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속 도사, 판타지 세계의 인과 연을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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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1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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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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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될 상(6)

DUMMY

“흠...”


힘을 쌓아온 방식은 다르지만, 오스트가 잘 단련된 무인인 것은 틀림이 없었다.

조금만 건드려 준다면, 길을 알려준다면 반로환동은 불가해도 수명을 조금 늘릴 수는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거절했다.

자신이 사라진 후에 있을 일에 대해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미련은 없었다.


‘태상왕으로서 포테이에게 가르침을 주고 국정을 논한다면 더 좋은 국가가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사문 또한 아쉬움이 생겼으나, 그의 표정을 보고 미련을 버렸다.


“그쪽을 닮은 자식이라도 하나 남겨놓지 그러셨어요.”

“하하하. 노력은 했지만, 끝내 자식 복은 없더군.”

“고독하고 무거웠던 짐은 그만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세요. 나름 잘 키워둘 테니까요.”


왕이란 고독한 자리였다.

그렇기에 주변의 말에 휘둘려 혼왕이 되는 자들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오스트는 현왕이었다.

고독함을 가진 채, 그 누구도 완전히 신뢰하진 않았지만, 그 누구의 말도 들어주고 솎아내며 자신이 나라를 이끌 방향을 정했고 이끌었다.

그의 일생을 본 사문은 그의 삶을 존중했다.


“포테이는 가벼워 보이지만, 확실한 노선만 잡는다면 잘 나아갈 아이라네.”


자신이 죽은 뒤, 나라를 이끌어갈 후보를 여럿 두고 많은 생각을 했던 오스트.

그가 생각했던 후보 중에 포테이 또한 있었고 그라면 나쁘지 않은 왕이 될 거란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왕이 됐을 아이고 그쪽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칭송받을 재목입니다. 이제는 절 만났으니, 더 빠르게 왕이 되고 그쪽보다 더 칭송받겠죠.”


오스트는 사문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려는 겁니까?”

“이젠 찬바람도 힘든 나이인지라...”


사문은 부채를 꺼내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며 그를 감싸줬다.


“고맙네.”

“그 누구보다 밝은 귀를 가진 자가 만인의 소리를 듣고 모두의 뜻을 하나로 모으리라.”


이어 부채를 다시 휘두르자, 사문의 말을 품은 담배 연기가 도시의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건...”

“많은 이들의 귀에 들어가고 입에 오를수록 그 뜻은 강해질 겁니다. 운명 또한 그 말에 속아 그 길로 향할지도 모를 겁니다.”

“자네는 신기한 재주가 많군.”


말이 가진 힘.

사문이 뱉은 말을 누군가는 예언으로 받아들일 것이고 누군가는 허튼수작으로 받아들일 것이었다.

이뤄진다면 예언, 이뤄지지 않는다면 허튼수작.

허나, 그 말 몇 마디가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되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었다.


“미천한 재주일 뿐입니다.”

“자네의 말이 이뤄지는 걸 보지 못해 아쉽군.”

“늘려드릴까요?”

“됐네.”


오스트는 미소를 지으며 왕궁으로 향했다.

무거워 보이던 그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 보였다.


“이제 대장간이나 가야겠네.”


곰방대의 제작이 가능한지 문의하러 길에 오른 사문.

그의 귓가에 그가 퍼뜨린 말이 다른 이들의 입을 통해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


“밝은 귀를 가진 자가 만인의 소리를 듣고 모두의 뜻을 하나로 모으리라?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 거 같으냐?”


늑대 수인이며 차기 왕으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가룸.

해가 지고 수도에 퍼지기 시작한 소문을 전해 들은 그는 그 의미를 부하들에게 되물었다.


“영웅, 혹은 왕이 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군.”

“그보다 귀가 밝은 자라면.”

“아무래도 토끼 수인이나, 고양이 수인이겠지. 웃긴 소리군. 그놈들이 왕위에 오를 자격이 있다고 보이나?”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포테이 그놈이 왕과 가까웠던 만큼 왕위를 이어받고 싶어 할 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조건만 들어주면 다른 후보들의 약점도 알려준다고 했었죠.”


한 부하는 그 소문의 주인공을 포테이로 여기며 말을 꺼냈으나, 가룸은 고개를 저었다.


