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속 도사, 판타지 세계의 인과 연을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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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웨
작품등록일 :
2024.08.16 16:11
최근연재일 :
2024.09.10 13:05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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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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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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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사문 도령(2)

DUMMY

“저건 고블린이겠지?”

-그래 보이네.

-아니, 게임에서보다 더 징그럽네.


숲을 벗어나자, 엘프들은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여유를 되찾은 그들 앞에 또 다른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키에 흉측하고 못생긴 녹색의 난쟁이, 고블린이었다.


“말은... 안 통하겠네.”


고블린은 침을 흘리며 사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볼 때, 이 세계에 있던 사람 중, 누군가가 우리 쪽에 넘어왔던 게 확실해.”


엘프의 묘사도 알려진 것과 매우 유사했고 고블린 또한 더 징그러워 보였을 뿐, 대체로 일치했다.


-많이 굶주렸나 보네.

“아무래도 그렇겠지.”


각각 붉은 실과 푸른 실이 묶인 두 검을 뽑으며 주변을 살폈다.

바로 뒤로 보이는 숲과 달리 눈앞에는 넓은 황야가 펼쳐져 있었다.

숲으로 향해서 사냥하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그곳은 엘프의 영역이었다.

고슴도치가 될 게 뻔했다.


“요괴 퇴치는 오랜만이네.”

-이쪽에선 요괴보단 몬스터? 마물? 그편이 어울리겠네.

-온다.


끼익 끼익!

경계하던 고블린이 마음을 먹었는지,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사문은 붉은 실이 묶인 검, 홍실을 앞으로 향해 뻗었다.


“동료를 부른 건가.”


고블린이 질렀던 소리는 사문의 말처럼 동료를 부르는 울음소리였다.

멀리서 다가오는 한 무리의 기운이 느껴졌다.


“뭐 그리 좋은 곳을 간다고 친구들까지 부르는지.”


사문은 단검을 들고 뛰어오른 고블린을 향해 한 발 내디디며 홍실을 휘둘렀다.

홍실을 따라 그어진 붉은 선에 불꽃이 피어났다.

피조차 태워버리는 불꽃이 그대로 고블린을 집어삼켰다.


“방법만 찾으면 힘을 되찾는 데 오래 걸리진 않겠네.”


사문이 사용하는 기운은 인간이 타고난 기운을 갈고닦아 키운 도력이었다.

과거 높은 경지에 닿으며 자연 속에 존재하는 자연지기를 온전히 다루는 수준까지 달했었으나, 천상과 지옥의 문을 닫기 위해 그간 이뤘던 경지들을 모조리 잃었었다.


힘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그 큰 힘 탓에 막았던 문이 다시 열리기에 그는 잃었던 힘을 되찾지 않고 낮아진 수준에 머물며 속세에 살았었다.


이 세계 또한 자신의 세계를 이루는 신단수와 관련이 있는 세계수 때문인지, 자연지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것도 본래 그가 살던 세계보다 더 많고 다양한 힘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서는 마력이라 부르려나?

“너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냐?”

-재밌잖아. 우리랑 다르면서도 비슷한 녀석들이 나오고.

-책보단 게임이 재밌지. 어쨌든, 이곳의 자연지기가 충만한 만큼 더 높은 경지를 노릴 수도 있겠어.


도력은 인간이 타고난 기운을 갈고 닦은 것이지만, 인간이 타고난 기운은 조금의 차이가 있을 뿐,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자연지기를 도력으로 전환하며 흡수하는 방식으로 지닌 양을 늘렸고 그런 이들을 도사라 불렀었다.

즉, 순수했던 자연지기가 인간에 의해 탁해진 것이 도력이었다.


“또 갈고 닦아야겠네.”


자연지기를 다루기 위해선 탁한 자신을 자연의 수준까지 버려야 했다.

두 문을 닫는 과정에 쌓인 탁기이기에 쉽게 버릴 수는 없었지만, 씻어낼 자연지기가 넘쳐나는 만큼, 한 번 걸었던 길인만큼, 걱정은 없었다.


-주인, 우리도 간만에 몸 좀 풀어보자.

-맞아. 여기서는 상관없잖아.

“핑키도 없으니, 저걸로 배라도 채워라.”

-오케이.

-맛이 있으려나.


