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초식 동물들 사이에서 호랑이가 산다
28. 초식 동물들 사이에서 호랑이가 산다
애쉬포드는 며칠째 보이지 않는 밴스 때문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경험상 이런 경우는 대부분 사고를 치고 잠적했다고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잠적, 그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도 자신 밑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녀석들은 널렸다.
하지만 사고를 친 것은 문제가 된다.
사고 친 녀석이 자신의 밑에 있었다는 이유로 자신에게까지 청구서가 날아오니까.
지금까지 예외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밴스의 강도질에 고용인이 부상을 입었다면서 직접 항의하러 온 것이다.
건드리면 안 될 사람으로 분류한 고객이 말이다.
애쉬포드는 자신의 안목을 믿는 사람이었다.
건드리면 안 될 사람으로 보였다면 건드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단 고개를 숙였다.
“유감입니다. 어쨌든 내 밑에 있었던 놈이고, 레온 님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니, 내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군요. 그러나 이 일을 빌미로 내게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라면. 그 정도라면 나도 감수하고 성의를 표하도록 하지요.”
경험상 이런 경우는 돈이 해답이었다.
하지만 간혹 돈이 아니라 다른 것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이 고객은 철장인에 대한 소개를 요구했다.
다양한 철을 생산하고 다룰 수 있는 최고의 장인과 연결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배운 것만 할 줄 아는 기술자가 아니라 철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진짜 장인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미궁을 탐사하며 마석을 캐내는 용병치고는 정말 특이한 요구사항이었다.
대단한 무기라도 만들려고 하나?
“그런 철장인이라면 아는 분이 있기는 한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친척 어르신이라서 소개장을 써 줄 수는 있지만, 반드시 만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성정이 좀 그래서 말이죠. 개인적인 의뢰도 거의 받지 않습니다.”
“실력이 뛰어난 장인일수록 성격이 화끈하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다 하기 나름이겠지요.”
“......그렇지요. 하기 나름이겠지요.”
애쉬포드의 마지막 말이 말이 좀 늘어졌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다.
* * *
내가 애쉬포드로부터 받아낸 소개장을 들고 찾아간 사람은 타넬론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앤빌웍스 철공소의 주인이었다.
대부분의 철공소 주인이 사무실에서 숫자나 만지작거리면서 손익을 계산하는 사업가에 불과하지만, 그는 아직도 직접 망치를 들고 철을 다룬다고 한다.
실력도 뛰어나서 주변 기술자들의 존경심 또한 대단한 모양이었다.
그가 주인으로 있는 철공소 역시 금속 가공이나 제작뿐 아니라 금속의 성질을 변환시키는 작업까지 하는 곳으로, 규모보다 실력으로 더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레지널드의 리스트에도 최상단에 올라가 있었다.
알면 알수록 일을 맡기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소개장을 건네지도 못했다.
접객을 맡고 있던 철공소의 철장인이 부드럽지만 단호한 음성으로 내 요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마스터께서는 당분간 방문객을 받지 않습니다.”
“소개장이 있는데도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연구를 위해 철을 다룰 때는 외부인을 만나지 않으십니다.”
외부인을 만나지 않는다라······
그렇다면 내부인은 만난다는 소리잖아.
나는 미리 준비해 온 권총을 꺼냈다.
소개장에 더해서 권총까지.
이 정도면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실린더의 공기압이 다 떨어져서 무기로의 위력은 잃은 상태였지만, 작동 방식을 알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곳의 마스터가 진짜 뛰어난 장인이라면 권총의 구조는 물론이고, 권총을 만든 금속 재질의 뛰어남 역시 알아볼 것이다.
“그것을 당신의 마스터에게 보여주십시오. 만약 그것을 보고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돌아가겠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대한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현재의 내 경험이 시골 출신의 17살짜리 문맹 소년에 준하는 경험이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지구에서 10년간 플레이 한 유토피아의 경험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것도 게임 하나로 제법 이름을 알릴 정도로 잘 했는데.
유토피아가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배경이 되는 설정은 모두 이쪽 세상에서 따온 것이었다.
허상 세계니, 그림자 세상이니 할 정도면 아예 베꼈다고 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에서 10년을 전업프로게이머로 활동했다.
간접 경험도 그 정도로 했으면 직접 경험 못지않다고 봐야 한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실제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경험이었다.
특히, 유저들과의 수준 차이가 너무 심해서 NPC임에도 불구하고 접할 기회가 희귀했던 귀족이나 이능력자 같은 존재들에 대한 것이 더욱 그랬다.
그런 의미에서 공기총은 정말 의외의 물건이었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상상도 못한 것이 튀어나왔다고나 할까?
나는 유토피아에서 NPC가 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유토피아에서는 화약이 없다는 설정답게 총은 물론이고 대포나 폭탄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쇠뇌나 발리스타가 한계였다.
이곳에서도 총 또는 그것과 비슷한 무기 체계를 본 적이 없었다.
시골에서 타넬론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내가 목격한 무기는 모두 냉병기 뿐이었다.
그런데 지하 미궁 깊은 곳의 마물인 다르카 엘프가 총을 사용했다.
공기총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여기서 나는 기회를 보았다.
총을 양산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사업이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공기총도 총이다.
살상력도 거리도 화약총 못지 않다.
어떻게 사업을 키울지도 생각해 놓았다.
