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속 도사, 판타지 세계의 인과 연을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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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웨
작품등록일 :
2024.08.1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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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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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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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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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인신공양(4)

DUMMY

“여긴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야!”


분명 성의 꼭대기에 위치한 작은 방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현재 있는 곳은 끝없이 펼쳐져 있으며 흑과 백의 기운이 바람처럼 흐르는 무색의 공간이었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은 당혹스러워하며 사문에게 소리쳤다.


머리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분명 그들을 가두는 작은 공간이 펼쳐지는 것으로 보였으나, 무한해 보이는 공간이 펼쳐졌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알 수 없었다.


“음양문진. 상반된 두 기운의 조화를 이뤄 만들어낸 결계지... 뭐, 너희들이 듣는다고 뭘 알겠어?”


사문의 몸이 화살처럼 그들에게 향했다.


“공간 속에 새로운 공간을 만든 거야?”


사문의 뒤편에 있는 루디 또한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옆을 지키는 두 뱀에게 물었다.


“귀찮게 하긴... 하, 보통 결계라 하면 공간을 단절시켜 구분하는 걸 말해.”

“공간을 단절? 아니, 이건 단절의 수준이 아닌데?”

“보통이라 그랬잖아. 원래 세계에는 큰 의지가 있어. 그런데 단절된 공간 속에는 그 의지가 닿지 않아.”

“저 미친 주인이 그걸 알아냈고 이용할 방법을 찾아냈지.”


결계를 펼친 건 두 뱀이었지만, 사문과 연결된 만큼 결계는 그의 영향을 받은 상태였다.


“주인을 잃은 공간을 결계를 구성하는 기운으로 마구 주무른 거야.”

“그건 마치...”

“신이라고? 글쎄, 전능하진 않아.”

“맞아. 결계를 이루는 기운이 우리의 것인 만큼 주인이 다루기 쉽긴 하지만, 이 공간을 만들며 정한 규칙에선 자신도 벗어날 수 없어.”

“규칙...”


만약 염열문진을 펼쳤고 상대도 불을 다룬다면 상대에게 유리할 수도 있는 공간이었다.

상대가 불을 다루지 못하도록, 자신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그럼, 이 공간... 아니, 결계의 규칙은 뭐야?”

“그건 직접 보고 맞춰봐.”


루디는 강철이의 꼬리 끝에 있는 사문을 바라봤다.


“이딴 공간 따위, 네 놈을 죽인다면 나갈 수 있겠지!”

“우리와 함께 이곳에 갇힌 걸 후회나 하며 죽어!”


웨슬로의 탈을 쓴 가르구가 단단한 몸을 앞세워 달려들자, 그의 부인인 레센타의 탈을 쓴 카리브가 피로 이뤄진 채찍을 휘둘러 퇴로를 막았다.


“허튼짓을...”


사문은 그들의 공격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아니!”


가르구의 공격은 사문의 몸을 그대로 통과했고 이어진 카리브의 채찍 또한 그대로 통과하며 지나갔다.

그러나 가르구를 지나쳐 카리브에게 휘두른 사문의 검은 백색의 불꽃을 일으키며 그녀를 불태웠다.


“끼아아아!”


카리브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비명을 지르며 채찍을 마구 휘둘렀다.

대부분의 공격은 사문의 몸을 통과했지만, 어떤 공격은 피해내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이번엔 처음과 다른 검은 얼음이 검에 베인 그녀의 몸에 솟아나며 상처를 벌렸다.


“카, 카리브 님!”


뒤이어 두 아들의 탈을 쓴 악마들이 검과 창을 들고 사문을 향해 내질렀다.

첫째의 검은 몸을 통과했으나, 둘째의 창은 피하고자 뒤로 물러났다.


“육신의 가두고 업을 불태워라.”


사문은 청실을 돌려 잡으며 땅에 꽂았다.

청실에서 뻗어 나온 검은 서리가 땅을 타고 두 아들에게 향했고 그들과 닿는 순간, 서리는 발을 타고 오르며 몸을 점점 얼려갔다.


팅! 화르륵...

이어 홍실의 손잡이 끝을 청실의 손잡이 끝과 맞부딪히자, 소리를 타고 퍼져나간 하얀 불꽃이 그들의 몸에 붙어 업화를 일으켰다.


