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속 도사, 판타지 세계의 인과 연을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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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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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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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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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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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공양(3)

DUMMY

“술도 왔으니, 하던 말이나 이어 하지.”

“그래.”


루디는 자신과 웨슬로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문은 이미 그의 눈을 통해 얼추 알 수 있었지만,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말이란 뱉을수록 무거운 마음을 덜어주기 때문이었다.


루디는 웨슬로가 뒤늦게 본 자식이었다.

그랬던 만큼 형들과 달리 전쟁의 고통을 실제로 겪지 않은 이였다.

웨슬로는 그런 루디에게 전쟁의 고통을 알려주기 싫었다.

자신은 잃은 것을 잊지 못하고 복수심에 전쟁을 준비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자식만큼은 계속해서 그걸 모르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모순이었다.

아비가 전장으로 향하면 자식도 그곳으로 향할 것이었다.

설령 따라나서지 않더라도 아비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크나큰 고통을 느낄 것이었다.


결국 전쟁을 대비시킬 수밖에 없었다.

검을 가르치고 서적을 읽혔다.

벌어질 전쟁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전쟁을 모르길 바라는 마음 탓에 다른 두 형제보다 강하게 가르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의 기류가 사라져 갔다.

웨슬로는 전쟁을 통해 복수를 노리던 자신이 뭐가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자식이 전쟁을 겪지 않을 수 있다는 마음에 안도감도 함께 들었다.


결국 선택할 시간이 찾아왔다.

전쟁인가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인가.

웨슬로는 결국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전쟁에 대한 마음을 접었었다.

그 다짐으로 다리의 치료를 받기로 결심했다.


전쟁의 고통을 잊지 않고 복수심을 계속 일으키기 위해 치료하지 않고 남겨뒀던 다리.

전쟁이 일어나서야 전장에 뛰어들기 위해 치료를 받을 다리였다.

복수심을 계속 각인시키는 다리를 치료받으려고 사제와 만난 순간, 모든 게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아버지는 전쟁에 대란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 치료를 받으셨던 거구나...”

“그래.”


루디의 얘기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사문의 말로 끝난 얘기였다.

루디는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대했는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복수심을 불태워도 얘 말처럼 전쟁이 안 일어나면 의미가 없잖아.”


고기를 한 입 물어뜯은 강철이가 루디를 바라봤다.


“왕국 쪽에선 유릭 브리아가 왕인 이상, 전쟁을 벌이지 않을 거야. 하지만 제국은 한동안이고 그 이후는 어떻게 될지 몰라.”

“왜지?”

“노쇠한 왕의 뒤를 누가 이어받는 가에 따라 다르거든. 아버지나 일부 영주가 지지하는 둘째 왕자가 왕이 된다면 전쟁이 일어날 거야. 하지만 첫째 왕자가 왕이 된다면 글쎄, 일어날 확률은 낮다고 생각해.”


다음 왕위에 가장 가까운 건 첫째 왕자였다.

그러나 웨슬로처럼 전쟁을 바라는 영주들이 생각보다 많고 그들이 둘째 왕자를 지지하기에 어떤 결말로 향할지 알 수 없었다.


“인간끼리 싸울 때가 아닐 텐데...”


세계수는 자신의 죽음과 세계의 멸망을 얘기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이들이 오기까지 시간을 벌어주길 원했다.

물론 다른 부탁도 있긴 했지만, 이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탁이었다.


“왕궁은 어느 쪽에 있지?”

“그건 왜?”

“확인해 볼 게 있어서.”

“여기서 동쪽이니까, 저쪽이야.”


사문은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바라봤다.


수많은 별이 빛나고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중, 동쪽에서 가장 큰 별은 확실히 빛을 잃어가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얼마 남지는 않았네. 주변에 흉성도 많고. 둘 다 그리 좋은 별은 아니네.”


왕과 가장 가까운 두 별은 흉성은 아녔으나, 왕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는지 미약한 빛을 발했다.


“하늘을 보면 뭐가 보여?”

“주인 눈에 별은 우리랑 조금 다르게 보여.”

“몇몇 별은 밝기도 다르게 보이지. 말로는 운명을 알려주는 지침이라는데 우리도 뭐 똑같이 보여야 이해하지.”

“흠... 그런데 주인?”


강철이가 주인이라 부른 것에 의문을 가졌다.


“이걸 놓쳤었네.”


현 위치에 있는 별.

웨슬로를 나타내는 별은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몇몇 선명한 별도 존재하기는 했지만, 꽤 많은 구름이 제국의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너희 아버지만 이 꼴이 난 게 아닐지도 몰라.”

“뭐?”

