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속 도사, 판타지 세계의 인과 연을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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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웨
작품등록일 :
2024.08.16 16:11
최근연재일 :
2024.09.1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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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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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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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여제(1)

DUMMY

“구미호?”

“뭐, 그런 게 있지.”


적대감을 가지지 않는 모습으로 묻는 그녀의 말에 사문은 가볍게 답해주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냥 돌아가는 거지?”


사문은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 갑옷을 원한 거 아녔나?”


이어 주머니에서 갑옷이었던 구체를 꺼내자, 그녀는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사문을 바라봤다.


“내가 그것을 원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쪽 같은 고위급의 악마가 굳이 그 자리에 있던 이유를 찾으라면 이거지 않겠어?”


그녀는 악마였다.

조금 알 수 없는 기운이 뒤섞여 있는 듯했지만, 악마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기운이었다.


“호오... 꽤 예리하구나.”

“그런 편이지.”


그녀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후드를 넘기자, 갈색의 긴 머리가 검게 물들었고 귀는 사라지고 뿔이 자랐으며 꼬리는 악마의 것으로 변했다.


‘얼굴은 그대로네.’

‘저 정도면 관중석에서 난리 났을 텐데, 그 여우만 해도 관중들이 난리였잖아.’

‘거대한 힘을 나조차 못 느낄 정도로 감췄었어. 애초에 다른 관중의 관심 밖에 있는 건 문제도 아녔겠지.’


사문의 말처럼 바로 옆에 앉았던 관중조차 ‘옆에 누가 있구나.’ 수준으로 넘어갔었다.


“그쪽이야말로 정체가 뭘까?”

“그저 그쪽처럼 비밀 많은 인간이라 해두지.”


사문 또한 뿔을 제거하며 본래 모습을 보였다.


“그보다 쓸모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대답이나 하시지. 어째서 그냥 돌아가는 거야?”

“엘리고스의 예지는 그깟 놈이 가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물건이니까.”


검은 갑옷의 이름은 엘리고스의 예지였다.


“그 말은 내가 가지는 건 상관없다는 건가?”

“아니, 지금으로선 뺏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아... 지금이라면 해볼 만할걸.”


지금의 사문으로선 그녀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경지를 되찾는다면 그녀에게 기회는 더욱 없을 것이었다.


“눈에 띄는 건 되도록 피하고 싶구나.”


사문과 진심으로 붙으면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고 그만큼 눈에 띌 것이었다.

아무리 수인의 영역이라지만, 악마인 그녀로선 교단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 그다지 알려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쓸었다.


‘파악하는 게 쉽지 않네.’

‘그럴 거 같다.’

‘예쁘긴 더럽게 예쁘네.’


사문은 강철이의 말에 동감했지만, 굳이 표현하진 않았다.


“고민이 많은가 보구나.”

“그래. 널 파악하는 게 쉽지는 않으니까.”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날 파악할 존재는 몇 되지 않는단다.”

“그 탓에 고민이 깊지. 널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하나, 그냥 보내야 하나.”


악한가? 잘 모르겠다.

위험한 존재인가? 그렇다.

죽일 수 있는가? 이기진 못해도 죽이지 못할 건 없다.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그녀와 싸울 필요가 있는가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내가 결정을 내려주지. 싸울 필요는 없다.”

“어째서지?”

“내 머릿속에서 소리가 들려온단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고.”

“단순한 환청은 아닌가 보네.”


그녀 정도 되는 존재가 본인의 힘에 잡아먹힌 것이 아니라면 환청 따위에 시달릴 리가 없었다.


“하... 그래, 굳이 목숨까지 바쳐가며 싸울 필요는 없겠지. 내가 여기서 죽으면 그녀의 계획도 물거품이 될 테니까.”

“이왕 이리 된 거 선심 써서 그것도 넘겨주는 건 어떠하지?”


그녀는 구체가 된 갑옷, 엘리고스의 예지를 가리키며 다가오더니, 사문의 손가락으로 사문의 가슴을 콕 찍었다.

그러자 사문은 다급히 손을 붙잡으며 쳐냈다.


“미인계 따위는... 하, 하하하, 이거 쓸데없는 언쟁이었네.”

“오히려 내가 손해를 봤네.”


그녀가 사문에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가슴을 찌른 건 미인계를 사용해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속셈도 있었지만, 그보단 그와 접촉을 통해 기억을 보고 사문이 어떠한 자인지 알기 위함도 있었다.

