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속 도사, 판타지 세계의 인과 연을 맺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실웨
작품등록일 :
2024.08.16 16:11
최근연재일 :
2024.09.10 13:05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899
추천수 :
45
글자수 :
135,233

작성
24.09.02 08:05
조회
29
추천
2
글자
12쪽

흑갑(2)

DUMMY

“해주실 말은 없나요?”

 

 첫날의 무투제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온 포테이는 사문에게 물었다.


 “넌 상대를 잘 알지만, 상대는 널 잘 모르지. 이미 머릿속에 어떻게 싸울지 생각해 뒀잖아."”

 

 델리스는 다양한 기교를 가지고 있었으나, 힘은 그에 미치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포테이를 얕본 나머지 기교를 펼치지 않고 정면 승부를 걸었었고  포테이는 자신이 그동안 쌓아 올린 힘이 그녀보다 강함을 알았기에 승부를 받아들였었다.


 다음 상대인 가룸은 포테이의 경기를 봤기에 델리스처럼 그를 얕보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포테이는 모든 걸 보이지 않았고 가룸의 약점을 알고 전투 방식을 그동안 봐왔기에 이미 상대법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다.

 

 “그렇긴 하죠...”

 

 포테이의 목소리에 자신이 없었다.

 다음 상대인 가룸 탓이 아녔다.

 마지막으로 싸울 벨티드의 전투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넌 이미 어떻게 싸워야 할지 알아. 단지 그 방법을 아직 실현할 수 없을 뿐이야.”


 사문은 벨티드의 무투를 보며 그가 입은 갑옷의 능력을 얼추 예상하였고 포테이도 벨티드의 심박을 통해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도구는 도구일 뿐이야. 사용자를 무적으로 만들어주진 않아.”


아무리 명검이라도 주인을 고수로 만들지는 못한다.

벨티드는 강인한 육체와 힘을 지녔지만, 갑옷의 능력을 극대화하기엔 부족한 자였다.


“그래도 제가 생각하는 그 능력이면...”

“아직 그 녀석과 무투를 치르기까지 시간이 남았잖아. 뭐해? 약하니까 불안한 거야. 움직여.”

“아... 예!”


간혹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지만 지금까지 사문의 말과 가르침 중에 틀린 것은 없었다.

확신에 찬 사문의 심박을 통해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느낀 포테이는 불안감을 덜어낸 듯이 조금은 개운한 표정이었다.


“눈을 현혹하고 또 현혹해. 눈이 너를 쫓지 못하면 몸은 갈피를 잃게 될 거야.”


포테이는 강하게 땅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


“수도에 퍼진 그 헛소문은 네가 퍼뜨린 것이었느냐.”

“예? 뭐를 말입니까?”

“그 누구보다 밝은 귀를 가진 자가 만인의 소리를 듣고 모두의 뜻을 하나로 모으리라... 그런 소문을 퍼뜨린 게, 네가 아니란 말이냐?”


다음날 또다시 많은 수인이 모인 무투장.

그 가운데에는 첫 번째 무투에 참여할 포테이와 가룸이 서 있었다.


가룸은 의심스럽다는 듯이 포테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나 포테이는 전혀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오스트의 장례식을 제외하면 그는 사람들이 많은 곳을 가본 적... 아니, 갈 수가 없었다.


그동안, 훈련에 모든 시간을 쏟은 것도 있었고 장례식 때는 모두가 슬픔에 잠겨 그런 소문을 말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아닙니다만... 소문을 예언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네요.”


뒤늦게 누구의 소행인지, 깨닫고 슬쩍 관중석에 위치한 사문을 본 포테이는 미소를 지으며 가룸을 바라봤다.


“토끼 수인들의 편의를 봐달라고 약아빠진 짓을 하던 녀석이 많이 변했구나.”

“의미가 없는 짓이었죠. 그런데도 조금은 혹하시지 않았습니까.”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이었으니, 그럴만 했지. 하지만 쉬운 길이든 어려운 길이던 결국 끝에 도달하는 것은 나란다.”


침착하게 말하는 가룸이었지만, 그의 심박은 조금 올라가 있었다.


“그렇게 약점을 잘 알아내던 저입니다. 과연 가룸 님에게선 어떤 약점을 발견했을 거 같습니까?”


가룸은 사나운 눈빛으로 포테이를 노려봤다.


‘입담이 많이 늘었네.’

‘안 그래도 심장이 안 좋은 녀석을 계속 도발하고, 영악하네.’

‘도발보다는 그동안에 쌓였던 분노를 저렇게 표출하는 거지.’


자신과 같은 작은 수인들을 위했으나, 힘이 없었다.

그나마 토끼 수인들이라도 차별에서 빼고자, 가룸이란 줄을 잡았지만, 그는 딱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질질 시간을 끌며 포테이가 다른 곳에 약점을 팔지 못하도록 만들 속셈이었고 그걸 포테이 또한 깨달았기에 벨티드란 줄로 옮겨 타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가 분노한 대상은 가룸이 아녔다.

