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속 도사, 판타지 세계의 인과 연을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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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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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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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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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갑(5)

DUMMY

“물러나.”

“돕겠습니다.”

“네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아... 예.”


어느 순간, 흥분한 벨티드와 포테이의 사이에 선 사문.

사문의 말에 함께 맞서려던 포테이는 조심히 뒤로 물러났다.


“하찮은 욕망에 삼켜진 것도 모자라서 이젠 한낱 도구에 몸까지 빼앗기다니... 한심하구나.”

“그르르르...”


청실과 홍실을 뽑으며 노려보는 사문에 흥분했던 벨티드도 순간, 멈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 죄악을 범한 것은 아니니. 목숨은 거두지 않으마.”


팔괘(八卦)의 건(乾)과 곤(坤).

하늘의 기운, 건이 맺힌 청실이 땅의 기운 곤이 맺힌 홍실의 검 면을 타고 내려갔다.


“크아아아!”



괴성과 함께 사문을 향해 달려든 벨티드.

여전히 그의 눈은 미래를 보고 있으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 사문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그저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 누구라도 이 같은 상황에선 움직여야 했으나, 그 어떤 움직임도 없음에 분명 위화감을 느껴야 했지만, 그런 걸 판단할 수 있는 상태가 아녔다.


“땅과 하늘은 서로의 자리를 지키며 화합하지 않으리라.”


말을 뱉는 것과 동시에 벨티드의 이마에 닿은 홍실의 검 끝.

동작이 보이는 것과 동시에 이미 이마에 닿았기에 벨티드는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다.


만약 사문의 몸이 지나치게 무거워져 밀려나지 않는 것이라면 벨티드는 자신이 들이받은 충격의 반동을 감당하거나, 검에 그대로 이마가 뚫려야 했었다.

그러나, 마치 자신의 몸이 무거워진 것처럼 벨티드는 움직일 수 없었다.


“화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조화 또한 이뤄질 수 없지.”


천지비(天地否)를 이룬 두 기운.

천지비는 땅과 하늘의 화합이 일어나지 않아 막혀있는 것을 의미했다.


모든 생명은 각자의 조화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천지비를 이룬 기운이 검을 타고 벨티드의 몸에 들어가는 순간, 그를 이루는 모든 기운을 양분하고 조화를 무너뜨렸다.

조화가 무너진 몸은 아무리 정신이, 본능이 밀어붙이더라도 바위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답답하지 않느냐. 마치 노예로 살던 그때처럼 모든 게 억압당한 기분이겠지.”


사문의 말에 벨티드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그때 쌓아둔 분노를 터뜨리면 분명 너와 같은 고통을 지닌 자들이 동조하겠지만, 네 분노가 너무 크기에 그들마저 분노를 태우기 위한 장작으로 쓰이겠지. 동조하지 않은 자들은 또 어떠한가. 그들 또한 자네는 장작으로 쓸 것이지 않은가.”


미래의 그는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동족들이 집어넣었고 지금도 그럴 마음으로 이곳에 참여한 것이었다.

옳은 일이 아니란 걸 모를 리가 없었지만, 애초에 그는 옳고 그름을 논하지 않았었다.


“장작이 될 그들이 채찍질이 무서워 따르던 자네와 뭐가 다른지 생각해 보게.”


사문은 그의 이마에 닿은 홍실을 거둬들였다.

그와 동시에 기운이 본래대로의 조화를 되찾은 벨티드가 움직이며 주먹을 휘둘렀으나, 어느새 홍실을 검 면에 태운 청실이 그의 주먹을 막았다.


거대한 충격이 일어났지만, 사문은 그곳에 그저 변함없이 서 있었다.


“땅과 하늘이 닿아, 조화를 이루리라.”


지천태(地天泰)를 이룬 기운.

땅이 솟고 하늘이 내려와 닿으며 조화를 이룬다.

벨티드의 주먹과 맞닿은 청실이 원을 그리듯 움직였다.

그러자 그의 주먹은 마치 먹물이 붓을 따라 번지듯이 검을 쫓으며 일그러졌다.


“모, 몸과 땅이...”

“그뿐만이 아니구나.”


여전히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검이 땅과 맞닿자, 땅마저 검에 끌렸다.

완벽한 원을 그려감에 따라 포테이와 가룸은 검이 끌어당긴, 또 다른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천과 지가 있다고 하여도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면 그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완벽한 원을 그려낸 청실이 원의 중심으로 향하자, 하늘과 땅, 벨티드로 그려진 삼태극(三太極)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천지와 함께 조화를 이루기엔 자네의 그릇은 너무 작군.”


