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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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작품등록일 :
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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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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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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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탁발(托鉢)

DUMMY

시골 마을은 도회지에 비해서 버스가 거북이 걸음을 했다.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삼십 분쯤 달리다 읍내 정류장에서 5분쯤 정 차 했다. 요즘은 시골 읍내라도 베란다가 있는 빌라나 아파트가 많았다.


느리고 한산한 도농지역임에도 십 여 층이 넘는 아파트가 문방구 앞 두더지처럼 여기저기 솟아 있었다. 장난감 도시를 대하듯 건물이 고르게 하늘을 향해서 있어야만 미관(美觀)이 좋을텐데도 이빨 빠진 노인처럼 예쁜 모습은 아니었다. 마룻바닥 교실, 초등학생과 대학생이 함께 있는 듯 했다.


이런 모습을 진즉 알았더라면 이런 식의 개발은 아니었을텐데, 무슨 일이라도 지나고 나야만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도로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 자동차가 교차 될 만한 큰 다리가 있었다. 마을 앞에 이렇게 큰 다리가 있다는 것은 그만한 냇가가 있다는 뜻으로 인심 좋은 고즈넉한 마을로 보였다. 물은 수많은 생명체를 살리는 근원이었다.


“스님, 이 동네는 길쭉한 것이 제법 크네요. 부자들도 많이 살겠어요? 탁발을 많이 하겠는데요.”


“그러게요. 올 때마다 같은 마음이지만 저기 저 지붕 위 십자가 보이지요? 이 동네 사람들 절반은 교회 나가요.”


탁발을 오랫동안 해온 스님 답게 보국스님은 낚시꾼이 고기가 많은 어장을 살피듯 마을 전체 분위기를 전했다.


“그럼, 교회가 없는 마을로 가야죠.”


“하하하, 세 집만 사는 동네면 개척 교회가 생기는데 어디 그런 곳이 있나요?”


허긴, 교회는 전국 어디라도 많았다. 교회를 나가는 사람이 모두 천당에 가게 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가 천당에 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정구업진언 수리수리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보국스님이 첫 번째 집 대문 앞에서 나지막하게 불경을 외며 간간이 목탁을 두드렸다. 그러나 사람은 보이지 않고 집안을 지키던 사납게 생긴 개가 대문 앞까지 나와서 컹컹 짖었다. 시골은 낮 시간 태반이 빈집이라고 했다.


아무도 나오지 않는 빈집인데도 스님은 돌아서지 않고 한동안 불경과 목탁을 치며 이 가정(家庭)에 좋은 일이 있기를 축원 했다.


“오호, 이 집은 담장 옆 감나무가 너무나 커요.”


“감나무가 크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저기 보세요. 감나무가 지붕을 덥고 있지 않습니까? 처음엔 과실이나 마당 그늘을 위해서 심었을텐데, 기나긴 세월이 지붕까지 그늘을 만들었다는 뜻이지요.”


“지붕이 그늘 지면 안 되는 일이라도 있어요?”


“감나무는 비바람에 약해서 부러질 수 있고, 설사 강한 나무라도 낙엽이 떨어져 추녀 끝 구멍을 메워요. 좋은 수 보다는 반대 수가 많은 법이지요.”


“네에. 스님 말씀 듣고 보니 이치적으로는 합당한 듯합니다.”


정우는 보국스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 들었다.


두 번째 집에서도 첫 번째 집과 똑같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했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어디를 갔다가 오는지 외출했던 할머니가 바쁘게 들어오시며 빈집일 뻔 했는데 마침 오길 잘 했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곤 한됫박 쌀과 찐 감자 두 개를 가져왔다.


“시장할텐데 들어요.”


건네는 말 속에 오랜 이웃처럼 따뜻함이 들어 있었다.


“근데, 이 젊은이는 누구요? 승복도, 머리도 깎지 않고?”


아마도 보국스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정우를 ‘스님’이라고 착각한 듯 했다.


“나무관세음보살! 이 젊은이는 스님은 아닌데, 부처님의 길을 배우러 쫓아다니는 불자입니다.”


보국스님은 할머니한테 알 듯 모를 듯한 얘기를 했다. 넉넉한 마음으로 시주를 주신 할머니가 눈가 주름이 겹치도록 환하게 미소 지었다.