“바람도 별도 알려주지 못해. 지금부터 말하는 건 온전히 내 예상이야.”


루디는 술을 한잔 들이켜고는 사문을 또렷한 눈으로 바라봤다.


“만약 다른 이들도 몸을 빼앗겼다면 악마들이 원하는 건 전쟁일 거야.”

“어째서지...”

“나야 모르지. 하지만 악마들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 제국을 집어삼키겠지. 아직 두 왕자는 악마에게 몸을 빼앗긴 거 같진 않아 보이는 데 노리고 있긴 한 거 같아.”


구름은 점점 그들의 별에 다가가고 있었다.


“막을 수 있겠어?”

“흠... 나는 발길이 닿는 곳만 막아도 충분해 보이네.”


사문의 담배 연기가 한 별을 향해 올라갔다.


“무슨 소리야.”

“제국에 좋은 별이 하나 있어. 내가 과도하게 나선다면 빛날 기회를 잃을 별이야.”

“무슨 소리야? 영웅이라도 나온다는 거야?”

“영웅이 될 수도 단순히 복수귀가 될 수도 있지. 마주치는 별들에 어떤 영향을 받는가에 따라 뭐로든 변할 수 있는 미약하고 어린 별이지.”


하늘은 자신에게 제국을 뒤덮는 구름을 모두 치우란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역할은 다른 이의 역할이었고 사문은 그저 발길이 닿는 곳에 있는 것만 치우는 것으로 충분했다.


“영웅은 만들어진다는 건가?”

“혼란스러운 시대이기에 영웅이 탄생하지. 혼란을 막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과들이 모이고 모여 영웅을 만드는 거야.”


그 인과는 루디일 수도 사문일 수도 있었다.


“만들어진다는 말에 부정은 안 하는 거네. 그럼, 그 별은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어?”


악마란 구름에 갇힌 자신과 같은 이들을 벗어나게 해줄 존재.

루디는 그 별과 만나고 싶었다.


“길잡이별이 되길 자처하는 거야?”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런 영웅을 만들 수 있다면 한번 자처해 볼 수도 있지.”


구름에 가려졌던 한 별이 살짝 빛을 투과시켰다.


‘스스로 빛나는 걸 포기하고 다른 별이 더 빛나게 해준다라... 그 또한 대단한 삶이지.’


사문은 본래 루디가 빛날 수 있으나, 빛나지 못하기에 접근했었다.

물론 도시의 역겨움이 거슬렸고 그걸 더 쉽게 해결하기 위함도 있었다.

그랬던 별이 자신보다 더 밝게 빛날 수 있는 별을 위해 빛을 나눠준다.

나쁘지 않은 선업이었다.


“제국의 수도에서 서쪽이네. 별이 그리 없는 걸로 봐선 마을 정도 되겠어.”

“그렇단 말이지.”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 가에 따라 얼굴이 변한다.

그 또한 자신의 걸어갈 방향을 정한 만큼 눈빛이 선명하게 빛났다.

작은 변화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얼굴은 변할 것이었다.

그에 따라 그가 세워나갈 업 또한 변할 것이었다.


‘갓 변한 업은 읽을 수가 없지. 조금 아쉽네.’


그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당장에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빛을 나눠준 이의 옆에서 함께 빛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자! 이제 슬슬 자리는 정리하고 이곳을 뒤덮은 구름이나 몰아내자고.”

“너무 뜬구름 잡는 듯한, 표현으로 말하지 마.”

“그게 도라는 거고 난 그 길을 걷는 도사지.”

“취했어, 화기로 주독이나 날려.”


이제야 취기가 오르기 시작한 사문이었다.


***


‘지독하네, 코가 아플 지경이야.’


성의 꼭대기로 조심히 향하는 사문과 일행들.

문 앞에 선 사문은 연신 부채질하며 냄새를 날렸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드러난 공간, 루디가 봤던 대로 제단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고 영주의 창고로 쓰이던 곳이라기엔 무기가 많았다.


“뭔 무기가 이렇게 많아?”

“아버지와 함께 전장에 나섰던 이들의 것이야.”


루디는 강철이의 물음에 답하며 다시 한번 웨슬로가 과거에 얼마나 매여있는지 깨달았다.


“망각은 축복이라고 하지. 과거의 감정에 잡아먹히면 나아갈 수가 없어.”


사문은 무기들을 향해 부채를 휘둘렀다.

그러자 고운 빛깔의 가루들이 바람에 흩날리듯 흩어지며 사라졌다.


“방금 그건...”

“흔히 잔류사념이라 부르는, 죽은 이들이 남긴 찌꺼기야. 남아 있어봤자, 죽은 이들을 계속 떠올리게 할 뿐이지.”