작은 수인들에서 그나마 자신과 같은 토끼 수인들의 차별을 없애는 것으로 타협을 본 자신에게 분노했고 쉽게 줄을 갈아타는 자신에게 또 분노한 것이었다.


지금 하는 짓은 그저 가룸에게 분풀이하는 것이었다.


‘좋지 않은 버릇인데.’


순수하게 도발이 목적이었다면 칭찬할 것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분풀이하는 것이라면 벌을 받아야 마땅했다.

사문은 어떻게 저 화를 다스려줄지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어... 말이 길었군요. 무투를 시작하는 게 어떻습니까?”


순간, 귀를 움찔한 포테이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가룸을 바라봤다.


“도발이라면 성공이구나. 그래. 그 소문이, 예언이 될지 시답지 않은 소리가 될지 알아 보자꾸나.”


가룸은 손톱을 뽑아내고 자세를 낮췄다.

첫 번째 무투와는 다른 야성적인 형태.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지를 알 수 있었다.


포테이 또한 처음과는 다른 자세를 취했다.

앞굽이 자세가 아닌, 육상선수들의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였다.


“뭘 하려는 거지?”

“그러게, 달리기라도 하려는 건가?”

“흠, 큰 반전을 보여줬던 녀석이니, 이번에도 뭔가 있겠지.”


다소 무투제에 어울리지 않아,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었으나, 은근한 기대를 품은 말들이 관중석에서 들려왔다.


‘가라.’


사문의 말이 닿기라도 한 듯이 움직인 포테이.

포테이의 질주와 함께 가룸도 먹이를 노리는 늑대마냥 움직였다.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겠으나, 받아주마!”


가룸은 짐승의 아가리처럼 양손을 앞으로 뻗은 후, 움직였다.

그 순간, 땅을 박차며 점점 가속하던 포테이는 높이 뛰어오르며 그의 뒤로 넘어갔다.


“이, 이 자식이! 장난하는...!”


몸을 뒤로 기울이며 착지한 포테이는 순식간에 뒤로 튀어 오르며 몸을 뒤틀었다.

손목에 위치한 양지혈로 모여든 마력.

회전하는 허리와 발.

작은 소용돌이가 된 포테이는 왼손으론 장타를 오른손으론 수도를 펼친 채, 가룸을 덮쳤다.


“크흡!”


손날로 베고 손목과 손바닥으로 때리는 연쇄 공격.

급히 뒤돌며 그의 공격을 발견한 가룸은 공격을 포기하며 방어를 취했으나, 팔이 베이고 이어진 공격에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바람은 스스로 멈출 수 없지. 피하거나 그만 불어오길 바랄 수밖에.’


포테이의 공격은 사문의 말처럼 멈추지 않았다.

막아내고 버텼으면 다시 베고 때리면 될 일이었다.


“으... 아아아!”


계속된 연격에 가룸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가룸은 결국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지만, 회전을 유지한 포테이가 다시 쫓아오면 그만이었다.


‘굳이 저런 기술을 가르칠 거였으면 바람의 기운인 손(巽)도 물들였어야 하는 거 아냐?’

‘알잖아. 건곤, 그 두 가지가 가장 조화로운 거. 그리고 저건 어디까지나, 마지막 일격을 유도하기 위함이란 걸.’


‘그렇긴 하지만, 굳이 저렇게 요란하기만 한 기술을.’

‘그래도 나름 효과는 있지.’


이시미의 말처럼 굳이 요란할 필요는 없었다.

발에 비해 연약한 손의 다양한 지점을 단련하기 좋은 기술을 생각하다 보니, 떠올렸고 조금 재미를 찾다 보니 요란해진 것이었다.


'뭐, 제작 의도는 따라주네.'


두더지 수인이라면 모를까, 가룸이 도망칠 곳은 한 곳이었다.

가룸은 결국 공격을 피하고자 뛰어올랐고 공격을 준비하며 공중에서 몸을 뒤틀었다.


포테이도 그를 쫓아, 뛰어올랐다.

그러나 회전은 멈춰있었고 뛰어오른 땅은 움푹 파여있었다.


"어, 어째서..."


가룸의 눈이 당혹스러움에 물들었다.

뒤늦게 뛰어올랐음에 환호하며 내리치기 시작한 손톱.

그러나 분명 아래에 있어야 할 포테이가 어느 순간, 그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 있었다.


'토끼에게 발달한 게 귀만 있는 건 아니지.'


강력하게 뛰어오를 수 있는 다리와 그 힘을 버티게 해주는 몸의 탄력성.

사문은 뛰게 만들어 그걸 극대화했었다.


"천의회격."


천의회격(天意懷擊).

하늘의 의지를 품은 일격.

더욱 높은 곳에서 무거운 하늘의 기운에 짓눌리며 떨어지는 포테이의 다리가 가룸의 머리로 향하며 추락했다.

마침내 지상에 도착한 거대한 충격이 대지를 울리며 갈라냈다.


