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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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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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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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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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DUMMY

그런 사람이 있다.


한 번도 관련 지식을 배운 적이 없는데도 어떠한 일을 접하자마자 너무나도 손쉽게 해대는 사람이.


그런 이들을 수재라 부르고 천재라 부른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수많은 범재들이 이루어낸 사회 속에서 지내야 하므로, 범재들이 시행착오로 구축한 평범한 규칙들을 익혀야 한다.


렌델도 마빈의 경우가 이와 비슷하다 여겼었다.


‘야생동물 같은 녀석.’


그가 보기에 마빈의 검은 본능을 따르는 짐승이었다.

늑대나 곰 같은 맹수가 타고난 신체적 특징으로 인간을 압살할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짐승은 도구를 모른다.

그래서 인간에게 사냥 당한다.


검술과 체술을 비롯한 싸움법은 수많은 선대의 경험이 쌓여서 만들어진 도구. 그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워야만 상대방의 술수에 대처하고 허를 찌를 수 있다.


그래서 가르쳤는데, 통 배우지를 못했다.


새로운 걸 배우려는 마음가짐은 분명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잘 머리에 들어오질 않는단다.


-그런 거 있잖아요. 너 평소에 어떻게 걷냐 어떻게 춤추냐, 하고 물으면 갑자기 손발이 신경 쓰여 가지고 잘만 나가던 게 꼬이거나 하는 거요.


검을 어떻게 휘두르고 발을 어떻게 옮기고 하면서 알려주는 것 자체가 마빈에겐 족쇄가 되었다.


특히나 하체를 고정하는 자세를 유독 힘들어했다. 그것만큼은 분 단위도 아니고 몇 초도 견디기 힘겨워해 고의로 하지 않는단 게 보였다.


지금 허수아비 때리는 것도 가만히 제자리에서 팔만 휘두르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조금씩 다리를 움직이며 서 있는 위치를 바꿔대고 있었다.


‘뭐 어디 못 움직여서 죽은 유령이라도 붙었나......’


이처럼 선대가 쌓아온 경험들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하니, 언젠간 한계에 부닥치리라 여겼는데......


‘상관없겠지.’


지금은 아니었다.


도장에 등록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마빈은 렌델과의 대련에서 반반의 승률을 찍었다.


검술을 체득 못해서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검술을 가르치는 걸 포기했음에도 대련을 통해서 점점 성장을 한 것이다.


마빈의 검은 평범한 짐승이 아니었다.

함정에서 미끼만 쏙 빼먹는 여우면서, 사냥꾼이 쓰는 무기의 작동원리를 알고 대처할 줄 아는 늑대였다.


렌델은 깨달았다.


‘내 방식이 잘못됐구나.’


그는 늑대에게 어울리지 않는 목줄을 묶으려 한 것이다. 야생동물을 가두면 야생성을 잃는 법이거늘.


‘내 실력이 너무 모자라 마빈의 재능을 못 알아보았어.’


물고기는 어항이 아니라 넓은 곳에서 덩치가 커지고, 보석은 실력 있는 세공사의 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반푼이 기사에 불과한 자신 따위가 가르칠 아이가 아니었다. 최소한 기사단을 이끄는 단장급이 붙어서 지도해야 할 그럴 아이인데......


‘그렇다고 관둘 순 없지.’


찬란하게 빛날 가능성을 품은 원석을 발견한 자로서의 의무였다.


섣불리 손을 대면 깨지니 연마는 관둔다 해도, 최소한 그 빛이라도 잃지 않도록 뽀득뽀득 닦아는 놔야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후로 마빈은 다르게 훈련시켰다.


다른 도장 수강생들에게 하는 것처럼 반복행동을 통해 몸에 새기듯 가르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최대한 대련을 위주로.


그리하여 지금은 렌델과 막상막하 수준으로까지 성장했다.


‘싸울수록 실력이 느니 언제 실전에서 굴려 봐야 하는데......’


그러기엔 여건이 좋지 않았다.

괴물 서식지를 들쑤셔 댈 수도 없고, 괴물 토벌 시기도 아니고.


탁탁탁탁!


고민하고 있는 렌델에게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경비대원이었다.


“렌델 경!”

“무슨 일인가?”

“경비대장님이 긴히 할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

“루이스가?”


시장 휘하에 있는 기사이자 카트라그의 경비대장 루이스.


“그래 알았다. 마빈!”

“네!”

“오늘은 일이 있어서 일찍 끝낸다. 지각 좀 하지 마라! 일터에서는 지각 한 번 안 하는 녀석이 꼭 도장 올 때만 지각하냐!”

“죄송함다! 히히.”




***




“괴물이 도시로 오고 있어.”

