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속 도사, 판타지 세계의 인과 연을 맺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실웨
작품등록일 :
2024.08.16 16:11
최근연재일 :
2024.09.10 13:05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908
추천수 :
45
글자수 :
135,233

작성
24.09.04 14:05
조회
27
추천
2
글자
12쪽

흑갑(4)

DUMMY

“벨티드가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군.”

“훗날 그 어떤 것보다 맹렬하게 태우기 위해 감춰둔 분노입니다. 참아왔던 만큼 강렬하게 터질 것이죠.”


수많은 관중 사이, 가룸과 사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날 벨티드가 무슨 일을 꾸미고 또 무슨 일을 벌일지에 대해서 들은 가룸은 무투장에 선 그를 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도 그와 같은 녀석들이 많다네. 뿌리 뽑히지 않을 분노이지.”


노예였으나, 다양한 이유로 노예 신분을 벗어나, 네치아로 온 수인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안타깝긴 하지만, 분노란 불꽃이 주변까지 번진다면 마냥 동정할 순 없죠.”

“오스트가 이룬 업적 중에 수인들이 가장 칭송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뭘 했는지는 봤지만, 뭐가 칭송받았는지는 모르겠네요.”

“노예로 붙잡혔거나, 태어난 동족들을 사 온 것이라네. 바로 이것으로.”


가룸은 오스트가 만든 술 맥브루어를 들어 보였다.


“처음에는 모두가 쓸모없는 짓을 한다고 손가락질했었지.”


왕이 술을 만든다.

그것도 모자라 그 술로 번 돈을 가지고 노예로 거래되는 동족들을 데려온다.

모두가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여겼었다.


“그러나, 정말 이 술은 잘 팔리더군.”

“확실히 나쁘진 않은 맛이죠.”


최고의 맛은 아녔으나, 대중적인 맛과 싼값 덕에 가장 잘 팔리는 술이었다.


“왕이 누구든 언제나 노예제에 대한 말은 나왔었고 대부분이 자신의 대에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거나, 전쟁을 해결책이라고 내놨었지. 오스트처럼 무력 없이 해결하려던 이는 없었다네.”

“그렇지만 그도 근본적으로 해결하진 못했었죠.”


노예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노예로 붙잡히는 종족의 나라에서 아무리 노예제 폐지를 외쳐도 강대국이 직접 움직이지 않는 이상 사라질 수 없었다.


“그렇지만, 왕의 지지가 올라가며 수인들의 단결력이 올라갔었지. 그걸 생각하면 벨티드의 방식은 나처럼 구식이었단 생각이 든다네.”

“구식이라고 꼭 나쁜 건 아니죠. 옛것이 좋을 때도 있고 새로운 게 좋을 때도 있죠. 상황이 중요한 겁니다.”

“하... 그렇군.”


환란이 들이닥친다면 모든 게 무의미할 것이었다.


‘새파랗게 어린 게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네.’

‘맞아. 주인보다 낡은 건 여기에 아무도 없는데.’

‘시끄러워.’


두 뱀의 목소리에 사문은 고개를 저었다.


“온고지신.”

“그게 뭔가?”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것을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제 고향에서 쓰던 말이죠.”

“알겠네. 하여간 자네는 돌려 말하기를 너무 좋아하는군.”


스스로를 옛것으로 여긴다면 새것인 포테이의 토대가 되어달라.

사문의 말 속 의미를 깨달은 가룸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제 시작하는군요.”

“그렇군.”


무투장의 중앙, 자세를 취한 포테이와 아무런 태세도 취하지 않은 벨티드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먼저 움직인 건 포테이였다.

포테이는 땅을 박차고 나아가며 정권을 내질렀다.


후웅!

바람을 쳐서 날리는 듯한, 권격.

직격하면 꽤 위험한 공격이었으나, 벨티드는 지금까지 치러온 무투들과 같이 공격을 가볍게 피해냈다.

이어진 발차기 또한 벨티드는 가볍게 피해냈으나, 반격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결승마저도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싶나 보군.”

“예. 하지만 슬슬 알아채겠죠.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는 걸.”


포테이는 빠른 발을 이용해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며 공격을 이어갔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모든 공격을 보고 피하던 벨티드도 점점 그의 속도를 쫓을 수 없는지, 조금씩, 피하는 속도가 늦어져 갔다.


“아무리 짧은 앞을 볼 수 있다 하더라도 몸이 따라줘야 대응할 수 있는 법이지, 당장의 공격을 피하는 것에만 급급하면 다음 공격을 피할 틈이 없지.”

“무슨 말인가?”

“저 갑옷은 아무래도 짧은 앞을 보여주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눈으로 쫒으려는 걸 보면 범위는 주시한 상대에 한정되는 거 같네요.”

“허... 저 갑옷, 심상치 않아 보이더니, 역시 렐릭이었나 보군.”

“렐릭 말입니까?”

