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속 도사, 판타지 세계의 인과 연을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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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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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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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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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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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갑(3)

DUMMY

‘아주 얼굴 뚫어지겠다.’

‘예의상 던진 말 아녔어? 진짜로 여기까지 약 받으러 온 거야?’


포테이의 집 앞.

무투에 패배한 가룸은 포테이가 말했던 대로 심장약을 받으러 왔고 그곳에서 사문과 만났다.

사문에게서 뭔가를 느낀 것인지, 가룸은 말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인간이 왜 이곳에 있는 거지? 그리고 저 꼴은...”


담배 태운 냄새 속에 가려져 있지만, 확실한 인간의 냄새.

수인들의 냄새와는 확연히 다른 그 냄새를 맡은 가룸은 사문의 정체에 대해 쉽게 눈치챘었다.


“아, 제 손님입니다.”

“자네 손님이라고 이곳에 출입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포테이는 황급히 답했으나, 가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문 도령이라 합니다.”

“사문 도령?”

“예. 보다시피 인간이죠. 제가 이곳에 있는 건 선왕인 오스트 또한 알고 있던 사실이니, 상관없을 겁니다.”


오스트가 출입을 허가해 준 것은 아녔으나, 사문은 변명으로 그의 이름을 둘러댔다.


“흠... 이 겁 많던 아이가 경계하지 않는 걸 보니, 내가 뭐라 할 수는 없겠군. 그보다 자네는 인간이 맞는가? 분명 인간의 냄새이긴 하지만 조금의 차이가 있다만.”


이곳의 존재가 아닌 것도 이유 중 하나였고 인간이지만, 분명 평범하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뭐, 일단은 인간입니다.”


사문이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자, 이마의 뿔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꽤 흥미로운 재주군. 자네가 포테이를 가르친 건가?”


포테이의 변화와 그의 집에서 거주하는 낯선 인간.

굳이 변화의 원인을 찾자면 사문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였다.


사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가르쳤더군.”

“저 녀석이 잘 배운 것이죠.”


사문은 부채를 꺼내 포테이가 단련하며 생겨난 흔적들을 가리켰다.

계속된 제자리 뛰기로 움푹 파인 땅, 주먹질에 의해 터져나간 나무 등, 곳곳에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흔적들로 가득했다.


“이렇게까지 한 목적이 뭔가? 인간인 자네가 굳이 수인들의 왕을 뽑는 무투제에 관여한 것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네만.”

“언젠가 스스로 길을 찾을 녀석이지만, 꽤 돌아가는 만큼 늦어지기에 조금 빠르게 올바른 길 위로 안내해 준 것일 뿐입니다.”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군. 내가 알고 싶은 건 자네가 왜 개입했는지 라네.”


약한 자들의 도태를 자연스럽게 여기긴 했지만, 분명 가룸도 수인족의 안위를 생각하는 자였다.

그렇기에 왕을 결정하는 무투제에 외부의 개입이 있다는 건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느 한 집단을 위해 개입한 게 아닙니다. 다가올 큰 흐름을 막기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할 뿐입니다.”

“나와 말장난을 하자는 건가?”


가룸은 이빨을 드러내며 사문을 노려봤다.

그가 보기에 사문은 너무나 말속에 많은 것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보단 보여주는 게 빠르겠지. 둘 다 나와.”

“왜?”

“하... 또 뭘 시키려고.”

“이, 이건...”


두 뱀이 사문의 팔에서 나오며 풍기는 새로운 냄새.

지금까지 나지 않던 냄새가 갑자기 풍겨오는 것에 가룸은 놀라며 두 뱀을 바라봤다.


“무영진을 펼치자.”

“눈을 피해야 하나 보네.”

“보여줘도 괜찮겠어?”

“입이 가벼운 둘은 아니니까.”

“그래. 알았어.”


강철이와 이시미는 몸을 더욱 작게 만들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사문의 양 손목에 팔찌처럼 채워졌다.


“음과 양이 태극을 이루고 본래의 모습으로 역행하라. 무극은 곧 시작이며 끝,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자신을 드러내리라.”


사문의 주문을 읊으며 청실과 홍실을 땅에 꽂자, 땅을 타고 뻗어나간 붉고 푸른 기운이 태극을 그리며 그들을 품었다.

이어 올라온 벽이 그들을 가두며 그 속에서 본래 모두가 있었을 무극을 드러냈다.


“이, 이건 도대체...”

“어, 어떻게...”


음양문진과 같이 무한해 보이는 공간.

무영진 또한 공간의 범위는 가늠할 수 없었다.


