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세상에서 각성해 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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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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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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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그냥 죽여 버릴까

DUMMY

'손에 뭘 들고 있는 거지?'


출입문의 동태를 살피던 심율이 미간을 좁혔다.


문을 지키는 두명의 병사 중 한명의 손에 뭔가가 매달려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 형태가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그의 앞에는 한 인간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애원하고 있었다.


얼핏 봐도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출입문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심율은, 숨을 죽이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때마침 인간 남자가 입을 열었다.


"부탁드립니다, 고센 일병님."


'이 목소리는?'


심율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 것 같았다.


쓰레기 처리장에서 함께 일하는 종팔이 형이었다.


그렇게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거의 매일 함께 일하다 보니 목소리를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할 수 밖에 없었다.


'형이 왜..'


심율이 아는 종팔은 선한 사람이었다.


무뚝뚝해 윗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편인 심율에게 먼저 말도 걸어주고 물을 챙겨주기도 할 정도로 말이다.


심율이 아는 한, 이런 늦은 밤에 바티아크인 병사에게 애원을 해야 할 정도로 나쁜 짓을 할만한 위인은 절대 아니었다.


종팔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내뱉어진 다음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제발.. 제발 저희 아버지의 머리를 돌려 주십쇼. 흑."


'머리? 종팔이 형 아버지의?'


심율은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바티아크인 병사의 손에 쥐어져 흔들리고 있는 것을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봤다.


때마침 병사는 손 흔들기를 멈췄고, 덕분에 그 손에 쥐어져 있던 것의 정체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머리였다.


백발이 성성하고 나이를 지긋이 먹은, 남자 노인의 잘린 머리.


노인의 머리칼을 손으로 움켜쥐고는 마치 장난을 치듯 흔들어 대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보니, 무릎을 꿇고 앉은 종팔의 품에 머리가 잘린 노인의 몸이 안겨 있었다.


잘린 목 부분에서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보니, 일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심율의 머리 속에 궁금증이 떠올랐다.


그러자 잠시 후, 그의 눈앞에 신기한 일이 펼쳐졌다.


'마나?'


여기 저기 비산해 있던 마나들이 모이더니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 지를 흑백 홀로그램 영상의 형태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과거를 보여주는 건가?'


심율은 각성을 통해 얻은 눈으로 마나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마나는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는 물질.


덕분에 그는 미래를 예감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과거에 일어났던 일도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심지어 소리도 재생해줬다.


물론 이런 영상과 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심율 뿐이었다.


굳은 표정의 심율은 방금 전 이 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시 한번 목격하기 시작했다.




마나가 재생한 과거 기록은, 길을 잃은 듯한 노인이 횡설수설하며 병사들에게 다가가는 것으로 시작됐다.


"우리 아들을. 아들을 두고 왔어. 아직 두살 밖에 안됐는데. 빨리 나가서 데려와야 해."


못해도 팔십은 넘어 보이는 노인에게 두살짜리 아들이라니.


게다가 이 늦은 밤에 게힐라트 밖으로 나가서 아들을 데려와야 한다니.


심율이 보기에도 노인은 정신이 온전치 못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어.'


심율은 종팔의 아버지가 심각한 치매를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한밤 중에 집을 빠져 나가 길을 잃고 헤매는 아버지를 겨우겨우 찾은 게 한두번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노인을 발견한 병사 중 한명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잘린 머리를 들고 있던 놈이었다.


"또 너냐, 이 새끼야? 아주 지겹다 지겨워."


"아는 사람이야, 고센 일병?"


"이 새끼 모르십니까, 람 상병님? 치매 걸린 새끼가 집에서 잠이나 쳐자지. 거뜩하면 밤에 쳐 나와서는 경계 근무 서는 병사들 귀찮게 하는 걸로 유명하잖습니까. 저희 부대에 이 새끼 모르는 병사가 없을 정도인데 말입니다."


마치 구박이라도 하는 듯한 말투에 람 상병이 살짝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래? 난 모르지. 이 부대 발령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러자 고센 일병이라 불린 놈이 민망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제가 깜박했습니다, 람 상병님."


하지만 둘의 대화는 더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나 좀 내보내 줘. 우리 아들을 데리고 와야 해."


노인은 이번에는 고센의 팔까지 붙들고는 사정을 했다.


그러자 고센이 노인을 거세게 밀쳤다.


"이 새끼가!"


퍽. 철퍼덕.


"아이고.."


엉덩방아를 찧고 괴로워하는 노인에게 고센이 윽박질렀다.


"이 새끼가, 감히 어디 더러운 손을 갖다 대!"


그리고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람은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고센을 놀리며 부추기기까지 했다.


"그쪽 팔 썩는 거 아니냐? 나같으면 팔 잘랐다. 큭큭."


그리고 이것이 인간을 대하는 바티아크인들의 전형적인 태도였다.


인간이라면 무조건 능멸해야 직성이 풀리는 족속.


오히려 저런 하찮은 존재에게 배려심을 보이는 것이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들 바티아크인들이었다.


"하, 진짜 짜증나 죽겠습니다. 저번 근무 설 때도 와가지고는 한시간을 귀찮게 하고 가더니. 그냥 죽여 버릴까 말입니다, 람 상병님."