“끄아아아!”


불길과 닿았음에도 얼음은 녹지 않았다.

불길 또한 꺼지지 않았다.


“죽어라!”


가르구는 사문의 드러난 등을 향해 돌로 만들어진 창을 던졌다.

심장을 향해 날아옴에도 뒤로 돈 사문은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통과되는 건가?”


루디의 말에 강철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다 통과할 순 없을 거다!”


순간, 가르구의 창이 산산조각 나며 수많은 파편을 흩뿌렸다.


사문의 황급히 홍실을 들어 올리며 검은 얼음벽을 세웠다.

대부분의 돌조각은 벽에 막혔지만, 일부 돌조각이 벽을 통과하고 사문의 몸에 검은 얼음을 피워냈다.


“그런 거였군.”

“그런 원리였나.”


가르구도 떨어져 지켜보던 루디도 결계 속 규칙을 눈치챘다.


“흐르는 두 기운을 거친 공격만이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거야.”

“그래.”


이시미는 루디의 추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의 기운을 거친 공격은 적의 몸을 얼리고 양의 기운을 거친 공격은 적의 영혼을 태워.”

“각 기운을 거친 공격은 반대 기운을 거쳐야만 막을 수 있지.”


검은 얼음벽은 하얀 기운을 거친 돌조각과 아무것도 거치지 않은 돌조각은 막아낼 수 있었지만, 검은 기운을 거친 돌조각은 막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얀 기운이 양의 기운이란 거지? 그 기운은 영혼을 태운다고 했으니까...”

“맞아. 기운을 거치지 않은 공격을 막을 순 없어. 영혼이 없으니까, 어차피 몸을 통과할 테니 막지 않아도 상관이 없지.”

“아니, 네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영혼을 불태우면 몸을 빼앗은 악마는...”


현재 악마들과 가족들의 영혼은 한 몸 안에 공존하고 있었으나, 전투에 들어서면서 큰 부분을 차지한 건 악마의 영혼이었다.

사문은 밀려난 인간의 영혼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불꽃을 일으키지 않았다.

악마의 영혼이 타는 만큼 본래 몸의 주인인 가족들의 영혼이 차지하는 비율이 올라갈 것이고 유혹에서 이겨내 몸을 되찾을 수도 있었다.


“눈치가 빠르네. 그럼 두 번째 규칙은 뭘까?”

“하나 더 있는 거야?”

“그래. 지금까진 보이지 않았지만, 곧 보일 거야.”


루디는 다시 사문의 전투로 눈을 돌렸다.


“일단 주변에 흐르는 이것들을 두르며 공격해라!”

“예!”

“알았다고 달라질 건 없어.”


규칙을 알아낸 그들은 기운을 따라 움직이며 공격을 시작했다.

사문의 주변으로 달라붙어 공격하거나, 먼 거리에서 기운과 사문이 일직선이 되었을 때 공격하거나 하는 방식이었다.


여럿이서 덤비기에 불리해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기운을 너무 쫒다 보면 사문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를 모두 지켜볼 수 없었다.


“흐름을 잡으려 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


흐름을 쫓은 악마들의 공격은 흐름에 몸을 맡긴 사문의 공격에 너무나 쉽게 막혔고 반격을 허용했다.

사문의 검은 흐름이 올 것을 알고 먼저 흐르고 있었다.


“크윽!”


가르구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어진 사문의 공격에 둘째의 탈을 쓴 악마의 가슴이 얼어붙었다.


“그런가... 적에게 상처를 입히면 자신은...”

“회복하지.”


지금껏 공격을 허용하지 않아 보여줄 수 없던 규칙이었다.

돌조각에 베이고 얼어붙었던 사문의 몸에 상처들이 어느새 사라졌었다.


“음양은 순환을 뜻하기도 하지. 적이 입은 상처는 나에게 회복이 되고 내가 입은 상처는 적에게 회복을 일으켜.”

“만약 저 몸속에서 유혹을 이겨낸 너희 가족들의 영혼이 악마의 영혼을 공격한다면 어떻게 될까?”


루디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보호하라고 두 뱀을 붙였으면서 함께 결계에 갇힌 이유를.


“아버지! 악마에게 몸을 넘길 만큼 전쟁을 잊지 못하시는 겁니까!”