“뭐라고?”


경비대장 루이스의 말을 들은 렌델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 겨울인데?”


루이스는 말없이 고개를 한쪽으로 까딱였다.


“모험가 제퍼슨이라고 합니다. 조합장을 대신해서 왔습니다.”

“모험가....... 아, 제발.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고 해줘.”


렌델이 이마를 짚으며 탄식했다. 제퍼슨이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모험가 몇이 의뢰 중에 동남부 괴물 소굴을 건드린 모양입니다.”

“조합이라는 것들이 사람 하나 제대로 관리를...... 됐다.”


렌델은 화를 내려다 관뒀다.

대재앙 이전에도 모험가 조합은 상당히 느슨한 집단이었다. 애초에 사방팔방 쏘다니고 싶은 사람들만 모아놨는데 통제가 되겠나.


오히려 지금까지 사고 한 번 안 치고 가만히 있어준 게 용했다.


“근데 의뢰라고?”

“예. 원래 위험지대 근처가 의뢰 지점이었는데, 실수로 위험지대로 들어가서 괴물 서식지를 자극한 모양입니다.”

“칠칠맞은 녀석들 같으니. 괴물은 뭐고?”

“검은 늑대랍니다.”

“하필?”


지옥의 힘에 침식되어 새카맣게 변한 늑대.

일명 악마 늑대.


늑대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 받아 무리를 지어 다니며 영악한 놈으로 악명이 높았다.


토벌 때도 놈들은 무조건 군대를 끌고 가 사방이 탁 트인 곳에서 상대하도록 지침이 내려진 것들이기도 했다.


“언제쯤인데?”

“일주일 전이랍니다.”

“지금쯤 다 왔겠군.”


그놈들이 도시를 둘러싼 빈민가에라도 숨어 들어가면 골치 아파진다. 그곳에 새끼라도 깐다면 더 최악이고.


“루이스, 시장님은 아시나?”

“당연하지. 그리고 시기 상 군대 동원은 힘들고 모험가와 경비대만으로 상대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소문도 안 나게.”


사태에 책임이 있는 모험가들과 도시를 지켜야 하는 경비대까진 이해한다. 그런데 소문이 퍼지지 않게 통제하는 건 왜?


“첫째로는 시민들 동요. 둘째로는 빈민가. 그놈들이 돈 좀 쥐어보겠다고 나와서 시선이라도 끌면 큰일나잖나.”


괴물의 사체는 돈이 된다.

빈민가의 머저리들이 악마 늑대를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 결국 도망치다가 빈민가로 늑대가 들어가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용병을 동원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일거리가 없을 때 용병은 빈민가 조직들에 고용되어 일원이 되니까.


“최대한 은밀하고 빨리 모아서 평원까지 나가야된단 건가.”


시간싸움이 되었다.


악마 늑대가 들이닥치기 전에 먼저 나아가 평원에 전장을 구축해야 한다.


“언제 출발할 건가?”

“지금.”

“그놈들 색깔이 시꺼먼 거 모르는 건 아니겠지?”


루이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오늘 새벽까지 평원으로 나가야 겨우 안전선 밖에서 저지할 수 있을 거다. 그래야 소문도 덜 퍼지고.”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다만. 모험가는? 소집 끝났나?”

“대충 믿을만한 연락 닿는 애들은 모았습니다. 조합장은 정찰 나갔고요.”


카트라그의 모험가 조합장은 척후병 출신이었다.


루이스가 급하게 구는 것도 정찰 나간 조합장에게서 대충 어느 정도 거리까지 왔는지 들어서 그런 것이리라.


“알았어. 나도 애들 끌고 가세하지.”




***




절그럭거리는 소리들이 추운 새벽바람을 타고 흘렀다.


일단의 부대가 서둘러 움직이고 있었다.

잠자고 있다가 급히 불려 나온 모험가들과 경비대원들. 그들 중 일부는 렌델의 검술 도장 수련자들이기도 했다.


텅 빈 거리를 빠져나와 말라죽은 수풀이 가득한 평원으로 나선 그들의 모습은 다소 후줄근했다.


눈곱이 속눈썹에 매달려 있거나 산발이 된 머리. 딱 봐도 자다 깬 모습들이었다.


“아, 밤중에 뭔 고생이야. 추워 뒈지겠네.”

“씨발, 멍청하게 겨울에 건드리고 지랄이야.”

“폐급 새끼들.”

“모험가가 되어선 욕심 절제할 줄도 모르나.”

“의뢰가 이상하다 싶으면 끊어야 할 거 아냐.”


그들의 원망 어린 독설과 눈총이 한 곳으로 모였다.


“우린 그냥 정찰만 하려고 했는데.......”

