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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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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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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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DUMMY

마빈이 카트라그에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도시를 떠나 모험가 활동을 할 거란 건 잘 알려져 있었다.


자주 모험가 조합에 들락거려서 정든 이 꼬마(치고는 컸지만) 녀석을 보는 모험가 제퍼슨은 답답할 따름이었다.


“네가 무슨 말을 듣고 모험에 환상을 가진 건진 몰라도, 그거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인간이 괜히 정착해서 살기 시작한 줄 아냐?”


제퍼슨이야 가진 게 몸밖에 없는 처지였으니 죽기살기로 모험가의 길에 몸을 담갔지만, 마빈은 아니다.


여러 곳에서 인맥도 쌓았고 사냥과 목공 등 멋들어진 기술도 갖고 있다.

그냥 이대로 도시에 뿌리내려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겠지.


“세상은 그 자체로 위험해. 괴물이나 도적을 안 만나도 자연이 널 위협한단 말이다.”


맹수부터 시작해 더위와 추위에 시달리는 건 당연하고, 벌레에 물리거나 물 잘못 마셔서 병에 걸릴 수도 있으며, 어디 나뭇가지나 뾰족한 돌에 잘못 긁히기라도 하면 패혈증에 걸려 아차 하는 사이에 황천길로 가는 것도 흔하다.


“아무리 신성력이 있다 해도 한계가 있어. 아차 하는 순간 나자빠진다고. 고위직 사제님이 붙으면 죽을 사람도 살린다지만, 그게 어디 모험 생활에서 쉽겠니?”


6할 이상, 아니 대재앙 이후론 9할 이상의 모험가와 용병들이 파리처럼 죽어나가는 게 현실이다.


장비도 다 스스로 마련해야 하고, 걷다가 여분 신발 다 떨어져서 맨발로 걸으면 그것만큼 처량한 게 없다느니 등등, 떠돌아다니는 게 얼마나 고달픈지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잔소리가 이어졌다.


“그래도 상관없는데요?”


마빈은 실실 웃으며 귓등으로 흘렸다.


물론 여행과 모험이 얼마나 거칠고 힘든 생고생인지는 안다. 당장 고향을 떠나면서도 맛보기로 겪었고.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하고 싶었다.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돈 모으고 집 사고 도시 생활하면 좋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건 스스로 날갯죽지를 자르고 새장에 틀어박히는 일과 다름이 없었다.


마빈은 튼튼한 나무보다는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홀씨가 되고 싶었다.


제퍼슨은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사람이 하루에 최소 한 번은 씻어야지. 여행길에 맑은 물 만나는 게 생각보다 흔하진 않아.”

“난 씻는 거 귀찮아서 괜찮은데.”

“이 지저분한 녀석아!”


제임스는 딱밤을 맞아 얼얼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우씨 아파 진짜. 근데 그렇게 열심히 씻어봤자 뭐해요? 악마가 손 쓴 역병 한 번 돌면 얼마나 깨끗하건 다 죽어 나간다더만.”


“악마 역병에 걸리는 게 그리 흔하더냐? 너 같은 비위생적인 녀석이 요즘 자꾸 늘고 있다더라. 정작 더러우면 악마 역병에도 더 잘 걸린다는 걸 모르고.”


“아유,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편하게 가려고요.”


“이제 스무 살짜리가 세상 다 산 것처럼 말하는 것 좀 보소?”


둘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마빈은 조합 의뢰 게시판을 들여다보았다.


큼직한 나무판 위에는 자잘한 종이들이 나붙어 있었다.


길 잃은 고양이 찾기나 자잘한 노가다 업무 등, 그냥 일거리 소개소에 가도 따낼 수 있는 것들부터 시작해서, 빈민가 호구조사 같이 힘들고 위험하지만 보수는 짠 것들 등이었다.


아예 비워져 있으면 보기가 좋지 않아 요식행위로 걸어둔 것에 불과했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애초에 도시 간의 연결이 대부분 끊겨서 다른 조합과 소통도 잘 안 되는데, 의뢰비가 제대로 들어오기나 하겠는가.


‘근데 하는 사람이 있긴 한가보네.’


유독 빈민가 호구조사와 관련된 의뢰들은 완수 도장이 찍혀 있었다. 하도 일거리가 없다 보니 빈민가 내부 범죄조직과 마찰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까지 받는 모양이지? 아니면 의뢰비의 일부를 통행세처럼 내면서 완료했던가.


“그나저나 형님은 갑자기 여긴 왜 왔어요? 할 만한 의뢰도 없단 거 뻔히 알면서. 뭐 재밌는 일이라도 있어요?”

“겨울에 재밌는 일은 무슨. 그냥 조합장 만나러 온 거야.”

