에


'마물을 주의하라는 건가?'


그렇게 심율은, 왕관을 쓰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웃고 있는 여자의 형상을 한 마물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표지판을 지나쳤다.




저벅. 저벅.


표지판을 지나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 살려 주세요.."


어디선가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


인간 여자였다.


심율은 자세를 낮춘 채 주변을 좀 더 자세히 둘러봤다.


늦은 밤이었던 데다, 깊숙한 숲 속이었기에 보통 사람이라면 한치 앞도 보기 어려웠겠지만 심율은 달랐다.


그는 마나의 흐름을 볼 수 있었고, 마나는 어느 곳에나 있었다.


덕분에 가시광선이 차단된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꽤나 선명하게 물체의 윤곽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했다.


"살려 주세요.."


심율은 천천히,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이게 무슨 냄새지?'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동물의 배설물 냄새, 살이 썩는 냄새, 피 비린내 등이 섞인 아주 고약한 냄새였다.


심율은 냄새를 차단할 요량으로 코 주변에 염력을 펼쳐봤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래도 공기 입자까지 차단할 수 있을 정도로 세세한 컨트롤은 아직 어려운 모양이었다.


"살려 주세요.."


목소리가 나는 곳에 다가갈수록 악취는 더욱 심해졌다.


결국 목소리의 진원지에 다다른 심율은 하마터면 구역질을 할 뻔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심율은


"흑. 흐흑. 살려 주세요, 제발.. 집에 가고 싶어요.."


팔다리를 대자로 벌린 채 나무에 매달려 있는 인간 여자를 발견했다.


그녀는 옷이 홀딱 벗겨진 채 알몸으로 양팔과 양다리가 밧줄로 꽁꽁 묶여 나무에 결박되어 있었다.


덕분인지 이마의 쿠다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설마 바티아크인?


게힐라트 밖에서 인간들을 사냥하는 바티아크인들이 있다는 얘기를 떠올린 심율은


여자에게 접근하기에 앞서 일단 주변을 더 자세히 살폈다.


섣불리 접근했다가 덫에 걸릴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


다행히 의심스러운 것은 찾을 수 없었다.


하나,


대신 여자의 주변에서 심율은 끔찍한 것들을 발견했다.


'뼈?'


여자의 주변에는 동물의 것으로 보이는 뼈가 잔뜩 쌓여져 있었다.


간혹 인간들의 것도 보였고.


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살점이 붙어 있는 훼손된 사체들도 여럿 보였다.


아무래도 이 곳에서 끔찍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저 여자도 목숨이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의미했다.


한시라도 빨리 여자를 구해야 한다.


심율은 더이상 재지 않고 행동에 나섰다.


타닷.


척.


"사, 살려 주.. 바, 바티아크인? 아, 안돼. 사람 살.."


갑자기 나타난 심율에 반가움을 표하려던 그녀는, 이내 그의 독특한 외모를 확인하고는 겁을 먹고 소리를 지르려 했다.


누가봐도 인간이라 생각하기 어려운 외모를 지녔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심율이 잽싸게 입을 막은 탓에,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덥썩.


"쉿."


"읍. 읍."


소리를 지를 수 없게 되자, 그녀는 이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심율이 한손으로는 그녀의 입을 틀어 막은 채, 나머지 한 팔로 몸을 끌어 안았기 때문.


"해치지 않아.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


심율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그제서야 조금 진정하는 기미를 보였다.


확실히 음색 만큼은 바티아크인 보다는 인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심율은 여자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쿠다도 없고, 눈 색깔로 이상하고. 무슨 생각하는 지 알아. 아는데."


심율은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듯 말했다.


여자는 여전히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런 심율을 바라봤다.


"나도 너랑 같은 인간이야. 지금은 널 구해주러 온거고. 설명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여기서 내려줄게. 단."


다시 한번 여자의 눈을 쳐다본 심율이 입을 열었다.


"소리 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러자 여자가 알아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심율은 여자의 입을 막았던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여자를 한 손으로 안은 채 허리춤에서 꺼내 든 검으로 그녀의 팔에 묶인 밧줄을 잘라냈다.


서걱. 서걱.


"아.."


팔을 내리며 여자는 나지막한 신음 소리를 냈다.


이 상태로 오랜 시간 묶여 있었다면, 고통이 적지 않을 것이었다.


서걱. 서걱.


다리에 묶인 밧줄까지 완전히 자르고, 드디어 땅 위에 두 발로 설 수 있게 된 여자가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해요. 오해해서.."


여자는 심율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여전히 조금은 불안한 눈치였다.


이렇게 생긴 인간은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심율 또한 여자의 그런 마음을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그녀의 오해를 풀어줄 시간이 없었다.


일단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그보다, 누가 이런 짓을 한거지? 바티아크인인가?"


"아니에요."


예상과는 다른 대답에 심율은 미간을 좁혔다.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마물이에요. 동물이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잡아 먹는 것으로 유명한 마물. 오우거."


심율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오우거라.


게힐라트 주변에 사는 마물에 대한 이야기는 심율도 전해 들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오우거라면 그런 마물들 가운데서도 마력이 높은 축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는 일반 바티아크인 병사 스물이 붙어도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각성을 했다고는 하더라도, 지금의 심율이라면 혼자서 감당하기 버거울 수도 있는 존재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때,


"이게 무슨 냄새지? 아무래도 불청객이 찾아온 거 같은데?"


저 멀리서 오우거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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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5화 깔끔한 솜씨다 24.09.09 38 0 14쪽
25 24화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24.09.06 45 2 13쪽
24 23화 네 녀석의 운도 여기까지다 +1 24.09.05 51 0 11쪽
23 22화 제 손을 잡아요 24.09.04 54 0 14쪽
22 21화 수색대 24.09.03 63 2 12쪽
21 20화 청계산 입구 역 24.09.02 74 0 15쪽
20 19화 조건이 하나 있어요 24.08.30 73 3 13쪽
19 18화 일종의 던전인 셈이죠 24.08.29 78 3 13쪽
18 17화 이런 사진을 24.08.28 87 3 12쪽
17 16화 저 분이 정말 24.08.27 90 2 11쪽
16 15화 패기만은 인정해주마 24.08.26 95 1 11쪽
15 14화 안 아프게 해줄게 24.08.23 103 2 13쪽
14 13화 나 혼자 간다 24.08.22 112 3 13쪽
13 12화 언제까지 도망만 쳐댈거냐 24.08.21 126 3 10쪽
» 11화 살려주세요 +1 24.08.20 139 5 12쪽
11 10화 강남 24.08.19 154 6 9쪽
10 9화 겨우 너같은 애송이라니 24.08.16 170 8 14쪽
9 8화 그냥 죽여 버릴까 24.08.15 189 9 9쪽
8 7화 인간 따위가 감히 +2 24.08.14 200 12 10쪽
7 6화 쿠다가 24.08.13 218 11 11쪽
6 5화 꽃님아 +1 24.08.12 241 11 11쪽
5 4화 내 동생은 24.08.10 284 13 10쪽
4 3화 나약한 인간이여 24.08.09 306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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