양의 기운을 거친 가르구의 손이 사문에게 닿기 전, 잠시 멈칫했고 사문의 검이 양의 기운을 지나치며 그의 가슴을 올려 벴다.

불꽃이 피어나며 가르구의 영혼을 다시 불태웠다.


“크아아아! 반항하...”

“전쟁은 또다시 많은 이들에게 상처만 남길 뿐입니다!”


루디의 외침에 양의 기운을 거쳤던 가르구의 손이 자신의 가슴에 손톱을 박고 불꽃을 더욱 피워냈다.


“너부터 죽어라!... 내 아들을 건드...”


카리브가 휘두른 채찍이 음의 기운을 거쳤으나, 함께한 레센타의 의지에 끝이 흔들리며 루디가 아닌 그 옆에 있는 강철이에게 향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양의 기운을 꼬리로 내려친 강철이가 채찍을 입에 물고 당겼다.

카리브의 몸이 튀어 오르자, 강철이가 뿜은 불꽃이 다른 양의 기운을 통과하며 백색의 불꽃이 되어 카리브를 뒤덮었다.


“끄아아아!”

“어머니!”

“걱정하지 마, 저 비명은 악마 놈 거니까.”

“여자 몸이나 강탈하고 변태 같은 놈이네.”

“꺄아아아...”

“어...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면 어떻게 해...”


루디의 부름에 깨어난 레센타의 영혼이 잠시, 카리브의 영혼을 밀어내며 나온 탓에 비명이 달라졌다.


“좋은 징조네.”

“뭐? 어머니가 지금 고통스러워하시잖아!”

“대신 잠시라도 몸을 되찾았다는 거잖아. 비명도 번갈아 나오지만, 점점 네 어머니의 비명이 더 나오기 시작했네.”


카리브의 영혼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뜻이었다.


“으... 이딴 방식이...”

“쉽게 얻는 건 없는 법이야. 그리고 저 정도는 좀 고통스러워도 괜찮아.”


이시미는 냉정한 눈빛으로 카리브를 바라봤다.


악마가 몸에 깃든 탓에 어린 아이들을 죽였다고 하더라도 레센타에게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악마란 욕망을 부추기는 존재라고 했었다.

부추겨져 몸의 통제권을 빼앗길 만큼의 욕망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내게는 좋은 어머니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타인에게도 좋은 사람일까? 전쟁을 바라던 남편을 말리지 않았어. 그 점 탓에 타인에 대해선 그다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

“어머니도 고민이 많으셨다고! 다만... 외숙부님의 죽음 탓에 적극적으로 말릴 수 없던 거뿐이야.”


그녀 또한 복수심을 품고 있었고 그 탓에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을 두고 고민한다? 그거 자체가 죄악이야.”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 탓에 고민을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목숨이 달린 것으로 고민했다는 건 크나큰 죄악이었다.


“역시, 저 자비심 없는 녀석보단, 내가 더 용에 어울리지.”


강철이는 이시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둘 다 적당히 해. 이제 끝났으니까.”


사문이 검을 넣은 채, 카리브에게 다가와 손을 이마에 올렸다.

이어 손가락 끝을 깨물고 흘러나온 피로 이마에 축마(逐魔)를 적자 악마가 그녀의 몸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 어떻게!”

“그건 네가 알 바가 아니고, 사라지기나 해.”


사문은 부채를 꺼내 난폭한 바람을 일으켰고 바람은 양의 기운과 닿아 거대한 불길이 되어 악마의 영혼을 불태웠다.


“끼아아아아!”


악마의 영혼은 그렇게 재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사문의 뒤에는 이미 이마에 축마가 적힌 채 반신이 얼어있는 가족들이 있었다.


“이시미, 전쟁과 어린아이의 죽음이 내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지만 다 털어내.”

“다 털어냈어. 그저 주제를 모르는 소리를 하니, 몇 마디 해줬을 뿐이야.”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차갑게 바라보던데?”

“넌 닥쳐.”

“훗!”


강철이는 비꼬듯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정말 다 끝난 거야?”

“그래.”


쩌적... 쨍그랑...

사문이 합장하자, 결계에 금이 가더니 유리처럼 깨지며 사라졌다.

제단 앞으로 돌아온 그들은 떨어져 있던 거리가 공간이 한정된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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