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속 도사, 판타지 세계의 인과 연을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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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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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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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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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될 상(3)

DUMMY

“처음 보는 사람을 이렇게 쉽게 집에 데려와도 괜찮은 건가?”


조용히 대화를 나눌 만한 곳은 없었다.

소리를 차단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자, 포테이는 술과 간단한 요기 거리를 가지고 집으로 끌고 왔다.


“아니, 집이라기엔... 굉장히 뭐가 많네.”


다양한 풀과 이상한 마물의 신체들, 온갖 집기들로 가득했다.


“집이긴 하지만, 업무 공간과 다를 바 없죠.”

“의원이었네.”


약초를 달이는 도구와 수술용 집기들.

온갖 의학 서적들이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줬다.


“맞아요. 후... 먼지가 많이 쌓였네.”


포테이는 테이블 위에 소복이 쌓인 먼지들을 털어내고 앉으라는 듯이 가리켰다.


“집을 오래 비웠나 보네.”

“계속 오스트 님의 진찰을 하느라 왕궁에 있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그 이유만 있는 건 아니잖아.”

“...”


오스트는 수인족의 나라, 니치아의 왕이었다.

약을 달이던 도구로 차를 달이던 포테이가 조용히 사문을 바라봤다.


“뭘, 어떻게 아시는 거죠?”

“세상은 네가 이해할 수 없는 걸로 가득 차 있어. 모든 걸 이해하려고 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조금 알려주자면 보여. 네가 뭘 했고 뭘 할지.”


미친놈으로 보기엔 너무 의미심장한 말들을 내뱉는 사문의 모습에 당혹스러웠다.


“그렇다고 나도 전부를 볼 수 있는 건 아니야. 네 행동을 볼 뿐이지, 생각을 볼 수는 없으니까. 숨기는 거 없이 말해봐. 일단 들어는 줄게.”


고민이 깊은 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고민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 이게 맞는 건지... 일단 그쪽은 절 아는지... 아니, 저에 대해 얼마나 봤는지, 모르겠지만, 전 그쪽에 대해 하나도 몰라요.”

“사문. 그게 내 이름이야. 그리고 도사이며 이곳에선 모험가지.”

“도사? 모험가? 도사는 뭔지 모르겠지만, 사슴 수인이 모험가를?”


포테이는 수상하다는 듯이 사문을 바라봤다.


“왜?”

“아니, 대체로 사슴 수인들은 온순하고 겁이 많은 편이라 모험가를 하는 건 처음 봤거든요.”

“아... 뭐, 나 같은 별종은 어디든 있는 편이지.”

“그런데... 꼬리나 귀는...”

“그게...”


사문은 당황하며 이시미가 말했던 변명을 늘어놨다.

그러나 의심으로 가득한 포테이의 눈은 변하지 않았다.


“모험가라면서요. 그런데 귀랑 꼬리를 쉽게 잃어요? 그리고 지금 심박수가 엄청나게 올라갔는데? 이건 거짓말을 할 때나 이러는데.”


귀 밝은 포테이에게 거짓말은 악수였다.


“하...”


사문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둔갑을 풀자, 포테이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인간!!!”

“조용히 해. 해칠 마음은 없어. 해칠 생각이었으면 이렇게 귀찮은 짓은 안 하지.”

“심박이...”


진실을 증명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귀가 밝네?”

“토끼 수인이니까요... 특히나 제 귀는 그중에서도 뛰어나죠.”


그는 걸어 다니는 청진기라 불러도 될 정도였다.


“그래그래. 이제 나에 대해 알았으니, 너에 대해 말해봐.”

“아... 오스트 님이 아프신 건 이미 알고.”

“괜찮아. 다 말해봐.”

“네. 수인족의 나라는 조금 특이한 문화가 있어요. 왕의 혈통이 따로 없다는 거죠.”


수인족은 힘을 중요시했다.

스스로도 강함을 추구했고 자신을 이끌어 주는 자는 그보다 더 강하길 원하는 게 수인족이었다.

물론 어느 짐승을 닮았나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존재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러했다.


그런 습성 탓에 그들은 왕을 정하는 특별한 의식을 행했었다.

무투회.

왕이 죽기 전이나, 죽은 후에 벌어지는 의식이자, 일종의 행사, 또는 추모제였다.