젊음이 나이 들어 마른 낙엽 되는 것처럼 노화로 주름진 얼굴은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맑은 표정에서 단 한차례 거짓말 하지 않고 사는 양심이 묻어 났다. 이런 사람들은 단순하고 곧은 사람들이었다. 어찌나 양심적으로 사는지 어쩌면 죄짓고 잘못을 비는 종교 같은 것은 소용없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정우처사님! 시주는 돈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게 살아도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해요.”


“맞아요. 돈 있는 부자라도 이웃의 어려움을 눈 가리고 사는 사람들 많잖아요?”


***


30여분 쯤 걸었을까? 이 집 대문에서도 보국스님은 불경을 외며 목탁을 쳤다. 손에 낫을 든 할아버지가 험상궂은 얼굴로 나왔다. 시골이라도 낫은 위험한 농기구였다.


“우리 집은 교회 나가는지 십 수년인데, 왜 아직도 중이 찾아와서 재수 없이 떠들어? 문 칸에 십자가 안 보여?”


반말로 목청을 높였다.


시주를 안 하겠다면 마음 상하지 않고 돌아갈텐데 ‘재수 없다’는 언사에 정우는 멸시를 당한 듯 화가 났다.


“같은 말이라도 왜 고따구로 해요?”


정우도 마음이 상해 ‘고따구’ 라고 할아버지를 향해서 소리 질러 댔다.

3년이나 짐승 같은 감방 생활을 했음에도 아직도 순간 순간 욱하고 피가 뜨거워지는 건 고약한 성질이 남은 듯 했다.


보국스님이 팔을 당기며 황급히 말렸다. 이러면 절대로 안 된다며 어디론가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정우처사 참으세요. 그것이 부처의 길입니다. 잘못은 우리가 했고.”


“맞아요. 할아버지 말대로 대문 위쪽을 보니까 십자가에 교회 이름이 보이긴 했어요. 작아서 그렇지.”


면박을 당하고 쫓기듯 돌아 나오며 살피자 대문 위 손가락만 한 크기 교회 이름과 십자가 표시가 박혀있었다. ‘재수 없다’고 면박은 줬지만, 할아버지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 셈이었다.


정우는 자신이 목소리를 높인 것이 겸연쩍었다. 조수처럼 보국스님 뒤를 졸졸 따라다니긴 했지만 스님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느낌도 들었다.


“스님! 사람들은 참 이상해요. 형편이나 취향에 따라 도시나 시골에서 사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나 부처님을 믿는 불교가 어차피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믿고,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사후에는 혼령이 좋은 곳에 가는 것이 목적일 텐데도 자신 종교만 최고라고 다른 사람 종교는 저렇게 배척하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하나님이나 부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해서겠지요.”


부처님의 좋은 말씀을 전하는 탁발이 까딱했다가는 싸움이 될 뻔 했다.

만약 마을 주민과 탁발스님이 시비(是非) 한다면 동네 사람들은 누구 편을 들까?

잘잘못을 떠나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종교(宗敎)는 진실의 유무를 떠나서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그런 것이었다.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 상대방한테는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지구 종말이 정해진 날짜를 굳게 믿거나, 가족 구성원의 전 재산을 아무 말없이 종교 단체에 헌납, 하루아침에 가정을 풍비박산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우처사! 지리산 꼭대기 연주암에 100년 된 백사가 산다는 말 믿겠어요?”


“네에??? 처음 듣습니다. 진짜로 100년 된 백사가 살아요?”


“나도 얘기만 들었지 아직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주지 스님께 영물(靈物)이 살고 있다는 얘기는 심심찮게 들었어요.”


“와, 진짜로 산다면 한번 보고 싶네요. 백사가 얼마나 큰지? 하늘로 승천하는 이무기쯤 되겠는데요?”


“글쎄요. 사람들은 신이 아닌 것은 눈으로 직접 봐야만 믿는데, 백사는 신이 아닌 것이라서.”