산 사람은 계속 살아야 했다.


“여기에 이런 게 있네.”

“역시 악마였구나...”


이시미가 가리킨 곳엔 한 조각상이 있었다.

문틈으로 볼 수 없는 곳에 있는 악마를 본뜬 조각상이었다.

루디는 조각상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깨부술 생각은 하지 마. 건드려서 좋을 게 없을 테니까.”

“뭐?”


조각상 안에는 꽤 많은 불길한 기운이 모여 있었다.


“너 보이지?”


사문은 조각상의 앞으로 다가가 눈을 마주쳤다.


“뭐 하는 거야?”

“아닌가? 기운의 흐름이 조금 이상한데...”


미세하지만, 조금씩 줄어드는 기운.

보통 마력이든 자연지기든, 기운들은 잡아두는 힘이 없다면 자연히 흩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조각상은 잡아두는 힘이 있어서 많은 기운이 담겨있었지만, 어딘가에 사용되는 것인지 줄어들고 있었다.


“... 가르구는 실패한 건가...”


순간, 조각상에서 들려오는 귀찮다는 듯이 늘어지는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너...”

“한심한 자식...”


사르륵...

조각상은 사문의 말은 무시한 채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게 무슨...”

“와! 사람 열받게 하는 재주가 있네.”


제 할 말만 하고 사라진 조각상에 사문은 그것이 있던 자리를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보다 그 기운은...”

“전부 거둬갔어.”


조각상에 담겨있던 기운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으아아아아!”


순간,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고함이 성을 뒤흔들었다.


“깼네.”

“이시미, 강철이! 둘은 루디를 보호해.”

“본모습으로?”

“감출 게 뭐 있겠어.”


사문이 답하자, 둘은 뱀의 모습이 되어 루디에게 다가갔다.


“히익!”

“겁먹지 마. 안 잡아먹으니까.”

“악인 말고는 안 잡아먹는다고.”

“아, 네...”


잔뜩 겁먹은 루디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온다.”


펑!

문이 박살 나며 날카로운 손톱을 지닌 손이 사문의 얼굴을 향해 뻗어왔다.


팅!

사문은 급히 뽑아낸 청실로 손목을 쳐냈으나, 베어내지 못했다.

마치 단단한 바위와 부딪힌 듯이 청실을 타고 팔까지 떨렸다.

그러나 경로를 틀어낸 것은 성공한 사문은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무슨 짓을 벌인 거야!”


돌처럼 단단한 잿빛의 피부와 돌을 깎아 만든 듯한, 두 개의 뿔.

그러나 얼굴은 여전히 웨슬로의 것이었다.

그의 등 뒤로 다른 가족들을 뒤집어쓴 악마들이 함께 있었다.


“가글이라 그랬나?”

“주인, 가르구라고 그랬어!”

“아! 그래, 가글... 너 버려졌어. 너 보고 한심한 놈이라고 하던 데?”

“이, 이놈이!”


딱히 버려질 이유가 없었다.

물론 곧 생길 거였지만, 조각상을 통해 말한 악마는 사실 확인도 없이 그를 버렸다.

걸린 거만으로 부하를 버릴 만큼 엄격하거나, 따지기 귀찮거나 둘 중 하나였다.

사문이 보기에는 후자였다.


가르구와 뒤에 있던 악마들이 땅을 박차며 사문에게 달려들었다.

사문은 홍실로 공격을 쳐내고 뒤이어 온 공격은 청실로 빗겨내며 두 뱀에게 소리쳤다.


“결계를 펼쳐.”

“오케이!”

“염열문진이 좋겠지.”

“빙한문진이 좋지.”

“웃기지 말고 음양문진이나 펼쳐! 이 새끼들아!”


염열문진(炎熱文陳)과 빙한문진(氷寒文陳).

강철이와 이시미가 홀로 펼칠 수 있는 결계로 둘의 기운을 끌어올리기 좋은 환경으로 만드는 결계였다.

그에 반해 음양문진(陰陽文陳)은 음과 양의 기운이 조화롭게 움직이는 결계로 두 뱀이 힘을 합쳐야만 펼칠 수 있는 결계였다.


“아, 이건 좀...”

“나도 싫다.”


사건을 키우지 않기 위해 공격을 무력화하는 데 집중하는 사문의 호통을 듣고 나서야 둘은 꼬리를 포개고 바닥에 가져다 댔다.


둘의 기운이 바닥을 타고 둥근 원을 그리며 결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너흰 이제 좆 됐어.”

“죽이면 안 돼!”

“아, 알았어.”


사문은 미소를 짓다, 루디의 말에 당황하며 결계 속에 그들과 함께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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