바닥에 쓰러진 채 여전히 있지도 않은 아들을 찾고 있는 노인에게 다가가며 고센이 말했다.


그 모습을 재밌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던 람이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는 한마디를 툭 뱉었다.


"죽여. 그냥."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에, 고센은 귀가 솔깃해졌다.


그리고는 그 역시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입꼬리를 싸악 말아 올린 그가 말했다.


"진짜 죽입니까? 저 진짜 합니다, 람 상병님? 큭큭."


"죽여. 그랬봤자 하루? 이틀? 쉬다 다시 나오면 되는 거 아냐?"


아무 이유 없이 인간을 죽이는 것은 바티아크인들에게도 금지되어 있었다.


그들도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


인간들의 생명을 존중해서라기 보다는, 개체수가 너무도 급격하게 줄어드는 바람에 이대로 가다가는 멸종되겠다는 위기 의식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집안 빨래는 누가 할 것이며, 쓰레기 분리, 오물 처리 등 각종 잡일들은 또 누가 할 것인가.


상위층의 경우 성노예 또는 식용으로 사용할 인간이 없어진다는 중요한 이슈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군인에게는 약간의 예외가 적용되었다.


직업적인 특성을 고려해서, 그들은 인간을 죽이더라도 어느 정도 사유가 인정된다면 하루 이틀 정도 무급 정직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이 관례였다.


지금같은 경우, 직무 방해로 대충 둘러대면 될 것이었다.


정신병 걸린 인간 새끼 때문에 경계 근무를 제대로 설 수가 없다고 말이다.


사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람이 말을 이었다.


"농담하는게 아니라, 진짜 죽이라니까. 한두번이 아니라며. 저 영감탱이 때문에 근무 서는데 방해된게. 고센 일병이 총대 메. 그럼 다른 사람들 다 편해지는 거 아냐. 나도 얘기 잘 해줄게. 어쩌면 무급 정직까지 안가도 될지 누가 알어?"


"하긴. 맞는 말씀입니다. 어차피 살려둬 봤자 여기저기 피해만 주고 다닐텐데 말입니다."


고센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람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는 쓰러져 있는 노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쪼글쪼글 볼품없게 늙어버린 노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는 구역질이 나오는 것 같았다.


거기다 병신같은 목소리로 해대는 병신같은 말들이라니.


"씨발."


외마디 욕설을 내뱉은 고센은 허리춤의 장검을 빼 들었다.


스릉.


"우리 아들. 아들 데리러 가야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는 노인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을 중얼 거렸고,


저벅. 저벅.


그런 노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다가선 고센은


"에휴. 너도 참."


한마디를 내뱉고는


서걱.


그대로 노인의 목을 베어 버렸다.


푸슉.


후두둑.


그렇게 마나 홀로그램은 끝이 났다.




"..."


마나 영상을 확인한 심율의 표정은 더욱 굳어져 있었다.


그의 시선은 영상이 종료된 후 줄곧, 방금 전 만행을 저지른 바티아크인 고센의 얼굴에 꽂혀 있었다.


그는 지금도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노인의 머리채를 붙잡고는 그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애원하는 종팔을 약올리고 있었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심율이 말했다.


"조용히 빠져 나가기는 그른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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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8화 포탈이 뭔지 아세요 24.09.12 25 1 13쪽
28 27화 반드시 복수한다 24.09.11 27 1 15쪽
27 26화 한시간 준다 24.09.10 33 0 13쪽
26 25화 깔끔한 솜씨다 24.09.09 38 0 14쪽
25 24화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24.09.06 45 2 13쪽
24 23화 네 녀석의 운도 여기까지다 +1 24.09.05 51 0 11쪽
23 22화 제 손을 잡아요 24.09.04 54 0 14쪽
22 21화 수색대 24.09.03 63 2 12쪽
21 20화 청계산 입구 역 24.09.02 74 0 15쪽
20 19화 조건이 하나 있어요 24.08.30 73 3 13쪽
19 18화 일종의 던전인 셈이죠 24.08.29 78 3 13쪽
18 17화 이런 사진을 24.08.28 87 3 12쪽
17 16화 저 분이 정말 24.08.27 89 2 11쪽
16 15화 패기만은 인정해주마 24.08.26 95 1 11쪽
15 14화 안 아프게 해줄게 24.08.23 103 2 13쪽
14 13화 나 혼자 간다 24.08.22 111 3 13쪽
13 12화 언제까지 도망만 쳐댈거냐 24.08.21 125 3 10쪽
12 11화 살려주세요 +1 24.08.20 138 5 12쪽
11 10화 강남 24.08.19 154 6 9쪽
10 9화 겨우 너같은 애송이라니 24.08.16 170 8 14쪽
» 8화 그냥 죽여 버릴까 24.08.15 189 9 9쪽
8 7화 인간 따위가 감히 +2 24.08.14 200 12 10쪽
7 6화 쿠다가 24.08.13 218 11 11쪽
6 5화 꽃님아 +1 24.08.12 241 11 11쪽
5 4화 내 동생은 24.08.10 284 13 10쪽
4 3화 나약한 인간이여 24.08.09 306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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