현 왕인 오스트는 아직 자신의 상태에 대해 직접 밝히지 않았다.

이른 시일 내에 다음 왕을 정하는 것이 국가의 안정을 생각했을 때, 옳은 일이었지만, 쉽사리 그러지 못했고, 그 이유는 포테이도 알지 못했다.


포테이는 왕궁에 있으며 밝은 자신의 귀로 많은 것을 들었었다.

왕위를 노리는 이들이 누구인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국가를 이끌어 갈 것인지.

그런 상황에서 포테이가 할 일은 하나였다.

누군가에게 줄을 서는 것이냐.


수인들은 하나의 국가에 소속되어 있지만, 토끼 수인이냐, 늑대 수인이냐 등, 어느 짐승 수인인가로 부족이 나뉘어 있었다.

현 왕인 오스트는 부족 간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왕위를 노리는 강력한 후보 중에선 차별을 할 만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넌 그 늑대 수인에게 줄을 선거였어?”


사문은 그의 눈을 통해 본 수인에 대해 말했다.


“가룸 님은 강하니까요. 부족별로 차별 대우를 하시는 분이지만, 제가 잘 한다면 토끼 부족은 그래도 평안할 수 있겠죠.”

“네가 뭘 잘해야 하는데?”

“가룸 님이 강하긴 하지만, 왕위에 오른다고 장담하긴 어려울 만큼 상대들도 만만치는 않아요. 전 밝은 귀로 몸 상태를 들을 수 있거든요.”


아무리 가룸이 강하다 하더라도 계속된 전투 속에 전부 승리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경쟁 후보의 약점을 알려주고 부족의 안위를 보장받는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지하는 녀석을 바꾸려는 이유는 뭔데?”

“가룸 님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생겼거든요.”

“이길 수 없을 만큼?”

“예. 심장의 소리가 변했어요. 당장에는 티가 나지 않지만, 무투제가 벌어질 때쯤이면 드러날 테니까요.”


믿었던 우승 후보에게 문제가 생긴 만큼 새로운 줄을 찾는 것이었다.


“소를 찾아갈 생각이라면 접어.”

“네?”

“그 녀석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좋은 녀석이 아니야.”

“그게 무슨... 벨티드 님은 가룸 님 보다 조금 힘이 떨어지긴 하지만 인성이라면 더 훌륭하셔요.”


사문이 봤던 흉성, 포테이의 눈을 통해 본 짧은 미래.

소를 닮은 수인의 결코 좋은 뜻을 품은 이로 보이지 않았다.


“그가 어디 출신인지 알아?”

“저도 잘... 니치아가 아닌 외부에서 태어난 수인인 정도만 알죠.”

“노예 출신이야.”


사문의 말에 포테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 봐! 내가 뭐라 그랬어. 노예제가 있어서 인간을 싫어하는 거라고 했지!’

‘어후, 너 잘났다.’


이시미의 말에 강철이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극심한 분노를 품고 있어.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무기로 써서라도 방출하고 싶은 분노지. 지금은 그걸 꾹꾹 누르며 터뜨릴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저, 전쟁을 벌인다는 건가요?”

“그래. 넌 최소한 부족만의 안위라도 지키기 위해 줄을 선 것이지, 개죽음을 당하려고 줄을 선 건 아녔잖아. 사실 힘이 없더라도 모두가 잘 지내고 싶지. 지금의 왕이 통치하는 이 나라처럼.”


제국은 굳이 수인족과 전쟁을 치를 마음이 없었다.

만약 치른다면 왕국과 치를 것이지, 굳이 다른 곳에도 적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거기다 수인족은 제국과 전쟁을 벌이기엔 규모 면에서 많이 밀렸다.


“벨티드 님이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할 리가...”

“분노는 눈을 가려. 아주 고통스러웠고 슬펐을 삶이기에 동정받아 마땅하지. 하지만... 쌓아온 그 고통과 슬픔을 온전히 분노로 삼아 터뜨릴 자라면 차마 동정하긴 어렵네. 혼자 죽는다면 모를까. 백성까지 같이 죽을 놈이니.”


과거는 동정하되, 미래는 동정할 수 없었다.

물론 왕이 될 별은 포테이였다.

그는 언젠가 왕이 될 것이었다.