“아이고, 죽겠네.”


무영진을 펼친 사문은 마치 모든 기운을 쏟아냈다는 듯이 주저앉았고 그의 곁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여긴 대체 어디인가.”

“무영진. 말 그대로 그림자가 없는 곳이죠.”

“그게 무슨...”


무영진(無影陳 ). 그림자가 없는 곳으로 즉, 빛도 없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빛도 없다는 뜻입니다.”


사문은 담배를 물고 손끝으로 담배의 끝을 문질러 불을 붙였다.

이후 한 번 연기를 내뿜고 나서야, 가룸의 질문에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훤히 보이는 것을...”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곳. 이곳은 그런 곳이죠.”


사문은 가룸에게 다가갔다.

부딪힐 정도로 다가옴에 가룸은 뒤로 물러났으나, 사문은 여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부딪히는 순간, 그들은 몸은 서로를 통과시켰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허... 정말 뭐에 홀린 것만 같군.”


너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몸에 힘이 빠지기라도 한 듯이 가룸은 맥없는 표정을 지었다.


“저희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가 뭔가요?”


굳이 사문이 기력을 쏟아내며 이 결계를 펼친 이유에 대해 포테이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부터 들려줄... 아니, 보여줄 건 그 누구도 알아선 안 돼. 세계의 의지가 아는 순간, 그 결과는 운명으로 확정 지어질 테니까.”

“그게 무슨...”

“자네 말은 이곳이라면 세계가 모르게 뭔가를 전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문은 가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부채를 휘둘렀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기운이 사문의 의지에 본래 존재했던 것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부채에 의한 바람을 따라 펼쳐지는 여덟 가지의 빛을 지닌 기운이 세상에 뭔가를 그려나갔다.

이곳은 사문이 경지를 잃었음에도 본래의 경지를 펼칠 수 있으나, 그것 또한 실존하는 것이 아니기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실존하는 것처럼 뭔가를 보여주기엔 용이하기에 나름대로 쓸모 있는 결계였다.


“여긴...”

“조금 달라요.”


수인들의 나라 네치아.

여덟 색의 빛이 그려낸 것은 그들이 살아가는 네치아와 그곳을 살아가는 수인들이었으나, 몇몇 그들이 아는 것과 다른 모습도 일부 갖추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도 넘게 지난 후니까. 다를 수밖에.”

“그 말은 이곳이 미래의 네치아란 말인가?”

“예.”


어떻게 이런 일을 일으킬 수 있냐 보단 미래에 수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더욱 신경이 쓰인 둘은 주변 곳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미래에 자네가 왕이었군.”

“그렇네요.”

“저 동상은 왠지 새롭게 세운 거 같아 보이네.”


도시의 중심, 왕이 된 포테이의 동상.

그 뒤로 오스트의 동상이 서 있었다.


“저도 말로 듣긴 했지만, 본래 무투제의 우승은 벨티드였고 전 그다음에, 왕위에 올랐다고 했습니다.”

“그렇군... 그를 존경하는 만큼 다시 세운 것이었구나.”


포테이가 없었어도 우승하지 못했을 거란 사실에 조금 착잡한 듯이 동상을 바라봤다.


“그보다 좋은 곳이군.”

“그렇게 보이네요.”


수인들은 벨티드가 일으킨 전쟁으로 몸은 상처로 가득했다.

그러나 포테이가 벨티드를 쓰러뜨리고 왕위에 오른 후, 안정기에 들어갔는지,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지친 건 사실이지.”


사문의 말과 함께 먹구름이 몰려오고 땅을 울리는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

“저, 저건 먹구름이 아니라...”


새처럼 생겼으나, 몸 곳곳에 눈과 입을 가진 흉측한 존재들이 너무 많아 먹구름처럼 보인 것이었다.

이어 성벽을 타고 모습을 드러낸 존재들도 짐승의 형태를 지녔으나, 마찬가지로 몸 곳곳에 눈과 입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환란, 또 누군가는 신벌이라 부르죠. 이곳에서도 다양한 이름으로 그들을 부르지만, 결국 한 이의 영향력으로 환란이라 부릅니다.”


환란은 수인들을 게걸스럽게 마주하는 수인들을 잡아먹었다.

뛰어난 전투 민족인 수인들은 얼마 전까지 치르던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전열을 그들에게 맞섰으나, 압도적인 수와 이미 지쳐버린 몸 탓에 끝내 자신을, 동족을 지키지 못하며 쓰러졌다.