“약점을 안다고 해도 공략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놈이지 않으냐.”

“그럼, 이 소문은...”

“괜히 약한 놈들이 헛된 희망을 품고 헛소리를 퍼뜨린 것이겠지.”


가룸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부하의 생각은 달랐다.

헛소리라기엔 기이할 정도로 여기저기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분명 이뤄지기 어려운 일이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줄을 서기 위해 자주 찾아오던 포테이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음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약점 따위 알지 못해도 결국 이기는 건 내가 될 것이야.”


가룸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시간은 흐르고 흘러, 도시는 많은 이들의 통곡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인들의 왕, 오스트의 죽음.

왕이 되기 전에는 나라의 안정을 위해 많은 피를 흘렸고 왕이 되고 난 후에는 평화로운 국가를 이룩한 그.

수인들 사이에 존재하던 차별을 없애고 타 종족과의 갈등을 조율했으며 교류를 적극적으로 하되, 상단을 선별하고 확실한 계약을 맺어 안정성을 높이고 경제의 성장으로 이끌었던 왕.


오스트의 죽음에 덩치가 큰 수인도 강한 힘을 지닌 수인도, 왜소하고 약한 수인도, 모두가 슬픔에 잠긴 얼굴로 도시의 뒤편 역대 왕들의 묘가 안치된 언덕으로 향하는 오스트의 관을 바라봤다.


관을 따라 이동하는 대열 속에는 포테이 또한 있었고 가룸이나 벨티드처럼 각 수인들을 대표로 보이는 이들도 함께였다.


“나라가 우는구나. 좋은 왕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한 높은 건물의 위에서 사문은 술을 마시며 대열을 바라봤다.


“뭐야? 마치 만나 본 듯한 말투네?”

“그러게, 아! 그때 보고 온 거야?”


사문은 두 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거운 짐을 덜어준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을 거야.”

“아쉬운가 보네?”

“아쉽지만 어쩌겠어. 천명을 거스르기 싫다는데.”

“죽기 싫어서 별짓을 다하는 왕도 많은데, 별난 놈이구먼.”

“별나지.”


짧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그의 모든 인생을 대화와 얼굴을 통해 보고 들었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한 점 없다.

쉽게 뱉는 말이지만, 그 말이 어울리는 자는 드물었다.

그러나 오스트는 그 말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맛있네. 그대에게 어울리는 술이야.”


맥브루어, 네치아에서 키운 곡식으로 만든 술이며 여러 상단을 통해 대륙 곳곳으로 팔려나갈 만큼 맛과 향이 좋고 대량 생산되는 술이었다.

그만큼 네치아의 경제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특산품이었다.

특징이라면 서민들을 위한 값싼 술이었고 제작자는 오스트 브루어스였다.

부족한 수인들의 경제적인 힘을 증가시키기 위해 그의 피나는 노력 끝에 제작된 것이었다.


“그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이 술이 대륙 곳곳에 남아 수인들에게 힘이 되겠지.”


고향의 맛, 네치아를 벗어나, 이곳저곳을 떠도는 동족들에게도 닿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었다.


“대단한 왕이네. 어느 왕이 아무리 나라에 돈을 벌어다 준다지만, 이런 상품까지 직접 개발하려 하겠어.”

“재주도 많네.”

“뭐라도 하고 싶던 초창기에 만든 술이야.”


조주에 재능이 있던 건 아녔다.

그저 뭐라도 나라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었다.


“죽은 육신은 저곳으로 가지만, 진정한 묘는 이곳이겠지.”


사문은 하늘을 향해 남은 술을 흩뿌렸다.

이후 부채질을 하자, 불어온 열풍이 술을 증발시키며 그의 진정한 묘인 도시에 주향을 퍼뜨렸다.



사문은 그렇게 그의 안식을 빌고는 포테이의 집으로 돌아갔고 시간이 좀 더 흐르자, 그 또한 집으로 돌아왔다.


“잘 보내주고 왔어?”

“예. 정말 좋은 분이셨는데... 제가 그분의 뒤를 이을 자격이 될까요?”


포테이는 슬퍼하면서도 기가 죽어있었다.