“안 계시는데요?”

“뭐? 어디 갔는데?”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냥 나갔다 온다고 하고선 휙 나간 게 전부인데.”

“에이씨, 누가 모험가 아니랄까봐 붙어있을 때가 없어. 알았다.”


제임스의 말에 제퍼슨은 도로 건물을 나갔다.


“마빈. 너도 느꼈냐?”

“네.”


접수원으로서 눈치 하나는 잘 길러온 제임스와 역시나 한 눈치 하는 마빈.


둘은 제퍼슨의 발걸음이 묘하게 다급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뭔 일일까요?”

“글쎄다. 어디 좋은 일거리가 생겼다거나?”

“모험 관련한 걸까요?”

“아닐걸. 모험가들이 겨울에는 도시 밖으로 안 나간단 건 알잖아?”

“하긴 그렇네요.”


마빈은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




어두운 밤.


달들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 희뿌연 안광들이 이리저리 일렁거렸다.


당장 꺼질 촛불만큼 흐렸지만 불길한 광원들은 끈질기게 제 광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킁킁킁


놈들이 코를 씰룩였다.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낯선 것의 흔적을 힘껏 들이마셔 비강을 자극했다.


안광이 스르륵 붉게 달아올랐다.


잡아라!

죽여라!

먹어라!


놈들의 오염되어 사악해진 본능이 부르짖었다.


“크르르르......”


어둠 속에서 불길하기 짝이 없는 짐승의 목울대 떨리는 소리들.


불길한 생명체들은 냄새를 따라 산을 넘고 강을 넘었다. 저 멀리 보이는 평원의 너머, 도시를 향해.




***




“사제님, 저 왔어요!”

“오, 마빈 왔나요.”


따로 주말이라는 개념이 없는 세상이지만 마빈은 7일에 한 번씩 성당을 찾곤 했다.


“이번 주도 궁금한 게 많나 봐요?”

“네. 오늘도 여쭤보고 싶은 게 많아요.”

“늘 밝아서 보기 좋네요. 이거만 마저 마무리하고 얼른 얘기해줄게요.”


도시의 노인들에게서 이야기를 듣길 좋아하는 마빈에겐 성당의 사제도 좋은 간접경험을 선사해 주는 살아 있는 역사서였다.


성당을 찾는 이유에는 성당에 있는 작은 서고와 메이헌이 가르쳐주는 글공부 때문이기도 했다.


시내에도 글방과 도서관이 있어 몇 번 찾긴 했지만 아무래도 자주 들락거리기엔 금전적으로 부담이 된 탓이다.


활기찬 소년과의 대화는 적적한 나날을 보내는 메이헌에게도 좋았다.


주기적으로 사람들이 기도를 하러 오긴 하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대부분 거기서 끝난다. 사제로서 청렴함을 지켜야 한단 것도 있었고 중요한 임무도 맡고 있었으니.


“오늘도 사도에 관한 질문인가요?”

“네. 성경에서 읽긴 했어도 역시 사제님한테서 직접 듣는 게 제 맛이더라고요.”


사제와의 대화는 당연하겠지만 성경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마빈은 성경이라고 하니 허무맹랑한 상상과 과장이 가미되었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이 세상의 성경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미사여구를 잔뜩 붙이거나 덮어놓고 신을 찬양하는 게 아니라, 담백하고 진지하며 간혹 냉철하기까지한 철학적 고찰과 역사적 사건이 주를 이루었다.


아무래도 실제로 신이 직접 내려주는 힘이나 기적이 있으니 굳이 거짓을 덧붙일 필요가 없는 탓이리라.


그러면서도 신학적으로 존귀한 인물의 활동과 영향력의 비중을 소홀히 하진 않았다.

검과 마법을 다루는 세상이다 보니, 그들의 활약상은 실제 있었던 일임에도 가히 판타지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 사이사이에는 당대의 혹은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보편적 상식과 지식과 교훈이 충만하기까지.


이 세상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소년의 관심사를 정확히 저격했다.


“그럼 오늘은 몇 대 사도가 궁금한가요?”


마빈은 그 중에서도 특히 사도(使徒)에 관한 것을 중점으로 물어보곤 했다.


사도가 무언가 하면.

주신이 임명하여 세상을 위협하는 악을 척결하거나 세상을 발전시키는 등, 신의 말씀을 전하는 존재였다.


즉, 일종의 용사 비스무리한 직종.


전생에는 창작물 속에서 온갖 소재로 구르는 직종이 이곳에서는 실재한다니.


“-그래서 그 사도님의 징벌로 교황청이 패배를 선언함으로써, 당시의 오만하고 패악을 일삼던 이단심문관 제도는 폐지가 되었지요.”