처음에는 미궁 지하 1층의 용병에게 팔면서 이름을 알리고, 나중에는 치안대에 밀어 넣어서 신뢰성을 확보한 후 다른 도시 국가로 수출까지.
나쁘지 않은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사업에 신경을 쓰는 것은 마석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어느 세월에 사냥으로 충분한 마석을 획득하겠냐 이 말이다.
귀족이 세금으로 마석을 가져간다면, 사업으로 마석을 확보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었다.
과연 타넬론에서 손꼽아 준다는 철장인이 공기총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반응은 금방이었다.
꽝!
손님맞이 방의 문이 박살이 났다.
한 성깔 할 것 같은 단신의 노인이 부서진 방문 뒤에 서 있었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팔뚝 근육과 피부에 점점이 남아 있는 화상 흔적이 그의 정체를 알려 주었다.
이곳, 앤빌웍스의 주인.
철을 다루는 것은 따라올 자가 없다는 사람.
포지하트였다.
그런데, 이 사람.
태도가 적대적이었다.
두 눈이 이글거리는 것이 진짜 불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장 나를 쳐 죽이겠다고 나서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긴장한 나를 향해 그가 으르렁거렸다.
“너냐? 이것을 가져온 자가?”
“그렇습니다.”
“이게 뭔지는 알고?”
“명칭은 모릅니다만, 어디에 쓰는지는 압니다. 사용하기 편한 연발형 소형 쇠뇌 같은 것이더군요.”
거칠게 나를 대하던 포지하트의 흥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태연하게 대답하는 내게 그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설마 이게 미궁에서 나온 물건이라는 것을 모르는 거냐?”
“미궁에서 구한 것은 맞습니다. 다르카 엘프를 죽이고 얻었으니까요.”
“어느 길드 소속인가?”
“따로 소속된 길드는 없습니다.”
내 말에 그는 코웃음을 쳤다.
“그렇다면 네가 홀로 미궁 지하 7층이라도 내려갔다는 거냐? 네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너는 네 말을 증명해야 할 거다.”
지하 7층?
무엇인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사업 아이템을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포지하트는 이미 총에 대해 아는 눈치였다.
심지어 다르카 엘프가 사용한다는 사실까지도.
그럼, 왜 총을 생산하지 않은 거지?
총에 대한 내 생각은 거기에서 끝났다.
생각 따위를 계속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포지하트는 자신의 말을 끝내자마자 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에서 불길이 쏟아졌다.
노란색이 섞인 흰색의 불길이었다.
어렸을 때 불꽃의 온도에 대해 배운 기억이 스쳤다.
빨주노초파남보.
불꽃의 색깔로 온도를 구별할 수 있다.
빨간색이 낮고 보라색이 높다.
노란색은 철을 녹일 수 있다.
이런 미친!
철을 녹일 수 있는 불길을 손에서 뿜는다고?
몸으로 버틸 수 있는 불길이 아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불길을 피해 옆으로 뛰면서 투척용 도끼를 던졌다.
하지만 포지하트의 손짓 한 번에 도끼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튕겨 나갔다.
특별한 무술을 배운 것 같지 않았는데도 그의 반응이 너무 빨랐다.
거의 [가속]에 준할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이능력자!
이 세상에서 깨어난 후 처음으로 마주치는 이능력자였다.
마법사, 이능력자.
어차피 나로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법칙에 따라 힘을 다루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마법사는 그래도 익숙하다.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대중매체를 통해 많이 접했으니까.
너무 익숙해서 다르카 엘프 마법사 같은 경우는 어떻게든 때려잡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능력자는 다르다.
처음 유토피아에서 이능력자 NPC를 봤을 때 사람들은 NPC가 스킬을 사용한다고 이해했다.
기껏해야 외형을 커스터마이징하고, 육체를 강화하는 것에 몰두하던 사람들은 스킬의 특이성과 강함에 매료되었다.
저런 쩌는 스킬을 배울 수 있다면 기꺼이 돈을 내겠다는 사람이 넘쳐났다.
하지만 과금할 돈이 있다고 해도 레벨 제한에 걸리면 스킬을 배울 수가 없다는 사실이 곧 알려졌다.
낮은 레벨이 문제가 된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단련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레벨 10이 한계였다.
레벨 10이 별로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프로스포츠 선수 수준의 육체가 레벨 10이니 거기까지 도달한 사람들이 오히려 대단하다고 해야 한다.
적당한 스킬,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스킬은 가능했다.
하지만 이능력자 NPC들이 사용하는 위력이 강한 스킬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서 NPC임에도 이능력자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감히 상대할 수 없는 강자이자 도달할 수 없는 레벨의 소유자로 말이다.
저렇게 철을 녹일 수 있을 정도의 스킬?
저거 최소한 레벨 20 이상이어야 익힐 수 있다.
레벨 20이라니!.
그 정도면 스킬을 봉인하고 주먹으로만 싸워도 바로 피떡이다.
그게 현재의 나와 레벨 20의 격차다.
그러나 순순히 당해줄 수는 없었다.
유토피아는 게임이지만, 여기는 현실.
실수하면 목숨이 날아간다.
나는 신발의 점프 옵션을 이용해 벽을 박차며 어지럽게 움직였다.
허공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
내가 노린 것은 방안을 아예 불로 태우는 것이었다.
연기와 불로 가득 찬 공간에서 증명은 무슨 증명.
그렇게 되면 그놈의 증명이라는 것도 끝나겠지.
죽지만 않으면 말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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