“그렇다네. 고대부터 내려온 것들로 하나하나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지. 인간들은 고대에 악마가 남긴 것이냐, 천사가 남긴 것인가로 신성한 것과 악한 것으로 구분하지만, 우린 그저 렐릭이라고 부른다네. 어차피 특별한 힘을 주는 거 딱히 구분 지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인간과 수인의 차이는 종교였다.

수인은 딱히 숭배하는 신이 없었다.

굳이 찾는다면 조상신 정도였다.

그러나 인간들은 특정 종교를 믿었고 그것을 기준으로 선과 악을 구분했었다.

그리고 수인이 보기에 고대 이후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은 악마보다 인간이 더 악했다.


“저 갑옷은 악마의 기운을 풍기니 악한 렐릭이겠네요.”

“악마의 기운이라. 자네는 악마를 본 것처럼 말하는군.”

“얼마 전에 만났습니다.”

“허... 그렇군.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은 저곳에 집중해야겠네. 끝나면 들려주게나.”

“술 한 잔이면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러겠네.”


그들은 대화를 마치고 다시 무투에 집중했다.


벨티드는 어느새 피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방어를 하며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빠른 포테이의 움직임은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으... 이 날파리 같은 자식이!”


결국 참을 대로 참아온 벨티드는 침착해 보이려던 속셈을 집어치우고 고함을 지르며 기운을 내뿜었다.


“흡!”


포테이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기운에 휘말리는 것을 피해냈다.


“눈에서 피가...!”


이마에 핏대가 솟고 눈에선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한 벨티드.

그에게 집중하는 순간, 날카로운 창끝이 포테이에게 향했다.

포테이는 창을 피하고자 몸을 틀었으나, 이미 그걸 봤던 벨티드의 창은 뱀처럼 움직이며 그를 쫓았다.


미래를 봤음에도 완전히 쫓지 못한 창은 다행히 포테이의 뺨을 스쳐 갔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거리를 벌리려고 하면 틀어막는군. 뒤도 어렵겠어.”


위나 좌우로 피할 수는 없었다.

뒤로 크게 물러나는 방법이 있었으나, 오히려 그건 함정일 수 있었다.


“속도를 쫓을 수 없으니, 창을 던지든가 할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리 말하는 사문도 창을 피하는 포테이도 얼굴에서 불안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은 포테이는 그대로 뒤로 몸을 던졌다.

그러자, 사문과 가룸의 예상처럼 벨티드는 창을 던졌다.


기울인 몸을 바로잡으며 땅을 박차는 뒷발.

파진권을 펼치는 것에 굳이 앞발만 내디뎌야 하는 건 아녔다.

땅의 기운과 자신이 지닌 마력의 충돌에 의한 반발력만 얻을 수 있다면 그 어떤 동작이든 상관없었다.


뒷발로 땅을 디딤에 따라 움푹 들어간 땅.

손을 뗀 활시위처럼 탄력 있게 앞으로 쏠리는 몸.

내딛는 주먹.


주먹과 부딪힌 창은 벨티드의 마력 탓에 부러지거나, 휘진 않았지만, 힘을 잃으며 공중으로 튕겨 나갔다.


창을 던진 것 정도로 끝날 리가 없다는 걸 알았던 벨티드는 이미 포테이를 향해 뿔을 들이밀고 달려오고 있었다.


“땅을 부숴라. 그럼에도 땅은 네게 나아갈 힘을 줄 것이다. 하늘을 달려라. 하늘은 언제나 네가 나아갈 길을 열어줄 것이다.”

“자네 무슨 말을.”


영문 모를 소리에 의문을 가진 것도 잠시, 가룸은 곧 이어진 포테이의 동작을 보며 깨달았다.


콰득...쾅!

땅을 부수는 포테이의 진각.

주변 땅이 솟아오르며 벨티드의 돌진을 막아냈으나, 산산조각 날 뿐이었다.


“무슨 짓을 벌이던...”


눈앞에 포테이가 없었다.

잠시, 솟아오른 땅에 시야가 가려진 사이, 포테이는 그의 시야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기척을 느끼고 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포테이는 또다시 그곳에 없었다.

다만, 솟아오른 땅에 깊게 파인 발자국만 남아있었다.


슉! 슉! 슉!

그나마 멀리서 보는 관중들 눈에 솟아오른 땅을 계속해서 박차며 이동하는 포테이의 잔상만 보일 뿐이었다.


콰앙!


“크억!”


순간, 벨티드의 등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발생했다.

벨티드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으나, 그곳엔 이미 아무도 없었다.


“방금 그건...”

“예. 발로 차고 그 반동으로 다시 거리를 벌린 겁니다.”


점점 가속한 탓에 가룸도 그가 정확히 어떻게 공격했는지, 알지 못했다.


쿵! 쿵! 쿵!

그 후로도 계속된 공격이 그에게 몰아쳤다.


“으아아아!”


갑옷 탓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궁지에 몰린 것은 분명했다.

