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속 도사, 판타지 세계의 인과 연을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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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1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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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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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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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도령(3)

DUMMY

“난감하네...”


바람을 따라 흘러가다 도착한 곳은 다행히 한 도시였다.

그러나 큰 문제가 한 가지... 아니, 좀 많이 있었다.


일단 이곳의 다행히 인간들이 거주하는 도시였다.

짐승의 귀와 꼬리를 가진 수인도 보였고 키가 작은 드워프도 보였으나, 주류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인간이라고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고 출신을 증명하지 못하는 바람에 여러모로 고생하다, 임시 출입증을 받아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두 자루의 검, 홍실과 청실은 병사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다시 받을 수 있겠지?’

‘신분을 증명할 걸 가져오거나, 다시 그 문으로 나가면 돌려준다고 했으니, 문제는 없겠지... 그런데 큰 문제는 그게 아니잖아.’


돈이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검까지 맡겨가며 도시에 입장했지만, 음식을 사 먹을 돈이 없었다.


“에휴... 내가 이 나이 먹고 배곯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한 가게의 옆에 쭈그린 사문의 한숨은 깊었다.


끼익.

순간, 그의 옆에 있던 가게의 문이 열리며 한 남성이 빈 술병으로 가득한 상자를 내려놨다.


“낮부터 뭔 술들을 저리 마시는지.”

“아! 자, 잠깐! 그 나무 상자를 제가 좀 써도 괜찮겠습니까?”


뭔가가 떠오른 사문은 상자를 가리켰다.


“이거?”

“예. 상자만 잠깐 쓰고 다시 돌려놓겠습니다.”

“흠... 어디다 쓰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빈 상자를 줄 테니, 그건 거기 두쇼. 대신 다 쓰면 이 자리에 돌려놓게.”


이상한 사람은 적당히 상대해 주다 넘기는 편이 속 편했다.

남성이 보기에 이상한 복장을 한 사문이 그런 인간이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허...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온전히 여기다 돌려놓기나 하세요.”


빈 상자를 받아 든 사문은 미소를 지으며 가게의 건너편 사람들이 자주 지나가는 곳에 자리했다.


‘뭘 하려고?’

‘내가 어떻게 부자가 됐는지 잊었어?’

‘여기서도 그 짓을 하려고?’

‘옆에서 묘기 부리면서 호객행위 할 거 아니면 둘 다 조용히 해.’


사문은 그들의 입을 닫고는 품에서 꺼낸 부채로 상자를 ‘탁’ 치고는 쫙 펼쳤다.


“자! 요즘 고민이 깊다! 아니면 애인과 잘 이뤄지는 지, 아이가 언제 들어서는 지, 궁금한 게 많다! 혹은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자, 이런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책을 내줍니다! 그것도 단돈... 원? 달러? 동전 하나? 아니지... 얼마를 낼지는 당신의 자유! 만족스러운 만큼 돈을 내시면 뭐든 들어드립니다!”


생소한 의상과 화려한 부채에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길을 보내던 이들.

그들의 눈빛이 미친놈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변했다.


‘어우, 쪽팔려.’

‘꼭 이 방법밖에 없는 거야?’


품속의 두 뱀은 차마 볼 수 없는 걸 봤다는 듯이 사문의 내면에서 눈을 감아버렸다.


“거기 아가씨.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지? 어떻게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고 말이지.”


사문에게 관심을 끄고 돌아가려던 여인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휙 돌려 그를 바라봤다.


“어디 보자... 붙어있는 시간이 꽤 길구먼. 같이 일이라도 하는 모양이야.”

“그, 그걸 어떻게.”


여인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사문에게 다가왔고 사람들은 그 광경을 신기하단 듯이 바라봤다.


“얼굴에 다 쓰여 있구먼.”

“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문은 첫 손님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남자가 몇 살인지, 아가씨는 몇 살인지, 한 번 말해봐.”

“저는 21살이고 그는 32살이에요.”

“나이 차이가 좀 나는구나. 인연에 관해선 남자의 얼굴도 봐야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긴 하지만 대충 보이네. 꽤 좋은 몸을 가지고 있구먼.”


사문은 여인의 얼굴이 뚫어져라 바라봤다.

눈동자에 비친 한 남성.

건장한 몸에 뭔가를 주무르고 있었다.


“반죽인가? 그렇구나. 빵집을 하는구나!”

“예, 맞아요!”

“오...”