그러나 역으로 접촉을 통해 사문이 그녀의 미래를 조금이지만, 볼 수 있었다.

다만, 과거는 뿌연 안개 같은 힘에 가려져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쓸데없는 언쟁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사문이 자신에게서 뭔가를 알아냈다는 건 알 수 있었으나, 정확히 뭐를 알아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문의 모든 것은 이 세계가 아닌, 그의 세계에서 온 것인 것도 있었고 미래를 보는 건 기술이라기보단, 업경을 통해 얻은 현상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무슨 짓을 했다는 걸 느낀 거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애초에 네 별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으니, 볼 수 없던 거였어.”


접촉하지 않으면 미래를 보지 못했던 이유였다.

그녀의 미래에서 본, 다른 세계의 하늘.

그녀의 별은 그곳에 떠 있었다.

이전에 마주했던 가르구와 그의 부하들과도 접촉은 있었으나, 인간의 몸을 차지한 탓인지, 그들의 것은 볼 수 없었다.


“영문 모를 소리만 계속하는구나.”

“자주 듣는 소리야. 그보다 널 절대 죽이면 안 될 이유를 알았으니. 걱정하진 말아.”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앞으로 일어날 이야기의 주역을 발견했으니,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지.”


그녀는 세계수가 보여준 미래에선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그와 함께할 이는 세계수가 보여준 준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를 이곳에서 죽인다면 모든 계획이 무너질 것이었다.


“... 바람이... 그런가... 아직 시간은 많으니, 잠시 동행하는 건 어때?”


보다 빠르게 그녀의 인연을 이어줄 수는 없었다.

그만큼 어쩔 수 없는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미래에 그녀는 결국 실패했고 죽음을 맞이했었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어디선가 큰 파장이 되듯이 남아있는 시간 동안, 그녀와 함께하는 것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의지가 바람을 타고 와, 사문의 등을 떠밀었다.


“인간주제에... 아니지, 인간은 맞는 건가?”

“뭐, 인간 주제에 너를 꼬신다고? 됐어. 그런 생각은 없으니까. 시작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어도 계속해서 내가 그를 봐줄 수는 없으니, 너를 통해 영향을 미칠 수밖에.”

“그?”

“언젠가 너의 심장을 뛰게 해줄 짙은 인연. 때가 되면 누군지 알 수 있을 거야. 너와 그 아이가 엮이는 건 애초에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당연한 일이니까.”


하늘이 내린 인연.

그 어떤 역경과 고난이 있어도 자연스레 만나게 되는 인연이었다.

외력에 의해 하늘이 정한 때가 아녀도 강제로 끊어질 수 있으나, 그만큼 큰 힘이 필요하고 반동도 어마어마하기에 아무나 할 수 없는 정도였다.


“지금까지 내 심장을 뛰게 한 이는 아무도 없었단다.”

“아직 못 만나봤을 뿐이지. 그리고 그거 자랑 아니야.”


그녀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짙게 붉은 입술을 매만졌다.


‘많은 놈의 심장은 뛰다 못해 터졌겠네.’

‘두두리는 벌써 잊은 거냐?’

‘어? 아니, 잊을 리...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꺼내!’


강철이는 이시미에게 분노하며 소리쳤다.

사문은 내면에 깃든 둘의 다툼에 내면의 귀를 닫아버렸다.


“그래서 어쩔 거야?”

“누군가와 동행하는 건 오랜만이군.”

“따라와, 앞으로 며칠은 네치아에 더 머무를 생각이니까.”

“저곳에서 볼 건 다 봤다만.”

“나도 그렇긴 한데. 받을 게 있어서. 그거만 받고 떠날 거야.”

“그래. 다만, 너와의 여정에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난 떠날 것이니, 그리 알고 있으렴.”


그녀는 다시 네치아로 향하는 사문의 옆을 함께 걸었다.


“그보다, 한동안 같이 다닐 건데. 네 이름이 뭔지를 모르네.”

“릴리스. 마계에선 밤의 여제라고 부르지. 너야말로 네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만.”

“사문. 항간에는 사문 도령이라 부르기도 하고... 뭐, 다른 이름도 있는데 그건 됐다.”

“특이하긴.”

“아무렴, 그쪽만큼이나, 특이할까. 그보다 빨리 고양이 귀나 꺼내.”