후우웅... 퍼어엉!

사문이 검을 비틀며 삼태극의 중앙에 찔러 넣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비틀어진 벨티드의 몸을 멀리 밀어냈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그대로 삼태극 속에 파묻어 버렸을 테지만, 자비를 베풀었다.


쾅!

밀려난 벨티드는 관중석을 부수며 파묻혔다.


“봤어?”

“아... 예...”

“봤네만...”


가볍게 고개를 돌린 사문의 물음에 포테이와 가룸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 그 쪽한테 한 말은 아닙니다.”

“그렇군.”


가룸은 멋쩍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테이. 지금 보여준 기술은 꽤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해야지만 닿을 수 있어. 그리고 나의 기술인만큼 나에게 맞는 것이지, 그러나 네게 물들인 두 기운을 사용한 만큼 너만의 것을 만들 때, 도움이 될 거야.”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네요.”

“지금은 이르니까.”


팔괘를 이루는 여덟 가지의 기운 중에서도 건과 곤은 가장 조화로우나, 다루기 어려운 기운이었다.

광활한 만큼 어디에서나 너무 많은 기운이 존재하기에 자칫 너무 많은 기운을 받아들이면 여러 문제가 발생했었다.

균형을 완벽히 유지하며 조화를 이루거나, 아니면 완벽히 구별해서 다루어 두 기운이 상호작용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었다.


아직 포테이는 기운을 체내로 받아들여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경지는 아녔으나, 언젠가 그 경지에 닿을 그때를 위해서 먼저 봐두어도 나쁘지 않았다.


“뭐, 너라면 언젠가 깨닫겠지.”


아직 미래를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뀐 미래가 얼굴에 드러나진 않았다.

그러나 말을 들은 즉시, 골똘히 생각하는 그의 표정만 봐도 얼추 그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알 수 있었다.


“그보다 마무리는 지어야겠지.”


사문은 축 처진 어깨를 하고는 쓰러진 벨티드에게 다가갔다.

기술의 위력은 최대가 아녔으나, 팔괘는 다루는 것 자체가 많은 심력을 잡아먹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보여주려고 했다지만, 건과 곤을 쓰고 그래.’

‘맞아. 솔직히 우리 기운으로도 충분했잖아.’


열기와 한기.

굳이 자연지기가 아닌, 그들의 말처럼 두 뱀의 기운만 사용해도 충분한 적이었다.


‘마지막 가르침인데, 이 정도는 보여줘야지.’

‘돈 받는 과외도 아니고.’

‘그래도 돈 대신 받아낼 게 있으니, 이 정도는 해야지.’

‘뭘 받으려고?’

‘설마...’


사문은 두 뱀의 물음에도 답하지 않으며 쓰러진 벨티드의 앞에 섰다.


“그렇게까지 막무가내는 아니네.”


더 이상 검은 기운을 뿜어내지 않는 갑옷.

아직 갑옷이 품은 기운은 충만했으나, 움직일 몸, 벨티드의 모든 뼈가 부러진 만큼 포기했는지, 잠잠해져 있었다.


“주인이 의지만 잃지 않는다면 좋은 것이긴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 다룰만한 것은 아니군.”


사문은 벨티드의 갑옷에 손을 올린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벗기지?”

‘우리도 모르지.’

‘그냥 몸을 일으켜서 벗겨.’

“흠... 그래야...”


갑옷의 목 부분을 잡고 당기는 순간, 갑옷이 끌려오며 몸에서 떨어짐에 사문은 잠시, 말을 잃었다.


“오...”

‘탈부착 편리한 건 좋네.’

‘팔면 비싸겠는데?’

“비쌀 거 같긴 한데... 에이, 이런 게 시중에 막 돌아다니면 안 되지.”


손 위에서 작은 구슬로 압축된 갑옷.

사문은 조심히 주머니 속에 넣었다.


“다 끝난 겁니까?”

“죽이지만 않았군.”


전신의 뼈가 부러져 정신을 잃은 벨티드.

다소 후유증은 남을 것이지만, 터프한 그들의 회복 능력이라면 이걸로 죽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건 어쩔 셈인가.”


가룸은 갑옷이 든 주머니를 가리켰다.


“탐나십니까?”

“전혀.”

“걸맞은 주인이 있다면 그자에게 줄 생각입니다.”