주변에서 대화를 듣던 이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보자보자... 에이!”

“왜 그러세요?”

“너무 쉬운 일이네.”

“예?”

“남자도 너한테 마음이 있지만, 염치 때문에 먼저 못 다가서는 거야. 젊고 예쁜 너와 달리 자긴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하거든.”


여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저, 정말이에요?”

“그럼. 정말 남자에게 마음이 있으면 술 한잔하자고 먼저 꺼내봐. 술기운을 빌려서 네가 듣고 싶어 하던 말을 할 거야.”

“감사합니다!”

“그렇게 고마우면 조금만 내놓고 가.”

“아, 네!”


여인은 주머니에서 동화 10개를 꺼내 옆에 두고는 황급히 달려갔다.


“마음 급하긴.”


사문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와... 방금 짠 건 아니겠지?”

“그 빵집 아가씨가 주인장을 좋아할 줄은...”

“그런데 저 아가씨가 사장이랑 잘 되면 손님이 줄어드는 거 아냐?”

“나부터도...”


사람들의 시선이 한 남성에게 향했다.


“넌 글렀어. 안 될 인연이야.”


사문은 부채로 그를 가리키며 쐐기를 박았다.


“그, 그럼. 제 인연은 어디 있을까요?”


그렇게 새로운 손님이 사문의 앞에 자리했다.


***


‘돈 버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그러니까.’


상자를 빌려줬던 식당.

한 테이블에 앉아, 수프를 떠먹는 사문의 내면에서 두 뱀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화를 나눴다.


‘나 이래 봬도 용하디용하다고 소문난 사문 도령이야. 알잖아. 나한테 점 보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는지.’


800년 넘게 살아오며 많은 사람을 봤고 과거,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업경을 깨며 파편이 눈에 박힌 탓인지, 대충 그 사람의 삶과 이후에 벌어질 일이 조금은 보였다.

그걸 바탕으로 듣고 싶은 말을 해주거나, 안 되는 걸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면 들어오는 게 돈이었다.


“하, 상자를 빌려 가서 이상한 짓을 하더니, 이렇게 빨리 돈을 벌어올 줄은 정말 몰랐네.”


식당의 주인이 사문에게 다가왔다.


“미천한 재주일 뿐이죠. 그보다 아내 분의 요리 솜씨가 훌륭하시네요.”

“그거까지 아는 건가?”

“뭐, 보이니까. 아는 거죠.”

“그럼, 우리 식당이 더 잘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는가? 보답으로 내가 서비스로 술은 마음껏 먹게 해줄게.”

“오...”


본래 세계에서 먹던 술과 비교해 여러모로 부족한 술이었지만, 어쨌든 알콜이기에 만족스러운 제안이었다.


“보자보자, 어디 보자...”


손님이 없는 건 아녔지만, 모든 테이블이 찰 만큼 많은 건 아녔다.

주인장의 얼굴을 보니, 돈복이 없지는 않았다.


“짐승의 피가 있나요?”

“돼지 피라면 있다네.”

“좋네요. 돼지 피랑 종이 좀 가져오실래요.”


주인장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주방으로 향해 피와 종이를 가져왔다.


“이 가게를 차리기 전에 있던 건물이 불에 탔었죠?”

“그걸 어떻게. 이전에 대장간이 불탄 자리였지.”


손가락 끝에 피를 묻히고 부적을 그리는 사문의 말에 주인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불이 난 적이 있던 자리는 보통 좋지 않은 기운이 흐르죠. 위치는 나쁘지 않은데 기운이 나빠서 기가 약한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겁니다.”


사문은 말과 함께 부적을 다 그리고는 주인장에게 건네줬다.


“이걸 문 안쪽에 붙여놓으면 그래도 기운이 많이 잡힐 겁니다.”

“아, 고맙네.”


받긴 했으나, 의심이 담긴 눈빛.

얼마 안 가 바뀔 눈빛이기에 그다지 신경 쓰진 않았다.


“그런데 제가 임시 출입증으로 들어왔는데, 신분을 증명받으려면 어디로 가는 게 좋나요? 이왕이면 여기저기서 다 쓰일 수 있는 거면 좋겠는데.”

“흠... 상인이 되거나, 모험가가 되지 않는 이상, 이 나라 말고는 다른 곳에 사용하기 까다로울걸? 복색을 보아하니, 이 주변 나라에서 온 거 같진 않은데, 어쩌다 여기까지 와가지고.”