50호가 넘는 마을 몇 집에서는 간간히 시주를 받았다. 사후(死後)에 만나게 될 신을 위해서 주는 것인지 아니라면 배낭 차림 스님의 노고에 답례로 주는 것인지, 속마음까진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가는 집집마다 사람들이 시주를 외면하고 면박을 주면 스님도 사람인지라 속이 상할 법도 하건 만, 보국스님은 작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이럴 날은 등에 맨 가벼운 배낭 덕분에 부지런히 발걸음을 할 수가 있어서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불쌍한 중생들에게 종일토록 부처님 말씀을 설파했다는 점에서 위안(慰安)을 찾는다고 했다.


***


두 번째 마을에 왔다. 이 마을은 첫 번째 마을과 달리 냇가도 다리도 없었다. 대신 물이 흘러내려 올 골짜기를 기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냇가가 없으니 물이 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동네임에도 꽤나 큰 당산나무가 서있는 들녘을 지나야만 양쪽으로 마을이 이어졌다. 사이좋은 애들끼리 손잡고 노는 것과 같은 그림이었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 그늘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스님! 배 안 고프세요?”


정우는 조반을 일찍 한 탓에 시장 끼가 돌았다.


“요기, 그늘에서 아까 시주 받은 감자와 옥수수나 드십시다.”


당산나무 아래 널찍한 돌에 앉았다. 무더운 여름철이면 농사일 하던 사람들이 매미 소리 자장가 삼아 오수(午睡)를 즐기던 곳이라 짐작이 되었다.


제법 자란 보리밭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 마을은 가까운 곳에 냇가가 없는 대신 그 자리 들녘이 넓었다. 개구쟁이 시원한 이마를 보는 듯 넓은 들녘, 지평선이

저 산 아래까지 보였다.


사람도 잘 생긴 사람이 인기가 많은 것처럼 마을도 산 세가 좋고 모양이 그럴 듯해야 출세도 많고 부자들도 많이 난다고 했다.


“스님! 이 마을은 냇가는 안 보이고 들녘은 저렇게 넓은데, 농사짓는 물은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요?”


“그러게요. 어디엔 가 물을 끌어오는 수로가 있겠지요.”



이때 칭얼대는 꼬마를 들쳐 업은 할머니가 당산나무 그늘을 찾았다. 다섯 살 남짓 됐을까? 정우는 자신도 여섯 살 적 튀밥기계 삼촌을 따라다녔던 일이 생각났다.


혼자서 걸어도 될 만한 나이인데, 꼬마는 뭐가 못 마땅한지 할머니 등에 업혀서 몸을 뒤척이며 심하게 보채며 울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보국스님은 불심이 깊은 스님 답게 처음 만나는 누구라도 합장을 했다. 등에서 울어 대는 꼬마를 스캔하듯 살폈다.


꼬마는 짜증을 내며 뭐가 못 마땅한지 계속해서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끌끌끌...'


보국스님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계속해서 우는 꼬마한테 할머니는 ‘이젠 고만 그치라’고 몇 차례나 궁둥이를 두들겼다.


“그냥 두세요. 혼자서 스스로 그칠 때까지. 길 잃은 송아지처럼 어미를 잃고 어미가 그리워 천륜(天倫)으로 우는 걸 어떻게 말리겠어요. 나무관세음보살!”


사람들이 뜻을 전달하는 대화는 묘하게도 말 뿐이 아니었다. 표정, 말투, 행동 모든 것들이 뜻 전달의 수단이 되었다. 용케도 할머니는 어미가 그리워 천륜으로 운다는 스님 말씀을 금방 알아 차렸다.


이어 구세주를 만난 듯 보국스님 장삼자락을 잡았다.


“우리 딸 사고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갑소? 안 그러면 애가 어미 잃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듣기는 어디서 들어요. 어르신 수심 가득한 얼굴에 집안 서까래 내려앉은 슬픔이 다 들어있는데. 나무관세음보살!”


할머니는 멀거니 보국스님을 쳐다보며 이어질 다음에 나올 말을 기다렸다.


“어디 그 뿐인가요. 요 녀석 이마가 좁고 인중이 짧은 걸로 미루어 조실부모 할 상입니다. 이런 상황 젖 먹을 나이도 아닌 큰 손주 녀석이 할머니 등짝에 업혀서 울어 댄다면 벌써 부모를 잃었다고 봐야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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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09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09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5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2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3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8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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