사문의 옷소매에서 나온 두 뱀이 점점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검붉은 비늘을 날카롭게 세우고 매서운 눈을 가진 뱀과 맑은 푸른빛의 비늘을 가지고 소름 끼치게 아름다운 뱀의 모습이었다.


사람보다 더 거대해진 둘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고블린 무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300년 만에 날뛰어서 그런가? 신났네.”


300년 전, 이면 세계에서 도망쳐 속세에 숨어들었던 요호 이후로 오랜만에 즐기는 사냥이었다.


“저리 좋으면 그때 용문에 오를 것이지, 어찌 속세에 남아가지고...”


붉은 뱀과 푸른 뱀은 이무기였다.

죄를 지어 용이 되지 못하고 타락했던 그들이었지만, 사문을 만나고 함께 사건들을 해결하며 죄를 씻어냈고 용이 될 기회를 되찾았었다.

하지만 그건 사문과의 이별을 뜻했다.

긴 시간 죽지도 못하고 속세에 홀로 남을 사문을 두고 떠날 수 없던 그들은 끝내, 등용문을 포기했었다.


“강철이는 몰라도 이시미는 좋은 용이 됐을 거 같은데.”


붉은 뱀의 이름은 강철이, 푸른 뱀의 이름은 이시미였다.


“다 들려, 주인 놈아!”


입에 불을 머금고 고블린을 문 강철이는 그것을 뱉어내며 소리쳤다.


“하여간 귀는 밝아서.”


칼날 같은 얼음을 몸에 두른 이시미는 만족스럽단 표정을 지으며 고블린들을 베며 휘저었다.


“내 것 남겨놔! 나도 오랜만에 칼춤 좀 춰보자!”


사문은 홍실과 청실을 들고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키륵...”


청실에 의해 뚫린 가슴으로 얼음 연꽃이 피어나며 마지막 남은 고블린이 눈을 감았다.

사문은 검에 꽂힌 고블린을 강철이 입으로 던져 넣었다.

강철이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통째로 삼켰다.


“으... 냄새는 나는데, 꾸리꾸리한게 뭔가 자꾸 땡기네.”

“거의 청국장이야.”


두 뱀이 모조리 삼킨 탓에 고블린의 흔적은 찾아 볼 수도 없었다.


“바람이... 저쪽인가.”


바람이 불어왔다.

기분 좋은 상쾌한 바람이.

바람을 따라가다 보면 좋은 인연을 만날 것만 같았다.


별을 보거나, 바람을 따라가거나.

사문이 가는 길은 언제나 하늘이 알려준 길이었다.


“어떨 때 보면 신선보다 더 신선인 거 같아.”

“아무래도 자연지기를 온전히 몸에 받아들였던 거 때문이겠지.”


인간이 아닌, 자연에 가까웠던 만큼 다른 이들과 감각이 조금 달랐었다.


“이시미, 날 태워서 저쪽으로 가줘.”

“난?”

“날씨가 덥잖아. 넌 들어와.”


강철이의 몸은 따뜻했다.

반면 이시미의 몸은 얼음을 다루는 만큼 시원했다.

추운 날씨라면 모를까, 더운 황야에선 이시미의 등에 올라타는 편이 훨씬 상쾌했다.


“치.”


강철이가 작아지며 사문의 소매로 들어가자, 이시미의 등에 올라타고 가부좌를 틀었다.


도력을 쌓기 위한 건 아녔다.

자연지기를 몸에 받아들이고 다시 내보내며 더러운 것을 털어내기 위함이었다.


“그럼, 출발한다.”

“안전 운행 부탁한다.”


이시미가 고개를 끄덕이고 출발하자, 흐르는 기운에 집중했다.


‘자연지기와 완전히 동일하진 않구나.’


도사들은 자연지기를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했다.

본질을 뜻하는 음양과 변화를 뜻하는 오행으로 설명하는 음양오행 사상.

무극이라는 본질로 시작해 음양을 뜻하는 이극으로 나뉘고 음과 양이 겹쳐 네 가지의 형상인 사상이 되고 그것에서 자연의 기본 구성인 팔괘가 태어난다는 팔괘 사상.

이 두 가지가 자연을 이해하는 주 방식이었다.


사문은 그중에서도 팔괘를 통해 자연지기를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며 더 나아가 64괘를 펼쳤었다.