나이 든 포테이 또한 나서서 전투에 임했으나, 파괴하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몰려오는 환란들에게 둘러싸이며 죽음을 맞이했다.


“이게 정녕 우리의 미래란 말인가?”

“예. 이곳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겁니다.”

“자네는 이 모든 걸 어떻게 아는 건가?”

“세계수가 보여줬습니다.”


미래를 보는 능력을 지녔지만, 그건 개인이 이룰 수 있는, 닿을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을 보여주는 능력이었지, 세계가 어떻게 되는지, 상세하게 보여주는 능력은 아녔다.

신단수를 통해 사문을 부른 세계수가 보여 준 미래를 그들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허... 자네는 세계가 몰라야 한다며 결계를 펼치고 보여주는 것이지. 그렇다면...”

“세계수는 세계에 속한 거지, 세계는 아닙니다. 그녀 또한 세계가 모르게 일을 벌인 것이죠.”

“정말... 믿을 수가 없구나...”

“예...”


처참했다.

죽은 이들의 시체도 남지 않고 사라진 네치아.

그들이 나고 자란 그곳이 허무하리만치 쉽게 사라졌다.

충격이 쉽게 가실 리가 없었다.


“세계수가 절 불렀습니다. 이 사태를 막을 이들이 활약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 달라더군요.”

“그게 포테이란 말인가?”

“그건 아닙니다. 포테이는 세계수의 눈에 들 만큼 활약을 하지 못하고 죽지 않았습니까.”

“...”


사문과 만나 바뀐 자신의 미래는 아녔지만, 만나지 못했을 경우의 미래.

포테이는 자신이 아니지만, 자신이기에 할 말이 없었다.


“남은 시간 동안, 길 잃은 아이들에게 길을 찾아달라고도 부탁하더군요. 그게 멸망이란 운명의 방향을 틀 힘이 될 거라며 말이죠.”

“그 말은...”

“그래. 너도 내가 보기에 길 잃은 아이였으니, 뭐,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찾기는 하지만, 늦게 찾는 바보였으니까, 내가 나설 수밖에.”


세계수에게 받은 다른 부탁들.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결국에는 각지를 돌아다니며 영웅을 찾거나, 영웅을 키우란 것이었다.


“이런 미래... 정말 끔찍하시죠?”

“몰라서 묻는 건가?”

“그럼, 조금 도와주시죠. 본래 오스트에게 부탁하고 싶었지만, 하늘의 뜻을 거스를 생각도 없고 남은 이들을 굳게 믿었으니. 그쪽한테 부탁할 수밖에 없네요.”

“그런가...”

“오스트가 믿은 이는 포테이 뿐만이 아닙니다. 그쪽을 포함한 모든 수인이 오스트가 믿은 미래입니다. 결국에는 올바른 길을 걸을.”


가룸은 생각에 잠겼다.

오스트를 존중했으나, 그와는 방향성이 달랐기에 지지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자신이 왕이었다면 나타나지 않았을 포테이 같은 수인.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한 그가 자신도 믿는다는 생각에 조금은 생각이 많아졌다.


‘오스트가 정말 저 녀석을 믿었어?’

‘몰라. 수인의 미래를 믿고 짐을 덜어냈으니, 모두를 믿기로 했겠지.’

‘추측이네.’


가룸을 믿는다는 말은 없었다.


“내가 뭘 도와줘야 하는가?”

“강한 수인족이 꿈이시죠. 그럼, 그 꿈을 계속 꾸시고 실현시키세요. 포테이의 옆에서.”


왕의 최측근이 되어 도와 달라.

사문의 눈에 그는 패배했고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며 떠날 이였다.

그랬던 만큼 붙잡는 것이었다.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겠네. 대신 나도 부탁 하나 하겠네.”


앞으로 다가올 재앙을 본 이상, 좋든 싫든 뭐라도 할 수밖에 없었고 나쁜 제안도 아녔기에 쉽게 받아들였다.


“흠... 말해보시죠.”

“포테이를 어떻게 강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네.”

“아... 어차피 포테이에게 제가 가르친 것들을 함구시킬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 말은...”

“예. 저 녀석에게 맞게 가르친 것이지만, 기본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니,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할지는 포테이나 그쪽의 몫입니다.”


혈도와 혈 자리를 통한 마력 운용.

사문에게는 특별한 것도 아녔다.


“호... 그렇단 말이지.”


그걸 통해 자신도 강해질 수 있다.

수인, 그 누구도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가룸의 심장은 격렬하게 날뛰었다.


“지, 진정하세요!"


포테이는 그런 그의 심장을 진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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