전쟁에 큰 아픔을 느끼고 스스로가 벨티드를 몰아내고 왕좌에 앉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많은 수인족의 피로 물든 왕좌였기에 그리 좋은 미래라고 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되면 더 큰 미래로 향하는 길을 걸을 수 없었다.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른 사람에게 줄을 서야 하나요?”

“내가 왕좌에 앉으면 되지.”

“제가요? 전...”


한없이 작은 주먹, 빠르긴 하지만 그게 전부인 다리, 누구보다 밝은 귀.

포테이는 긴 귀를 잡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약점도 다 들을 수 있다면서 걱정은.”

“하지만 전 그 약점을 노릴 힘이 없는데요? 그리고 싸우고 싶지는... 미래에 전 왕이 된 벨티드를 어떻게 이긴 건가요?”

“전쟁을 겪으며 싸움에 익숙해졌지.”


싸움에 나서기엔 유약한 성정이었다.


“겨우 그 이유만으로요?”

“아니지, 마음가짐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힘이 없다면 의미가 없지.”

“그 말은...”

“나쁘지 않은 기술을 배웠네. 흠... 이건가?”


사문은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낮추고 오른 주먹을 찌를 듯이 자세를 잡았다.


“그 자세는...”

“마력은 꽤 사납게 휘몰아치는구나.”


콰웅!

사문은 그대로 팔에 마력을 휘감고 허공에 정권을 찔러 넣었다.

주먹 끝에 맺힌 마력이 폭발하며 짐승의 울음과 같은 소리가 충격과 함께 집을 뒤흔들었다.


“지. 집이!”

“아, 미안.”


포테이는 황급히 떨어지려는 집기들을 잡았다.


“그보다 방금 그건...”

“미래에 네가 사용하던 기술이야. 꽤 나쁘지 않은 무술이네.”

“예? 그건 호왕무의 첫 번째 기술이 호왕권이라고요!”

“그래? 이름까진 모르겠고, 어쨌든 네가 이걸 사용했어. 이걸로 그 소 수인의 갈비뼈 아래... 아니, 간이겠네. 그걸 터뜨리던데?”

“그런... 오스트 님의 비급을 제가... 그리고 간은 분명...”

“왕궁의 숨겨진 공간에서 찾았더라.”


호왕무(虎王舞).

오스트를 왕위에 앉히고 그 자리를 유지하게 만든 무술이었다.


사문은 아무렇지 않게 왕궁의 비밀과 벨티드의 약점을 누설했다.


“그럼, 제가 그 비급을 가져오기만 한다면 전쟁을 막고 왕위에 오를 수 있다는 건가요?”

“굳이 비급을 훔쳐 올 필요가 있나?”

“네?”

“내가 있는데? 그리고 중요한 건 비급이 아니지. 너 그 녀석을 죽일 자신이 있어?”


힘을 논하는 것이 아녔다.

피를 묻힐 각오를 논하는 것이었다.

포테이 또한 그 뜻을 이해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위협적인 호왕무, 그 무술로 약점을 노린다면 상대는 분명 죽을 것이었고 실제로 벨티드는 포테이의 손에 죽을 운명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무투제에 나선다면 더 많은 이들을 죽일 수도 있었다.


“단순히 제압할 수는...”

“제압하는 건, 죽이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 치명적인 약점을 팔 생각이었으면서. 제 손에 피를 묻히기는 무서운가 보네.”

“비겁자네요.”

“알긴 하네.”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약한 만큼 비겁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겁한 짓을 비겁하다고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원래 세계에서 점을 보던 인간들이나, 이 세계의 것들이나, 말 몇 마디에 혼이 쏙 빠진 듯이 말 잘 따르는 건 똑같네.’

‘그러니까.’

‘영물인 너희야 모르겠지만, 인간은 약해. 어딘가 기댈 곳이 필요하지.’


두 뱀은 매번 봤으면서도 신기하게 여겼으나, 사문은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굳이 쟤를 왕으로 세워야 하나?’

‘맞아. 왕위에 앉고 싶어 하지도 않는 거 같은데.’


포테이는 많은 것을 각오하기엔 아직 너무나 여렸다.


‘그거 알아?’

‘뭘?’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잖아. 아직 용기가 없어서 그래. 좀 구르다 보면 용기도 솟아날 거야.’


사문은 간만에 재미있는 걸 찾았다는 눈빛이었다.

포테이는 그런 두근거리는 사문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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