물론 경지를 잃은 탓에 지금은 64괘가 아닌, 강철이와 이시미가 깃든 덕에 얻은 열기와 한기를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완전히 자연지기와 같다고 할 수는 없겠네. 이시미 말처럼 마력이라 구분 짓는 편이 좋겠어.’


이곳의 자연지기, 마력은 오행이나 팔괘로 나누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물과 땅, 산의 기운과 유사하지만, 처음 느껴보는 단단하고 투명한 기운부터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늪과 비슷하지만, 치명적인 기운 또한 느껴졌다.


‘그런 기운은 극소량이고 크게는 네 개의 기운이네. 땅? 아니 그보다는 가볍지만, 원한다면 무거워질 수 있는 기운이니, 흙이라 하는 편이 좋겠고. 이건 하늘은 아니고 바람인가... 불과 물은 똑같이 존재하네.’


흙, 바람, 불, 물.

세계수의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마력이었다.


‘버릴 건 버리고 건질 건 건져야겠지.’


과유불급.

팔괘를 겹친 64괘만으로도 충분한 힘이었다.

더 욕심을 내봤자, 시간만 더 걸리고 새로이 얻은 힘을 잘 활용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느끼기에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면 특정 속성은 다룰 수도 없을 거 같았다.


‘흙의 기운은 더욱 뭉쳐 단단히 만들되, 속을 비워 만물을 받아들일 땅의 기운으로 만들고 바람의 기운은 더 역동적이되 가볍지만은 않게 만들어 하늘의 기운으로 전환하면 되겠지.’


컨버전, 특정 속성을 마스터한 마도사가 마력 운용 시 더 많은 양을 사용하기 위해서나 하던 짓을 자연스럽게 구상한 사문이었다.

그는 그 외에도 다양한 속성을 구분하고 변화를 주어 자신이 다루던 팔괘를 찾아갔다.


이후 모든 기운을 찾아내거나 전환할 방법을 찾아낸 그는 몸에 모든 기운을 통과시키며 과, 옥당, 백회에 쌓인 탁기를 씻어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시작했는지 가볍네.’


이시미는 등에 탄 사문의 몸이 바람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


“여, 여왕님 어째서... 그 더러운 인간 놈이 세계수 님에게 몸을 비볐단 말입니다!”


포박된 채, 억울하단 듯이 호소하는 여인, 그녀는 사문에게 화살을 쐈던 엘프였다.

그저 대화하기 위해 귀를 가져다 댄 것일 뿐이었지만, 그녀의 기억 속에서 사문은 변태처럼 세계수에 몸을 비빈 남자였다.


“세계수 님이 직접 부르신 인간이란 말입니다!”

“세계수 님께서... 어째서 그분이 한낱 인간을... 그것도 그 괴상한 차림의 인간을...”


여왕은 사문처럼 세계수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세계수에 손상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황급히 세계수로 달려갔었고 그곳에서 사문이 세계수에게 초청을 받은 인간이란 사실을 듣게 되었었다.


“알려주실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은 확실히 말하셨습니다. 그 인간을 적대하지 말라. 그는 우리의 친구이며...”


구원자가 될 것이다.

여왕은 함부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들었으나, 세계수가 주요 사항에 대해서는 입단속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눈과 귀는 곳곳에 존재한다.’


같은 엘프라도 모두 믿지 말라는 의미일 수도, 그들의 입에서 다른 곳으로 전해질 수도 있다는 뜻을 전달받았었다.


“레이라이 조장, 당장 그분을 쫓아가세요.”

“그 말은...”

“세계수 님이 부르신 분입니다. 거기다 친구라고 하셨죠. 가서 사과하고 그분의 힘이 되세요.”


포박된 엘프, 레이라이의 앞이 착잡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혹시라도 그에게 해를 입히는 순간, 영원히 추방할 것입니다.”

“며, 명을 받들... 겠습니다...”


인간 혐오자, 레이라이는 너무 싫다는 표정으로 명을 받아들였다.


포박에서 풀려난 그녀는 간단히 짐을 꾸리고 숲을 나섰다.

그녀가 향한 방향은 사문이 도망쳤던 방향이었으나, 의욕 없는 걸음도 느렸고 바람을 따라 길을 바꾼 사문이었기에 그녀와 마주할 날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다.

바람이나 별이 알려주지 않는 이상에야, 한참이나 걸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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