벨티드는 자신을 몰아넣은 주변의 바위벽을 마구 부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밟을 곳은...!”


끝내 포테이를 찾았지만, 찰나였던 순간, 바라본 미래.

포테이는 공중에 흩날리는 파편을 밟았었고 곧 그의 주먹이 몸에 닿았다.

알고 있음에도 피할 수 없는 속도.

벨티드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방어 태세를 갖췄다.


“내 갑옷을 너 따위가 뚫을 수!”


툭... 퍼엉!

갑옷 안에서 몸이... 아니, 보다 안쪽에서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타격 자체는 앞선 발보다 약했다.

그러나 내장이 터져나가는 고통이 그를 뒤덮었다.


“끄아아아!”

“익히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더 이상 밟을 파편마저 사라져, 멈춘 포테이는 피를 토하며 무릎 꿇은 벨티드를 바라본 후, 자신의 주먹을 감싼 붉은 붕대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된 일인가!”

“침투경입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적의 내부에 마력을 흘려보내 터뜨리는 기술이죠.”

“그런 기술이...”

“한 번 보여주고 간단히 설명한 게 다였는데, 용케 따라 했네요.”


그가 공략법으로 침투경을 선택할 줄 알았고 결국 성공해 낼 것 또한 알았다.

그러나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칭찬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만큼 노력했기에 성공한 만큼 사문은 그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재능빨이지.’

‘노력만 가지고 될 거 같았으면.’

‘분위기 깨지마.’


사문과 달리 두 뱀은 노력을 인정하지만, 재능을 더 크게 평가했다.


“단 한 방으로 저 거구를 저리 만든다니.”

“기문혈을 노렸습니다. 간에 영향을 미치고 실제로도 간과 가까운 만큼 그곳에서 일어난 충격은 상당할 겁니다.”

“간이 그의 약점이었군.”

“뭐... 그렇긴 하죠.”


굳이 간이 약한 게 아니더라도 리버블로우는 치명적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그보다 이제 왕은 포테이로... 모두 피하거라!”


무투장의 중앙을 바라보던 가룸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관중들을 향해 소리쳤다.


“끄아아아아아!”

“베, 벨티드 님!”


거대한 비명과 함께 검고 푸른 기운을 마구 내뿜는 벨티드.

갑옷에서 나온 검은 기운이 벨티드의 푸른 마력을 검게 물들여갔고 그의 눈은 붉게 물들었다.

포테이는 그에게 다가서려 했지만, 기운에 밀려나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꺄아아아!”

“도, 도망쳐!”


콰드득! 콰득!

터져 나온 기운이 주변 일대를 파괴하며 관중석까지 영향을 미쳤다.


“갑옷에 잡아먹혔군. 의지를 잃은 자를 집어삼키는 게 리스크였던 건가.”


그런 리스크를 가진 갑옷의 잘못이 아녔다.

사악한 힘이 깃든 요검도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난다면 훌륭한 명검이 된다.

도구는 도구일 뿐이었다.

어떤 힘이 깃들었든 자신의 의지대로 다룰 수만 있으면 그게 뭐든 쓸만한 도구인 것이었다.

그저 분에 넘치는 도구를 얻고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자의 최후일 뿐이었다.


사문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투장의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탈속 도사, 판타지 세계의 인과 연을 맺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 및 복귀 알림 24.09.10 8 0 -
25 카리브디스(3) 24.09.10 12 1 12쪽
24 카리브디스(2) 24.09.09 15 1 12쪽
23 카리브디스(1) 24.09.08 18 1 12쪽
22 여제(2) 24.09.07 19 1 12쪽
21 여제(1) 24.09.06 22 1 12쪽
20 흑갑(5) 24.09.05 25 1 12쪽
» 흑갑(4) 24.09.04 28 2 12쪽
18 흑갑(3) 24.09.03 31 2 13쪽
17 흑갑(2) 24.09.02 30 2 12쪽
16 흑갑(1) 24.08.31 26 2 12쪽
15 왕이 될 상(6) 24.08.30 26 2 12쪽
14 왕이 될 상(5) 24.08.29 27 2 12쪽
13 왕이 될 상(4) 24.08.28 29 1 12쪽
12 왕이 될 상(3) 24.08.27 31 2 12쪽
11 왕이 될 상(2) 24.08.26 33 2 12쪽
10 왕이 될 상(1) 24.08.25 37 2 12쪽
9 인신공양(4) 24.08.24 35 2 12쪽
8 인신공양(3) 24.08.23 40 2 13쪽
7 인신공양(2) 24.08.22 47 2 12쪽
6 인신공양(1) 24.08.21 44 3 12쪽
5 B급 모험가(2) 24.08.20 51 2 12쪽
4 B급 모험가(1) 24.08.19 47 2 12쪽
3 사문 도령(3) 24.08.18 51 2 12쪽
2 사문 도령(2) 24.08.17 67 2 12쪽
1 사문 도령(1) 24.08.16 118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