이성을 잃고 멋모르고 덤비게 만든 갑옷.

가룸은 진심으로 원치 않았고 사특한 기운이 자신에게 맞지 않기에 사문도 딱히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포테이 왕이 된 걸 축하한다.”

“아, 이제 정말 제가 왕이네요...”


얼떨떨한 표정.

단순히 기뻐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았고 봤기에 어깨가 무거웠다.


“왕이라고 굳이 무거운 짐을 혼자 들 필요는 없어.”

“그렇겠죠. 오스트 님의 의지를 이어받거나 유지하고 싶은 이들은 저뿐만이 아닐 테니까요.”


사문은 고개를 저었다.


“같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이들만 옆에 두지 마, 때론 다른 생각이나 반대하는 이들의 소리도 들어야 해. 저 녀석처럼 분노하는 이의 목소리도 듣고 네 나름의 해결책도 내야하고.”


벨티드를 가리키자, 포테이는 각오를 다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왕이 되면 부탁 좀 하나 하자.”

“예? 뭔가 바라던 게 있던 거예요?”

“큰 건 아니고.”


사문은 포테이에게 다가가 귓속말했다.


“으...”


귀가 밝은 그는 귓속말임에도 소름이 돋은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냥 아무도 못 듣게 속삭이듯 말해도 충분해요.”

“그렇구나. 어쨌든 들어줄 수 있지?”

“흠... 청탁인데... 아!”


잠시 고민하던 포테이는 뭔가가 떠올랐는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너 무슨...”

“일단 들어줄 수 있을 거 같아요. 특별히 많은 도움을 주셨으니까, 무상으로 해드릴게요.”

“뭐? 너 나한테 돈을 받을 생각이었어?”

“다른 사람들은 돈을 내게 될 텐데, 그에 비하면 인심 쓴 거죠.”

“다, 다른 사람... 하, 하하하!”


포테이의 속셈을 눈치챈 사문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흠,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네요. 왕으로서 첫 업무를 해야겠어요..”

“그래. 그래야지.”


벨티드가 폭발시킨 마력의 여파로 탈출하지 못하고 쓰러진 몇몇 수인을 치료하는 것과 탈출했지만, 혼란스러운 다른 수인들을 진정시키는 일이 포테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포테이는 쓰러진 이들을 구출하러 자리를 떠났다.


“저 녀석을 도와주세요. 전 잠시 어디 좀 다녀오겠습니다.”

“포테이... 아니, 왕의 이전 집으로 올 것인가?”


왕이 된 포테이에게는 궁이 새로운 집이었다.


“뭐, 그곳이 편하니 그러도록 하죠.”

“알겠네.”


가룸과의 대화를 마친 사문은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바람이 등 떠미는 게 아니라. 피해서 오다니...’


누군가를 두려워한 건 아녔다.

오히려 누군가를 기피하는 것에 가까운 바람이었다.


후드를 뒤집어썼지만, 삐져나온 갈색의 긴 머리에 고양이의 귀와 꼬리를 지닌 여인.

겉보기엔 고양이 수인이었지만, 그들과는 다른 존재임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이 정도의 기운을 느끼는 건 처음인데?’

‘그러니까. 왜 여태 몰랐지? 이 정도면 원래 있던 곳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크기잖아.’


주시하고 나서야 느낄 수 있는 기운이었다.

분명 무투장에서 나온 여인이었지만, 이전까지는 존재를 느끼지 못했었다.


‘절대적인 힘의 크기는 왕모님에게 못 미치지만, 왠지 그분이 떠올라.’

‘엥? 그분의 기운과 비교하면 너무 소름 끼치는데?’

‘맞아. 저게 어딜 봐서... 어... 그럴지도.’


사문의 기척을 느끼고 뒤로 돈 여인.

그녀의 얼굴을 본 강철이는 인정했다.


서왕모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청조와 구미호들을 부렸었다.

그녀들의 외모는 무척이나 아름다웠기에 왕모의 손에서 벗어나, 지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면 매번 큰 혼란이 찾아올 정도였다.

그러나 신하들이 주인보다 더 빛날 수 없다는 듯이 서왕모에 비하면 그녀들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사문의 눈을 높이고 아직까지 총각딱지를 떼지 못하게 만든 장본인인 서왕모.

뒤돌아선 여인의 모습은 그녀와 뺨을 주고받을 정도는 됐었다.


“웬만한 구미호 정도는 뺨 맞다 죽겠네.”


그녀의 얼굴을 본 사문의 첫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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