덩치 크고 강해 보이던 경쟁자들이 함께 있던 이유도 있었지만, 큰 이유는 장례 절차 간에 다뤄진 오스트의 업적 앞에 자신이 너무나 작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놈들이 이어받으면 뭐, 그의 의지가 퇴색되지 않을 거 같아?”

“그건...”


포테이는 몇몇 오스트의 죽음을 기뻐하던 이들의 심장 소리를 들었었다.


“그렇지 않겠죠.”

“오스트는 나름 네가 왕위를 이어받아도 좋다고 생각했었어. 그러니까 단련이나 시작해. 무투제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거 아냐.”

“일주일 후에 열린... 오스트 님이 그러셨어요?”

“저번에 길에서 만났지. 어쨌든 기대받은 만큼 잘해야지.”

“아, 예!”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물어볼 틈이 없었다.

존경하던 이에게 기대를 받았다는 마음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일주일이라... 확실히 약점을 공략하지 않는 이상, 이기기 어렵겠어.”


대열 속, 가룸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포테이가 말했듯이 심장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에 반해 벨티드는 아무리 사문이 혈도를 넓혀주고 기운을 다스려줬어도 포테이가 제대로 붙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녔다.

그 외에도 제대로 붙어 이길 만한 녀석은 없었다.


“뭐, 약점을 파악하는 것도 저 녀석의 능력이니, 비겁하다고 할 수는 없는 건가?”

“마력을 다루는 법만 알려주기 위해 혈 자리를 가리킨 건 아녔잖아.”

“맞아. 잘 때리라고 알려준 것도 있으면서.”

“흠... 없진 않지.”


장기 쪽을 직접 타격하는 것도 좋지만, 혈 자리 공략하는 법도 나쁘지 않았다.


“그보다, 벨티드란 놈은 상당한 악취를 풍기던데...”

“이번에도 악마야?”

“그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

“뭐야?”

“그러니까.”


뭔가 있는 것은 확실했으나,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

직접 그에게 접근해 확인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건 포테이가 할 일을 막는 것일 수도 있기에 움직이지 않는 편이 옳게 느껴졌다.


“역시, 흉성이 괜히 흉성은 아냐.”

“여기, 이 부분 좀 다시 알려 주시면 안 되나요?”

“뭘?”


사문은 폴짝 뛰어올랐다가 오른발로 땅을 내리찍은 포테이의 부름에 그에게 다가갔다.


“그, 땅은 직접 두 발로 닿을 수 있기에 땅의 기운이 대충 무슨 느낌인지 알겠는데. 하늘의 기운이란 건 도저히 무슨 감각인지, 모르겠어요.”


하늘과 바람, 벼락은 확실히 그러한 경향이 있었다.

특히나 하늘은 바람처럼 불어오지도 않고 벼락처럼 내리치지도 않기에 더욱 그러했다.


“두 발이 땅에 닿아있듯이 네 몸은 이미 하늘 속에 있어.”

“말은 그렇지만...”

“뛰어오르는 과정을 통해 더 깊은 하늘 속으로 몸을 던진다고 생각해. 점점 그 기운이 강해짐을 알 수 있을 거야.”

“그 말은...”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높이 뛰어.”


때로는 단순 무식한 방법이 가장 빠른 해결법이었다.


“당장에 몸에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등을 떠밀어주며 더 강한 힘을 일으킬 거야.”

“그게 도에요?”

“그래. 도야. 자연을 따르고 함께 하는 것도 도야.”

“이해시키기 어려운 거면 전부 도라고 하는 건 아니죠?”

“... 아니야.”


포테이는 사문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도에 대해서 자주 들었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도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사문은 도에 대해서 잘 알지만,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

도란 그런 것이었다.

감각적이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

그러다 보니 남들이 보기에 도라는 건 그저 어려운 개념이었다.


“무(無) 또한 도가 될 수도 있고 극(極) 또한 도가 될 수도 있어.”

“예예... 어려운 건 확실하네요.”

“잔말 말고 뛰기나 해.”


사문은 말에 포테이는 다시 폴짝 뛰었다.


그렇게 그가 뛰던 자리가 움푹 파여 나갈 때쯤, 무투제가 열리며 도시에 많은 수인들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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