“와. 대단하네요. 어떻게 종교집단 전체와 싸울 생각을 했는지......”


이미 읽어봤을 텐데도 감탄하는 소년에게 웃어주는 것도 잠시, 문득 어둑해진 창밖을 보곤 메이헌은 벽시계를 확인했다.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오늘은 검술 도장 가는 날 아닌가요?”

“으악, 늦었다! 이만 가볼게요!”


쿠당탕탕


“넘어지지 않게 조심히 가요!”


망토를 휘날리며 쏜살같이 뛰어가는 마빈의 등을 보며 메이헌이 미소 지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저 아이처럼 착했으면 좋으련만.’


사람들을 통해 마빈의 일상을 들어보자면 세상 이렇게 부지런하고 착한 아이가 따로 없었다.


‘마빈......’


한편으론, 저 소년을 만날 때마다 마음에 돌을 하나씩 얹는 것 같았다.


-대체 왜 좋게 헤어졌는데 그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마빈이 말해준 북부인 강도 사건의 전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전대 황제만 아니었더라면......’


대륙에 큰 영향을 끼치는 초강대국을 지배하던 황제는 희대의 암군이었다.


그가 불러온 암흑기로 세상이 휘청거리지만 않았다면 대재앙은 그냥 국지적인 재앙으로 역사서에 한두 장 정도 기록되고 끝났을 것이란 학자들의 성토가 있을 정도.


북부 야만인과 제국 사이의 갈등에 불을 당긴 것도 그 망나니의 수많은 악행 중 하나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대재앙의 혼란기를 노리고 야만인이 남하하지 않았을 것이며, 갈등도 지금처럼 심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메이헌이 미안하냐면, 황족의 유년기 교육을 도맡은 기관이 주신 교단이기 때문이었다.


황제가 그렇게까지 엇나간 건 그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교단의 책임이라 여겼기에, 그 일원인 메이헌이 부채의식을 가질 수밖에.


‘여행을 하며 쌓은 즐거운 경험의 마지막이 피로 얼룩졌으니, 이 여리고 순수한 새싹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꼬.......’


사제는 공손히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렸다.


“주신이시여, 어리석은 저희의 죄를 사하지 말아 주시옵고, 시련을 통해 늘 저희가 맑은 정신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일깨워 주실 것을 간곡히 간청 드리나이다......”


소년이 떠나 다시 적적해진 성당.

나지막한 기도가 공기를 울렸다.




***




성당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탐독했던 대가는 혹독했다.


“허수아비 치기 삼천 회 실시.”

“네?”

“실시!”

“실시이으이이익!”


무려 30분을 지각한 마빈이 울상을 지으며 목검을 들었다. 이윽고 나무에 짚단을 둘러 만든 허수아비를 때리는 소리가 한밤중의 도장 공터를 울렸다.


딱! 따악!


검을 똑바로 휘두르도록 자세를 교정하는 허수아비 때리기. 마빈의 행동을 보는 중년의 기사 렌델은 표정이 찌푸려졌다.


도장에 등록한 지가 언젠데 마빈은 아직도 자세가 그대로였다.


내려베기는 잘려나가 떨어지는 덩굴 같이 힘없고, 가로베기는 부실공사로 반쯤 내려앉은 대들보 같이 흐물거렸다.


똑바로 하란 호통이 렌델의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참았다. 소용이 없단 걸 알기 때문이다.


‘답답하구나.’


처음에는 마빈이 스스로 터득한 기초 자세가 제국 기본 검술 준비 자세와 같고 북부인을 처치했단 소문을 통해 싹수 있는 녀석으로 여겼으나, 정작 제대로 된 검술을 알려줘도 도통 따라오질 못했다.


가르쳐 준 방식대로 시연해보라 하면 자꾸만 괴상한 방식으로 변형이 되어 도저히 못 볼꼴이 되곤 했으니까.


그러나 마빈의 진가는 허공이 아니라 실전에서 발휘되었다.


‘정말 숨 멎는 줄 알았지.’


목검 대련을 한 첫날.

렌델은 목젖을 잃을 뻔했다.


아무리 방심이라고는 해도 부지불식중에 쭉 들어오는 살수라니!


이는 데릭손과의 대련의 영향도 조금 있었는데, 마빈에게 첫날부터 진검을 들려주고 상대방을 죽일 기세로 휘두르라고 가르친 탓이었다.


기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렌델은 자신의 검술을 꿰뚫어 봤단 듯 거침없이 방어를 넘어오는 마빈의 목검 끝을 겨우 막아내야 했다.


이걸 봐도 마빈에게 재능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만 하는 싸움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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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화 +1 24.09.04 848 29 11쪽
29 29화 +1 24.09.03 871 32 11쪽
28 28화 +1 24.09.02 879 2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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