“진짜 실수였어. 거기가 거긴 줄은 몰랐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모험가의 목에 서늘한 칼날이 드리워졌다. 말을 탄 경비대장 루이스의 칼이었다.


“입 닥쳐. 괴물 미끼로 던지기 전에.”


이곳에서 불만이 없는 인물은 단 하나.


‘실전이다! 괴물이다!’


입을 오므려 웃음을 참고 광대가 비쭉 올라간 채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는, 렌델의 부름을 받고 총알처럼 뛰쳐나온 마빈이었다.


마빈을 흘긋 본 렌델은 기가 찼다.

경험 좀 쌓으라고 부르긴 했지만, 그래도 괴물을 상대하러 가는 건데 저렇게 좋을까.


“웃음이 나오냐?”

“네. 그런데 악마 늑대는 어떤 괴물인가요?”

“앞에 악마란 글자가 붙었듯이, 흑마력에 오염된 맹수지 뭐. 악마 곰, 악마 늑대, 악마 악어 뭐 그런.”


지옥의 힘에 물든 놈들은 일반적인 토착 괴물과는 다르다. 몸이 반 토막 난다 해도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상대를 해하려는 것이 삶의 목적인 것처럼 구는 진정한 ‘괴물’이다.


“투창 가져왔지? 무조건 방진 안쪽에서 싸워라. 절대로 앞으로 나가지 마. 네가 위험할까봐 그런 게 아니라 진형이 흔들릴까 그러는 거야.”


마빈은 방진을 이루고 싸워본 적이 없다.

사소한 실수가 방진의 귀퉁이를 무너뜨릴 수 있고, 그 균열이 진형 전체로 번질 수 있다.


“네가 여기서 할 일은, 괴물을 마주하는 느낌에 익숙해지고 사람들이 어떻게 진을 짜고 대처하는지 관찰하는 게 목적이야. 겸사겸사 후방에서 그거 던져서 지원하고. 절대 욕심 부리고 앞으로 나서지는 마. 명심해라.”


두 번 세 번 강조하는 진지한 말에 마빈도 웃음기를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푸드득


저 멀리에서 자그마한 날갯짓 소리와 함께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왔다. 중견 모험가 제퍼슨이 팔을 내밀었다.


비둘기가 팔에 내려앉자 드러나는 쪽지 묶인 다리.


쪽지를 펼쳐본 제퍼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속도를 올려야 합니다! 도시가 보이는 평원 언저리까지 왔답니다!”


안 그래도 빠르게 걷던 걸 속도를 더 올려 전력질주 수준으로 뛰었다.


도시의 흐릿한 불빛은 멀어지고 태초의 어둠으로 가득한 평지가 나타났다.


헉헉대는 숨찬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가운데 기사들의 호통이 모두의 고막을 두드렸다.


“똑바로 서! 진형을 갖춰라!”

“숨은 자세 잡고 쉬어!”

“어디서 들이닥칠지 몰라! 자리부터 잡으라고!”

“횃대!”


병사들이 가지고 온 횃대를 방진 주위에 세웠다.

횃불의 불빛이 날붙이와 갑옷에 들러붙어 흘러내리고, 대지의 말라죽은 풀들이 허옇게 드러나며 복잡한 그림자를 그렸다.


“방진 전개!”

“창! 방패! 땅에 박아!”


경비대가 방패와 창을 세우고 정석적인 방진을 구성했다. 사이사이에 모험가들이 끼어들어 창 밑으로 파고들 침입자를 경계했다.


하나의 거대한 강철 고슴도치가 만들어졌다.


“마빈.”

“네.”


마빈은 꽹과리치듯 금속 솥을 막대로 쳐댔다.


탱탱탱탱!


어두운 평원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번쩍이고 소란스러운 집단. 괴물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최적이리라.


모두가 식은땀을 이마에 송골송골 매단 채, 제발 괴물이 그들을 지나치지 않았길 바랐다.


‘어?’


두근!


갑자기 마빈이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중지를 내밀고 조롱하는 것만 같은 기분 나쁜 느낌이 와 닿았다.


“기사 아저씨!”

“응? 나?”

“나 부르는 거야. 렌델이라 부르랬지 이 녀석아! 왜?”

“와요! 저기!”


마빈이 손을 뻗은 쪽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뭔 소릴 하는 거야.”


소리도 불빛도 없이 그저 암흑뿐인 곳.

그러나 횃불과 다소 떨어져 있어 암순응이 조금 된 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어......?”


저편에서부터 흐릿하게 반짝이는 불길한 빛들.


구름 사이로 드러난 미약한 달빛과 횃대의 불빛을 반사하는 안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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