"하..."

"가, 가룸 님은!"

"땅이 부숴졌..."


누군가는 경악했고 가룸을 지지했던 이들은 그의 안위를 걱정했다.

그러나 충격과 함께 일어난 흙먼지에 의해 그 속에 있는 둘이 어떤 상태인지 관중들은 알 수 없었다.


"잘했네."


상황을 파악한 사문의 만족스러운 표정이 보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의 모습이 모두의 앞에 드러났다.

코피를 흘리며 서있는 가룸과 이미 승부는 끝났다는 듯이 띠의 양 끝을 붙잡고 선 포테이.

관중들은 생각보다 멀쩡한 가룸을 보며 상황을 파악하기에 바빴다.


"일부로 다리를 접어서 코만 살짝 스쳤어."

"그, 그럼, 봐준 거야? 저 작은 녀석이, 가룸 님을?"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래."


보는 눈이 좋은 다람쥐 수인의 말에 주변 모두는 경악했다.

힘을 중요히 여기는 종족이긴 했으나, 살생을 즐기는 것은 아녔다.

피를 보지 않고 끝낼 수 있다면 그거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하지만 그건 강자가 약자를 상대할 때나 그러했다.


관중들에게 포테이의 첫 무투가 충격적이긴 했으나, 델리스가 그를 얕보고 어울리지 않게 정면승부를 걸었던 이유로 평가가 높아지긴 했어도 완전히 우승후보로 여겨지진 않았었다.

그러나 이전부터 쌓아온 명성 덕에 가장 많은 이들에게 우승 후보로 여겨진 가룸과 벨티드.

그랬던 가룸이 패했다.

아직 패배를 말하지 않았지만, 상대가 공격을 빗맞혔기에 살아남았다.

그건 패배를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패배라 여길 수밖에 없었고 끝내 그의 입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믿었던 만큼 관중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너의 승리다."


가룸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한동안은 무리한 운동을 자제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아직은 바로잡을 수 있는 단계이니, 저를 따라오세요. 약이라도 지어드리겠습니다."

"내가 자네를 잘못 알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뭔가가 자네를 바꾼 것인지, 알 수가 없군."


패배를 인정한 가룸의 표정은 한결 편해져 있었다.

강한 수인족을 꿈꾸는 그.

약한 이들을 보호하던 선왕 오슬로의 통치를 그는 인정하지 못했었고 스스로 다음 왕이 되어 잘못된 것을 고치려고 했었다.

그러나 보호받던 이들 중, 강자가, 그것도 자신을 뛰어넘는 이가 나타났고 자신도 잘 알고 있던 약한 이였다.

언제나 약한 것은 아니다.

강한 수인족을 꿈꾸던 그에게 이처럼 반길 일은 없었다.


"아직 많이 미숙합니다."

"날 이겨놓고 그리 말하다니..."


정신도 힘도 더 강해지겠다.

가룸은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지었다.


이후 벌어진 곰 수인과 벨티드의 무투.

결과는 허무할 정도로 압도적인 벨티드의 승리였다.

앞선 무투처럼 모든 공격을 피하고 치명적인 일격으로 승리를 취한 벨티드는 모두의 환호성을 들으며 무투장을 떠났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탈속 도사, 판타지 세계의 인과 연을 맺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 및 복귀 알림 24.09.10 8 0 -
25 카리브디스(3) 24.09.10 11 1 12쪽
24 카리브디스(2) 24.09.09 14 1 12쪽
23 카리브디스(1) 24.09.08 18 1 12쪽
22 여제(2) 24.09.07 19 1 12쪽
21 여제(1) 24.09.06 22 1 12쪽
20 흑갑(5) 24.09.05 24 1 12쪽
19 흑갑(4) 24.09.04 27 2 12쪽
18 흑갑(3) 24.09.03 30 2 13쪽
» 흑갑(2) 24.09.02 30 2 12쪽
16 흑갑(1) 24.08.31 26 2 12쪽
15 왕이 될 상(6) 24.08.30 25 2 12쪽
14 왕이 될 상(5) 24.08.29 27 2 12쪽
13 왕이 될 상(4) 24.08.28 29 1 12쪽
12 왕이 될 상(3) 24.08.27 31 2 12쪽
11 왕이 될 상(2) 24.08.26 33 2 12쪽
10 왕이 될 상(1) 24.08.25 37 2 12쪽
9 인신공양(4) 24.08.24 35 2 12쪽
8 인신공양(3) 24.08.23 40 2 13쪽
7 인신공양(2) 24.08.22 46 2 12쪽
6 인신공양(1) 24.08.21 44 3 12쪽
5 B급 모험가(2) 24.08.20 51 2 12쪽
4 B급 모험가(1) 24.08.19 47 2 12쪽
3 사문 도령(3) 24.08.18 50 2 12쪽
2 사문 도령(2) 24.08.17 67 2 12쪽
1 사문 도령(1) 24.08.16 117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