“뭐, 먼 곳에서 오긴 했죠. 그런데 둘 다 받기 쉽나요?”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이기에 최대한 쉬운 방법이 필요했다.

주인장은 사문의 앞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상인 협회에 등록하려면 취급하는 상품이 있어야 하지. 보아하니 상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약은 잘 팔지. 아! 아!’


강철이의 말에 순간 사문은 왼팔을 여러 차례 두드렸다.


“모험가는... 자네 싸움 좀 하는가? 아니지, 외지에서 홀로 온 거 같은데, 싸움은 당연히 할 줄 알겠군.”


안전하게 이동할 수도 있지만, 처음 보는 복색인 만큼 먼 곳에서 왔다고 생각하면 싸움은 당연할 수 있었다.


“모험가라... 그쪽이 괜찮겠네요. 그럼, 싸움만 할 줄 알면 되는 겁니까?”

“몇 가지 테스트를 치른다고 들었지.”

“그렇군요. 그럼, 어디로 가야 하죠?”

“도시의 중심지에 가면 모험가 협회라고 적힌 건물이 하나 있을 걸세, 그곳에서 신청하면 될 거라네.”

“감사합니다.”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 잠을 청할 곳이 필요하겠지.”

“아.”

“돈도 좀 번 거 같은데,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는 게 어떤가?”


주인장은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가리킨 뒤, 손가락 5개를 펴 보였다.


“나쁘진 않겠네요.”


사문은 동화 5개를 그에게 건네줬다.

그러자, 그는 다시 1개를 펼쳐 보였다.


“에?”

“아침 식사비용이지.”

“아침은 거르는 편이라...”

“에이, 테스트를 받기 전에 든든히 속을 채우는 편이 좋지 않겠어?”


사문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동화를 한 개 더 건넸다.


***


“젠장. 그 인간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어떻게 흔적도 안 남기고 그렇게 사라지냐고.”


숲과 가장 가까운 인간의 마을에 도착한 엘프 레이라이는 억지 미소를 지어가며 인간들에게 사문에 관해 묻고 다녔다.

워낙 그의 복색이 특이하기에 한 번 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기억할 만한 인상을 줬을 테지만, 마을의 그 누구도 사문에 대해 알지 못했다.


“여기가 아니라면 둘 중 하나라는 건데... 설마 그 냄새나는 것들의 땅에 간 건 아니겠지.”


가까운 인간의 마을이나 도시는 두 곳이었다.

그 외에 가까운 곳이라면 수인들의 나라였다.


“왜 하필 나야... 나 말고도 많은데...”


현재 엘프의 나라는 두 계파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다른 종족과의 교류를 원하는 온건파였고 다른 하나는 타종족과의 교류를 거부하는 강경파였다.

레이라이는 대표적인 강경파 엘프였다.


“일단 그곳으로 가보는 수밖에.”


레이라이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옮긴 방향은 인간이 적은 방향인 마을 쪽이었다.

바람은 그녀와 반대 방향으로 불어왔다.


***


“운세가 나쁘구먼.”


식당의 이 층에 위치한 작은 숙소, 사문은 창문을 열고 담배를 문 채, 하늘을 수놓은 별을 바라봤다.


“왜?”


이시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긴 시간 함께 했음에도 사문과 달리 그의 눈에는 평범한 밤하늘의 별이었다.


“저쪽 하늘, 별 중, 가운데에 있는 별은 곧 빛을 잃을 거야.”

“대신 다른 밝은 별들이 주변에 많잖아.”

“그게 문제지, 자격 없는 별들이 중심을 잡아야 하는 별을 위협하잖아. 그리고 저건 흉성이야. 결국 다른 별들도 저 별에 잡아먹힐 거야.”


강철이의 말에 사문은 짙은 연기를 내뿜으며 답했다.


“그럼, 어느 별이 자격이 있어 보이는데?”

“저거.”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는 흉성의 옆, 미약한 빛의 별을 가리켰다.


“어디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딱히 있어서 좋을 일은 아니지.”

“가보려고?”

“저쪽에 길 잃은 별이 하나 있긴 하지만, 이쪽이 더 큰 일인 거 같으니, 막을 수밖에.”

“오지랖은...”

“세계수가 그랬잖아. 그날이 오기 전까지 최대한 피를 줄여야 한다고.”


모험가 신분을 얻은 그가 향할 다음 목적지는 그렇게 별이 점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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