사문은 잊었던 뿔을 꺼내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쪽이 취향인가 보구나.”

“아니야.”


단호한 사문의 대답에 릴리스의 입꼬리가 조금이지만, 올라갔다.


‘아직 뜨지도 않은 별은 내가 이리 자신을 위하는지 알려나.’

‘절대 모르지.’

‘딱히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면서.’

‘정답.’


바람이 등 떠밀고 세계수의 계획을 돕기 위해 그녀와의 동행을 결정하긴 했지만, 사실 그보단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재미.

그녀같이 특별한 존재와 함께하다 보면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조금은 기대가 됐다.


‘내가 볼 때 주인은 노망났어.’

‘노망이야 진즉에 났지. 아마 몇백 년 전부터 났을걸.’


두 뱀은 보이지 않는 고개를 저었다.


***


“생각보다 일은 빨리 끝났나 봅니다.”

“자네가 빨리 사태를 막아준 덕분에 한 명 빼고는 큰 부상자는 없었다네.”


포테이의 집으로 돌아온 사문, 가룸은 그보다 먼저 돌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저 아이는...”

“한동안 저와 동행하게 된 릴...”

“안나라고 합니다.”


릴리스는 사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때리고 가룸에게 직접 자신을 소개했다.


-함부로 내 이름을 떠들고 다니지 말거라.

-아, 알았어.


머릿속에 울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두 뱀과는 다른 방식이었고 전음과도 다른 방식이었다.

그러나 대화만 통한다면 상관없었기에 사문이 전음으로 대답하자, 그녀는 신기하단 듯이 그를 바라봤다.


“급히 어딘가로 가더니, 좋은 신붓감을 얻어 왔군그래.”


가룸의 눈에 그녀의 아름다움은 인식 저해와는 또 다른 마법 탓인지, 많이 떨어졌으나, 그래도 상당하게 보였었다.


“큰일 날 소리입니다.”

“큰일 날 소리지.”


서로가 속을 알 수 없기에 그리 좋게 보지만은 않았다.


“죽이 척척 맞는군.”

“하, 됐고. 계승식은 언제입니까?”

“본래라면 무투제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왕관을 받아야 했으나, 일이 이리됐으니, 내일 궁 앞에서 하기로 했다네.”

“그렇군요. 포테이는 지금 어디 있...”

“전 여기 있어요.”


집의 안쪽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쟤도 여기 있었네.”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는 전신에 부목을 가져다 댄 벨티드가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 있었다.


“정말 죽이지만 않았구나.”

“저게 최소한으로 한 거야.”

“공간 계통의 마법이라기엔 이질적이던데.”


몸이 일그러지고 땅과 하늘이 일그러졌던 지천태.

살아가는 공간을 구성하는 것 중, 가장 큰 땅과 하늘의 기운을 사용한 만큼 공간 계통의 마법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정확히는 이곳의 표현으로 대지와 하늘의 마력 사이에 인간을 끼우고 강제로 뒤튼 거야.”

“흥미로운 사용 방식이네.”


릴리스는 의외로 연구나 실험 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사문은 그런 모습을 신기하단 듯이 바라봤다.


‘전혀 그렇게 생기지 않았는데.’

‘그거 차별이야.’

‘그런가? 네가 너무 인터넷 속에서 살다 보니 예민해진 건 아니고?’

‘인터넷은 사회와 나의 연결해주는 매체였다고.’

‘그게 없어서 어떡하냐.’

‘으...’


두 뱀은 시간만 나면 다퉜다.


‘아무리 상반된 성질을 지녔다지만, 참 한결같네.’


사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자자... 그보다, 새로운 왕이 탄생한 기념으로 다 같이 술이나 한잔하는 게 어떤가.”

“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헛된 미련을 버릴 수 있게 된 덕이 아니겠는가.”


왕을 꿈꿨던 가룸.

그 미련이 사라진 만큼 그 또한 이전과 달리 오만함에서 벗어났었다.


“술은 당연히 최고급으로 준비하셨겠죠?”

“당연히! 맥브루어라네.”

“아... 나쁘진 않네요.”


릴리스는 가룸의 안내에 따라 술상이 차려진 곳으로 향했다.


“저, 저는...”


벨티드를 돌보는 오늘의 주인공은 애처롭게 입을 열었으나,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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